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12-15 14:43:22

조우(삼국지)

위서(魏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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曹宇
생몰년도 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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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삼국시대 위나라의 황족이며 는 팽조(彭祖)로 조조의 아들, 어머니는 환부인, 아내는 장로의 딸.[1] 조비, 조창, 조식, 조웅의 이복형제이자 조충, 조거와는 친형제로, 위원제 조환은 그의 아들이다. 조조의 아들 중에서 가장 오래 산 인물이다.

2. 정사 삼국지

211년에 도향후, 217년에는 노양후로 봉해졌다가 221년에 조비가 즉위하자 도향공으로 승진했다. 222년에는 하비왕이 되었고 224년에는 단보현에 봉해졌다가 225년에 연왕으로 승진한다.

그의 조카 조예는 어린 시절 조우와 함께 성장했고 나이 차이도 별로 나지 않아서 그를 매우 사랑했다. 그래서인지 조예가 226년에 즉위하자 조우를 총애하고 상을 주는 것이 다른 여러 왕에 비해서 각별했다.

235년에 조예로부터 조정으로 불러들여졌다가 237년업성으로 돌아왔다. 238년 또 불려서 수도로 갔는데 이때 조예가 위독했기 때문에 조우를 대장군으로 삼아 하후헌, 조상, 조조(曹肇)[2], 진랑에게 그를 도와 조방의 뒤를 맡기려고 했다.

성격이 공손했던 조우 자신은 별로 내켜하지 않았다고 하면서 대장군직을 정중히 사양했다. 그러나 《위략》에 따르면 황제가 되려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으며, 조예가 위독하자 관중에 중대한 일이 일어났다는 소식을 사마의에게 알려 하내를 거쳐 지름길로 서쪽으로 관중으로 돌아오라고 전했다고 한다.

자치통감》에 따르면 하후헌과 조휴의 아들 조조와 사이가 나쁜 유방손자가 조예를 조우와 이간질 하려는 계획을 세웠는데 결국 연왕 조우 등의 관직을 면하게 하라는 조명이 내려졌고 연왕 등은 궁중에 머물 수 없다 하여 조우 등이 모두 눈물을 흘리며 출궁했다.

《한진춘추》에 따르면 조예의 의식이 혼미해지자 조우는 조휴의 아들 조조와 상의하기 위해 궐 밖에 나갔고, 이때 조상만 황제 곁에 남게 되었는데 이때 조예의 측근인 유방은 이것을 알고 손자와 불러서 음모를 꾸몄다. 그들은 본래 조우를 필두로 해 진랑 등과 같은 황족 세력과 워낙 사이가 좋지 않았기에, 조우 세력을 제거하려고 몰래 꾸미고 있었다. 하지만 항상 조우가 황제 곁에 있어 말할 기회를 얻지 못하고 있었다. 즉, 조우가 탁고대신이 되면 자신들의 안전을 보장받지 못하리라 우려했다는 것. 그런데 그중에서도 조상과는 또 사이가 괜찮았던 모양으로 유방과 손자는 이들이 없는 틈을 타 조예에게 조우, 진랑, 조조를 헐뜯는다. 우선 선제(조비)는 번왕(藩王)은 정사를 보필할 수 없다고 했고 게다가 조예의 병이 심해지자 조조와 진랑 등이 곧바로 입궁해 궐내의 재인(才人)을 데리고 놀고 병수발을 드는 궁녀들을 말로 희롱했으며 조금도 슬퍼하는 기색이 아니었고 조우는 병사들을 거느리고 스스로 남면하고는 조신들은 전각 안에 들어오지도 못하게 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이게 옛날 조고처럼 국권을 훔치려는게 아니고 무엇이냐는 것이다.

조예는 매우 화가 나 조우 대신 조상과 사마의를 집권자로 임명하려 했다. 그런데 그 말을 들은 조휴의 아들 조조가 다시 입궐해 눈물로 호소하자 조예는 조우의 관직 박탈을 취소하고 다시 조상과 사마의를 임명하려던 명령을 취소했다. 조조가 다시 조예 곁을 떠나자 이번엔 또 다시 유방과 손자가 호소했고 조예는 또다시 조우의 관직 박탈 취소를 취소한다. 심지어 조예가 스스로 칙서를 쓸 힘조차 없다고 하자 유방은 조예의 손에 붓을 쥐어준 후 그 손을 잡고 스스로 글씨를 써서는 자기가 옥새를 찍고 황명을 내린다. 결국 조우, 하후헌, 조조, 진랑은 모두 벼슬을 면직당해 박탈당한 후 울면서 집으로 가게 되었다. 이로서 조우파와 유방, 손자는 병들어 제대로 판단을 내리지 못하는 황제 옆에서 각자 자파를 위해 설득했음을 알 수 있다.

