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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3F51BA><colcolor=#ece5b6> 송 宋 | Song Dynasty | ||
지도의 회색 부분 (440년 기준) | ||
420년 ~ 479년 | ||
<rowcolor=#ece5b6> 성립 이전 | 멸망 이후 | |
동진 | 남제 | |
별칭 | 유송(劉宋), 남송(南宋) | |
위치 | 중국 화남, 베트남 북부 | |
수도 | 건강(建康) | |
인구 | 4,680,000명[1](20,000,000명[2] 추정) (464년 기준) | |
민족 | 한족 | |
언어 | 중세 남방 중국어, 한문 | |
문자 | 한자 | |
종교 | 대승 불교, 유교, 도교 | |
화폐 | 사수(四銖), 효건(孝建) | |
정치체계 | 군주제 | |
국가원수 | 황제 | |
국성 | 팽성 유씨 | |
주요 황제 | ||
현재 국가 | [[중국| ]][[틀:국기| ]][[틀:국기| ]] [[베트남| ]][[틀:국기| ]][[틀:국기| ]] (일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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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중국 위진남북조시대의 국가 중 하나로 420년 동진(東晉)의 무관이었던 유유(劉裕)가 선양을 받아 이룩한 왕조다. 유(劉)씨의 한나라를 조(曹)씨의 위나라가 멸망시키고 그 위나라를 사마(司馬)씨의 진나라가 멸망시켰는데 그 진나라를 다시 한나라의 후손인 유송이 멸망시켰다.10세기에서 13세기까지 존속한 인지도 높은 통일 제국 송나라가 있어서 구별하기 위해 왕족의 성을 붙여 유송(劉宋), 간혹 동송(東宋)이라고 부르는 게 일반적이다.
유송의 영역 중 북위의 영역과 겹치는 부분을 뺀 것이 실제 영토라고 보면 된다. 육조 시대 왕조들 가운데서는 영토가 가장 넓었다.
남조의 하나로 손오-동진-송-제-양-진(陳)을 육조시대라고도 부른다.
2. 역사
건국 군주 유유는 동진에게서 선양받아 송을 세웠다. 그는 선양받기 전에 이미 장수로서 북벌을 통해 황하 이남의 상당한 영토를 획득했다. 대략 하북을 제외한 중원 대부분이라고 보면 좋다. 후한 식으로 따지면 청주, 서주, 연주, 예주 정도다. 일시적으로 낙양, 장안을 점령하며 사예 지방까지 획득하기도 했다. 장안은 유유가 북벌 중 함락시킨 곳으로 이때 이 일대에 근거지를 둔 후진을 멸망시켰다.하지만 후진을 깨트리는 데 공을 세운 왕진악과 심전자가 서로의 갈등으로 인해 죽은 후 후진의 강역을 빼앗겼으며 유유의 아들인 유의진이 백성을 괴롭혀 민심이 떠나자 그 틈을 노린 북하의 혁련발발이 쳐들어와서 관중 일대를 모두 빼앗겼다. 낙양은 장안에 비해 점령에 성공한 편이지만 그 점유는 10년을 못 넘는다. 그래도 지도에서 낙양을 함락시킨 북위의 공세 일부를 저지시키면서 산둥반도(청주)를 유지하는 데 성공했다는 게 눈에 띈다.
유독 기괴한 폭군이 많았던 왕조인데 사이코패스나 쾌락살인마로 명백히 해석되는 황제도 있을 정도로 끔찍하기 이를 데 없었다. 특히 후임 황제뿐만 아니라 황제가 되지 못한 황족 역시 인간성에 문제가 있는 사람들이 많았다. 그나마 장수한 유유를 제외하면 유의부, 유의룡, 유자업, 후폐제 유욱(劉昱), 순제 유준(劉準)은 젊은 나이에 살해당했고 효무제 유준(劉駿)와 명제 유욱(劉彧)은 비록 병사했지만 오래 살지 못했다. 게다가 이 둘의 대는 후대에 모두 끊긴다. 이런 리더십의 부재 때문에 창업 군주가 넓힌 영토를 북위에게 많이 빼앗겼다.
그나마 3대 황제 유의륭은 괜찮았는데 내정을 잘해서 '원가의 치'로 불리는 전성기를 구가한 명군이라고 볼 수도 있지만, 북위를 상대로한 무리한 북벌과 아들 교육이 엉망이었다. 서자도 아닌 '태자' 유소와 차남 유준(劉濬)에게 죽는 전례없는 일을 당했다. 운 나쁘게 당한 것도 아니고 두 아들이 개막장 짓을 해서 본인도 태자를 폐하고 아들을 죽일 생각을 하다가 시간만 질질 끌며 머뭇거렸는데 그 소식이 유소와 유준에게 새어나가 선빵맞고 당한 것이다. 태자나 차남이나 개막장이고 뒤를 이은 셋째인 효무제 유준(劉駿)도 막장 타이틀을 벗어나는 인물은 아니었다. 결국 막장스런 자식 교육 때문에 자신의 치세도 허무하게 끝내게 되었으니 명군이기는 하지만 실책도 많았던 셈이다. 그러나 이 정도만 되어도 유송에선 제대로 된 통치자였다고 할 수 있다.
마지막 황제 순제 유준(劉準)이 이미 정권을 장악한 권신 소도성에게 선양하면서 59년만에 멸망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