국적 | 신라 |
이름 | 작진(酌珍) |
관등 | 각간(角干)(?) |
성씨 | 이(李)? |
아내 | 왕교파리(王咬巴里) |
1. 개요
신라의 인물. 삼국유사에 인용된 이제가기(李磾家記)에서만 등장한다. 아자개의 아버지로, 후백제를 건국한 견훤의 할아버지.2. 가계
이제가기에 의하면 그의 가계는 다음과 같다.여기서 적어도 진흥왕 & 백숭부인[1] → 김구륜 → 김선품까지는 연대와 계보가 그럭저럭 맞아들어가는 것부터 생각해보아야 한다. 사서의 기록에 따르면 김선품의 딸이 문무왕의 처 자의왕후로 7촌혼이 되며, 문무왕의 조부 김용수도 천명공주와 5촌혼했기 때문이다.
물론 진흥왕과 아자개의 활동시기가 300년 넘게 차이 나는 걸 보면 김선품 → 작진의 연결성은 상당히 신뢰도가 떨어지며, 작진 & 왕교파리 → 아자개까지 연결 또한 정말로 그랬을지는 상당한 의문이 나는 게 사실이며, 당연히 어느 정도 술작은 들어갔을 개연성이 크다.
그러나 그냥 보기에도 상당히 어설프고 백제와의 연결성도 따지고 따져봐야 무려 수백 년 전 조상 할머니인 백숭부인에서 끝나서 그냥 내세우면 웃음거리가 될 가능성이 큰 상황에서, 견훤 일가가 이걸 대놓고 처음부터 끝까지 조작했을 가능성 또한 크게 떨어진다. 게다가 진흥왕의 부인 백숭부인과 작진의 부인 왕교파리는 여성인데도 굳이 가계도에서 언급하는 걸 보면 상당히 신분이 높은 집안 딸로서 아자개와 견훤 일가 가계도에서 중요한 인물임을 알 수 있다.
따라서 선품과 아자개 사이에 생략된 인물이 대단히 많고, 그중에 중요한 인물이 작진과 왕교파리라고 보는 게 합리적인 추측이 되겠다. 작진이 선품의 아들이었는지, 아니면 아자개의 아버지였는지, 아니면 선품과 아자개 사이에 있는 인물이었는지는 현재로서는 아무도 알 수 없는 사실이다. 일단 아자개가 김씨는 아니고 이씨였던 이상 아자개로부터 김선품까지 부계 직계로 이어졌다고 보기는 분명 어려운 상황이니, 작진이 아닌 왕교파리 측이 선품과 연관이 있는지도 모르는 일이다.
작진이 각간(角干)이라 언급된 것도 의미심장한데, 각간은 진골 이상만 받을 수 있는 신라 최고 관등인 이벌찬의 이명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아자개-견훤 가문은 사벌국계 5두품으로 추정되며, 사서에서 아자개가 호족으로 웅거하여 진골의 관등을 자처하였고, 실제로 진성여왕 이후 친신라 성향의 원신라 호족들은 이런 진골 관등 자칭을 허락받은 정황이 있으나 아자개의 나이가 840년대생으로 추정됨을 고려하면 작진이 아자개의 아버지라고 해도 각간의 관등을 허락받을 시대적 상황이 아니었다. 물론 후대 후손들이 각간으로 올려치기했을 수도 있지만, 진흥왕의 손자이자 문무왕의 장인인 김선품의 후손이 아자개의 조상 할머니라 가정하면 각간 작진은 무열왕계에서 원성왕계로 교체된 후 영락한 김씨 진골의 일원이었고, 작진과 왕교파리의 후손 김씨녀가 아자개의 조상 이씨와 혼인한 것이 후대에 와전된 것일 수도 있다.
아자개의 이씨 가문이 5두품이기는 해도 김씨 왕조 친위대 가문이라는 입지상 처지가 악화된 6두품 정도는 귀천상혼으로 노려볼 만한 은수저 가문이었고, 원성왕계 시절로 가면 진골 김씨와 박씨들이 족강되어 5두품까지 떨어지는 경우도 허다했다는 금석문의 기록을 고려하면 아자개의 이씨 가문이 진흥왕의 후손 중 5~6두품으로 족강된 후손의 일원과 혼인하는 것이 꼭 개연성이 없는 것은 아니다. 작진은 그들의 일족이 족강되기 전 진골로서 떵떵거리던 당시에 특히나 성공한 김씨녀의 조상이었을 수도 있다.
3. 기록
李碑家記云, “真興大王妃思刀謚曰白𪀚夫人. 第三子仇輪公之子, 波珎干善品之子角干酌珎妻王咬巴里, 生角干元善, 是為阿慈个也. 慈之弟一妻上院夫人, 第二妻南院夫人, 生五子一女. 其長子是尚父萱, 二子将軍能哀, 三子将軍龍盖, 四子寳盖, 五子将軍小盖, 一女大主刀金.”
≪이비가기(李碑家記)≫에는 “진흥대왕의 왕비 사도(思刀)의 시호는 백융부인(白𪀚夫人)이다. 그 셋째 아들 구륜공(仇輪公)의 아들 파진간(波珍干) 선품(善品)의 아들 각간(角干) 작진(酌珍)이 왕교파리(王咬巴里)를 아내로 맞아 각간(角干) 원선(元善)을 낳으니 이가 바로 아자개(阿慈个)이다. 아자개의 첫째 부인은 상원부인(上院夫人)이요, 둘째 부인은 남원부인(南院夫人)으로 아들 다섯과 딸 하나를 낳았다. 그 맏아들이 상보(尙父) 훤(萱)이요, 둘째 아들이 장군 능애(能哀)요, 셋째 아들이 장군 용개(龍蓋)요, 넷째 아들이 보개(寶蓋)요, 다섯째 아들이 장군 소개(小蓋)이며, 딸이 대주도금(大主刀金)이다”라고 하였다.
삼국유사 제2기이 후백제 견훤
≪이비가기(李碑家記)≫에는 “진흥대왕의 왕비 사도(思刀)의 시호는 백융부인(白𪀚夫人)이다. 그 셋째 아들 구륜공(仇輪公)의 아들 파진간(波珍干) 선품(善品)의 아들 각간(角干) 작진(酌珍)이 왕교파리(王咬巴里)를 아내로 맞아 각간(角干) 원선(元善)을 낳으니 이가 바로 아자개(阿慈个)이다. 아자개의 첫째 부인은 상원부인(上院夫人)이요, 둘째 부인은 남원부인(南院夫人)으로 아들 다섯과 딸 하나를 낳았다. 그 맏아들이 상보(尙父) 훤(萱)이요, 둘째 아들이 장군 능애(能哀)요, 셋째 아들이 장군 용개(龍蓋)요, 넷째 아들이 보개(寶蓋)요, 다섯째 아들이 장군 소개(小蓋)이며, 딸이 대주도금(大主刀金)이다”라고 하였다.
삼국유사 제2기이 후백제 견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