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03-04 21:17:43

사마균


사마진 추존 · 비정통 황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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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진 추존 존령
征西府君 | 정서부군
묘호 없음
시호 정서부군(征西府君)
생몰 ? ~ ?
사마(司馬)
균(鈞)
숙평(叔平)
부모 부친 사마씨
1. 개요2. 생애3. 참고4. 둘러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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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전한 초기의 무신.

자는 숙평(叔平), 사례 하내군 온현 효경리 사람으로 사마앙의 8세손, 사마량의 부친, 사마염의 6대조이며 생전 좌빙익(左馮翊)과 정서장군(征西將軍)을 역임하였다. 아버지는 사마씨(司馬氏)다.

2. 생애

115년, 선령강(先零羌)을 정벌하기 위해 우부풍(右扶風)에 임명된 중광(仲光)과 연합하여 출격했으나 중광과 갈등이 생겼고, 중광이 매복에 당했음에도 지원하지 않아 작전을 실패하게 만들었다. 이후 사마균은 죄가 확정되어 옥사하였다.

266년, 6대손 사마염이 서진을 건국하자 칠묘에 위패가 안치되었다. 이후 사마염이 죽자 그의 위패는 제거되었다.

3. 참고

4. 둘러보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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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서가 있는 경우만 기재
※ 황제는 추존황제를 포함해서 자황색()으로 굵게 쓰고 팔왕은 빨갛게 쓴다. 그리고 8왕의 난에 관련된 종실은 갈색으로 쓴다.
※ 출계(出系)는 취소선을 치고 계자(系子)는 밑줄을 친다.
각주 [ 펼치기 · 접기 ]

[추존] [2] 황제로서의 뚜렷한 존호를 헌상받지 못했으나 다른 추존 황제와 동격배향(同格配享).[3] 친부는 의양성왕[4] 친부는 안평헌왕[5] 숙부(실제로는 종숙) 창무정후에게 출계(出系)[추존] [추존] [8] 친부는 진문제[9] 종숙(실제로는 숙부) 요동도혜왕에게 출계[10] 종숙(실제로는 숙부) 광한상왕에게 출계[추존] [12] 적장자나 두 살에 요절하여 혜제가 사실상 장남이 되었다. 항목이 존재하고 추봉(追封)되었기에 기재[13] 친부는 회남충장왕[14] 여기까지 서진[15] 친부는 오효왕[16] 백부 진헌왕에게 출계[17] 숙부 성양애왕에게 출계[18] 친부는 사마유(동래왕)[19] 백부 진헌왕에게 출계[20] 적장자였던 비릉도왕처럼 한 살에 요절했으나 추봉(追封)되었기에 기재한다.[21] 직접 난을 일으킨 적은 없는 여남문성왕 대신 팔왕으로 보는 시각도 존재한다.[22] 백부 진세종에게 출계.[23] 친부는 진무제[24] 친부는 제헌왕[25] 백부 성도왕에게 출계[26] 친부는 제헌왕[27] 숙부 연왕 경에게 출계[28] 난을 일으킨 적은 없기에 팔왕에서 빼고 대신 효회황제를 넣는 시각도 있다.[29] 여기부터 동진[30] 친부는 진문제[31] 윤통(閏統)[32] 숙부 사마익에게 출계[33] 숙부 사마형에게 출계[34] 백부 사마랑에게 출계[35] 숙부 하비헌왕에게 출계[36] 숙부 안평왕에게 출계[37] 친부는 남궁현왕[38] 진안이 장사만 황제의 예로 올리고 시호는 왕으로 하였다.[39] 종조부 사마민에게 출계했다지만 이러면 소목에 어긋나 항렬이 꼬임[40] 종실에서 팔왕의 난에 아니 가담하고 난이 끝나가는 직전까지 살았다.[41] 친부는 단수현후. 다만 종조부에게 출계하면 항렬이 꼬여서 친부가 법적으로 종형이 되는데 이 문제는 어찌 된 건지 몰?루[추존] [43] 아니 추존되었으나 칠묘에 동격배향(同格配享).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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