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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주(중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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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주, 徐州
1. 개요2. 역사
2.1. 삼국시대2.2. 이후 역사
3. 관련 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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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고대 중국행정구역 중 하나이다. 과거 항우의 거점이던 팽성이었고, 후한 말에는 유비의 거점으로서 초한지, 삼국지 모두에 자주 등장하는 헬게이트 영예(?)를 누렸다.
파일:팽성.png
항우의 근거지 팽성의 위치

현재는 중국 장쑤성 쉬저우시를 말하고 삼국지에서는 그 근방을 아우른 지역을 말한다. 옛날이나 지금이나 우리말로는 서주라고 불린다. 교통의 요지로서 중국의 남방과 북방을 잇는 철도망이 지난다. 정쑤성에서 4번째로 큰 도시다.

2. 역사

2.1. 삼국시대

전한 무제가 설치한 자사부 중 하나로 양한과 위진남북조 내내 이어져왔다. 삼국지에 나오는 것으로 유명하며 후한 13주에 속한다.

처음에는 도겸이 서주자사로 지배하고 있었고, 조조가 서주를 침공하자, 유비가 도겸을 구원하러 왔지만 조조에게 패했다. 여포가 조조의 본거지인 연주를 공격해 차지하자 조조는 연주로 돌아갔다. 이후 도겸이 죽으면서 유비에게 서주를 넘긴다. 여포가 조조에게 패하고 서주로 도망쳐오자 유비가 받아주었다. 유비가 원술과 우이에서 대치하던 중 장비가 단양군의 수장인 조표를 죽이자, 단양군이 여포를 지지해 여포의 것이 되었다. 조조가 여포를 멸한 뒤 조조의 것이 되고, 조조는 부하 차주를 자사로 임명해 서주를 다스리게 한다. 얼마 후 유비가 속임수를 써서 조조에게서 도망친 뒤 차주를 죽이고 다시 잠시 서주를 차지하였다. 원소와의 충돌을 앞에 두고 있던 조조에게 이 상황은 매우 위협적인 것이었지만 조조는 직접 유비를 정벌해 격파하고, 하비를 지키던 관우가 조조에게 투항하면서 서주를 되찾는다. 이후 자잘한 반란을 제외하면 계속 화북 왕조(위-진)에 속해 있었다.

2.2. 이후 역사


물론 남조 정권이 북쪽으로 진출하려면 가장 먼저 획득해야 하는 땅인 것은 분명해서 오나라도 이후 계속 합비공격했고 동진 말엽 ~ 유송 시기에는 남조가 이 지역과 예주, 청주를 확보하기도 했었다. 지형이 너무 평탄해서, 공격해서 빼앗기는 좋지만 방어하기에는 영 안 좋은 곳이라는 평가는 역으로 말하면 이렇기 때문에 중국 내 분열이 없는 통일왕조 시기에는 교통의 요지가 된다는 뜻이다. 그리고 이런 지형 때문에 당나라 때부터 대운하가 지나는 중추지로 번영을 누렸다.[1]

이런 지형적 특징 때문에 중일전쟁 시기에도 금세 일본군에게 함락되었다. 이 중일전쟁 당시 서주 지방을 배경으로 한 전시 선전 가요가 있는데 바로 쇼지 타로보리와 병대(麦と兵隊)란 노래다. 徐州徐州と人馬は進む라는 구절로 시작하는 이 노래의 내용은 일본군 장병들의 고난과 향수(...).[2] 국공내전 당시에도 유백승-등소평이 거느린 대군과 국민당군간에 치열한 격전이 벌어졌으며, 여기서 국민당이 패하며 바로 장강 방어선이 뚫리고 남경이 함락, 국부천대에 나서는 계기가 되었다.

3. 관련 문서


[1] 다만 당나라 때의 서주는 남북조시대를 거치면서 '주'라는 개념 자체가 광역(최상급) 행정구역에서 중간 행정구역으로 점점 내려가는 과정을 거치며 오늘날의 쉬저우와 비슷한 정도로 축소되었다. 그리고 이정기의 제나라 시절에는 주된 전장(...)[2] 조상이 조선 출신인 일본의 도공 14대 심수관(1928~2019)이 당시 대통령이었던 박정희와 청와대에서 만찬을 들었던 일이 있는데, 이때 술이 한 잔 들어간 박정희가 옛날 생각이 났는지 이 보리와 병대 노래를 불렀다고 한다. 해당 일화를 담고 있는 중도일보 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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