《세어》에 따르면 조조의 동생 조찬은 이때 대장군의 사마로 있었다. 조예는 더 이상 연왕 조우에 뜻을 두지 않았고 때마침 조우와 함께 조조가 궁 밖으로 나가자 조찬이 형을 보고 놀라 조예가 몹시 불안한 상태인데 왜 두 사람이 나오느냐며 마땅히 궁 안으로 돌아가야 한다고 했다. 그러나 이미 날이 저물었으므로, 유방과 손자가 칙명을 내려 궁궐을 닫고, 조조 등을 못 들어오게 하고, 연왕 조우를 면직시켰다. 조조가 다음 날 아침 궁문에 이르렀으나 안으로 들어갈 수가 없었다. 조조는 일이 실패했음을 알았다. 두려운 생각이 든 조조는 제 발로 정위(延尉)를 찾아가 큰일을 처리하는데 잘못이 있었으므로 처벌해 달라고 했다. 하후헌은 아직 궁 안에 머물러 있었다. 그가 조예를 찾아가 사태를 반전시켜 보려 했으나 조예는 하후헌에게 벌써 사신을 보냈으니 나가라고 했고 그도 역시 면직되었다. 조우파의 마지막 반전도 실패한 것이다.

결국 유방과 손자와의 파워 대결에서 패배한 조우는 조우, 하후헌, 조조, 진랑과 함께 면직되었으며 조예는 조상과 사마의에게 뒤를 맡겼다. 조우는 239년 업성으로 돌아갔고 나중에 식읍은 5500호까지 받았다.

260년에 아들 조환이 즉위하자 11월에 동지를 경하해 상주하면서 그 자신을 신하라 일컬었다. 이때 조환은 아버지 조우에게 조서를 내려 상주문에서 신하로 칭하지 않도록 예우했다. 《통전》에 따르면 278년에 제사를 지낸 것으로 보아 278년 또는 그 이전에 사망한 것으로 보인다.[3]

3. 삼국지연의

정사와 달리 조비의 아들로 설정이 바뀌었고 조예가 병상에 있을 때 조방의 보좌를 부탁하지만 조우는 사양한다.

4. 평가

대외적으로는 권력을 삼가는 점잖은 이미지로 기록되었으나 행적을 자세히 살피면 의외로 사마의 등 정적들을 은근히 견제하는 패권적인 이면도 있었다.

진심으로 조우가 대장군을 거절했다면 관직을 박탈당하고나서 울면서 출궁했을 리 없다. 결국 그 기록은 죽기전 조예의 마음을 사로잡지 못해, 손자, 유방에게 밀려버렸음을 알 수 있는 기록이다. 실제 다른 기록을 조합하면 조우와 손자/유방파의 권력 대결을 보이는 기록이 있다.

사실 조우의 본심이 진짜로 황제의 자리를 노렸건 어찌되었든 간에 유방과 손자가 말한 조우에 대한 간언, 이건 충분히 가능성 있는 이야기였다. 조우는 자신의 할아버지인 조조의 아들로 자기 숙부라서 정통성이 충분하다. 반면 조예의 후계자인 조방과 조순 형제는 출신성분도 알 수 없는 꼬맹이들이었다. 차라리 조예가 숙부인 조우에게 황위를 물려주었다면 위나라는 오래도록 존속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조예는 이미 조방을 자신의 후계자로 삼기로 결심했고, 그 이유는 예나 지금이나 알 수 없다. 진짜로 미친 건지...[4]

당시 조예의 목적은 무슨 일이 있어도 조방에게 제위를 물려주는 것이었다. 만일 조예가 이십 년쯤 더 살고 제 수명에 죽었더라면, 그래서 조방이 그 기간 동안 후계자로서 공인받으며 성인이 되었다면 정통성 부족도 어느 정도는 극복해낼 수 있었을 것이다. 그 동안 조우를 위시한 여러 황족과 친족들을 통해 실질적인 보위 세력도 구축해 줄 수 있었을 테고.

그러나 그럴 시간이 없었다. 조예 자신의 목숨은 경각에 달려 있었고 조방의 나이 고작 여덟 살이었다. 이렇게 되니 본래는 황실의 보위세력으로 삼으려 했던 조우가 오히려 조방의 황권에 가장 큰 위협이 된다. 조상이나 조조(조휴의 아들) 등과는 달리 지나치게 가까운 황족으로 엄연히 황위계승권이 있었으니까. 그러면 조우를 배제하는 게 당연한 수순이 된다.

이렇듯 권력을 탐하는 듯한 그의 행적은 권력을 내켜하지 않았다는 기록과는 상반되기에 이해하기 쉽지 않지만, 조상의 배반으로 자신이 이끄는 황족 세력이 흔들리니 조상/유방/손자 연합세력과 황족파 정쟁에서 자신은 적당한 선에 물러나는것으로 해석하면 '내키지 않았다'와 초반에 나름 정적들을 견제하는 상반된 기록이 이해된다.

