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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D9E6FF><colcolor=#000> 밀라노 공국 제2대 공작 잔 마리아 비스콘티 Gian Maria Visconti | |
이름 | 잔 마리아 비스콘티 (Gian Maria Visconti) |
출생 | 1388년 9월 7일 아비아테그라소 |
사망 | 1412년 5월 16일 (향년 23세) 밀라노 |
재위 | 밀라노 공국의 공작 |
1402년 9월 3일 ~ 1412년 5월 16일 | |
배우자 | 체세나의 안토니아 말라테스타 (1408년 결혼) |
아버지 | 잔 갈레아초 비스콘티 |
어머니 | 카테리나 비스콘티 |
형제 | 필리포 마리아 |
종교 | 가톨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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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밀라노 공국의 제2대 공작. 성격이 포악하고 무능력해서 아버지가 세워놓은 영토를 다 갉아먹히고 암살당해 죽었다.2. 생애
초대 밀라노 공작이던 잔 갈레아초 비스콘티는 밀라노를 중심으로 북이탈리아 대부분을 통일할 정도로 나름 능력있는 지도자였다. 허나 능력이라도 있었던 아버지와는 달리 이인간은 성격이 포악했다. 아버지가 급작스러운 열병으로 사망하자, 13세의 어린 나이에 밀라노 공작위에 올랐고 어머니 카테리나 비스콘티가 대신 섭정을 맡았다. 하지만 섭정이나 잔 마리아 비스콘티나 둘다 아버지가 확장해놓은 거대한 공국을 유지할 능력이 없었다. 결국 잔 갈레아초 비스콘티가 세워놓은 왕국은 조각조각 해체당한다.수많은 세력들이 밀라노 공국의 영토를 갉아먹었는데, 개중 가장 세력이 컸던 건 콘도티에로[1] '파치노 카네'였다. 파치노 카네는 1401년 이래로 비스콘티 가문 아래에 고용되어 밀라노 공국 내부의 실권을 휘어잡은 인물이었다. 그는 잔 마리아 비스콘티의 포악하기 짝이 없는 성정을 이용해 잔 마리아의 마음속에 어머니 카테리나 비스콘티에 대한 의심을 싹틔웠다. 어머니가 자신의 권력을 위협하고 있다고 여기게 된 잔 마리아는 어머니를 섭정자리에서 내쫒고 몬차 성에 유폐했다. 카테리나 비스콘티는1404년 10월에 죽었는데 아마 잔 마리아가 죽여버린 것으로 추정된다.
어머니를 죽여버릴 정도로 성격이 개차반이던 잔 마리아는 사람을 물어뜯는 용도에 특화된 맹견들을 기르며 귀여워할 정도였고, 덕분에 사람들 사이에서 그에 대한 인심은 날로 악화됐다. 1404년에는 안토니아 말라테스타와 결혼했지만 자식도 보지 못했다. 상황이 이러자 밀라노 내부의 기벨린[2] 세력들이 그를 죽여버리려 음모를 짜기 시작했고, 파치노 카네가 앓아누운 틈을 타 밀라노의 한 성당 앞에서 대놓고 잔 마리아를 암살했다. 소식을 들은 파치노 카네는 필리포 마리아 비스콘티를 새 후계자로 지명했고 이에 따라 필리포 마리아가 제3대 밀라노 공작으로 즉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