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10-22 21:40:01

진림

건안칠자(建安七子)
공융 완우 서간 진림 응창 왕찬 유정

陳琳
? ~ 217년

[clearfix]

1. 개요

후한 말의 관리이며패드리퍼 는 공장(孔璋)으로 서주 광릉군 사양현 사람.

미려한 문장이 유명해 건안칠자의 한명으로 꼽힌다.

2. 정사 삼국지

2.1. 하진 휘하에서

본디 하진 밑에서 주부 벼슬을 지냈다.

하진이 원소의 계책에 따라 동탁 등 외부의 장군들을 소집하려 하자 상부로 지내던 진림은
"지금 장군께서는 황제의 위엄을 지니고 군권을 장악하여 위엄을 떨치고 계십니다. 이제 대군이 모여들면 그 가운데 최강자가 영웅이 되기 마련입니다. 이 같은 경우를 빗대어 '무기를 거꾸로 들어 남에게 칼자루를 쥐어준다.' 라고 합니다. 결국 공을 이루지 못하고 세상만 어지러워질 따름입니다."
라고 진언했고, 시어사 정태(鄭泰)와 상서 노식(盧植) 역시 동탁을 불러들이는 것은 온당치 않다고 진언했다. 하지만 하진은 거들떠보지 않았다.

이후 하진이 암살당하자 기주로 도망가 원소를 따른다.

2.2. 원가 휘하에서

진림은 원소의 심복이 되어 문서 작업을 담당한다.

관도대전 이전의 사서상의 등장은 단편적인 기록 몇 개 뿐이지만 기록 부족이 심각한 원소 휘하 내에서는 이 정도만 해도 상당히 많은 편이다.

<장홍전>에 따르면 195년 12월에 동군태수 장홍이 원소에게 반기를 들자 원소는 장홍을 공격해 성을 포위했지만 3개월 이상의 공격에도 성이 함락되지 않자 같은 군 출신이었던 진림을 시켜 항복을 종용하는 편지를 쓰게 했다. 이에 장홍이 답서를 보내 진림의 말을 조목조목 반박해 거절한 일화가 있다. 이 답서에서 장홍은 진림을 일컬어 "전쟁터에 첩실을 데리고 와서는 편히 쉬면서 빠질대로 빠져 있다." 혹은 "옳고 그름을 논하지만 진실된 마음은 없이 자신의 위기만 구하려 한다."는 식으로 대차게 디스한다.

199년에 원소가 공손찬을 포위했을 당시 공손찬이 동맹군인 장연에게 구원을 요청하는 서신을 보내자 원소가 이를 가로챈 뒤 진림을 시켜 내용을 조작하게 해 진림이 위조한 거짓 문서에 낚인 공손찬은 원소에게 참패했다.

관도대전이 벌어지자 조조의 죄상을 규탄하는 선전문인 토조조서를 쓴 것으로 매우 유명하다. 조조뿐만 아니라 조조의 부친인 조숭, 조부 조등까지 죄다 신랄하게 깐 이 문장은 현대에도 남아 있으며 당사자인 조조마저 감탄할 정도의 명문이었다고 한다.
“사공 조조의 조부 중상시 조등은 좌관, 서황 같은 환관들과 한 통속이 되어 극악무도한 짓을 다했고, 더럽게 재물을 긁어모으고 거칠 것 없이 날뛰어 세상의 풍속을 썩게 하고 백성들을 못살게 굴었다. 조조의 아비 조숭은 본래 거렁뱅이로 문전걸식을 하다가 환관의 양자가 되어 뇌물을 주고 관직을 사고, 금은보화를 수레에 싣고 권문세가에 뇌물을 바쳐 삼공의 지위를 도적질하여 사직의 커다란 우환이 되었다. 조조는 더러운 환관의 자손으로서 원래 아름다운 덕을 갖추지 못했으면서도 교활하게 협행을 꾸미며 어지러움을 좋아하고 화를 일으키기를 즐겨했다.”

<최염전>에 따르면 원소 사후 최염이 투옥되자 진림은 음기(陰夔)와 함께 이를 변호해 그를 석방시켜준다.

