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04-15 13:59:39

잔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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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1.1. 문제점1.2. 생각해 볼 점
2. 동명의 노래들
2.1. 김건모의 9집 타이틀 곡2.2. 더 넛츠의 2집 타이틀 곡2.3. 박혜경의 4집 9번 트랙 수록곡2.4. 아이유임슬옹의 듀엣곡2.5. 이효리의 곡

1. 개요

Nitpicking, Nagging

쓸데없는 말 혹은 필요 이상으로 듣기 싫게 꾸짖거나 참견함.

대체로 훈계/조언을 하려다가 감정이 격해지거나, 서툰 표현 방식 때문에 나타난다. 부모님의 경우 자식을 걱정하는 마음이나 기대하는 마음, 자식이 잘 되길 바라는 마음 등을 표현하는데 서툴어, 자식 입장에서는 부담될 수밖에 없는 말을 조언이랍시고 늘어놓게 되는 것이다.[1]

올바른 조언은 먼저 현재 상황의 문제점이나 입장 등을 인식하고, 둘째로 문제의 원인이 무엇인지를 생각하며, 셋째로 원인을 제거하거나 개선되게 하는 방법을 생각하여 토론하고 대화하며, 문제점 그 자체보다는 원인에 대한 분석과, 그에 대한 해결 방안을 상대에게 따뜻한 설득과 조언으로 제시하는 것일 것이다.

그러나 대부분 결과만 강요하는 형태로 잔소리를 하고, 이런 잔소리는 화풀이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닐 것이다.

그렇다고 너무 없으면 또 허전한 애증의 취급을 받기도 하고 더 삐뚤어지기도 한다.

잔소리로 인해 인생이 상당히 망가진 대표적인 인물로는 만력제가 있다. 황태자 시절 권신인 장거정에 의해 매일 선을 넘는 잔소리를 들어야만 했고 결국 장거정이 죽고 난 뒤 타락해져 일국의 황제가 30년 넘게 일을 하지 않아 명나라가 멸망하는 데 큰 원인이 되었다. 자세한 건 만력제 문서로.

1.1. 문제점


사람 사는 게 아무리 한 핏줄, 한 팀, 한 민족이라고 해도 서로 가치관이 제각각이니만큼, 상호간의 이해관계가 일치하지 않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만약 서로 다른 생각을 가지고 있는데 어느 한쪽이 막무가내로 그 의견을 내세운다면, 그 의견의 옳고 그름을 떠나 불쾌감과 반대 심리가 생기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현상이다.

'잔소리'의 범위는 사람마다 제각각이다. 말은 즉슨, 말하는 사람과 듣는 사람이 생각하는 잔소리와 훈계의 범위가 다를 수 있다는 것이다. 본인이 하고자 하는 일에 조금만 태클을 걸어도 잔소리로 인식하는 경우도 있고, 그냥 수긍하고 넘어가는 사람도 있는 등 그 기준이 천차만별이다. 말하는 사람이 듣는 사람을 잘 고려하지 않은 채 하는 조언은 사람에 따라 그저 잔소리에 불과할 수도 있다.

또한, 자기가 하고 싶은 말만 일방적으로 툭툭 던지고 끝난다면, 좋은 훈계라고 보기 어렵다. 상대방을 배려하여 상대방의 입장에서 왜 그런 행동을 했는지 파악 후 다른 방법을 제안하는 것이 가장 좋다.

잔소리의 가장 큰 문제점은 옳지 않은 일을 고치려고 하는 게 아니라, 단지 화풀이를 위해 정말 비난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닌 수준의 잔소리를 하는 부모교사, 그리고 직장 상사들도 많다는 점이다. 이런 경우 대부분 잔소리를 하는 사람의 자기애나 불안감이 반영되는 경우가 많은데, 자기애성 성격장애수동공격성 성격장애를 가진 사람의 경우, 도가 지나친 잔소리를 하게 된다고 한다# 그러나 대부분의 경우는 상대방을 기분 나쁘지 않게 하고 싶었음에도 불안하면서도 걱정되니까 제대로 된 표현을 못한 것일 가능성이 높다.

