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賀邵
(227 ~ 275)
1. 개요
삼국시대의 손오의 문관으로 자는 흥백(興伯). 하제의 손자, 하경의 아들, 하순의 아버지.2. 정사 삼국지
양주 회계군 산음현 사람으로 중랑을 지내다가 258년 손휴가 즉위하자 설영, 우사, 왕번과 함께 산기중상시가 되었으며, 지방으로 나가 오군태수가 되었다.세설신어에 따르면 오군태수로 있을 때 다음과 같은 일화가 있다.
하소는 처음에 문 밖을 나서지 않았더니 오군의 여러 호족들이 그를 얕잡아 보고 관아의 문에 "회계의 닭은 감히 울 수 없다."라고 쓴 것을 붙였으며, 하소가 이를 듣고 일부러 밖으로 나갔다가 문에 이르러 둘러 보고 붓을 찾아 그것을 이어서 "울 수는 없지만 오군의 조무래기는 죽일 수 있다."라고 썼다.
그런 연후에 여러 주둔지를 돌아다니면서 고씨와 육씨 등이 관병을 사병으로 사용하면서 도망자를 숨겨준 일을 조사해 모든 사실을 상부에 보고했는데, 죄진 자가 매우 많았다. 육항은 당시 강릉도독에 있었다가 일부러 도성까지 가서 손호에게 부탁한 후에야 비로소 풀려났다고 한다.
264년 손호가 즉위하자 중앙으로 돌아와 좌전군이 되었다가 승진해 중서령이 되면서 태자 태부를 겸하게 되었다.
269년 육개가 죽을 때 손호가 동조를 보내 유언을 묻자 하소를 추천하기도 했다.
하소는 손호의 폭정을 막기 위해 왕번을 죽인 일을 비난하고 간신 하정을 비방하는 등 상소를 올리자 손호는 그를 미워했으며, 하소 또한 공적인 일을 받들어 바르고 정직해 손호 가까이에 있는 간신배들 또한 하소를 미워했다. 그로 인해 어떤 사람이 누현과 하소가 만났을 때 정사를 비방했다고 무고해 둘 다 힐책을 받으면서 누현은 남주로 보내지고 하소는 복직되었는데, 중풍을 심하게 앓아 입으로 말을 할 수 없게 되어 몇 달 동안 관직을 떠난 것을 핑계로 주장으로 보내 천 번
그의 식솔들은 임해로 쫓겨나게 되고 손호는 이어서 조서를 내려 누현의 자손을 주살시키도록 했는데, 이 때가 275년으로 향년 49세에 생애를 마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