<무제기>와 <원소전>에 따르면 조조가 을 포위하자 이를 구하기 위해 회군한 원상까지 격파해 포위하자 원상이 진림과 전 예주자사 음기를 사절로 보내 항복을 청한다.

2.3. 조조 휘하에서

원상이 패하자[1] 조조에게 투항했으며, 진림을 본 조조가 “경이 이전에 본초(本初)[2]를 위해 나에게 글을 보내온 적이 있다. 하지만 죄상은 나 혼자만의 것이고, 악인에 대한 통박도 내 몸에서 그칠 일이거늘, 어찌하여 조상의 대에까지 소급했던가?”라고 꾸짖자, 이에 진림은 "시위를 당긴 화살은 쏘지 않을 수 없소."라고 변명해 조조에게 사과했다고 한다.

화살은 자신에 비유하고 시위는 원소에 비유하되, 화살은 스스로 발사되는 게 아니라 시위가 발사하는 것이라고 했다. 이로 인해 진림은 조조의 화살이 될 수 있음을 비쳤고, 진림의 문학적 재능을 높이 산 조조는 진림을 더 책망하지 않았으며 이후 사공군모좨주로 임명되어 계속 문서 작성을 담당했다.

조조 휘하로 들어간 후에는 원소 시절만큼 외부적으로 부각되지는 않았지만 나름대로 매우 중용된 것으로 보이며, 진림은 글의 초안이 완성되면 우선 조조에게 보였다. 조조가 진림의 글을 볼 때마다 너무 감탄한 나머지 지병인 두통조차 잊어버렸다고 하며, 당시 중요한 국가의 포고령과 군사문서, 격문 등은 모두 진림과 완우에게서 나왔다고 한다.

이후 문하독으로 옮겼다가 217년에 역병이 유행하자 서간, 응창, 유정 등과 동시에 병이 들어 죽었다.

3. 삼국지연의

대부분 정사와 행적이 비슷하다.

다만 정사의 내용이 한가지 사건으로 짜집기 되었다. 정사에서 조조의 두통을 낫게한 진림의 글은 토조조서가 아니다. 정사에서는 진림이 조조에게 귀순한 후 조조에게 문장을 보여주자 조조가 진림의 문장을 보고 두통이 나았다. 연의에서는 이 일화를 토조조서 때와 합쳐버려서 진림이 원소 밑에서 조조를 규탄하는 글을 쓴걸 조조가 보고 하도 황당하고 열받은 나머지 두통이 낫는걸로 바뀌었다.

연의에서 합쳐진 내용은 다음과 같다. 당시 조조는 지병인 두통 때문에 침상에 누워있었는데, 격문을 접한 조조는 갑자기 모골이 송연해지며 전신에 식은땀이 흘러내렸다.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두통마저 잊은 조조는 병상에서 벌떡 일어나더니 조홍에게 "이 글을 쓴 놈이 어디의 누구냐?" 라고 물었다. 당연히 자기 상관의 아버지와 할아버지까지 싸잡아 비난하는 패드립을 가져온 조홍이 행여 날벼락이라도 맞을까 넙죽 엎드리며 "원소군에 종군하는 진림이라는 자가 지었다고 합니다."라고 했고 그 말을 들은 조조는 빙긋 웃으면서 말한다. "글재주가 있는 자는 반드시 무략으로써 제도해주어야 한다. 진림의 문장이 비록 훌륭하지만, 원소의 무략이 부족하니 어쩌겠느냐!" 그리고는 마침내 모든 모사들을 집결시켜 원소를 상대할 대책을 상의한다. 이것이 바로 그 유명한 ‘진림의 격문이 두통을 고쳤다.’는 일화다.

4. 평가

역사가가 직접적으로 비난하지는 않지만 '시위에 놓인 화살' 운운하는 것으로 봤을 때 권력에 아부하며 곡학아세하는 성향이 있어 평판이 상당히 나빴던 것으로 보인다.[3]

조비가 원성현의 현령으로 지내던 오질에게 보낸 편지에서 진림에 대해 "문장은 탁월하지만 조금 번잡하다"고 평가했다.

