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08-26 23:52:13

여거

오서(吳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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呂據
? ~ 256년
1. 개요2. 생애
2.1. 초기 생애2.2. 승승장구2.3. 손준 정권 시절2.4. 손침 정권 시절
3. 기타4. 미디어 믹스

1. 개요

삼국시대 오나라의 무장이며 는 세의(世議)로 여범의 차남, 손일의 매부다. 출신은 예주 여남군 세양현.

2. 생애

2.1. 초기 생애

부친 여범의 관직이 높았기에 낭으로 임명되었다. 여범이 질병으로 움직일 수 없게 되자 부군교위, 좌령군사로 승진하였고, 여범이 세상을 떠나자 안군중랑장으로 승진했다. 여범의 장남이 일찍 죽었기 때문에 여범의 후사를 이었다.

오나라 장수라면 누구나 그렇듯이 산월 토벌에 종군하여 경험을 쌓았다. '여러 교활한 적과 험난한 곳도' 가는 곳마다 격파했다고 하며, 231년에는 태상 반준의 함께 오계만 토벌에 참가했다.

2.2. 승승장구

241년, 주연이 번성을 공격할 때 주이와 함께 성 의 외부 포위벽을 격파하여 편장군에 임명된다. 궁궐로 돌아와서 마한부우독에 임명되었으며, 얼마 안 있어 월기교위로 승진한다.

250년, 문흠주이에게 편지를 보내 거짓으로 투항 의사를 밝혔는데, 주이는 이가 문흠의 계락임을 간파하여 손권에게 이를 믿을 수 없다고 알렸다. 손권 또한 그 말을 받아들여 여거와 2만의 군사를 주이에게 지원했고, 문흠은 과연 아무 것도 하지 못한 채 데꿀멍했다.

251년에 폭풍으로 장강의 물이 범람해 성문이 침수되자 여거는 큰 배로 성문을 막아 침해를 막았는데, 이게 우연히 손권의 눈에 들어와 탕위장군으로 승진했다. 이궁지쟁 때는 손패파의 일원으로 이름을 올렸으며[1] 손권이 중병에 걸려 눕게 되자 태자우부독이 되었으며, 252년손권이 사망하자 제갈각, 손홍, 등윤, 손준과 함께 탁고대신이 되었다.

손량이 즉위하자 우장군으로 임명되었다. 동흥 전투에서 제갈각의 지휘 아래 유찬, 정봉, 당자와 함께 싸웠으며, 정봉의 후속으로 위군을 격파하여 위군은 사망자만 수만에 이르는 큰 피해를 입는다.

2.3. 손준 정권 시절

253년, 제갈각이 주살되자 표기장군으로 승진해 서궁의 일을 처리했으며, 255년관구검문흠손준의 지휘 아래 수춘을 습격하러 갔다가 돌아오는 길에 위나라의 조진(曹珍)[2]을 고정에서 격파했다.

위를 공격하자는 문흠의 주장을 받아들인 손준의 명령으로 서주와 청주를 공격할 계획을 주이, 유찬, 당자와 함께 세웠다. 손준은 등윤과 함께 여거의 진채로 갔다가 여거가 군대를 정돈하는 모습을 보고 가슴이 아프다는 핑계를 대며 떠났는데, 얼마 가지 않아 손준은 제갈각이 나오는 악몽을 꾸고 사망했다.여거의 군대 정돈이 제갈각의 유령을 불러왔어! 손준의 죽음으로 위 침공 계획은 무산되었다.

2.4. 손침 정권 시절

손침이 손준의 뒤를 잇고 여거 등을 불러 돌아오게 했는데, 여거는 손침이 손준을 대신한다는 소식을 듣고 분노하여 9월 19일에 문흠, 당자 등 여러 장수와 함께 표를 올려 위장군 등윤을 승상으로 추천했다. 하지만 손침은 이를 듣지 않고, 마침 여대가 죽어 공석이었던 대사마에 등윤을 임명하여 무창에 주둔하게 했다. 이런 손침의 행동에 여거는 군대를 이끌고 돌아와 손침을 치려고 했다.

여거가 군대를 이끌고 반란을 일으키자 손침도 가만히 있지는 않았다. 사자를 파견하여 조서로써 문흠, 당자 등에게 여거를 체포하도록 했으며, 얼마 후에는 손헌, 정봉, 시관에게 수군을 주어 파견하고 강도에서 여거를 요격하도록 했다.

여거는 결국 256년 10월 8일에 신주에서 체포되었다. 주위 사람들이 그에게 위로 투항할 것을 권했지만, 여거는
모반하는 신하가 된다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오.
라는 말을 남기고 자결했다. 손침은 그의 삼족을 멸했다.

3. 기타

동료 장수인 주이와 묘하게 세트로 엮인다. 부친의 지위가 높았기에 똑같이 낭으로 임명되었고,[3] 번성을 공격하는 주연의 휘하에서 외부 포위벽을 함께 격파했다. 거짓 항복한 문흠을 데꿀멍시킬때도 함께 있었으며, 동흥 전투에서도 함께 위군을 격파했다. 문흠을 싫어했던 것도 둘이 마찬가지였다고 하니... 게다가 둘다 손침에게 죽었고...

4. 미디어 믹스

4.1. 코에이 삼국지 시리즈

파일:external/san.nobuwiki.org/0917.jpg
삼국지 12, 13, 14

모든 능력이 뭔가 부족한 밸런스형으로 나온다. 삼국지 8에서 처음으로 등장한다.

삼국지 9에서는 통솔 73, 무력 56, 지력 71, 정치 65. 능력치가 어중간한 편이지만 연사, 투함, 정란, 매도가 있어서 그나마 쓸만하다. 아버지와 마찬가지로 병법이 모두 똑같다.

