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張悌 장제 | |
최종직위 | <colbgcolor=#ffffff,#191919>승상(丞相) |
성씨 | 장(張) |
휘 | 제(悌) |
자 | 거선(巨先) |
생몰연도 | ?년 ~ 280년 |
고향 | 형주(荊州) 양양군(襄陽郡) 율양현(溧陽縣) |
승상 재임기간 | 279년 8월 ~ 280년 3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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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삼국시대 오나라의 마지막 승상이며 자는 거선(巨先)으로 형주 양양군 율양현 사람.2. 생애
어려서 이름이 널리 알려졌고 중대한 임무를 맡았지만 시세에 영합해 황제의 좌우를 보호하자 여론에서는 그를 비웃었다고 한다. 어려서 명석하고 이치가 있어, 손휴 때 둔기교위가 됐다.위가 촉을 정벌하자, 오나라 사람들이 장제에게 말하길 "사마씨가 국정을 다스린 이래로 큰 재난이 자주 이르러, 지력이 비록 넉넉해도 백성은 아직 복종하지 않고 있습니다. 지금 다시 그들의 자력을 다하여 파촉을 원정하며, 병사는 힘들고 백성은 피곤하나 가엾게 여김을 모르니, 무엇을 할 겨를도 없이 패할 것인데 어찌 성공할 수 있겠습니까?"라고 했다.
이에 장제가 대답했다. "조조의 공이 중국을 뒤덮고 위엄이 사해를 뒤흔들었지만, 속임수를 숭상하고 계략에 의지하며 정벌이 그치지 않아, 백성들은 그의 위엄을 두려워하나 그의 덕은 품지 않았습니다. 조비, 조예 부자가 참혹하고 지독한 짓을 계속하여, 안으로는 궁실을 일으켰고 해마다 안정을 얻지 못하여 인심을 잃었습니다. 반면 사마씨는 백성들에게 은혜를 베풀어 민심이 그들에게 돌아갔으며, 수춘 3반과 조모의 죽음으로도 사방에선 움직임이 없으며, 위세와 무력이 성하여 근원은 견고해졌고, 민심이 복종하여 간사한 꾀가 세워졌습니다. 지금 촉은 환관이 국정을 독점하여 나라가 엉망이고, 무력을 남용하여 백성은 피곤하고 사졸은 지쳤으며, 밖의 이익을 다투며 수비를 정비하지 않았으니 사마씨가 이길 것입니다." 라고 했다. 이에 사람들은 그 말을 비웃었으나, 과연 그 말대로 되었다.
269년에 승상인 육개가 손호에게 추천했지만 이를 거부하면서 일가족 전체가 추방되었으며, 279년 8월에 승상이 된다.[1]
280년에 진나라 군대가 쳐들어오자 심영, 손진, 제갈정 등과 같이 싸웠으며, 심영이 말하길 우저에서 진의 수군이 내려 올것이니 기다렸다가 왕준이 이끄는 수군을 격파하자고 얘기하자 장제가 오가 망할 상황이라는건 누구나 아는바이나, 촉에서 온 병사가 여기에 이르면 다시 정돈을 못할거 같으니 지금은 강을 건너 결전하고 싸워 사직과 함께 죽을 각오로 싸워서 이긴다면 사기가 떨어져 격파당할 것을 염려하지 않아도 될 것이고 이기고나서 승세를 타서 서쪽으로 진군하면 나머지 진나라군도 이길수 있다고 말하였다. 장제는 이렇게 장강을 건너면 오군의 사기가 떨어질 것을 생각해 맞써 싸우기로 한다.
