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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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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1.1. 암군과의 관계
2. 역사 속의 폭군
2.1. 폭군으로 명백히 기록 되어 있는 경우
2.1.1. 한국사2.1.2. 중국사2.1.3. 그 외
2.2. 논란이 있는 경우
2.2.1. 한국사2.2.2. 중국사2.2.3. 그 외
3. 가공의 폭군4. 자연계의 폭군5. 언어별 명칭6. 여담7. 관련 문서

1. 개요

폭군(, Tyrant)은 국민을 힘이나 권력으로 억누르며 사납고 악한 짓을 일삼는 군주를 일컫는 말이다.

의 비유적 표현처럼 폭군 또한 어떤 공동체나 집단에서 구성원들을 가혹하게 다루거나 포악한 성격을 가진 지도자급 인물에게 폭군이라는 표현을 쓰기도 한다.

나름 튼튼하던 나라를 순식간에 말아먹어 치세에는 나라 국고가 바닥나거나 반란이 일어나는 등 국가 멸망의 위기를 겪게되는 경우도 있다. 또한 더 이상 말이 안 통하는 것을 잘 알기에 인재들이 모두 떠나고, 폭군 옆에는 항상 간신들이 붙어다니기 마련이다.

상황에 따라서는 정변 / 반정이 일어나서 폭군을 폐위하고 통치자를 바꾸는 경우도 있으며[1] 또한 폭군이어도 정복 사업을 벌여 오히려 이전보다 군사력이 강대해진 경우도 있는데 물론 정치 상황은 형편없다. 사실 전쟁의 천재 + 요절이라는 요소가 겹쳐서 잘 알려지지는 않았지만, 알렉산드로스 3세도 전형적인 폭군이다.

또 기록을 남기는 사람의 주관에 많은 영향을 받는 역사의 특성 상, 조작된 폭군도 있다. 피지배층의 권리를 확충하려고 한다던가, 국가운영에는 반드시 필요한 권리 등을 회수하려다가 당시 권력과 부를 독점한 계급 및 역사를 기록하는 계층에게 찍히는 경우, 또는 그냥 놓고 보면 그럭저럭인데 전임자가 너무 잘나서 상대적으로 저평가되거나, 역성혁명에 성공한 세력이 자신의 행동을 정당화하기 위해 전왕을 폄하하는 경우 등이 이에 해당한다. 이런 폭군은 당대의 이해관계 문제가 사라지는 후세에 가서 재평가를 받고 폭군의 명단에서 빠지는 경우도 있다. 대표적인 경우가 종교의 관용을 추구하다가 기득권 눈 밖에 나서 다른 사람도 아니라 딸 부부에 의해 강제 퇴위당한 제임스 2세가 있다. 하지만 지배 계급에게도, 민중들에게도 좋지 않은 정치를 펼치면 현대에도 얄짤없이 폭군이 된다.

정신병으로 인한 폭군도 존재한다. 중압감이 심한 위치이니만큼 정신에 문제가 생기는 경우가 잦았다.

매체에서 언급되는 폭군 캐릭터의 경우 사전 그대로의 막장 폭군이 있는가 하면 흔히 말하는 나쁜 남자 같은 느낌의 에고가 강한 인물인 경우도 있다. 이런 유형의 경우 현실에서 만나면 피곤하기는 하겠지만 어쨌든 미워할 수만은 없는 매력이 있는 인물로 그려진다.

제국주의 등의 식민지배 통치의 경우 수탈, 압제 등 기본적으로 폭정의 성질을 보유하고 있으나, 식민지 혹은 괴뢰국의 입장에서 이들의 통치자를 자신들의 군주로 인정하지 않았으므로 엄밀한 의미에서 폭군이라 부르기에는 어폐가 있다. 근대 제국주의 시대 이전에도, 자국 내에서는 분명히 명군이지만 외국을 대할 때에는 대단히 잔혹하고 강경한 입장을 고수한 군주들이 여럿 있다.

