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04-12 23:03:01

김구륜



金仇輪
?[1] - ?

1. 개요

신라의 왕족. 삼국유사가 인용한 이제가기에만 등장한다. 진흥왕과 사도왕후의 3남이라고 하며 아들로 파진찬 선품을 두었다고 한다. 선품의 딸인 문무왕의 왕후가 620년경 출생으로 추측되기에 적어도 진흥왕 & 백숭부인 → 김구륜 → 김선품 까지는 그럭저럭 출생연도와 세대가 아귀가 맞다.

물론 김선품(문무왕의 장인) → 작진 & 왕교파리 → 문경~상주 일대 호족이자 이씨인 각간 원선(元善) = 아자개 이 계보는 세대차로 봐서는 크게 엉터리지만, 진흥왕의 왕비 사도의 시호를 '백융부인'으로 적시한 것은 매우 의미심장한 대목이기에 이들이 아자개, 견훤 등과 연관이 없었다고 보긴 어렵다. 백융부인은 동륜태자와 진지왕의 모후 사도부인이 아닌, 백제 성왕의 딸 소비 부여씨일 개연성이 매우 높기 때문이다. 또한 견훤과 아자개의 기원인 문경~상주 일대는 신라 왕실의 정예병 양성 지역으로 왕실 직할령이나 마찬가지인 지역이었고 그 일대 호족들이 이미 눌지 마립간 때부터 나름 꽤 특별대우를 받았던 것도 고고학적으로 검증된다.

그러니 신라 왕실 직할령의 유력한 호족인 견훤과 아자개의 조상 중 하나인 '이씨'가 김선품의 후손인 김씨녀와 혼인해 이들의 선조를 낳았었고, 이 인상 깊은 기억이 구전으로 내내 내려오다가 이제가기에 실렸다고 보는 게 더욱 개연성 높은 추측이라 하겠다. 선품부터 아자개 사이에서 나오는 인물이 작진[2]과 왕교파리[3] 외엔 없었던 건 아무래도 상대적으로 한미한[4] 가문에서 이름이 계속 전해질 가치가 있었던 건 그 뿐이었던 것이고. 그래서 이런 기이한 계보가 나온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이후 견훤이 부여융의 8대손이란 선전이 나온 것을 보면 오히려 이 족보의 신빙성은 높아진다. 무려 수백 년 되짚어가야 나오는 조상 할머니 중 하나가 성왕의 딸 소비 부여씨와 진흥왕 사이 후손인 걸 갖고 백제 왕족 후예라고 행세한다는 건 누가 봐도 엉터리였기에 그런 술작들이 나온 것이기 때문이다. 다름아닌 직계 부계가 지증왕부터인 신라 원성왕 또한, 무열왕 딸의 후손인 걸 갖고 무열왕계를 자칭한다는 건 너무나도 말이 되지 않았기에 선덕왕, 경덕왕, 자신 등 이 셋의 공통 부계 선조 내물 이사금을 강조해야 했던 걸 보면 더욱 잘 알 수 있다. 백번양보해서 백융부인이 소비 부여씨가 맞다 한들 견훤과 소비 부여씨의 간극은 무열왕의 딸과 원성왕보다도 더 멀었으니 견훤이 어떤 FACT를 갖고 백제 부여씨 왕가와의 연결을 강조하기가 대단히 어려운 상황이었다.

2. 기록

“진흥대왕의 왕비 사도(思刀)의 시호는 백융부인이다. 그 셋째 아들 구륜공(仇輪公)의 아들 파진간(波珍干) 선품(善品)의 아들 각간(角干) 작진(酌珍)이 왕교파리(王咬巴里)를 아내로 맞아 각간(角干) 원선(元善)을 낳으니 이가 바로 아자개이다.
삼국유사

[1] 형인 동륜태자, 진지왕이 550년대에 태어난 것으로 추정되므로 김구륜은 빨리잡아도 550년대 후반 ~ 진흥왕이 사망한 576년 이전에 태어났을 것으로 추정된다.[2] 앞서 언급한 김씨녀를 모친으로 둔 '이씨' 아니면 아자개의 부친이었을 개연성이 있다.[3] 여성인데도 족보에 등장하는 걸 봐선 나름 꽤 신분이 높은 집안에서 나온 조상할머니였던 것 같다.[4] 그러나 이건 서라벌 진골 기준에서 하는 얘기다. 견훤의 신라군 최종 승진 계급이 5두품이 오를 수 있었던 가장 높은 자리인 '비장'이었기에, 적어도 아자개 집안은 5두품 신분은 될 개연성이 매우 높다. 이 정도면 어떻게 봐도 신라 사회에선 은~동수저 급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