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10-05 23:15:55

진(사마씨)

중국의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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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서진 전국도.png
서진 시기[1]
동진 시기[2]
265년 ~ 420년
성립 이전 멸망 이후
조위 유송
별칭 사마진(司馬晉)
위치 중국 대륙
수도 낙양(洛陽) (265년 ~ 313년)
장안(長安) (313년 ~ 317년)
건강(建康) (317년 ~ 420년)
정치 체제 군주제
국성 사마(司馬)
국가원수 황제
주요 황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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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제 사마염 ,(265년 ~ 290년),
혜제 사마충 ,(290년 ~ 306년),
원제 사마예 ,(317년 ~ 323년),
명제 사마소 ,(323년 ~ 325년) ,
성제 사마연 ,(325년 ~ 342년),
목제 사마담 ,(344년 ~ 361년),
효무제 사마요 ,(372년 ~ 396년),
안제 사마덕종 ,(396년 ~ 418년),
언어 중세 중국어
문자 한자
종교 유교, 대승 불교, 도교, 중국 토속 종교
종족 한족
통화 오수전
현재 국가
[[중국|]][[틀:국기|]][[틀:국기|]]

[[베트남|]][[틀:국기|]][[틀:국기|]] (북부)

[[몽골|]][[틀:국기|]][[틀:국기|]] (일부)
1. 개요2. 역사
2.1. 서진(西晉)2.2. 동진(東晉)
3. 서진과 동진의 연관성4. 열성(列聖)5. 인물

[clearfix]

1. 개요

중국 위진남북조국가.

사마의가 시조이며 사마염이 건국한 사마씨제국이었다. 국성국명을 합쳐 사마진이라고도 불린다. 마지막 남은 오나라를 멸망시키고 천하통일을 이루며 《삼국지연의》를 끝낸 나라로도 유명하다.

삼국시대를 통일한 중화제국311년에 흉노에게 중원을 뺏기고, 316년에 관중까지 잃자 이듬해인 317년 건업에 있었던 종친 사마예가 자신이 안동장군(安東將軍)으로 부임한 건강으로 천도했기에 이후의 송나라(북송-남송), 요나라(요-서요), 명나라(명-남명)같이 수도가 위치한 시기별로 서진(낙양)과 동진(건강)으로 나눈다.

2. 역사

2.1. 서진(西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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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 문단을
부분을
참고하십시오.

2.2. 동진(東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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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하십시오.

3. 서진과 동진의 연관성

동진의 실효 지배력은 초기에는 사마예의 세력권인 건업 일대에만 미쳤을 뿐이었고, 나머지 강남 지역은 통치력이 미치지 못했다. 일단 현재 중국 사학계에서는 동진이 명목상 강남 지역 전체를 지배했다고 보고 있다. 게다가 통일 이후 서진시대의 대부분은 팔왕의 난으로 인해 전국이 난세였고, 오호들이 들어와 활개를 치고 다녔으며, 이미 301년부터 전조, 성한, 전량5호 16국의 초기 국가들이 우후죽순으로 독립했기에, 서진이 통일왕조였던 기간은 20년에 불과했다. 서진은 명목상 317년에 멸망했다고는 하나 이미 311년에 수도 낙양이 함락되어, 진회제가 한(전조)에 끌려가고 후궁, 궁녀, 황족 수천 명이 납치되거나 처형되었으며, 낙양에 살고 있었던 수만 명이 학살당하여 왕조는 사실상 멸망한 상황이었다. 이후 살아남은 잔여 세력들이 장안으로 도피하여 진민제를 황제로 추대하고, 서진의 여명을 이어나갔으나 장안 일대에만 영향력을 미쳤을 뿐이었다. 이후 316년 장안이 함락되어 잔여 세력까지 완전히 멸망하고, 사마씨의 적통은 완전히 끊겼다.(영가의 난) 그리고 건강 지역에서 번왕으로 세력권을 형성하고 있었던 사마씨 황족 출신의 사마예가 스스로 칭제하여 동진을 건국했다.

