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07-04 14:16:27

화핵

오서(吳書)
{{{#!wiki style="margin:0 -10px -5px; min-height:calc(1.5em + 5px)"
{{{#!folding [ 펼치기 · 접기 ]
{{{#!wiki style="margin:-5px -1px -11px"
<rowcolor=#fff> 1권 「손파로토역전(孫破虜討逆傳)」 2권 「오주전(吳主傳)」
손견 ,주준, · 손책 손권 ,호주 정천 풍희,
<rowcolor=#fff> 3권 「삼사주전(三嗣主傳)」 4권 「유요태사자사섭전(劉繇太史慈士燮傳)」
손량 · 손휴 ,이형, · 손호 ,장제, 유요 ,착융 유기, · 태사자 · 사섭
<rowcolor=#fff> 5권 「비빈전(妃嬪傳)」 6권 「종실전(宗實傳)」}
무열황후 · 사부인 · 서부인 · 보연사 · 대의황후 · 경회황후
반부인 · 전혜해 · 주부인 · 하희 · 등방란
손정 · 손유 · 손교 · 손환(奐) · 손분(賁)
손보 · 손익 · 손광 · 손소 · 손환(桓)
<rowcolor=#fff> 7권 「장고제갈보전(張顧諸葛步傳)」 8권 「장엄정감설전(張嚴程闞薛傳)」
장소 ,장분 장승 장휴고옹 ,고소 고담 고승, · 제갈근 ,제갈융, · 보즐 ,주소, 장굉 · 엄준 ,배현, · 정병 ,징숭, · 감택 ,당고, · 설종 ,설영,
<rowcolor=#fff> 9권 「주유노숙여몽전(周瑜魯肅呂蒙傳)」 10권 「정황한장주진동감릉서반정전(程黃韓蔣周陳董甘凌徐潘丁傳)」
주유 · 노숙 · 여몽 정보 · 황개 · 한당 · 장흠 · 주태 ·진무 ,진표,
동습 · 감녕 · 능통 · 서성 ·반장 · 정봉
<rowcolor=#fff> 11권 「주치주연여범주환전(朱治朱然呂範朱桓傳)」 12권 「우육장낙육오주전(虞陸張駱陸吾朱傳)」 13권 「육손전(陸遜傳)」
주치 · 주연 ,주적, · 여범 ,여거, · 주환 ,주이, 우번 ,우사 주육, · 육적 · 장온 · 낙통
육모 · 오찬 ·주거
육손 ,육항,
<rowcolor=#fff> 14권 「오주오자전(吳主五子傳)」
손등 · 손려 · 손화 · 손패 · 손분(奮)
<rowcolor=#fff> 15권 「하전여주종리전(賀全呂周鍾離傳)」 16권 「반준육개전(潘濬陸凱傳)」 17권 「시의호종전(是儀胡綜傳)」
하제 · 전종 · 여대 · 주방 · 종리목 반준 · 육개 ,육윤, 시의 · 호종 ,서상,
<rowcolor=#fff> 18권 「오범유돈조달전(吳範劉惇趙達傳)」 19권 「제갈등이손복양전(諸葛滕二孫濮陽傳)」 20권 「왕누하위화전(王樓賀韋華傳)」
오범 ,위등, · 유돈 · 조달 제갈각 ,섭우, · 등윤 · 손준 ,유찬, · 손침 · 복양흥 왕번 · 누현 · 하소 · 위소 · 화핵
관련 틀:
}}}}}}}}}

華覈
219년 ~ 278년[1]

1. 개요

삼국시대 오나라의 정치가로 는 영선(永先). 양주 오군 무진현 사람.

생애 자체가 손호의 폭정을 막기 위해 상소만 올리다가 죽은 충신. 손호의 행위를 말리려고 올린 상소가 수백 장이 넘었다고 한다.

2. 정사 삼국지

2.1. 손호 즉위 전

처음에는 상우위, 전농도위로 임명되었으며, 문학적 재능이 있어 조정으로 들어가 비부랑에 임명되었다가 중서승으로 승진한다.

252년손량이 즉위하자 위소, 설영, 주소, 양광과 함께 《오서》를 편찬하기 시작했으며, 258년에 육윤의 활약을 보고 그를 황제에게 추천한다. 263년에 촉이 멸망하자 방비를 두텁게 할 것을 건의했으며, 손휴의 대에 같이 오서를 편집한 주소가 어떤 일에 휘말려 옥에 갇히자 이 행위를 막고자 표를 올리지만, 손휴는 듣지 않고 주소를 처형한다.

2.2. 손호 즉위 후

264년손호가 즉위하자 서릉정후로 임명되었으며, 267년에 손호가 새 궁전을 만들면서 규모를 방대하게 해 진주와 옥으로 장식했는데, 이 때가 또 성하 계절로 이로 인해 농업과 수비가 동시에 황폐해졌다. 화핵은 이 행위를 막겠다고 표를 올리지만 손호는 듣지 않고 화핵에게 동관령 우국사의 벼슬을 내렸으며, 또 국고가 바닥나는데도 사치를 부리자 상소문을 올렸지만 손호는 화핵이 늙어서 그렇다면서 자신의 앞에서 상소문을 다시 쓰라고 명하자 화핵은 거기서도 듣지 않는 깡을 보여준다.

269년육개가 죽자 육개의 아들 육위를 추천하며,[2] 271년에 손호가 어머니와 모든 비첩을 거느리고 화리로 나오려고 하자 화핵은 이 행위를 막으려고 나와서 막는 것을 성공한다. 271년하정이라는 자가 주장한 성계를 뚫어 회수와 장강을 연결시키자는 명령설영이 맡았다가 큰 돌이 너무 많으니 돌아갔는데, 272년에 하정이 비리가 드러나 주살되자 손호는 엉뚱하게 설영의 일을 문제삼아 설영을 옥에 가둔다.

