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03-24 12:59:40

장막(삼국지)

위서(魏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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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주(八廚)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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張邈
(? ~ 195년)[1]

1. 개요

후한 말의 군벌이며 자는 맹탁(孟卓)으로 연주 동평국 수장현 사람.

2. 생애

젊은 시절부터 조조, 원소와 친구[2]였으며 청류파의 일원이자 명사로 손꼽혀 공부(公府)에 들어가 기도위를 역임하다가 진류 태수가 된 인물이다. 의협심이 강하고 어려운 사람들을 돕는 데에 몸을 아끼지 않아 팔주(八廚)의 일원으로 꼽혔다.

동탁한나라를 장악하자 조조, 원소와 함께 반 동탁 의용군을 결성하였으나, 동탁에게 패하여 조조와 함께 연주로 물러났다. 이때 거의 밑바닥으로 떨어진 조조가 재기할 수 있었던 것은 장막의 도움이 크다. 처음에는 조조의 후원자였으나 조조가 점차 세력을 키우자 반쯤은 조조의 산하로 흡수된 듯하다.

한때 원소는 장막을 친형처럼 따랐다고 하지만, 장막은 맹주 시절 원소의 독선적이고 교만한 태도를 정론으로 질책했기 때문에 원소와의 사이가 틀어지게 된다. 훗날 원소에게서 도망친 한복을 보호해서 원소와 장막의 관계는 더욱 틀어진다.

원소는 조조에게 장막을 제거하라고 했으나 조조는 "친구끼리 죽이려 한다."고 오히려 원소를 책망했고, 이 사실을 안 장막은 조조를 더욱 두텁게 대했다. 조조 역시 도겸과 싸울 때 일족들에게 자신의 신변에 이상이 생기는 경우에는 장막에게 의탁하라는 말을 남겼으며 조조가 돌아와 재회하자 서로 눈물을 흘리며 대했다고 할 정도였다.

이후 원소의 숙청을 피해 달아난 여포를 보호했는데 이를 들은 원소는 크게 진노하며 장막에게 한을 품었다고 한다. 장막은 조조가 결국은 원소에게 굴복해 자신을 해치울 것으로 생각하여 불안해 했다.[3]

조조가 다시 도겸을 공격하자(194년) 장막의 동생 장초진궁 등이 접근하여 여포를 자신의 검으로서 끌여들여 반란을 일으킬 것을 권한다.[4] 장막의 높은 명성은 서주 대학살과 같은 조조의 난폭함과 잔인함에 대한 불만에 힘입어 연주 전역이 호응하게 했고 이로 인해 조조는 멸망 직전의 위기까지 몰린다.

그러나 연주를 거의 모두 장악하였음에도 순욱을 중심으로 정욱 등 조조의 충신들이 기어코 몇개의 성을 보존하여 장막은 연주를 완전히 장악하는 데 실패했고, 조조가 이끄는 본대의 귀환으로 전세가 장기화된다. 처음엔 여포군이 조조를 거듭 거세게 공격하여 몰아세웠으나, 그해 메뚜기떼가 극성을 부려 군량이 부족해 졌으므로 결국 결정타를 가하지 못한 채로 군사를 물리어 두 군세가 대치한 채로 싸움은 장기전이 되었다. 그러다 이듬해부터는 점차 반격을 가하기 시작했고, 정도 근처에서 여포군을 대파한 이후부터는 전세가 역전되어 빼앗겼던 성들을 대부분 수복한다. 장막이 바지사장으로 내세웠던 여포는 전세가 불리해지자 장막을 버리고 달아나 서주의 유비에게 의탁한다. 이에 장막은 여포를 뒤따라 서주로 향하는 한편, 동생 장초에게 일족들을 맡기고 옹구를 지키게 했으며, 자신은 직접 원술에게 지원군을 요청하러 떠났으나 수춘에 도착하기 전에 부하들의 배신으로 살해당한다.

장초는 조조에게 포위되어 수개월 동안 항전했지만 결국 성이 함락되자 자살했다. 조조에 의해 장막, 장초의 일가는 삼족이 멸해졌으며, 조조는 연주를 평정한 뒤에 반란군에 가담한 연주 호족들을 숙청했는데 이때 연주 호족인 변양은 그의 향인들에게 모함을 당해 죽임을 당했다. 한편 여포와 진궁은 의탁을 받아들인 유비와 크게 다투면서 서주를 점령하고 유비를 몰아내나 유비는 곧바로 조조한테 갔고 조조는 서주를 침공해서 점령한 다음에 여포와 진궁을 교수형에 처하고 효수를 했으며, 결국에는 장막, 장초, 변양, 여포, 진궁 모두 조조에 의해 죽임을 당하게 되었다.