잔소리를 하는 화자가 스스로 격앙되어 논점에서 벗어나거나, 똑같은 말을 반복하거나 남을 비교하고, 심한 경우 폭행을 저지르는 등의 행위가 나타나기도 하는데, 이는 학습이나 훈육에서 벗어난 행위다. 비교하고 강요하는 식의 잔소리는 반성성찰보단 반발심만 키운다. 특히 상급자가 계급을 통해 논리적, 도덕적인 허점을 스스로 회피하려고 한다면 더더욱.

그 외에 이해 없는 잔소리는 자존감 부족, 스트레스, 의욕상실, 자아불안, 행동장애, 집중력의 상실 등 다양한 증상을 유발 혹은 촉진시킨다. 성장하면서 다행히 어느 정도는 극복을 하는 경우도 있지만 주체성, 자주성, 자존감의 상실 등 다양한 부작용은 약하게나마 꾸준히 이어진다.

사람을 교정할 때 필요한 것은 적절한 공감과 도움말과 논리적인 설득력, 적합한 보상, 가벼운 기대가 사람을 안정적으로 교정하는 지름길이지, 결코 자기중심적인 화풀이성 잔소리가 아님을 명심해야 한다.

1.2. 생각해 볼 점

이하의 내용을 요약하자면 이 입장에서는 결국 이렇게 내세울 만하다. "모든 잔소리를 문제시하면 곤란하고 남한테 계속 훈수 두고 적정선을 넘도록 가르치려드는 게 진짜 잔소리다."

잔소리의 정의가 쓸데없는 말 혹은 필요 이상으로 듣기 싫게 꾸짖거나 참견함으로 되어 있기는 한데, 당연히 입장에 차이가 있기에 잔소리를 "하는" 사람과 "듣는" 사람으로 갈리게 마련이다. 그리고 동일한 사람이 얼마든지 잔소리를 "하는" 사람도 되고 "듣는" 사람도 될 수 있다. 이 점에 주목해서 잔소리가 있는 상황들을 정리하면, 태도/규칙/업무 등에 관련하여 책임져야 하는 사람이 관리 받아야 하는 사람과 충돌을 일으키는 것이다. 잔소리라고 하는 게 마냥 잘못됐다고 할 수가 없는 것이 윗사람이 아랫사람에 대해서 불안한 마음에서 말하는 거니까 어른의 걱정으로 좋은 말로서라도 표현하는 거지만, 안 좋게 말하면 너무 큰 기대랑 메마른 공감과 의지 부여도 없이 그냥 잔소리하는 건 잘못됐다. 사람을 교정할 때 가벼운 기대랑 공감, 의지 부여가 교정하는 데 절반이라도 먹고 간다. 본문 내용부터 거의 부모가 자식에게 하는 관계 상황에 국한되어 있기에, 연인이나 친구 간의 수평적인 잔소리는 제외한다.

물론 당연히도 "잔소리"라는 것에 신체적·언어적 폭력이 동반되거나 사회규범에 어긋나는 행동을 요구하는 것 등이 있다면 당연히 잔소리의 영역이라 볼 수 없고 폭력이나 강요에 가깝거나 해당한다. 이런 비상식적 처사에 노출된 상황에서라면 미성년자는 학교 Wee클래스나, 상담센터 등의 기관을 통해 조치를 받아야 하며, 성인은 기관과 법정과 같은 시스템의 도움을 받아야 하기 때문에 우리가 통상적으로 받아들이는 잔소리의 규범에서 벗어나 있다.따라서 아래에 나온 이야기 들은 이 영역의 이야기는 일절 하지 않고 있음을 전제한다. 이는 이해할 영역이 아니다.