폭군은 한 명에 불과한데 왜 모두가 휘둘려야 했는지를 잘 이해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이는 민주정 이전에는 최고권력자를 대체하기가 매우 어려웠음에 기인한다고 볼 수 있다. 대부분의 폭군들은 자신의 최측근들에게는 큰 이익을 가져다 주었으며, 총대를 매고 폭군을 해치더라도, 그 실행자 또한 반역행위로 인한 정통성 부족으로 제3자에게 권력을 전부 뺏기고 비참한 최후를 맞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래서 대개의 폭군들은 나름대로 국정장악 능력을 갖추고 폭정을 행하지만, 선대를 통해 강화된 왕권을 기반으로 그저 미성숙한 정신으로 날뛴 자들도 있었으며, 이들은 공공의 적이 되어 끝이 좋지 않은 경우가 많으며 무사히 권력을 지키고 죽더라도 사후에는 격하되었다.

1.1. 암군과의 관계

폭군과 암군은 서로 교집합 관계다. 폭군이라고 해서 꼭 암군인 건 아닌 경우도 간간히 있기 때문인데, 정치도 잘 하고 베풀기도 잘해 백성들에게는 성군이지만 신하들을 혹독하게 대한 경우이거나, 재위 전반적인 업적 자체는 뛰어난 편이지만 특정 대상에게는 탄압이 심해서 피바람이 많이 일어난 경우를 들 수 있다. 이는 보통 왕권 강화 혹은 나라의 기반을 다진다는 등의 이유로 신하들을 마구 벌주거나 백성들을 엄하고 혹독하게 통제한 면모가 폭군으로 비치는 셈이다. 대표적으로 명나라홍무제고려광종, 조선태종 등을 들 수 있다. 명 홍무제와 광종의 경우 비록 황족들과 귀족들을 포함한 지배계층에 대해서는 매우 폭압적이고 차가운 모습을 보였지만, 그 대신 백성들과 천민들을 포함한 피지배계층에 대해서는 매우 온화하고 따뜻한 모습을 보이며 혁신적인 제도를 마련하여 시행했고, 조선 태종의 경우 본인도 능력이 상당했던 데다 결정적으로 후계자를 너무나 잘 둔 덕에 폭군 이미지가 많이 묻힌다.[2] 반대로 암군이지만 폭군은 아닌 사례도 있는데, 유선은 간신 황호를 총애하다가 촉한을 멸망에 이르게 한 암군이라 할 수 있지만, 폭정까지 저지르진 않아서 폭군이라 할 순 없는 것처럼. 즉, 폭군은 암군과도 교집합 관계이지만 명군과도 교집합 관계다. 암군 / 명군은 능력치에 가깝고 폭군은 성격에 좀 더 가깝다고 볼 수 있다. 그래서 폭군이라 하더라도 행보에 따라서는 암군이 되기도 하고 명군이 되기도 하는 셈이다.

2. 역사 속의 폭군

  • 독재자를 비롯하여 군주를 제외한 지도자를 기입하지 말 것.
  • 식민지의 군주는 본국에서 폭정을 벌인 경우를 제외하면 기입하지 말 것.
    • 지배국의 국민은 대부분 이들을 왕으로 인정하지 않았으며, 식민지배국의 국민들은 자신들을 지배한 모든 식민 군주를 폭군으로 간주할 것이다. 예를 들어 미국의 전신이 되는 영국령 북아메리카는 조지 3세를 폭군이라 여겼지만, 본국인 영국에서는 농부왕이라고 할 정도로 소탈했으며, 콩고 자유국의 군주인 레오폴드 2세는 생전에 자행한 악행으로 따지면, 역사상 손에 꼽을만한 폭군이라고 할 수 있으나 식민제국의 군주로써 입헌군주국이었던 본국인 벨기에에서는 할 수 있는 게 별로 없으니 비난은 받았고, 심지어 입헌군주국인 벨기에에서 벨기에 의회의 명령조차 무시하고 막가나면서 폭군에 근접했다. 그가 막판에 갑자기 입장을 바꾼 건 미국이 콩고 문제에 끼어들 것이라는 소문이 돌았기 때문이다. 이런 지배국-식민지 외에도, 국내에서는 훌륭하고 인자한 군주이지만 국외 문제에 대해선 매우 잔혹하고 강경하게 대응한 군주는 역사 속에서 꽤 많다.