3. 미디어 믹스

3.1. 삼국지 시리즈

파일:Zhang_Miao_(1MROTK).png 파일:external/kongming.net/138-Zhang-Miao.jpg
100만인의 삼국지 삼국지 10, 11
파일:external/san.nobuwiki.org/0606.jpg
삼국지 12, 13, 14

코에이 사의 삼국지 시리즈에서는 그저그런 B급/C급 문관이다. 매력은 그래도 쓸 만 하다. 그런데 군주가 아닌 여포의 부하로 상하관계가 반전되어서 나오는 일이 많다. 사실 여포를 부하로 두면 충성도 관리가 힘들고, 반대로 군주인 여포에게 있어서 장막 정도의 문관이라도 귀중한 내정 요원이니 둘에게 다 좋은 결과일 수도?

삼국지 3에서의 능력치는 육지 48 / 수지 32 / 무력 57 / 지력 26 / 정치 19 / 매력 37의 잉여. 문무 어느 쪽으로도 쓸모가 없다. 정치력이 평범한 수준만 됐더라도 밀정으로라도 쓸 텐데 처참한 수준이라 그마저도 버겁다.

삼국지 9에서의 능력치는 통솔력 46/무력 50/지력 70/정치력 73. 분전, 혼란, 배반을 가지고 있다.

삼국지 10에서의 능력치는 통솔력 53/무력 52/지력 70/정치력 69/매력 79로 능력치 자체는 평범한데 특기가 3개 밖에 안 된다.(상업, 진정, 명사) 상업 특기가 있지만 정치는 69밖에 안 되는지라 조금 미묘하다. 명사 특기가 있는 건 그래도 장점이다.

삼국지 11에서의 능력치는 통솔력 52/무력 53/지력 70/정치력 74/매력 85 으로 정치력과 매력이 높다. 매우 유용한 특기인 명성을 가지고 있어서 가치가 높다. 역대 삼국지 시리즈 중 장막이 가장 유용한데, 194년 군웅할거 시나리오에서는 여포 수하로 등장하며 여포 수하에 문관이 매우 부족하기 때문에 장막이 꽤 우대받는 편이다.

삼국지 12의 일러스트에서는 비만으로 나오면서 오른손으로 배를 두드리며 밝게 웃고 있다. 매력이 삭제되었므로 내정용으로 활용하자.

삼국지 13의 능력치는 통무지정 순으로 52/53/71/74이며 중신특성이 없고, 특기도 상업 1, 농업 1 정도밖에 없어서 삼국지 11과 다르게 그냥 평범한 C급 문관이 되어버렸다. 전수특기는 상업이고 전법은 공격명령이며 병과적성은 창C/기C/궁A. 역사 이벤트 옵션을 켜놓으면 여포 패주 이벤트로 194년 전후로 사망하고, 이벤트를 꺼놓더라도 수명이 짧은 편(사망년도 195년). 그나마 부자연사 설정이라 사망년도보다 20년 정도 더 살다가 사망하게 된다.

삼국지 14에서의 능력치는 통솔 53, 무력 52, 지력 70, 정치 73, 매력 82로 전작에 비해 통솔력이 1 상승한 대신 무력과 지력, 정치력이 각각 1 하락했다. 개성은 명성, 절감, 소심, 동요, 우유, 주의는 명리, 정책은 호적정비 Lv 4, 진형은 학익, 투석, 전법은 견제, 혼란, 투석, 친애무장은 원소, 진궁, 혐오무장은 없다.

3.2. 창천항로

진궁에게 이름이 팔리는 모습으로 잠시 등장한다. 조조가 서주를 치기 위해 자리를 비운 동안 모반을 결심한 진궁이 연주의 대부분을 회유한 후, 장막의 뜻에 따르겠다며 미리 불러 놓았던 여포를 소개한다. 정작 장막 본인은 진궁이 입장하기 직전에는 예전부터 조조에게 심취해 있었다고 독백하는 등, 전혀 조조를 상대로 반란을 일으킬 생각이 없었다. 창천항로 특유의 과감한 전개 때문에 그 후의 등장은 없다.

3.3. 삼국전투기

그림체 차이가 너무 심해서 알아보긴 힘들지만 박수동 화백의 5학년 5반 삼총사의 등장인물 뚝배기로 등장. 나이 문제인지 추가로 콧수염도 붙어 있다. 조조와 원소의 친구로 조조에게 여러 지원을 도와주는 모습으로 첫 등장. 사람됨이 인망이 높기로 유명해 한복을 환영하는 등 소소하게 등장하다 원소가 "한복 그 사람... 죽여도 되지 않을까?"라고 넌지시 떠보나 장막은 "아무리 그렇다 치더라도 손님을 죽이는 건 아니지..."이라고 거절하는데 한복이 이를 보고 지레짐작하여 자살하자 그의 시신을 보고 당황하며 "넘마, 기주까지 빼앗고 이럼 안 되지!"라고 충고하는데 이로 인해 안 그래도 기주 건으로 예민해져 있던 원소가 제대로 열이 뻩쳐버렸고 조조에게도 내쳐질 것을 두려워하던 중 조조의 곁을 떠나 여포와 연합을 맺은 진궁을 만난다.

