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건적의 수령에 대한 내용은 장량(삼국지) 문서 참고하십시오.
張梁
생몰년도 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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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고대 중국 삼국시대의 손오의 장수로 사례 하남군 사람.2. 정사 삼국지
유정, 이윤, 오석 등과 함께 손교와 손환을 섬겼다.성품이 신사적이고[1] 남들과 교류를 잘 맺었던 손교는 여강 사람 유정에게 일의 득실을 따지는 일을 위임하고, 강하 사람 이윤에게는 여러 일을 관장하게 하고, 광릉의 오석과 하남의 장량에게는 군사 일을 맡겼다. 이들에게 마음을 기울이고 친하게 대하니, 스스로 힘을 다하지 않는 사람이 없었다.
손교가 사망하고 난 뒤부터, 손교의 무리는 그 동생 손환이 이끌게 된다. 손환은 재임한 지 1년 만에 손교의 옛 자취를 본받아 유정, 이윤, 오석, 장량 및 강하의 여거를 예우한다.
손환전에 주석으로 실린 강표전에 따르면, 건업 천도(212) 때 손권은 무창과 건업을 잇는 수로에 관해 근심하였다. 수로의 길이가 2천 리나 되니 경계 상황에서 서로 의사소통할 수가 없어서 문제였던 것이다. 손권은 하구에 이르러 백관에게 대책을 논의하도록 했다.
여러 장수들 중 계책이 있는 사람은, 직임에 구애받지 말고 나라를 위해 말씀하시오.
제장들 중 어떤 사람은 마땅히 하구에 책(冊)을 만들어야 한다고 하고, 혹은 철쇄를 만들어야 한다고 했으나, 손권은 모두 좋은 계책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이때 장량은 아직 하급 장수라서 이름이 알려지지 않았으나 자리에서 일어나 말했다.
신이 듣건대, 향기로운 미끼로는 샘의 물고기를 끌어오고 극진한 예물로는 용사를 산다고 하였나이다. 지금 상벌의 신뢰를 명확히 세우고, 장수들을 면수에 파견해 적과 이익을 두고 싸우게끔 하면 형세가 이미 완성되어 저들이 감히 범할 수 없습니다. 무창에는 1만 명의 정예병을 두고, 지략 있는 자를 장수로 삼아 상시 엄정하게 합니다. 일단 경계할 일이 생기면, 경보에 응해 서로 나아가 알립니다. 감수성(甘水城)을 쌓고,[2] 가벼운 배(輕艦) 수천 척을 적당한 곳에 갖춰 둡니다. 이와 같이하면 문을 열어 적을 끌어들여도 적은 오려고 하지 않을 것입니다.
손권은 장량의 계책이 가장 좋다고 생각하여 특별히 승진시켰으며, 그 뒤로 점점 공을 세워서 벼슬이 면중독에 이르렀다.
226년 손권이 석양을 공격할 때 손환, 오석과 함께 5천 명을 이끌고 선봉에서 적을 맞서 싸워 고성을 함락시켜 세 장수를 사로잡았다. 이때의 공으로 손환은 손권에게 칭찬을 받으며 양위장군, 사이후에 봉해졌고 오석과 장량은 모두 비장군, 관내후가 된다.
[1] 부하들이 조위에서 잡아온 백성들을 오히려 옷을 입혀 돌려보냈을 정도였다.[2] 의미를 확정하기가 어려운데, 이름이 감수(甘水)인 지류가 있어 그곳에 성을 쌓자고 이야기하는 것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