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03-15 07:03:24

사마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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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서가 있는 경우만 기재
※ 황제는 추존황제를 포함해서 자황색()으로 굵게 쓰고 팔왕은 빨갛게 쓴다. 그리고 8왕의 난에 관련된 종실은 갈색으로 쓴다.
※ 출계(出系)는 취소선을 치고 계자(系子)는 밑줄을 친다.
각주 [ 펼치기 · 접기 ]

[추존] [2] 황제로서의 뚜렷한 존호를 헌상받지 못했으나 다른 추존 황제와 동격배향(同格配享).[3] 친부는 의양성왕[4] 친부는 안평헌왕[5] 숙부(실제로는 종숙) 창무정후에게 출계(出系)[추존] [추존] [8] 친부는 진문제[9] 종숙(실제로는 숙부) 요동도혜왕에게 출계[10] 종숙(실제로는 숙부) 광한상왕에게 출계[추존] [12] 적장자나 두 살에 요절하여 혜제가 사실상 장남이 되었다. 항목이 존재하고 추봉(追封)되었기에 기재[13] 친부는 회남충장왕[14] 여기까지 서진[15] 친부는 오효왕[16] 백부 진헌왕에게 출계[17] 숙부 성양애왕에게 출계[18] 친부는 사마유(동래왕)[19] 백부 진헌왕에게 출계[20] 적장자였던 비릉도왕처럼 한 살에 요절했으나 추봉(追封)되었기에 기재한다.[21] 직접 난을 일으킨 적은 없는 여남문성왕 대신 팔왕으로 보는 시각도 존재한다.[22] 백부 진세종에게 출계.[23] 친부는 진무제[24] 친부는 제헌왕[25] 백부 성도왕에게 출계[26] 친부는 제헌왕[27] 숙부 연왕 경에게 출계[28] 난을 일으킨 적은 없기에 팔왕에서 빼고 대신 효회황제를 넣는 시각도 있다.[29] 여기부터 동진[30] 친부는 진문제[31] 윤통(閏統)[32] 숙부 사마익에게 출계[33] 숙부 사마형에게 출계[34] 백부 사마랑에게 출계[35] 숙부 하비헌왕에게 출계[36] 숙부 안평왕에게 출계[37] 친부는 남궁현왕[38] 진안이 장사만 황제의 예로 올리고 시호는 왕으로 하였다.[39] 종조부 사마민에게 출계했다지만 이러면 소목에 어긋나 항렬이 꼬임[40] 종실에서 팔왕의 난에 아니 가담하고 난이 끝나가는 직전까지 살았다.[41] 친부는 단수현후. 다만 종조부에게 출계하면 항렬이 꼬여서 친부가 법적으로 종형이 되는데 이 문제는 어찌 된 건지 몰?루[추존] [43] 아니 추존되었으나 칠묘에 동격배향(同格配享).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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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진의 황족
순양왕(順陽王)
司馬暢 | 사마창
작위 부풍왕(扶風王) → 순양왕(順陽王)
최종직위 유격장군(遊擊將軍)
성씨 사마(司馬)
창(暢)
현서(玄舒)
아버지 친아버지: 사마준(司馬駿)
생몰기간 ? ~ 311?
고향 사례(豫州) 하내군(河內郡) 온현(溫縣)[1]
재위기간 서진의 부풍왕
286년 ~ 289년
재위기간 서진의 순양왕
289년 ~ 311?
1. 개요2. 생애3. 창작물에서

[clearfix]

1. 개요

고대 중국 위진남북조시대 서진황족이자 사마준의 아들[2]이다. 자는 현서(弘舒)로 출신지는 아버지와 마찬가지로 출신지는 사례 하내군 온현.

2. 생애

태강 6년(286년) 아버지 사마준이 세상을 떠나고 사마창이 부풍왕 직위를 잇자 사마창은 봉국을 동생 사마흠에게 나누어 줄 것을 조정에 청하였다.

영가 원년(311년) 4월, 유총이 서진의 수도 낙양을 공격하여 함락시키고 서진 회제 사마치를 사로잡았을때 사마창은 행방불명되었다고 한다. 사마창에게는 사마소(司馬劭)라는 아들이 있었으나 이미 숙부 사마흠의 후사를 이은 상태였다. 그리고 사마소 역시 아버지와 같은 시기에 영가의 난 당시 석륵에게 죽임을 당했다.

3. 창작물에서

토탈 워: 삼국의 DLC 캠페인 291년 팔왕의 난에서 마이너 세력인 사마창 세력의 지도자로 등장한다. 정사에서는 형보다 눈에 띄는 행적을 보여줬던 동생 사마흠은 정작 등장하지 않는다.


[1]허난성 자오쭤시의 일부[2] 사마준은 자식을 10명 두었는데, 그중에서 사마흠이 정확히 몇번째 아들이라고는 언급이 없다. 아버지의 직위인 부풍왕 직위를 형인 사마창이 이은것을 보면 사마창은 장남, 사마흠이 차남으로 추정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