3월에 왕혼의 부장인 장교를 궁지에 몰아 항복시켰으며, 제갈정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받아들였다. 마침내 강을 건너 싸워 견진들을 파괴했으나 진군을 무너뜨리지 못하고 후퇴하는 틈을 타 진군이 역습하여 오군이 대패했다. 이렇게 주준의 군사와 싸우던 중 역공을 당해 각지에서 무너지던 오군은 거짓항복했던 장교가 후방을 공격하여 완전히 붕괴에 빠졌다. 제갈정이 수백 명을 인솔하여 달아나면서 합류시키려고 했는데, 장제가 달아나려고 하지 않자 제갈정이 스스로 그를 끌면서 말하였다.
"존망에는 정해진 운수가 있는 법인데, 어찌 경 한 사람이 그걸 아는 바가 있겠으며, 무슨 까닭으로 스스로 죽으려고 하시오?"
장제가 눈물을 흘리면서 말하였다.
"중사(仲思: 제갈정의 자)! 오늘이 내가 죽는 날이오! 또 내가 아동이었을 때 바로 경의 집안의 승상[2]께서 알아주신 바 되었는데, 항상 마땅히 죽어야 할 곳을 찾지 못하여 이름나고 현명한 분이 알아 돌아보신 것에 누를 끼칠까 걱정하였소. 지금 사직을 위하여 몸을 바칠 수 있으니, 다시 어느 길이 있겠소?"
-권중달 자치통감 9권 156쪽
제갈정이 두세 번 다시 그를 끌었으나, 움직이지 않고 마침내 눈물만 흘리면서 보냈는데, 제갈정이 100여 걸음을 가서 뒤를 돌아보니 이미 진의 병사들이 죽였다고 한다. 자치통감에 따르면 이 전투인 판교 전투로 장제, 손진, 심영과 7800여명의 오나라 군사들이 전사했다고 하며 이후 장제는 목이 잘려 낙양에 보내졌다. 장제의 군사는 오나라 중앙의 정예였고 이 군대가 대패하면서 오나라인들이 크게 두려워했다고 한다. 이후 왕혼과 주준이 기세를 타고 건업으로 공격해 들어가 손호의 항복을 받아 오나라를 멸망시켰다.-권중달 자치통감 9권 156쪽
3. 미디어 믹스
3.1. 코에이 삼국지 시리즈
삼국지 9, 10, 11 |
삼국지 12, 13, 14 |
삼국지 4에서 처음으로 등장했는데 지력, 정치력, 매력이 우수하고 무력은 낮다. 통솔력은 삼국지 9에서는 78까지 찍었지만 왕혼하고 싸울때 포로로 잡은 장교를 그대로 살려주는 판단미스를 저질른 탓에 60대 후반으로 너프를 먹었다. 워낙 등장 시기가 늦다보니 대체로 영웅집결 시나리오에서 많이 볼 수 있다. 등장 도시는 출신지인 양양.
삼국지 9에서는 통솔력 78/무력 45/지력 80/정치력 78의 능력치에 병법 7종을 보유. 분전, 제사, 연사, 누선, 투함, 정란, 고무를 포함하고 있는 데다 지력도 높으니 전쟁 시 쓸모가 많다.
삼국지 10에서의 능력치는 통솔력 74/무력 49/지력 81/정치력 78/매력 83에 특기는 무려 10개.(농업, 기술, 보수, 화시, 일제, 진정, 고무, 반목, 항변, 제독) 화시, 일제 특기가 있어 전투에서도 쓸 만하고 내정쪽으로도 보수는 무력이 낮아서 잉여지만, 농업, 기술 특기가 있어서 등장 시기를 감안하면 여러모로 좋다.
삼국지 11에서는 능력치 통솔력 67/무력 43/지력 80/정치력 78/매력 83로 통솔이 67까지 떨어졌다. 특기는 불굴. 하지만 통솔력과 무력이 꽤 낮기 때문에 전장에서 써먹기가 애매하다.
삼국지 12에서의 일러스트는 오나라 최후의 결전에서 죽기를 각오한 모습으로 검을 들고 서 있다. 여기에서는 통솔력 이 69로 전작보다 소폭 올랐다. 지력/정치가 80 내외라 내정용으로 굴리기 괜찮은 편. 전법은 공격약화.