만일 어른들의 격한 말을 충고나 조언이 아니라 "억압형 잔소리"도 아니고 "인격을 망치는 잔소리"로 극단적으로나마 생각하는 아이들은 마냥 범죄나 저지르고 감옥에 갈까? 감옥은 무조건 법의 심판이 나와야 간다는 건 요즘 사상에 안 맞는 어른들의 선입견이자 매우 잘못된 편견에 불과하다. 잔소리도 전혀 취급 안 하면 마냥 허전한 듯하면서 귀차니즘이 심해질 뿐이지, 그런 거로 법의 심판을 받지 않고 빨간 줄이 그이지 않는 대신에 귀찮음과 나태함이 심해진다. 결론은 잔소리 안 듣는다고 귀차니즘이나 허전함이 심해질 뿐, 절대로 빨간 줄이 그어지지는 않으므로, 이런 거로 뭐라 할 거면 부모 사상을 바꾸거나 마음가짐부터 바꿀 것. 잔소리는 부모가 자식의 미래나 그런 거에 불안해서 격해져서 하는 소리이고 자식들이 감옥에 가지 않는다는 건 자식의 정서건강이나 마음 내면이 건강하다는 걸 의미한다. 다시 한 번 말하지만 감옥은 정서건강이나 마음 내면이 건강치 못한 사람들로 득실하다. 잔소리로 자식들에게 크나 큰 스트레스 주는 부모는 한 번 생각해볼 것.

그리고 자식이 공부를 열심히 해서 원하는 대학에 가냐 못 가냐는 자신이 평소에 얼마나 책상에 앉아서 공부에 열심히 집중했고 철저한 이해가 받치고 있느냐에 따른 문제이다. 물론 부모 세대에서 1시간 투자란 없는 법이었고 그렇다고 한들 대학조차 갈 수 없다고 보는 세대였다. 그렇지만 요즘은 최소 재수나 삼수 이상이 기본이라는 농담 반 진담 반이 들려온다. 설령 그냥 평소처럼, 즉 몸과 마음이 가볍게 시작을 1시간만 투자했다고 해서 아예 못 간다는 건 아니다. 공부는 1시간으로 가볍게 시작하거나 30분으로 살살 시작하다가 천천히 1시간 30분 이상으로 30분씩 늘려가며 해야만 무리가 덜 가는 거지, 처음부터 3시간이네 밤 꼴딱 새며 공부하네 이거는 사법고시나 학력고사나 임용고시를 공부하는 거나 다름이 없고 공부 시간을 천천히 늘린 상태일 때 그렇게 공부해야 된다. 처음부터 그렇게 공부했다가는 체력만 다 소진할 것이다. 그리고 1시간 가지고 공부가 되냐고 그래서 대학을 갈 수 있느냐고 잔소리하는 부모들은 아마 그때 사상을 확실히 못 버렸고 1시간이 공부에 도움이 안된다는 것에서 비롯된 것으로 생각한다. 그래서 1시간 가지고 대학을 못 간다고 잔소리하는 것이다. 1시간은 결코 작은 시간은 아니다. 그래봐야 평균이 1시간 15분에서 30분 사이다. 이에 비교하면 비슷하거나 상위권이 하는 것보단 턱없이 작다.

