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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하 大夏 | ||
407년~431년 | ||
성립 이전 | 멸망 이후 | |
후진 | 북위 | |
별칭 | 북하(北夏), 호하(胡夏), 하(夏) | |
위치 | 중국 섬서, 감숙 | |
수도 | 통만성(統萬城) 등 | |
국성 | 유(劉) → 혁련(赫連)[1] | |
국가원수 | 대선우, 천왕 → 황제 | |
주요 군주 | 무열제 혁련발발 | |
언어 | 흉노어, 중세 중국어 | |
문자 | 한자 | |
종교 | 불교, 도교, 유교 | |
종족 | 흉노, 한족 | |
통화 | 태하진흥(太夏眞興) | |
현재 국가 | 중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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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중국 오호십육국시대에 남흉노족 계열의 철불부 수령 혁련발발(赫連勃勃)이 세운 나라로 북하(北夏) · 대하(大夏) · 호하(胡夏), 혹은 혁련하(赫連夏)라고도 부른다. 흉노의 선조가 고대 하나라의 왕족 하후씨의 후손이라는 전설을 바탕으로 하여 하(夏)를 국호로 정하였다. 역사상 마지막 흉노 국가 중 하나이다.전성기에는 북위와 화북을 사실상 양분한 관중의 강대국으로 오호십육국시대의 혼란기를 마무리할 유력한 후보 중 하나였다. 하지만 내분으로 쇠퇴하고 북위에게 섬서를 잃은 후 빠르게 망했다.
2. 역사
건국자 혁련발발은 후진(後秦)의 관직을 받고, 삭방(朔方)을 지키고 살았으나, 407년에 후진으로부터 독립하여 북하를 건국하고, 천왕, 대선우(天王, 大單于)에 올랐으며 연호를 용승(龍昇)으로 개원하였다. 혁련발발이 연호를 봉상(鳳翔)으로 고치면서 백성 10만명을 동원하여 통만성(統萬城)을 쌓게 하였다.417년, 동진의 유유가 북벌을 단행하여 후진을 멸망시켰다. 하지만 야심차게 준비했던 북벌 도중 유목지의 부고를 접하자마자 유유가 급하게 장안을 떠났고 그 뒤 왕진악과 심전자의 갈등이 폭발했다. 그리고 혁련발발은 이 틈을 놓치지 않고 손쉽게 관중(關中)을 점령했다.
418년, 혁련발발은 칭제하고 연호를 무창(武昌)으로 개원하였다.
425년, 혁련발발이 죽고 아들 혁련창(赫聯昌)이 뒤를 이었다.
426년, 북위(北魏)가 북하를 공격하여 장안을 취하였다. 통만성(統萬城)이 북위의 공격으로 함락되자 혁련창은 도읍을 상규(上邽)로 옮긴다.
428년, 북위가 상규를 공격했고 북하군은 패배하였다. 혁련창은 북위의 군대에게 사로잡혀서 포로가 되었다.
혁련창이 북위의 포로가 되자, 동생 혁련정이 평량(平涼)에서 황제로 즉위하였다. 연호를 승광(勝光)으로 개원하였다. 그리고 혁련정은 유송과 동맹을 맺었다.
431년, 혁련정이 이끄는 북하 정권은 계속 북위에게 패배하여 쇠퇴하고 있는 상태이었지만 그 와중에 서진(西秦)을 멸망시켰다.
그러나 속국인 토욕혼(吐谷渾)이 북하를 배신하고 북위에게 붙은 후 북하를 공격하였고, 혁련정은 토욕혼 군대에게 사로잡힌다. 토욕혼은 혁련정을 북위로 보냈고 그렇게 북하는 멸망한다. 이와 동시에 그들의 민족인 흉노족 또한 역사 속으로 사라지게 된다.[2]
3. 북하(北夏)의 황제
대수 | 묘호 | 시호 | 성명 | 연호 | 재위 기간 | 능호 |
- | - | - | 유거비 (劉去卑) | - | ? ~ 272년 | - |
- | - | 원황제(元皇帝) | 유고승원 (劉誥升爰) | - | 272년 ~ 309년 | - |
- | - | 경황제(景皇帝) | 유호 (劉虎) | - | 309년 ~ 341년 | - |
- | - | 선황제(宣皇帝) | 유무환 (劉務桓) | - | 341년 ~ 356년 | - |
- | - | - | 유알누두 (劉閼陋頭) | - | 356년 ~ 358년 | - |
- | - | - | 유실물기 (劉悉勿祈) | - | 358년 ~ 359년 | - |
- | 태조(太祖) | 환황제(桓皇帝) | 유위진(劉衛辰) | - | 359년 ~ 391년 | - |
혁련위진(赫連衛辰) | ||||||
1대 | 세조(世祖) | 무열황제(武烈皇帝) | 혁련발발 (赫連勃勃) | 용승(龍昇) 407년 ~ 413년 봉상(鳳祥) 413년 ~ 418년 창무(昌武) 418년 ~ 419년 진흥(眞興) 419년 ~ 425년 | 391년 ~ 407년[3] 407년 ~ 425년[4] | 가평릉(嘉平陵) |
2대 | - | - ,<진왕(秦王)>, | 혁련창 (赫連昌) | 승광(承光) 425년 ~ 428년 | 425년 ~ 428년 | - |
3대 | - | - ,<평원왕(平原王)>, | 혁련정 (赫連定) | 승광(勝光) 428년 ~ 431년 | 428년 ~ 431년 | - |
[1] 유발발이 혁련발발로 성을 바꾸었다.[2] 흉노와 스키타이의 혼혈 민족으로 여겨지는 훈족이 유럽 지역에 존재하긴 했지만 그들도 5세기를 넘기지 못하고 사라지고 흉노족 자체는 이 시기 소멸된다.[3] 철불부 수령.[4] 북하 황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