삼국지 13에서의 능력치는 전작과 같으며 특기는 상업 3, 농업 4, 문화 3, 설파 5, 언변 3. 중신특성은 농업중시로 전수특기는 설파이며 전법은 위무다. 문관이지만 전투에 참전한 탓에 무관형으로 분류되어 있고 무기 취향도 도검으로 설정되어 있다.
삼국지 14에서의 능력치는 통솔 68, 무력 43, 지력 80, 정치 78, 매력 83으로 전작과 달리 통솔력이 1 하락했다. 개성은 불굴, 담력, 주의는 왕도, 정책은 지세연구 Lv 4, 진형은 어린, 방원, 전법은 연노, 철벽, 업화, 구축, 시람, 친애무장은 제갈정, 혐오무장은 없다.
3.2. 삼국전투기
천원돌파 그렌라간의 카미나로 등장. 아무래도 좋은 사실이지만 이 인물까지 출연함으로써 삼국전투기에는 3명의 장제가 전부 다 출연하는 쾌거를 이루었다. 그리고 좀 더 비장한 분위기를 조성하기 위해서인지 장교와 관련된 삽질은 빠졌다. 처음 등장한 삼국 통일 (6)편의 타이틀 컷을 장식하기도 했으며, 소개컷에서는 오의 마지막 승상으로 삼전에만 장제란 이름이 세 번째 등장이니 헷갈리지 말자고 서술되어 있다.삼국 통일 편에서 처음 등장. 손호의 명을 받아 3만 병사를 끌고 적을 막으러 출진했다. 부장 심영은 왕혼군보다는 장강을 따라 오는 촉(왕준)의 수군이 주력으로 보인다며 우저에서 기다렸다가 그들과 일전을 벌이자고 제안했지만 장제는 오나라가 곧 망한다는 것을 모두가 아는데 그 상황에서 적을 기다리고만 있으면 병사들은 모두 도망가 한 명도 남지 않을 거라며 이를 거절했다. 나라가 멸망하는데 전사자 한 명 나오지 않는다면 이 또한 치욕이 아니고 무엇이겠냐고 덧붙이기도 했고, 직후 바로 장강을 건너 왕혼군을 영격했다.
왕혼에게 거의 최후의 오군이나 다름없던 심영군이 처절히 박살난 후 참모 제갈정에게서 어차피 국가의 존망은 개인의 의지로 될 문제가 아니니 도망가라는 말을 듣지만 장제는 오늘이 바로 자기가 죽는 날이라며 거절하고 제갈정에게 "잘가라, 친구."라는 한 마디를 남긴 뒤 그대로 나가서 죽음을 맞이했다.
[1] 육개와 장제 사이에 사서에 기록이 안 되어 있는 승상이 있는 듯하다. 천새 원년(276년)에 만든 <봉선국선비>에서 발견된 내용으로 손호 시대에 '승상 연, 태위 구, 대사도 섭'이라는 이름이 보인다. 그러나 성씨는 기록하지 않아서 성은 알 수 없다. 즉, □연.[2] 호삼성의 의견에 따르면 아마도 이는 제갈량을 뜻하는 것으로 보인다. 삼국시대에 제갈씨 가문에서 승상 직위를 맡은 것은 기록 상 제갈량이 유일하므로 이 말은 제갈량을 지칭하는 것일 가능성이 높다. 여담으로 제갈량과 어떤 식으로든 간에 연관이 있다면 장제가 양양 출신인 점으로 보아 제갈량이 형주에서 머물던 시점일 가능성이 매우 높은데, 제갈량이 입촉한 것은 213~214년 경이며 이는 오멸망전보다 66~67년 이전이다. 이때 장제가 아동이였다면 오멸망전 때 나이는 거의 최소 70대가 된다. 다만 권중달 교수는 주석으로 일설에는 제갈근이라는 설도 있다고 주석을 달아두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