삼국지 10에서의 능력치는 71/58/69/59/63 에 특기는 상업, 화시, 유인, 제독 4개. 통솔이 70을 넘긴 하지만 오나라 소속이고 특기가 좋은 것도 아니라 전투에서 활용하기는 최후반 시나리오가 아니라면 미묘.

삼국지 11에서의 능력치는 70/59/71/62/62로 여전히 말도 안되는 잡장으로 나온다. 특기도 잉여인 조타. 이때까지는 문관틱한 일러스트에 어설픈 능력치였는데, 삼국지 12에서는 새로운 일러스트가 그려졌는데 자세히 보면 말을 탄 상태에서 오른손으로 편지를 읽고 있다. 하지만 여범과 전혀 닮지 않았다.대신 콧수염 위치만 닮았다. 여범은 12에서 젊어져서 오히려 얘가 아버지같다 일러스트에서 읽고 있는 쪽지는 아마 손침이 집권했다는 내용이고, 그걸 읽고 놀라는 표정인 듯하다. 여담으로 문관복에서 무관복으로 갑자기 변경되어 있다.

삼국지 12에서의 능력치는 78/69/71/62이고 전법은 백도어에 능한 맹공. 전작에 모든 능력치들이 좀 상향되었다. 이제 오나라의 후반기의 주력 장수다.

삼국지 13에서의 능력치는 전작과 같으며 특기는 상업 2, 순찰 1, 수영 2. 전수특기는 상업이며 전법은 기속약화.

삼국지 14에서의 능력치는 통솔 73, 무력 62, 지력 71, 정치 62, 매력 64로 전작에 비해 통솔력이 5, 무력이 7 하락했다. 개성은 노발, 숲전, 조타, 주의는 패도, 정책은 군제개혁 Lv 3, 진형은 안행, 장사, 투석, 전법은 연노, 투석, 구축, 강습, 친애무장은 주이, 혐오무장은 손침이다.

4.2. 삼국전투기

엄청난 떡대의 대머리 캐릭터로 등장했다. 아버지가 여범이라 대머리로 나온 것으로 보인다. 등장 컷부터 "오나라 맹장의 계보를 잇는다!"는 대사를 외치며 임팩트있게 소개됐다.

전투외편 4편에서 처음 등장. 손권 사후 손량이 황제가 되며 실세가 된 5명 중 1인으로 언급되었다. 여거는 실세가 된 5인 중 유일하게 전장을 직접 뛰어다니는 스타일이었다고 언급된다.

신성 전투 편에서는 손권의 명을 받아 문흠의 항복 서신을 받고 마중을 나가려는 주이를 2만 대군과 함께 지원했다. 문흠은 본디 거짓 항복을 하고 주이의 뒷통수를 칠 계획이었지만 여거가 대군을 끌고 주이와 함께 오는 바람에 아무것도 못하고 꽁무니를 뺄 수밖에 없었다고 묘사된다.

동흥 전투 편에서는 제갈각이 이끄는 본대의 부장 중 하나로서 전투에 참여했다. 정봉이 먼저 동흥제에 상륙한 뒤 위군을 상대로 시간을 끄는 동안 다른 본대와 함께 유수오에서 상륙해서 움직였고 이후 동흥제 동성에서 나와서 압도적인 힘으로 동흥제의 위군을 쓸어버렸다.

낙가 전투 편에서는 손준과 함께 수춘을 공격하려 했지만 이들이 수춘에 도착했을 시점에서는 이미 제갈탄이 수춘을 점거한 상태에 위의 주력까지 대부분 근처에 있어 도저히 공략을 진행할 상태가 아니었고, 따라서 여거는 손준에게 퇴각을 제의, 손준이 이를 받아들이며 결국 물러나게 된다.

전투외편 5편에서는 문흠의 제안을 받아들인 손준이 극동 루트 북벌을 결정하면서 차출되었다고 서술됐다. 그러나 손준이 죽고 손침이 보정을 한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극대노하여 북벌이고 뭐고 때려치고 당장 건업으로 돌아와서 여러 대신들의 뜻을 모아 등윤을 승상으로 추천했다. 그러나 등윤이 손침의 계략에 의해 대사마로 임명되어 무창으로 가게 되자 이대로면 어디로 튈지 모르는 손침의 손에 오나라가 떨어질 거라며 등윤에게 손침을 잡을 것을 권했다. 등윤이 이에 동의하면서 강도의 병력을 이끌고 오기로 했지만 손침의 대처로 인해 강도에서 포위당하게 되자 이렇게까지 포위당하면 자기라도 방법이 없다며 체념했다. 수하 한 명이 북쪽이 뚫려 있으니 위로 투항을 하는 게 어떻겠냐고 했지만 여거는 그건 안 될 일이라며 그러지 않았고, 자결하며 생을 마감했다.

제갈각의 동흥 전투 등에서 활약하면서 작가가 어느 정도 오나라 간판으로 띄어줬는데, 아무래도 후반부 오나라의 임팩트는 정봉이 대부분 가져간지라 좀 묻혔다. 손준이 위를 공격하러가기 전 여거의 부대를 보고 가슴통증을 느낀 것을 "이정도 전투력의 부대가 나에게 칼을 겨누면 답이 없다."는 불안감을 가지게 만들 정도로 오나라 최고 정병들을 지휘한 것으로 표현됐다. 손침이 손준 사후 권력을 넘겨받자 여러 불합리함을 견디지 못하고 난을 일으켰으나, 손침의 빠른 반격으로 역으로 포위되며 궁지에 몰렸고 위나라로 투항하지 않은 채 자살했다.


[1] 하지만 정작 뭘 했는지는 나오지 않는다.[2] 조진(曹眞)와 동명이인[3] 이건 오나라의 병력체계인 세병제와도 관련이 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