이후, 진궁에게 포섭되어 같이 행동하지만 정군 전투 막바지에 진궁-여포-장막 동맹이 크게 패하고 연주성을 버리고 도망쳐야 되는 상황까지 이르게 되자 조조에게 죽임당할 게 두려워 동맹에서 이탈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부하들에게 살해당하는 것으로 묘사된다. 이후 전개를 추정하면 정사대로 삼대 일가족이 몰살당한 걸로 보인다.

3.4. 삼국지톡

파일:장막.png

한복의 장례식에 참석하여 그 장례식의 원인제공자에게 일갈하다 조조에게 기절당해[5] 퇴장당하는 모습으로 첫 등장. 이때문에 원소에게 찍혀 죽을 위기에 처하나, 조조가 원소의 명을 어기고 살려주면서 매우 고마워하며, 조조가 연주를 취하고자 할때 적극적으로 칭찬하며 밀어준다. 조조의 소꿉친구라는 설정답게 카톡 프로필은 으리하면 장막.

하지만 조조가 서주대학살을 일으키면서 이에 회의감과 환멸을 느낀 진궁에게 여포의 소재를 알려주고, 진궁과 함께 조조를 배신하고 여포를 영입했다. 이후에도 여러번 등장하나 한편으론 친구였던 조조를 배신했던 것에 확신없는 모습을 여러차례 보이며, 진궁이 조조를 낚아 복양성에 가두고 화재를 일으키면서 이에 휩쓸린 조조가 죽었다는 소문이 퍼지자 자기가 직접 겪은 친구와 친구가 주군과 신하가 서로 죽여야만 하는 신의없는 세상이 더럽기 짝이 없다며 원통해 하면서도, 진궁의 공적을 칭찬하며 영웅이라고 치켜세워준다. 삼국지톡의 장막이 어떤 캐릭터인지 잘 알수있는 장면.

하지만 차근차근 반격을 준비해온 조조가 끝내 뻘짓하던 여포를 묶어놓고 습격해오면서 여포의 뻘짓으로 연주성을 빼앗기게 된다. 일단 부하들과 피신한 장막은 진궁에게 전화로 자신의 생사를 알리고서 지원군으로 원술을 끌어들이러 갈테니 틈을 봐서 다시 조조를 치자고 진궁을 격려했지만, 그러면서 '''마지막 한 사람이 죽을 때까지 같이 싸우겠다."라는 말을 하는 바람에 주위의 부하들을 자극하고 만다. 이미 조조의 공세에 전의를 상실한 병사들이 죽기 싫다고 배신하며 그들에게 살해당하고, 가족들도 목을 베이며 삼족이 전부 멸족되는 최후를 맞는다.[6]


[1] 장홍원소를 꾸짖는 기록에서 보면 나이는 장막, 원소, 장초 순인 것으로 보인다.[2] 그러나 아시다시피 이 3명의 친구는 나중에 서로가 서로에게 무기를 겨누는 숙적이 된다. 원소랑 장막은 동탁 토벌 전부터 적이였으며, 장막하고 조조는 서주 대학살 이후로 장막이 뒤통수를 거하게 친다. 조조랑 원소는 뭐 말할 필요도 없다.[3] 즉, 장막은 원소에게 찍힐 일들만 골라 한 것이다. 사실 이렇게 생각하는 것도 무리는 아닌 게 조조의 시작은 친원소 군벌, 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원소의 부하 수준이었으며 위기 때마다 원소의 도움을 받은 적이 많았기에 어떤 식으로든 원소와 얽혀 있을 수밖에 없었으며 조조는 자신에게 쓸모없거나 당장은 쓸모있어도 나중에 필요 없어지면 트집잡아 죽였던 데다 훗날 원소가 관도대전에서 패배하긴 했어도 원소의 세력은 조조보다 한참 우위에 있었을 정도라 만약 조조가 원소에게 잘보이기 위해 혹은 원소와 화해 한답시고 장막을 죽이거나 원소에게 보내버릴지도 모를 일이었기에 장막 입장에서는 충분히 불안할 법했다. 물론 조조가 실제로 어떻게 행동했을지는 알 수 없으며, 장막의 배신이 조조가 친족위주로 정권을 꾸리게 된 계기중 하나로 작용했다고 보는 시각도 있다.[4] 정확히는 일단 여포가 어쨌든 싸움은 잘하니 형식상 연주목으로 추대한 후 조조를 물리치고 나면 그에게 어느 정도 지분을 줘서 떼어낸 후에 연주를 바탕으로 패업을 도모하자는 의미다.[5] 장막이 맞는 컷에서는 때린 사람은 안 나오고 이후 컷에서 조조가 때렸다는 사실이 드러났는데, 장막이 맞은 컷의 베댓 曰, 때린 사람이 안 보이는 걸 보니 조맹덕이구나![6] 실제 역사에서는 이를 계기로 이후의 조조는 친족 중심 정치를 해나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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