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대 중국 구주(九州)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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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한 13주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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豫州
1. 개요
고대 중국의 행정구역. 현 허난성[1] 대부분과 장쑤성, 안후이성 일부를 포함한다. 한대 예주는 구주와는 꽤 차이가 난다. 일례로 원래 중심 하남군(낙양)은 사례에 들어가 있었고, 초가 중심이 된다. 쉬창도 예주에 있어 213년 하남 합병까지 보면 예주는 건안 시대 수도권이었다.후한 말 공주가 자사였으나 곧 기록에서 사라지고 손견을 앞세운 원술과 주씨 형제를 앞세운 원소가 대립한다. 공손월이 죽는 등 전투 끝에 손견이 주씨 형제를 물리쳐 예주는 원술과 도겸의 땅이 되고, 원술이 수춘에 간 이후도 그 세력이 남아 원소의 연합 조조의 협천자를 방해하는 등 국지전이 벌어진다. 조조는 주씨 형제가 양주로 물러나고 곽공을 예주자사로 임명한듯 한데, 곽공은 장막의 반란 때 어느 편에 설지 망설이다 돌아간다. 반란 진압 후 예주는 조조의 땅이 되고, 193년 도겸을 돕던 유비가 패에 주둔하며 예주자사에 임명, 도겸 사후 여포에 의해 서주에서 쫓겨나 조조에 귀순한 후 예주목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