본인이 이해가 가능한 선에서 공부를 한다고 하더라도 적어도 1시간을 공부하든 2시간을 공부하든 6시간을 공부하든 상관없다. 그건 본인이 얼마나 이 내용을 흡수해서 나의 현재 수준을 성장시킬 수 있는 호르몬이 되어주고 부가적인 요소인 컨디션이 받쳐주느냐에 따라 내 미래가 결정된다. 마치 과일의 영양분이 내 몸에 흡수해서 칼슘이 내 수준을 성장시킬 수 있는 호르몬이 되어야 하는 것이니라. 그러나 아빠 세대와 큰아빠 세대에 쓰이던 목숨 건 공부를 자식에게 절대 대물림이 되어서는 안된다. 다름이 아닌 수능 체제에 수시 전형 때문에 그렇다. 학생부 교과에 추가적으로 수능최저나 정시나 학종이나 옛날 방식으로 공부해서 뭐 하나 이상을 제대로 얻는 게 없다. 그래봐야 그건 내신에서 점수 하나 더 대대적으로 받아가려고 애들끼리 발악하는 것이다. 아버지 세대는 학력고사에 목숨 걸고 공부하던 때라 본인이 그렇게 공부한 걸 자식에게 대물림시키는 경우가 있다. 물론 본인이 성적도 높고 그 나라 말도 잘해서 뉴욕 대학교하버드 대학교베이징대학이나 칭화대학이나 옥스퍼드 대학교그랑제콜이나 모스크바 대학교베를린 훔볼트 대학교도쿄대학 수준으로 가겠다고 하면 어떻게든 성적을 올 1등급으로 치중시키도록 해야 하고 그 나라의 언어는 적어도 2등급 내외로 안착시킨 뒤 자격증 최고급을 노리고 딴 뒤 유학시험에 만점 내외로 붙어야 한다.

그 정도 공부 시간은 12시간은 족히 넘는다. 학력고사 세대인 아빠 세대가 바로 이러한 경우랑 비슷해서 나중에 애가 있다고 한들 그런 방식을 물려줘선 안 된다. 전국권이나 전교권 내외에 드는 애들이 엄청 공부하고 하는데 본인이 정작 학생 때 좋은 대학에 목숨 걸었으면서 자식이 1시간 공부한다고 되게 압박감 주고 뭐라 하는데 그건 부모 입장에서는 겨우 1시간 동안 공부해서 될 게 아니라는 뜻으로 하는 것이다. 3시간 넘게 공부하라고 하는 건 집중력과 관계없이 억지로 공부시키는 거니 부모 입장에서는 몰라도 자식에게는 큰 스트레스다. (물론 본인이 고등학생 때나 그 이전에 그래 버릇했으면 스무스하게 3시간 넘기는 건 말이 되고 그렇게 안해 버릇하면 3시간은 무리이다. 차라리 본인이 부모에 의해서 고통받으며 하기 보다는 내가 이해할 수 있는 선과 컨디션이 받쳐주는 선에서 공부를 하기를 바란다.)

그렇다면 필요한 범위 내의 훈육, 잔소리가 아닌 영역은 어떻게 구별해야 할까? 사실 별다른 방법은 없다. 위 문단에서 이미 정의가 되어 있다. 필요한 영역 이외의 것. 그러나 잔소리를 하는 입장에서 보자면 그 언어 대부분은 필요한 영역 내의 것으로 생각하고 있다는 점을 먼저 이해해야 한다. 상호 달라지는 이 이해의 차이를 먼저 줄일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우선적으로, 부모와 선생님은 본인들이 책임을 다해야 할 아동을 지도하고 위험으로 보호할 의무가 있으며, 그 아동이 사회 생활의 규율을 어기지 않게 지도해야 한다. 지도를 게을리 했을 경우 때에 따라서는 법에 의해 처벌 받기도 하며, 양육권 박탈, 해고로 이어진다. 이는 직장 상사와 부하 직원 관계 역시 마찬가지다. 부하 직원은 상사보다 경험이 많지 않으므로, 상사는 부하 직원의 실수에 책임을 져야 할 의무가 있으며 그렇기에 부하 직원을 지도하고 위험으로부터 보호할 의무가 있고, 업무 활동 상 법 규율에 어긋날 수 있는 범례들을 지도할 필요가 있다.