조식양수에게 보낸 편지에서 진림을 비판했다. 오늘날 사부(詞賦)의 작가를 대표하는 인물로 건안칠자중 공융,완우를 뺀 5인과 양수를 거론하는데 모두가 빼어난 것은 아니라며 진림을 콕 집으며 진림이 스스로 사마상여 수준이라며 자만하는 것을 비난하는 편지를 진림에게 보냈더니 조식이 자기를 인정했다는 헛소문을 퍼뜨린다고 극딜한다. 이 편지에서는 유수도 같이 까인다.

조비와 조식이야 조조의 아들이고 본인의 아버지, 그리고 더 나아가 자신들의 조부와 증조부를 모욕한 진림에 대해 안 좋게 평가할 수 밖에 없으니 그렇다쳐도 진림의 평가가 당대에나 후대에나 한결같이 안 좋았다는 건 여러 문헌에도 드러난다. 가령 훗날 안씨가훈의 저자인 안지추는 진림을 일컬어 '원소 휘하에 있을 때는 조조를 이리나 승냥이로 비유하더니 조조 휘하로 들어가자 원소를 뱀이나 살모사 등으로 비유한다'고 적으며 위에서 시키면 따라야 하니 어쩔 수 없었겠지만 한편으론 이것이 문인된 자의 고민이라고 한다. 아무리 어려운 시기라도 진림처럼 부끄럽게 살지 말아야 한다는 소리다.

5. 미디어 믹스

5.1. 삼국지 시리즈

파일:陳琳.jpg
삼국지 11
파일:external/san.nobuwiki.org/0651.jpg
삼국지 12, 13, 14

통솔, 무력은 엄청나게 낮고 지력, 정치, 매력은 70대 이상의 문관으로 나온다. 삼국지 2편을 제외하고는 꾸준히 등장하고 있는 중이다. 상성은 대대로 원소보다는 조조와 가까운 쪽으로 나온다. 그래서 원소로 플레이할때는 장합, 고람과 함께 상성이 정반대가 되는 진림의 충성도를 관리하기가 피곤하다.

삼국지 3 189년 시나리오에서는 진임이라는 이름으로 원소군 소속으로 등장한다. 능력치는 육지 55/ 수지 54/ 무력 23/ 지력 80/ 정치 66/ 매력 54로 별 쓸모 있지는 않은 잡군사. 지력이 최소기준에 간신히 부합해 군사가 될 수 있다. 군소 세력이라면 저 정도의 잡군사라도 절 하면서 데려와 군사로 써먹겠지만 소속이 원소군인지라 활약할 여지가 적어 묻히는 감이 있다. 지력 말고는 다 수준 이하라서 태수로도 부적절하고 턱걸이 군사라서 조언의 신뢰도도 매우 떨어지지만 수성시에 함정 1개를 설치할 수 있다는 깨알같은 이점은 있다. 전방보다는 후방에 군사로 보내 후방지역 태수를 보좌하게 하는 편이 낫다.

삼국지 5에서도 전형적인 내정형 문관으로 등장하며 전투로는 쓰기 곤란하지만 채옹이나 순욱처럼 내정, 인사, 외교 쪽에 어느 곳을 두어도 충분히 밥값을 해준다. 또한 초반 시나리오에는 원소군에 있지만 상성이 조조 쪽에 있고 충성도도 낮은 편이라서 수월하게 등용이 가능하다.

삼국지 7에서도 진임이라는 이름으로 등장한다.

삼국지 9에서의 능력치는 9/9/71/80. 역사를 반영하여 매도와 고무를 가지고 있다. 모략계 병법이 없어서 전장에서 써먹기는 부족하다. 원소군에서는 S급 모사인 전풍과 저수에 밀려 야전에는 나올 일이 많지는 않다.

삼국지 10에서의 능력치는 8/8/73/81/72에 특기는 농업, 고무, 혼란, 반박, 도발, 명사 6개. 도발 특기는 조조를 격문으로 까서 어그로를 끈 걸 반영한 듯 하다.