2.1. 폭군으로 명백히 기록 되어 있는 경우

2.1.1. 한국사

나라 왕호 재위기간 비고
고구려 모본왕 48년 ~ 53년 [3]
차대왕 146년 ~ 165년 [4]
봉상왕 292년 ~ 300년 [5]
신라 헌덕왕 809년 ~ 826년
고려 충혜왕 1330년 ~ 1332년(1차)
1339년 ~ 1343년(2차)
[6][7]
조선 연산군 1494년 ~ 1506년 [8][9]

2.1.2. 중국사

나라 왕호 재위기간 비고
제양공 BCE 698년 ~ BCE 686년
이세황제 BCE 209년 ~ BCE 207년
서초 항적 BCE 206년 ~ BCE 202년
왕망 9년 ~ 23년
손오 손호(귀명후, 말제) 264년 ~ 280년
유송[10] 유의부(소제) 422년 ~ 424년
유준(효무제) 453년 ~ 464년
유자업(전폐제) 464년 ~ 466년
유욱(명제, 父) 466년 ~ 472년
유욱(후폐제, 子) 472년 ~ 477년
남제 소보권(동혼후) 498년 ~ 501년
후조 석호(무제) 334년 ~ 349년
염위 염민(무도천왕) 350년 ~ 352년
후연 모용희(소문제) 401년 ~ 407년
북제 고양(문선제) 550년 ~ 559년
고담(무성제) 561년 ~ 565년
고위(후주) 565년 ~ 577년
수양제 604년 ~ 618년 [11]
세종 947년 ~ 951년
해릉양왕 1150년 ~ 1161년 [12]

2.1.3. 그 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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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론 - 합의사항48
토론 - 합의사항49
토론 - 합의사항50
||

나라 왕호 재위기간 비고
고대 로마 콤모두스 177년 ~ 192년 [13]
카라칼라 211년 ~ 217년 [14]
사산 왕조 바흐람 4세 388년 ~ 399년
동로마 제국 포카스 602년 ~ 610년
안드로니코스 1세 1183년 ~ 1185년
베트남 전 레 왕조 와조제 1005년 ~ 1009년 [15]
스웨덴 크리스티안 2세 1520년 ~ 1521년 [16]
카스티야 연합 왕국 페드로 1350년 ~ 1366년(1차)
1367년 ~ 1369년(2차)
러시아 가짜 드미트리 1세 1605년 ~ 1606년 [17]
중앙아프리카 제국 보카사 1세 1976년 ~ 1979년 [18]
네팔 갸넨드라 2001년 ~ 2008년
란쌍 왕국 낭 깨오 핌파 1438년
오만 제국 사이드 빈 타이무르 알사이드 1932년 ~ 1970년

2.2. 논란이 있는 경우

패자였기 때문에 승자의 역사에 의해 조작된 게 아닌가 싶은 인물들, 혹은 전임자나 후임자가 지나치게 성군이라 상대적인 폭군으로 전락한 인물들,(이 정도는 암군에 가깝다.) 혹은 폭군의 면모[19]만이 아닌 다른 업적이나 성향 또한 충분히 인정받는 인물들이다. 또는 폭군의 기질이 다소 크지만, 해당 군주 또는 국가가 처한 상황을 고려해야 하는 경우도 이에 해당한다.