따라서 "잔소리"의 내용이 사회규범에서 대놓고 어긋나지 않으며, 조금은 부정적 감정을 느끼기도 하고 불만을 가질 수 있더라도 나름대로 세상의 명분에 충실할 적에는 그 "잔소리"로 인한 고통의 원천 그리고 대책이 바로 자신에게 있지는 않은가, 저 사람이 지금 부정적인 말만 내뱉어서 내가 스트레스를 받고 있는가를 살펴보는 것도 나쁘지 않다. 그리고 긍정적 언어를 이해할 수만 있다면 그건 더 이상 잔소리가 아닌 지도가 되고 부정적인 언어만 내뱉으면 잔소리에서 더 벗어나지 않는다. 결론은 부모든 누구든 부정적인 언어, 일반화만 내뱉으면 다음과 같은 생각하자. '이 어른이 지금 모범적인 행동을 안 보여주고 계속 잘못한 모습 보여줬으면서 자꾸 부정적인 잔소리에다가 핑계란 핑계를 대고 있구나, 무능력한 상사. 본인 스트레스 관리나 똑바로 잘하지, 계속 술 마시고 담배만 먹어대는데 나보다 그쪽이 더 일찍 가겠구나. 120살도 넘게 사는 요즘 애들보다 나약해서 원. 50대가 그런 말밖에 못하다니, 되지도 않는 말밖에 못하네.'

그렇다면 이 점을 생각하고 넘어가 보자. 당신의 부모와 선생님, 직장 상사가 잔소리를 했을 때와, 지도를 했을 때는 언제가 있으며, 어떻게 달라지는가? 그리고 그 때 당신 스스로의 태도는 어땠는가? 지도와 잔소리가 분명하게 나누어지는 지점이 있다면 왜 그렇게 나누어지는지 생각해 보고, 그렇지 않게 느껴진다면 왜 분명하게 나누어지지 않는지를 생각해 봐도 좋다.

일반적으로 듣는 입장에서의 잔소리는 대개 상대방의 "노파심" 혹은 "지도"로부터 비롯된다. 누누히 언급하지만 대놓고 위법하며 인권박탈 논란이 많은 똥군기 가 동반된다면 이미 잔소리 영역이 아니다. 책임을 져야 하는 사람은 지도를 받아야 하는 사람이 어떤 규범을 준수하지 않는다고 느껴지면 지도를 해야한다. 당연히 지도는 지루한 경우가 많고, 배워야 하는 입장에 있는 상대에 있어 자존감에 영향을 주기 쉽다. 세상에 그 어떤 언어로 포장 하더라도 "당신은 잘못하고 있고 이거는 고쳐야 하며 당장 내 말에 따라야 합니다"가 유쾌하고 개운하게 받아들여지는 일은 없으므로 잔소리하는 자의 의도를 알고 있어야 한다. 술에 취해서 잔소리하는 거면 그 말을 굳이 좋게 들어줘야 하는 필요는 없다. 술 먹고 잔소리하거나 언어폭력하면 그 사람 잘못이다. 이건 공격을 담당하는 자아가 활성화된 거기 때문에 잘못한 건 확실하다. 근데 잔소리하는 이가 어떤 식으로 표현하느냐에 따라 기분 나쁜 정도가 달라진다. 사랑하는 표현이 따뜻하지 않고 말도 거칠고 서툴다면 당연히 기분 나쁘다. 왜? 올바른 길로 지도해야 할 사람이 말을 거칠게 하고 서툴게 표현하면 기분 좋을 사람이 누가 있겠는가? 잘못한 사실조차 모르고 멍청한 말만 내뱉을 때는 그냥 '잔소리하는구나. 그쪽은 곧 큰일나겠고 나는 큰일나지 않아. 일반화해봐야 그쪽 잘못이야.'하고 흘려들어라.