삼국지 11의 특기는 시상.

삼국지 12에서의 일러스트는 관도 전투 전에 쓴 격문을 두 손으로 들고 조조를 규탄하고 있다.

삼국지 13에서의 능력치는 통무지정 순으로 25/9/75/78로 통솔력이 상승해 있다. 특기는 농업 2, 문화 7, 설파 7, 교섭 5, 언변 8. 전수특기는 언변보다 1 낮은 문화로 전법은 선동도발. 특이하게도 지력이 70대임에도 불구하고 언변이 최고 수치 정도인 레벨 8로 되어있다.

삼국지 14에서의 능력치는 통솔 9, 무력 9, 지력 74, 정치 78, 매력 72로 전작에 비해 통솔력이 16, 지력이 1 하락했다. 개성은 시상, 주의는 명리, 정책은 태학 Lv 3, 진형은 방원, 정란, 전법은 고무, 친애무장은 왕찬, 장굉, 장홍, 조식, 혐오무장은 없다.

5.2. 삼국지 영걸전

1장 마지막인 계교 전투에서만 레벨 8짜리 수송대로 등장하는데 플레이 스타일에 따라 해당 전투에서 가장 미움받는 적 혹은 가장 사랑받는 적으로 될 수 있다. 일반적인 플레이를 지향할 경우, 초반 수송대의 최대 체력 대비 회복량이 높은 편이라 가뜩이나 고레벨로 높은 체력과 방어력 보유+탬빨 때문에 잡기 힘든 적장들을 더 성가시게 만드는 존재. 안량, 장합, 문추를 힘들게 때려놓았는데 적 턴에서 풀피로 회복시키는 모습을 보면 혈압이 올라갈 것이다. 반대로 경험치를 쪽쪽 빨아먹는 노가다를 진행할 경우 진림의 회복 덕분에 레벨 높은 적장들을 최대한 많이 때려 경험치를 뜯어내는 짓이 가능해지므로 사랑받게 된다.

5.3. 연희 시리즈

정확히 말하면 애니메이션 시리즈에도 등장한다. 바로 3기에 걸쳐 프리랜서 아나운서 역할로 고정 출연하는 안경소녀가 바로 진림. 이름이 밝혀지는 게 딱 한 번 뿐이라 보고도 모르는 사람도 많다. 여기에서의 담당 성우는 요시다 히토미.

5.4. 창천항로

마치 노숙자를 연상케하는 꾀죄죄한 차림으로 등장. 토조조서를 쓰는데, 이걸 본 조조가 이마에 핏줄 솟을 정도로 분노하더니 극찬을 했다.
"압도적 승리란 결국, 하나하나를 다 이긴다는 뜻이지요. 선전포고를 선전무고로 바꿔 조조를 이겨보이겠습니다." - 목간에 토조조서를 쓰는 진림
조조 : 돌아가신 조부와 아버지의 비방과 중상으로 시작하여… 이 조조의 반생을 이렇게도 얕보고 우롱하는가~.
참모진들 : 으아아아악-
조조 : 이 격문을 쓴 자를 눈 앞에 끌고와랏!!
순유 : 그, 그러시다면… 이걸 기록한 원소까지 말씀입니까!
조조 : 이 아름다운 문언! 이 아름다운 배열, 음률, 음조, 가혹한 행간에 깃든 사조, 쇄탈, 품격. 언어라는건 배우려 않는 자는 영원히 익힐 수 없는 것이다. 이 문장은 원소와 아무런 관계도 없다! 이 재인의 필치로 선전포고가 받아들여진 게 실로 기쁘구나.

이후 원소가 조조에게 토벌되고 조조의 부름을 받고 죽음을 각오하지만, 조조는 진림을 살려주었다. 그리고 비슷한 시기에 출사를 한 조조의 아들 조식의 글을 보고 감탄하며, 조식의 글이 천박하다고 까는 공융의 말을 정면으로 반박하며, 조식의 글은 유학으로 인해 그동안 핍박받은 문학에 새 바람을 일으킬 것이라며 극찬하면서 조식과는 나이를 초월한 교분을 나누게 되는데, 조식이 조조가 한중을 정벌하는 과정을 기록한 글을 보고 도저히 참을 수가 없어 조조가 합비로 출전할 때 사관으로 종군하지만, 역병에 감염되어 합비에서 생을 마감한다.