2.2.1. 한국사

나라 왕호 재위기간 비고
태봉 궁예 901년 ~ 918년 [20]
고려 충정왕 1349 ~ 1351년 [21]
공민왕 1352년 ~ 1374년 [22]
우왕 1374년 ~ 1388년
조선 세조 1455년 ~ 1468년 [23]
광해군 1608년 ~ 1623년 [24]

2.2.2. 중국사

나라 왕호 재위기간 비고
걸왕 [25]
제신 B.C. 1075년 ~ B.C. 1046년 [26][27]
진(秦) 시황제 B.C. 247년 ~ B.C. 210년 [28]
전한 무제 B.C. 141년 ~ B.C. 87년 [29]
금나라 희종 1135년 ~ 1150년 [30]
위소왕 1208년 ~ 1213년 [31]
선종 1213년 ~ 1224년 [32]
몽골 제국 ~ 원나라[33] 귀위크 칸 1246년 ~ 1248년 [34]
몽케 칸 1251년 ~ 1259년 [35]
혜종 1333년 ~ 1370년 [36]
홍무제 1368년 ~ 1398년 [37]
영락제 1402년 ~ 1424년 [38]
건륭제 1735년 ~ 1796년 [39]

2.2.3. 그 외

나라 왕호 재위기간 비고
로마 제국 네로 54년 ~ 68년 [40]
도미티아누스 81년 ~ 96년 [41]
아케메네스 왕조 아르타크세르크세스 3세 기원 전 359년 ~ 기원전 338년 [42]
사산 왕조 아르다시르 2세 379년 ~ 383년 [43]
교황령 알렉산데르 6세 1492년 ~ 1503년 [44]
오스만 제국 무라트 4세 1623년 ~ 1640년 [45][46]
셀림 1세 1512년 ~ 1520년 [47]
압뒬하미트 2세 1876년 ~ 1909년 [48]
영국 리처드 3세 1483년 ~ 1485년 [49]
헨리 8세 1509년 ~ 1547년 [50]
메리 1세 1553년 ~ 1558년 [51]
러시아 이반 4세 1533년 ~ 1584년 [52]
표트르 대제 1682년 ~ 1725년 [53]
니콜라이 2세 1894년 ~ 1917년 [54]
루마니아 블라드 가시공 1448년(1차)
1456년 ~ 1462년(2차)
1476년(3차)
이란 모하마드 레자 팔라비 1941년 ~ 1979년
줄루 왕국 샤카 1816년 ~ 1828년 [55]
메리나 왕국 라나발로나 1세 1828년 ~ 1861년 [56]
일본 고훈 시대 부레쓰 덴노 498년 ~ 507년 [57]

3. 가공의 폭군

이 문서에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이 문서가 설명하는 작품이나 인물 등에 대한 줄거리, 결말, 반전 요소 등을 직·간접적으로 포함하고 있습니다.

4. 자연계의 폭군

5. 언어별 명칭

<colbgcolor=#f5f5f5,#2d2f34><colcolor=#373a3c,#dddddd> 언어별 명칭
한국어 폭군(), 참주(僭主)
한자 (폭군)
그리스어 τυραννος(týrannos, 튀라노스)[150]
τῠ́ρᾰννος(túrannos)(고전 그리스어)
네덜란드어, 루마니아어, 마인어,
슬로베니아어, 아제르바이잔어, 아프리칸스어,
튀르키예어
tiran
독일어 Tyrann, Tyrannin
라틴어 tyrannus, tyrannis
러시아어, 불가리아어, 우크라이나어 тира́н(tirán)
러시아어 деспот(despot)
바스크어, 스페인어, 에스페란토, 포르투갈어 tirano
베트남어 bạo chúa()
아랍어 طَاغِيَة(ṭāḡiya)
이탈리아어 tiranno
일본어 [ruby(暴君, ruby=ぼうくん)](bōkun)
영어 tyrant[151]
tyraunt(고대 영어)
중국어 (jiànzhǔ)
(cim3 zyu2)(광동어)
페르시아어 جباریت(sâstâ)
sāsta(아베스타어)
프랑스어 tyran
tirant(고대 프랑스어)
히브리어 עָרִי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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덴마크어, 체코어, 폴란드어 tyran
리투아니아어 tirāns
마케도니아어 ти́ран(tíran)
볼라퓌크 tirenan, hitirenan(남성), jitirenan(여성)
세르비아어 тиранин
아르메니아어 բռնակալ(bṙnakal), բռնապետ(bṙnapet)
아이슬란드어 harðstjóri
암하라어 አምባገነን
에스토니아어 türann
조지아어 ტირანი
켈트어파 ansmachtaí, aintiarna, anlaith, tíoránach(아일랜드어)
çhenjagh, tranlaasagh, treanagh, treanyder(맨어)
tirant(브르타뉴어)
aintighearna(스코틀랜드 게일어)
gormesdeyrn(웨일스어)
turant, turantes(콘월어)
크로아티아어 tiranin
크메르어 ជនផ្តាច់ការ
태국어 ทรราช
핀란드어 tyranni, hirmuhallitsija
필리핀어 maniniil
헝가리어 zsarnok, despota, elnyomó, kényúr }}}}}}}}}