물론 지도해야 하는 사람 입장으로서는 자신이 책임지고 있는 상대에게 존중감을 충분히 느끼게끔 지도할 수 있다면 가장 좋다. 그 상대가 아이라면 선생님, 혹은 부모가 충분히 존중해 주고 애정에 대한 확신을 주는 상황에서 가르쳐 주고 있음을 느끼게 하는 것이 가장 좋지만, 대다수 부모의 경우 그렇게 하는 법을 잘 알지 못하며 확신하지 못한다. 또한 시간과 금전적 여유가 없고 사회적 압박을 느끼는 상황에서 스스로를 절제해야 하는 상황에 놓여있는 경우가 매우 많다. 나름대로 부족한 환경에서 스트레스와 압박을 지속적으로 받으며 지도해야 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더 나은 교육을 제공하고자 유치원이나 학교 등의 교육기관등이 설립 된 것이며, 그런 교육기관에도 한계란 것이 있어 모든 학교에 지혜롭고 인내심이 매우 높은 선생님만 배치된 것은 아니다. 그렇게 성장하고 사회로 나가게 되면 동등한 성인 관계가 되기 때문에 사회에서 만난 상사는 당신에게 존중감을 느끼게 해 줄 의무가 딱히 없다.

즉 이 이야기를 종합해서 말하자면 이렇다는 것이다. 당신의 부모님이나 선생님, 상사들 역시 누군가의 지도를 받고, 잔소리를 듣고 있는 경우가 많다.[2][3] 그들도 잔소리를 싫어하고 그들도 존중받고 싶어하며, 그들도 자신들이 맡은 일을 잘 해내고 싶어 한다.

그들이 이런 말을 굳이 하지 않는 이유는 혹여라도 나약한 모습을 부하직원, 혹은 아들 딸에게 보일 수 없는 입장이기 때문이다. 그들의 책임에는 그들이 책임져야 하는 사람이 불안에 빠지는 일 없이 잘 지내야 하는 것이 이런 구구 절절한 말들을 이해 시키는 것 보다도 우선되기 때문이다.

많은 사람들이 어린 시절에 한 번쯤, "나는 부모가 되면 내 자식들에게 불필요한 잔소리를 하지 않겠다."라는 다짐을 하는 일이 있다. 하지만 정작 자신이 성장하여 자식을 책임지게 되면 과거의 기성세대의 잔소리를 생각하며 "이제서야 그 마음을 이해하겠다."라고 언급하는 데에는 이러한 연유가 따르는 것이다. 어떠한 언짢은 상황을 마주했을 때, 잔소리 외의 어떤 반응과 대처를 직관적으로 떠올리기란 어려운 자신을 마주하게 되고, 아무리 자신의 아이고 학생이고 부하직원이라 한들간에 결국 남이다. 상대에게 가장 적절한 지도의 기준을 맞춘다는 것이 정말 어려우므로 "잔소리를 안 하는 게 사실상 불가능하다."

그리고 여기서 출산양육 등에 대한 관점이 한 번 정리되는 바, 위에도 언급한 어린 시절의 생각을 돌아보며 "그것은 아이가 아예 없어야 가능하다."라는 평가에 이르고 사람에 따라서는 더 나아가 자식이 없는 독신자와 딩크족 부부 등의 세계관에 대해서도 상당 부분에 걸친 이견을 표출하게 되는 경우가 있다.

따라서 이런 모호한 기준 때문에서라도 부모를 포함하여, 상급자라는 위치는 어쩔 수 없이 잔소리를 하게 된다. 지도라는 것이 언제나 서로에게 편할 수는 없다. "내가 왜 이런 말을 했을까?" 혹은 "내가 얘 미래가 걱정돼서 잔소리한다."라는 이야기를 하더라도 지도를 받는 쪽이 불안에 떠는 모습을 보이지 않기 위해서라도 "강한 모습"을 보이기 위해 "미안하다" 소리를 쉽게 못 하는 정서가 많다.