5.5. 84부작 삼국지

원소와 함께 하진의 휘하에 있는 모습으로, 그들이 대장군부로 부르자 등장한다. 이때 코에이 삼국지 시리즈의 묘사와는 다르게 무장처럼 갑옷을 입고 나타난다.

5.6. 신삼국

연의의 이야기처럼, 두통으로 누워있던 조조가 토조조서를 읽고 두통이 낫는 일화를 보여준다. 이후 기주를 점령한 다음 조조가 진림을 불러와서 연의에 나온것 처럼 나만 까면 되지 왜 패드립이냐고 가볍게 디스한 다음, 귀순을 권하는 장면이 나온다. 감동의 눈물을 흘리는 진림을 안아 일으켜주며 우리는 욕하다 정든 사이라고 다독여 주는 것은 덤.

파일:Em7pEyTUwAE-ose.jpg
유명한 짤방이 이 장면에서 나왔다.

5.7. 삼국지톡

파일:진림.jpg

시즌2 십상시의 난 54화에서 본디 하진 휘하에서 벼슬을 하였지만, 하진 암살 이후 원소의 밑에 들어가 문서 작업을 담당하게된다. 하진의 죽음을 이용하여 십상시를 제거하려는 원소에게 톡으로 패드립을 날린다.어르신의 조상 중에 견공의 자제분이 계십니까? 이후 시즌 5 협천자 37화 (156화)에서 조조의 서주대학살에 대한 조조와의 동맹을 버리겠다는 순심의 입장문을 기사로 작성하는 것으로 나온다. 기사 작성하는 모습을 보고 있자면 조조군 입장에선 영락없는 기레기로 클릭을 유도하는 자극적인 제목을 뽑는 재주는 놀라울 정도.

거기다 시즌 6 관도대전 93화에서 조조에게 모든 걸 빼앗기고 황제의 숙부라는 명분만 가진 채 투항한 유비에게 조조를 역적으로 치부하는 한 편, 원소가 조조에 대항할 유일한 인물이라고 칭송하며 눈물을 흘리는 지문이 적힌 대사집을 주면서 이 일만 잘해주시면 가족들의 시체는 잘 수습해 주겠다고 패드립을 날려 유비를 분노케 했다. 이후 조조를 역적으로 매도하며 삼대를 모욕하는 기사를 방송매체로 일파만파 보도한다.



[1] <왕찬전>에서는 원소가 패하자 조조에게 투항했다고 되어있으나 오류로 보인다.[2] 원소의 자다.[3] 비슷한 케이스로 괴철이 있는데 괴철도 자신의 상관인 한신 밑에 있을 때는 그를 부추겨서 반란을 모의하였으나 정작 한고제에게 진압당한 이후에는 아부하는 말로 살아남아 한고제의 충직한 신하가 되었다. 그리고 진림도 마찬가지지만 괴철도 항목을 들어가보면 알겠지만 후대인들에게 좋은 평가는 못 받는 인물이다. 현대인들 뿐 아니라 과거 사람들도 본인의 주군에게는 과잉 충성하다가 주인이 바뀌면 변절하여 즉각 전주인을 평가절하하는 인물에 대해 안 좋게 평가한다는 걸 알 수 있는 부분이다. 진림이나 괴철과 반대의 케이스가 오자서인데 부차에게 간언도 했고 부차의 최대 숙적인 구천을 죽이라고 말하였으나 정작 구천이 항복한 이후에는 왕에 대한 대접(마굿간 지기를 시켰다)이 이래선 안 된다고 규탄하기도 했고 죽어가는 와중에 왕에게 밉보였음에도 신념은 꺾지 않았다. 그리고 진림이나 괴철과 다르게 오자서는 후대의 평가가 아주 높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