4. 열성(列聖)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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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진(西晉)
초대 제2대 제3대 제4대
무제 혜제 회제 민제
동진(東晉)
초대 제2대 제3대 제4대
원제 명제 성제 강제
제5대 제6대 제7대 제8대
목제 애제 폐제 간문제
제9대 제10대 제11대
효무제 안제 공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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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수 재위기간 묘호 시호 성명 약력 능호
(추존) 고조(高祖) 선황제(宣皇帝) 사마의() 무제 사마염의 조부, 고평릉 사변으로 건국의 기초를 닦음.
179년 출생, 251년 사망. 73세.
고원릉(高原陵)
세종(世宗) 경황제(景皇帝) 사마사() 무제 사마염의 백부.
208년 출생, 255년 사망. 48세.
준평릉(峻平陵)
태조(太祖) 문황제(文皇帝) 사마소() 사실상 진나라의 초대 군주.
211년 출생, 265년 사망. 55세.
숭양릉(崇陽陵)
265-290년 세조(世祖) 무황제(武皇帝) 사마염() 진나라의 초대 황제이자 정상적인 권력을 누린 마지막 황제[3]
236년 출생, 290년 사망. 55세.
준양릉(峻陽陵)
02 290-301년 - 효혜황제(孝惠皇帝) 사마충() 백치 황제, 가남풍의 남편, 팔왕의 난.
263년 출생, 306년 사망. 44세.
태양릉(太陽陵)
(임시) 301-301년 - 조왕(趙王) 사마륜() 사마충의 숙조부, 3개월 천하.
301년 사망.
-
02 301-306년 - 효혜황제(孝惠皇帝) 사마충() 유폐되었다가 복위.
263년 출생, 306년 사망. 44세.
태양릉(太陽陵)
03 306-311년 - 효회황제(孝懷皇帝) 사마치() 영가의 난 발발.
284년 출생, 313년 사망. 30세.
-
04 313-316년 - 효민황제(孝愍皇帝) 사마업() 장안의 임시 정부에 의해 옹립.
300년 출생, 317년 사망. 18세.
-
05 318-323년 중종(中宗) 원황제(元皇帝) 사마예() 사마업의 재종숙, 사마근(覲)의 아들.
276년 출생, 322년 사망. 향년 47세.
건평릉(建平陵)
05 319-320년 - 원왕(元王) 사마보() 원제와 대립.
296년 출생, 320년 사망. 향년 24세.
-
06 322-325년 숙조(肅祖) 명황제(明皇帝) 사마소() 사마예의 아들.
299년 출생, 325년 사망. 향년 27세.
무평릉(武平陵)
07 325-342년 현종(顯宗) 성황제(成皇帝) 사마연() 사마소의 아들.
321년 출생, 342년 사망. 향년 22세.
흥평릉(興平陵)
08 342-344년 - 강황제(康皇帝) 사마악() 사마연의 동생.
322년 출생, 344년 사망. 향년 23세.
숭평릉(崇平陵)
09 344-361년 효종(孝宗) 목황제(穆皇帝) 사마담() 사마악의 아들.
343년 출생, 361년 사망. 향년 19세.
영평릉(永平陵)
10 361-365년 - 애황제(哀皇帝) 사마비() 사마악의 종형, 사마연의 아들.
341년 출생, 365년 사망. 향년 25세.
안평릉(安平陵)
11 365-371년 - 해서공(海西公) 사마혁(奕) 사마비의 동생.
342년 출생, 386년 사망. 향년 45세.
-
12 371-372년 태종(太宗) 간문황제(簡文皇帝) 사마욱() 사마혁의 숙조부, 사마예의 아들.
320년 출생, 372년 사망. 향년 53세.
고평릉(高平陵)
13 372-396년 열종(烈宗) 효무황제(孝武皇帝) 사마요() 사마욱의 아들.
362년 출생, 396년 사망. 향년 35세.
융평릉(隆平陵)
14 396-418년 - 안황제(安皇帝) 사마덕종(德宗) 사마요의 아들.
382년 출생, 418년 사망. 향년 37세.
휴평릉(休平陵)
15 418-420년 - 공황제(恭皇帝) 사마덕문(德文) 사마덕종의 동생.
386년 출생, 422년 사망. 향년 37세.
충평릉(冲平陵)