이상적인 것이라면야, 필요한 지도, 지적과 훈계를 명확히 하되, 말을 심하게 하지 않으면서 일반화 시키지를 않으며 시정할 바를 고치도록 하되 인격적, 감정적 충돌은 없도록 하는 것이 진짜 지도라는 이야기다. 그러면 많은 것이 지혜롭게 예방될 터이나, 대다수 경우엔 몽상적인 수준의 것으로 여겨질 수 있다. 수 많은 사람들이 생전에 "이 나이 되보면 안다.", "그 자리 가보면 안다."고 하는 "이 나이"라 하는 것은 통상적으로 사실상 현실을 받아들이고 상대방 역시 나와 크게 다르지 않음을 아는 나이를 말한다. 그런데 젊은 나이에 유전이라고 다 몸이 망가지지 않는데 집안 어른들이 혈관병으로 고생한다면서 살 쪘다고 다 혈관병이 온다고 일반화 시키는 것은 뭐다? 성급한 일반화의 오류흑백논리일 뿐이다. [4]

물론 굳이 이 나이를 젊은 사람이 너무 잘 이해해도 그건 그것대로 비극일 것이다. 젊은 사람들이 혁신과 진보정신을 외치지 않는다면 결코 더 나아질 수는 없다. 아이들에게 더 올바른 교육을 하고자 하는 욕구, 서로간의 신뢰를 단단히 만들며 지도할 수 있는 정서와 문화는 아무리 추구해도 모자람이 없으며 좋든 싫든간에 지금 어른들의 다음 세대, 지금 학생과 어린이들의 다음 세대는 항상 그 전 세대보다 더 지혜롭고, 더 나은 세대가 된다. 사람은 윗세대한테서 배운 것들 중 좋은 것만 되물림하고 싶은 욕구가 있지만, 직장인이고 직종에 따라 안 좋은 것들만 물려주는 게 사람의 운명이다. 인류의 역사는 3만년이지만 유의미한 문명의 역사는 5천년이고, 민주주의 역사는 고작 백년 남짓인 것 처럼 더 나아지는 데는 수 많은 시행착오와 포기, 절망 사이에서 태어난 그들의 꿈과 열망, 에너지인 다음 세대들이였기 때문이다. 즉슨 안전하지 않은 환경에서 태어난 극소수의 사람들을 제외한다면 우리 모두 부모의 희망이고, 부모보다 더 나아지고 싶어하는 본능이 마음속에 늘 잠재되어 있다.

따라서 나는 내 자식에게, 학생에게, 부하직원에게 불 필요한 잔소리를 하지 않고 올바르게 지도하겠어라는 생각은 결코 틀린 생각이 될 수 없다. 실제로 더 나은 답을 내 놓아야 하는게 어쩌면 인류의 숙명일지도 모른다. 양육자이자 교육자이자 지도자라면 당연히 조언해주면서 중요성을 깨닫게 해줘야 현 세대 교육방침보다 더 좋은 방침이 나올 가능성이 높다. 다만, 그럼에도 당신이 정말로 미워해야 하는 사람이 아니라면, 특히 독자들에게 원망 사게 한 분들이 아니면 책임자에 대한 최소한의 사랑과 믿음이 있다면 그들의 회환과 눈물, 희망 등이 얽혀있는 복합적인 감정을 지나치게 미워하는 것이 아닌지 다시 한 번 되돌아 보면 좋을 것 이다. 적어도 그 세대들 역시 당신과 같은 고민을 해왔고, 그들은 여러분보다 높은 확률로 더 열악한 환경에서 오랫동안 배우고, 고민하고, 공부하고 내린 결론이기에. 최소한 당신에게는 부족할지 몰라도 전 세대들의 교육방침보다 더 나은 결론일 확률이 높다.

