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인 국적의 축구선수 출신 축구감독에 대한 내용은 사비 에르난데스 문서 참고하십시오.
유튜버에 대한 내용은 고차비 문서 참고하십시오.
차비(車費)에 대한 내용은 교통비 문서 참고하십시오.
次妃
둘째 왕비라는 뜻이다. 한국사 공통적으로 차비(次妃)라는 칭호가 쓰이지만, 고구려에서는 소후(小后), 신라에서는 소비(小妃)/후비(後妃)라고도 했다.[1]
왕의 첫번째 정실부인과 공존한 두번째 정실부인이지 첩이 아니다. 그래서 차비는 정실을 여럿 두는게 가능한 시기에만 존재했고, 정실을 한명만 두는 게 자리 잡은 조선 초기 이후로는 존재할 수 없었다.
한국사에서 차비(次妃)/소후(小后)/후비(後妃)로 수식되거나 될 뻔했다는 기록이 있는 인물들은 다음과 같다.
- 고구려 대무신왕의 차비(次妃) 차비 해씨
- 고구려 산상왕의 소후(小后) 후녀
- 고구려 중천왕의 소후(小后)가 될 뻔한 관나부인
- 고구려 안원왕의 소후(小后) 중부인, 소부인
- 신라 진흥왕의 소비(小妃) 소비 부여씨
- 신라 진평왕의 후비(後妃) 승만부인
- 신라 혜공왕의 차비(次妃) 창창부인
- 신라 문성왕의 차비(次妃)가 될 뻔한 장보고의 딸
- 신라 경문왕의 차비(次妃) 차비 김씨
- 신라 경순왕의 후비(後妃) 낙랑공주
- 고려 인종의 차비(次妃) 선평왕후[2]
- 조선 태조의 차비(次妃) 신덕왕후[3]
[1] 삼국사기, 삼국유사와 달리 화랑세기 필사본에서는 후비(後妃)가 후궁을 가리키는 단어로 나오지만 이는 위서이기 때문에 거짓이다.[2] 이자겸의 딸들이 폐비가 되고 새로이 왕비가 돼서 계비도 맞지만 고려사의 기록과 선평왕후보다 늦게 왕비가 된 공예왕후가 제1왕후였던걸 봐선 차비도 맞다.[3] 계비로도 기록되긴 하지만 통상적으로 계비는 왕이 왕비와 이혼이나 사별을 한 뒤 새로운 왕비를 계비라고 하지 신덕왕후는 차비로 보는것이 적절하다. 하지만 신의왕후는 조선 건국 전에 사망했음으로 사실상 신덕왕후가 원비(元妃)나 마찬가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