5. 인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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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서가 있는 경우만 기재
※ 황제는 추존황제를 포함해서 자황색()으로 굵게 쓰고 팔왕은 빨갛게 쓴다. 그리고 8왕의 난에 관련된 종실은 갈색으로 쓴다.
※ 출계(出系)는 취소선을 치고 계자(系子)는 밑줄을 친다.
각주 [ 펼치기 · 접기 ]

[추존] [2] 황제로서의 뚜렷한 존호를 헌상받지 못했으나 다른 추존 황제와 동격배향(同格配享).[3] 친부는 의양성왕[4] 친부는 안평헌왕[5] 숙부(실제로는 종숙) 창무정후에게 출계(出系)[추존] [추존] [8] 친부는 진문제[9] 종숙(실제로는 숙부) 요동도혜왕에게 출계[10] 종숙(실제로는 숙부) 광한상왕에게 출계[추존] [12] 적장자나 두 살에 요절하여 혜제가 사실상 장남이 되었다. 항목이 존재하고 추봉(追封)되었기에 기재[13] 친부는 회남충장왕[14] 여기까지 서진[15] 친부는 오효왕[16] 백부 진헌왕에게 출계[17] 숙부 성양애왕에게 출계[18] 친부는 사마유(동래왕)[19] 백부 진헌왕에게 출계[20] 적장자였던 비릉도왕처럼 한 살에 요절했으나 추봉(追封)되었기에 기재한다.[21] 직접 난을 일으킨 적은 없는 여남문성왕 대신 팔왕으로 보는 시각도 존재한다.[22] 백부 진세종에게 출계.[23] 친부는 진무제[24] 친부는 제헌왕[25] 백부 성도왕에게 출계[26] 친부는 제헌왕[27] 숙부 연왕 경에게 출계[28] 난을 일으킨 적은 없기에 팔왕에서 빼고 대신 효회황제를 넣는 시각도 있다.[29] 여기부터 동진[30] 친부는 진문제[31] 윤통(閏統)[32] 숙부 사마익에게 출계[33] 숙부 사마형에게 출계[34] 백부 사마랑에게 출계[35] 숙부 하비헌왕에게 출계[36] 숙부 안평왕에게 출계[37] 친부는 남궁현왕[38] 진안이 장사만 황제의 예로 올리고 시호는 왕으로 하였다.[39] 종조부 사마민에게 출계했다지만 이러면 소목에 어긋나 항렬이 꼬임[40] 종실에서 팔왕의 난에 아니 가담하고 난이 끝나가는 직전까지 살았다.[41] 친부는 단수현후. 다만 종조부에게 출계하면 항렬이 꼬여서 친부가 법적으로 종형이 되는데 이 문제는 어찌 된 건지 몰?루[추존] [43] 아니 추존되었으나 칠묘에 동격배향(同格配享).
}}}}}}}}} ||

[1] 단 위 지도는 살짝 오류가 있는데 이 시기쯤이면 사실상 영향력을 잃은 낙랑군 지역이 영토에 포함되어있다.[2] 비수대전 직전의 시기이다. 위의 국가는 전진.[3] 사실상 진나라는 사마염 이후로 정상적인 권력을 누린 황제가 없었다. 혜제 사마충은 가남풍의 꼭두각시 노릇을 했으며, 팔왕의 난에 휩싸여 혼란 속에 죽었다. 회제와 민제는 영가의 난으로 인해 한(전조)의 포로 신세가 되어 비참하게 죽었다. 동진의 원제는 왕돈의 꼭두각시 신세였으며, 다음 명제 때 황제권을 회복한 듯 싶었지만 요절했고, 이후 동진의 황제들은 어린 나이에 즉위하면서 환온, 환현 같은 신하들의 꼭두각시 신세로 전락했다. 동진 효무제의 치세때 잠시 황제권을 되찾는 듯 싶었지만 효무제가 어이없게 죽고 난 이후 안제와 공제는 유유의 꼭두각시 신세가 되었고, 결국 유유에 의해 살해당했다. 그리고 동진은 멸망했고 이후 진나라의 하내 사마씨 황족들은 유유에 의해 거의 몰살당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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