물론 이 글을 읽고 있는 사람은 누가 될지 모르기 때문에 어디까지나 크게 문제가 없고, 충분히 부모로부터 오는 애정을 확신할 수 있는 자녀라면 잠시 한발 물러서서 침착하게 생각할 여지가 있을 수 있다는 것 이다. 만약 자녀로서 부모의 잔소리가 지나치게 감당이 어렵다, 부모와의 신뢰와 소통에 대단히 지장이 많다, 자신의 마음을 부모에게 올바르게 전하기 힘들다 생각이 든다면 상담을 받아보는 것이 가장 좋다. 사람에 따라서 받아들이는 범위도 다르고, 생리적으로 견디기가 힘든 부분들도 물론 있고 사람마다 자라온 환경이나 심리적으로 받아들이는 범위가 다르다. 스트레스로 고통받고 있다든지, 약한 자폐를 겪고 있다든지, ADHD를 겪고있는 사람이라면 평범한 잔소리를 듣고 있다 하더라도 그것 자체로도 예민한 자극이 될 수 있으므로 다른 해법이 필요한 것도 분명한 사실이다.

2. 동명의 노래들

2.1. 김건모의 9집 타이틀 곡

최준영 작사, 임기훈 작곡. 2004년 9월 3일 발매되었다. 김건모의 정규 앨범 타이틀곡으로는 드물게 발라드 곡이다.

당시 김건모는 어느 예능 프로그램 녹화 중 MC가 PD에게 "게스트들이 힘들어하니 좀 쉬었다 하자"는 말에 PD가 "쉬긴 뭘 쉬어. 쉬고 싶으면 뽑아 먹을 거 빨리 뽑아먹고 보내."라는 말에 충격을 받아 2003년 방송 활동 은퇴를 선언했고, 9집은 그 이후에 나온 첫 앨범이었다. 하지만 팬덤보다는 대중적 인기를 기반으로 하는 김건모가 방송 활동 없이 히트를 기록하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었다. 결국 9집이 8집의 1/10 수준으로 판매량이 줄고 타이틀 곡인 '잔소리'도 다소 묻히게 되었다[5].

그럼에도 불구하고 '잔소리'는 김건모의 발라드 중 손에 꼽히는 명곡. 가사의 내용이 권태기와 같은 갈등을 맞은 연인 또는 부부를 연상하는지라 성별과 나이를 불문하고 많은 공감을 얻었다.

2.2. 더 넛츠의 2집 타이틀 곡



2.3. 박혜경의 4집 9번 트랙 수록곡

2.4. 아이유임슬옹의 듀엣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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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 이효리의 곡

2007년 발매된 곡으로, 2013년에 다비치가 리메이크하기도 했다.


[1] 여기에 세대 갈등이 동반되는 경우도 많다. 부모 세대에서는 문제로 인식되던 것이었으나 정작 자녀 세대에서는 크게 문제 삼지 않는 경우(물론 그 반대의 경우도 충분히 있을 수 있다)에는 부모는 문제라고 인식하거나 걱정거리라고 생각하여 자녀에게 나름 충고라는 핑계로 잔소리를 하려고 하지만 자녀는 그것을 문제라고 인식하지 않거나 그 문제로 인해 딱히 학교나 직장에서 불편을 겪은 적이 없는 경우에 그럴 수 있다.[2] 만약 당신의 부모님이 치킨집이나 편의점을 하고 있다 하더라도 가맹점 회사라는 상사가 있으며, 가맹점과 상관없는 창업자라 한다면 지도해주거나 대신 책임져 주는 사람 없이 온갖 황당하고 무례한 손님들의 불규칙적인 잔소리들과 싸워야 하며, 그 잔소리가 타당한 것인지 아닌지 알기 위해서라도 온갖 복잡한 법과 규칙을 꾸준히 공부, 숙지해야만 한다. 역시 마찬가지로 더 높은 스트레스를 받는 상황에 놓여있다. 물론 그게 잔소리를 하는 타당한 이유가 될 순 없지만.[3] 선생님이나 상사들 역시 자기 가족이나 혈육, 친족들과 갈등을 빚고 사는 경우도 상당하다.[4] 물론 사회적 악습과 폐혜 자체를 현실로 받아들여야 된다고 여기며 이러한 변명을 하는 사람도 많다. 악습, 천성의 관계를 확실히 구분할 필요도 있다.[5] 김건모는 그 이후 2년 만인 2005년 방송 활동을 재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