화핵은 이 행위를 막기 위해 상소를 올려 설영은 다시 중앙으로 돌아와 오나라가 망할 때까지 직책을 이어가는데, 덕분에 후대인들한테 악독한 조정에서 죽지 않고 높은 자리를 유지했다고 비판받았다. 273년에 손호가 위소에게 주는 술을 위소가 마시지 않는다고 손호가 위소를 사형에 처하려고 하자 화핵이 이 행위를 말리려고 상소를 올리지만 손호가 받아들이지 않아 위소는 처형된다.

275년에는 소인배가 하소라는 자와 누현이 만나서 손호를 비방했다고 누명을 씌우자 손호는 누현을 광주로 귀양을 보냈는데, 화핵은 이 행위를 막기 위해 표를 올리지만 오히려 손호는 그의 아들 누거까지 함께 교지로 유배를 보내 결국 누현과 누거는 죽는다. 하소 또한 중풍 때문에 잠시 관직을 떠난 것을 핑계로 사형되었는데, 이어서 화핵도 면직되었다가 몇 년 후에 죽는다.

3. 삼국지연의

촉이 망하자 손휴에게 방어를 강화할 것을 건의하고 손호가 진을 공격하려고 하는 것을 막는 역할로 나온다. 이후 면직되어 "이 아름다운 국토가 남의 것이 된다니" 하며 탄식하면서 다시는 세상에 나오지 않았다고 한다.

4. 미디어 믹스

4.1. 코에이 삼국지 시리즈

파일:external/san.nobuwiki.org/0067.jpg
삼국지 12, 13, 14

삼국지 3부터 꾸준히 개근하고 있다. 지력, 정치력 ,매력이 70대의 문관형의 능력치를 가지고 나온다.

삼국지 4에서는 뜬금없이 화흘로 오역되었다. 극후반에 재야 장수로 등장하기 때문에 직접 쓸 일은 많지 않다.

삼국지 9에서의 능력치는 통솔력 17/무력 26/지력 72/정치력 78. 병법은 정란, 조영 뿐이라 전장에 들고 갈 병법이 없다. 내정이나 시키자.

삼국지 10에서의 능력치는 통솔력 19/무력 22/지력 75/정치력 75/매력 72에 특기는 농업, 혼란 꼴랑 2개. 그나마 하나는 농업이라 정치력을 살릴 수는 있다.

삼국지 11에서의 능력치는 통솔력 20/무력 24/지력 71/정치력 78/매력 68로 위소보다 능력치가 높다. 수명이 길고 지력이 70 이상이기 때문에 원한다면 발전시킬 여지는 충분하다.

후반기의 인물이기 때문에 삼국지 12에서는 당연히 짤렸거니 했건만 PK에서 군사 특기를 가지고 등장했다. 내정 관련 비책을 많이 지니고 있다. 일러스트는 본인의 주특기인 손호에게 상소를 펼치면서 올리고 있다.

삼국지 13에서의 능력치는 매력만 빠진 상태에서 전작과 같으며 특기는 농업 2, 교섭 2. 전수특기는 농업으로 전법은 궁방약화.

삼국지 14에서의 능력치는 통솔 19, 무력 23, 지력 71, 정치 78, 매력 68로 전작에 비해 통솔력과 무력이 각각 1 하락했다. 개성은 신중, 안목, 사관, 주의는 명리, 정책은 지역진흥 Lv 3, 진형은 학익, 충차, 전법은 충차, 구축, 친애무장은 위소, 혐오무장은 없다.

4.2. 삼국전투기

소년탐정 김전일의 주인공 김전일으로 등장한다. 서릉 전투 (1)편의 타이틀 컷을 장식하기도 했으며, 소개컷에서는 언제나 옳은 말만 하는데 자꾸만 주변 사람들이 죽는다고 서술됐다. 아무래도 이것이 김전일로 패러디된 이유일 것으로 추정된다.

전투외편 8편에서 처음 등장. 그가 쓴 상소문만 수백 장이라는 육개를 넘어서는 태클계의 왕자로 소개되며 등장한다.[3] 전투외편 8편에서는 그의 상소문 중 하나가 언급되는데, 그 내용이 군주가 백성에게 보장해줘야 할 것은 굶주린 자는 먹을 수 있게끔, 일한 자는 쉴 수 있게끔, 공을 세운 자는 상을 받을 수 있게끔 해줘야 하는 것인데, 그게 안 되고 있어 백성들이 일을 하지 않게 되는 것이며, 세상은 더 빈곤해져 가는데 사람들은 부유해지려는 욕망에 발버둥치고, 집에는 쌀도 없지만 밖에서는 사치에 매달린다는 내용으로 묘사된다. 해당 상소의 결론은 부녀자에게 일을 시키고 사치품을 금하자는 해괴한 결론이었지만 작가는 시대상 자체는 현대와 일맥상통하는 부분이 존재한다고 주장하였고, 동시에 이 때문에 언제나 역사를 알고 배우는 게 중요하다고 강조했다.뜬금없는 역사교육 캠페인

서릉 전투 편에서는 손호가 북진하려 하자 당연히 반대했지만 무시당했다. 다행히도 폭설 덕분에 손호는 북벌을 포기하고 돌아왔다.


[1]건강실록》을 따랐을 때의 생몰년도. 그 이외의 사서에서는 알려지지 않았다.[2] 그가 추천한 인재는 육윤과 육위 말고도 많은 사람들이 있었다고 한다.[3] 오죽 태클을 많이 걸었으면 손호가 니 태클쯤은 간파했다며 대놓고 피할 정도로 묘사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