5. 기타 창작물

5.1. 코에이 삼국지 시리즈

파일:external/kongming.net/045-Cao-Yu.jpg
삼국지 11
파일:external/san.nobuwiki.org/0448.jpg
삼국지 12, 13, 14

삼국지 3에서 처음으로 등장했는데 능력치만 보면 이게 조조의 아들이 맞는지 의심스러울 정도로 능력치가 형편없다. 심지어는 자신과 같은 환부인 태생의 형제인 조충과 비교해봐도 조충 쪽이 매우 실례일 정도로 허접한 능력치를 가지고 있다. 거의 모든 시리즈에서 능력치 60 이상을 보기가 힘들 정도.

삼국지 9에서의 능력치는 통무지정 순으로 51/25/34/42이며 무력이 25밖에 안 되는데 병법으로는 기사 하나 뿐이다. 거기다가 궁기 특기까지 있는데 위력은 기대하지 말자.

삼국지 10에서는 정사를 반영하였는지 부친이 조조로 되어 있다. 능력치는 통솔력 49/무력 44/지력 35/정치력 52/매력 60으로 역시 쓰레기급에 특기는 기술, 반목. 총 2 뿐. 둘 다 지력에 의존하는 특기인데 지력이 35밖에 안 되니 있으나 마나다.

삼국지 12에서는 의자에 앉은 채 오른손을 흔들면서 조예로부터 사양하는 모습이다.

삼국지 13에서의 능력치는 통무지정 순으로 50/43/37/52. 특기는 문화 1 단 하나. 전수특기도 당연히 문화이며 전법은 위무.

삼국지 14에서의 능력치는 통솔 50, 무력 43, 지력 42, 정치 57, 매력 66으로 전작과 달리 지력과 정치력이 각각 5 상승했다. 개성은 소욕, 주의는 할거, 정책은 지역진흥 Lv 3, 진형은 학익, 전법은 화시, 혼란, 친애무장은 조예, 진랑, 하후헌, 혐오무장은 없다.

5.2. 삼국전투기

조조, 하후헌, 조상, 진랑과 함께 플레이모빌 인형으로 등장한다. 조우는 연장자라서인지 나머지 플레이모빌들과는 달리 콧수염이 존재하고, 조조, 하후헌, 진랑과는 전투외편 2-2편의 타이틀 컷도 함께 장식했다.

전투외편 2편에서 처음 등장. 238년 기준 연왕이었다. 조예는 그를 포함한 일족에게 태자 조방을 보좌하게 하려고 조우에게 대장군직을 내리려 했고, 조우는 겸양하는 태도로 살짝 거절(하는 척)하는 태도를 보였으나 유방과 손자가 조우가 자신의 주제를 잘 알고 있다는 식으로 거들어서 무마시키고 그 자리에 조상을 추천해 버리면서 낙동강 오리알 신세가 되었다.

이후 조예가 유방과 손자를 물린 뒤 다시 그를 부르자 자기가 겉치레에 연연해 큰일을 망쳤다며 울며 사죄했다. 조예가 사마의를 부르고 말았다고 말하며 대책을 의논하자 유방과 손자는 다 괜찮지만 사마의는 안 된다며 조칙을 내려 사마의를 허창[5]에 머무르게끔 하면 된다고 조언했으나, 유방이 사마의를 부르는 조칙을 다시 쓰게끔 하여 결국 사마의가 낙양에 입성하였고, 조우는 조조, 하후헌, 진랑 등과 함께 면직당하고 궁 내에서 쫓겨났다고 묘사된다. 정말 이대로 물러날 수밖에 없는 거냐고 묻는 조조에게 그럼 네가 사마의랑 붙어 볼 거냐고 말하는 건 덤.


[1] 한중에 묻힌 장기영인지는 확실치 않다.[2] 조휴의 아들[3] 중국 삼국 시대 황제의 아버지 중 유일하게 살아서 아들의 즉위를 지켜본 인물이다. 하지만 이는 별로 자랑스러울 기록이 못 되는게 조환은 어차피 사마 가문이 세운 허수아비 황제였고, 조우 본인은 허수아비 황제로도 선택받지 못한 인물이라는 뜻이기 때문이다.[4] 이는 상속에 대한 무지와 결과론적인 해석에서 나온 견해로, 유교 사회에서 조카가 자신보다 항렬이 높은 숙부에게 제위를 물려주는 역상속은 비정상적인 것이다. 그런 게 가능했다면 조위의 실질적인 마지막 군주인 조모는 황제가 될 수 없었을 것이고, 조우가 즉위한다고 해서 실제로 조위의 수명이 연장되었을지는 미지수다.[5] 사마의는 요동 평정 이후 주욱 허창에 머무르고 있었다고 묘사된다. 참고로 이 시점에서 위는 진작에 수도를 낙양으로 이전한 상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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