6. 여담

  • 위인전에서 폭군은 제대로 다루기 참 어려운 존재. 충혜왕이나 연산군 같이 논란의 여지가 없는 완전한 폭군은 위인전 소재로 다루어지지 않지만, 폭군이지만 무난하거나 명군 취급받는 군주는 굉장히 다루기 어려워진다. 이 때문에 이런 군주를 다룰 경우 폭군으로서의 행적은 쏙 빼거나 최대한 줄여서 서술하는 것이 대부분이다.
  • 서브컬처 쪽으로 가면 여성향 작품에서 권력자 남주인공이 폭군으로 나올 경우에는 여주인공을 사랑하게 되면서 자신의 과오를 늬우치고 성군이 되는 루트를 반드시 타게 된다. 그러나 이러한 폭군의 경우에는 마냥 폭군으로 부르기엔 애매한 면모도 있고 작품에 따라선 말만 폭군이지 명군을 넘어 성군이 따로 없는 경우나 객관적으로는 명군인데 귀족 기준으로 폭군[152]인 경우가 많다.[153][154]
  • UFC 초대 페더급 챔피언인 조제 알도의 별명이 '폭군'이다. 과거 코너 맥그리거에게 패배하기 전 10년동안 무패였을 때를 폭군 시절, 폭군 알도 라고 부른다.

7. 관련 문서



[1] 군대나 농민들, 신하들이 봉기하여 폭군을 몰아내거나 죽이는 경우도 많았다.[2] 단순히 아들을 잘 두었다에 그치는 게 아니라, 세종의 업적이 꽃피울 근간을 태종이 안정적으로, 확실히 마련했기에, 후계자를 잘 둔 공로가 크다고 할 수 있다. 태종 본인이 오명을 무릅쓰고 외척과 공신 등 향후 세종의 정치에 위협이 될만한 세력들을 모두 조져주면서, 한편으로는 황희 등 써먹을만한 명신들을 알아보고 조정에 배치해두었기에 세종은 본인의 능력을 유감없이 발휘하여, 성종까지 이어지는 조선 전기 전성기를 열어낼 수 있었다.[3] 역사의 패자로 남았기 때문에 왜곡된 기록이라는 평가도 있지만 대다수의 학계에서는 모본왕이 폭군이 맞다고 보는 쪽으로 보고 있다.#[4] 후술하겠지만, 다소 논란이 있는 모본왕과는 달리 차대왕은 명백한 폭군이다. 태조대왕의 아들들을 살해하는 등 폭정을 일삼다가 결국 명림답부에 의해 죽임을 당했다.[5] 창조리가 일으킨 반정으로 왕위에서 쫓겨나 투옥된 후 옥중에서 두 아들과 함께 자살했다. 처벌과 후환이 두려웠던 듯. 아이러니하게도 본인의 조카이자 후임자인 미천왕은 고구려의 전성기의 문을 연 명군이다.[6] 연산군의 행태들을 가벼히 뛰어넘는 막장 행각들을 수시로 일삼았다. 결국 원나라로 압송 후 귀양길에 오르던 도중 갑작스럽게 사망했는데, 일설에는 원나라에 의해 독살당했다고 한다.[7] 재위 기간이 둘로 나누어져 있는데, 이는 한 차례 왕위에서 물러난 후 부친 충숙왕이 세상을 떠난 1339년 3월에 복위했기 때문이다.[8] 한국사에서 가장 유명한 폭군. 그가 폭군이 아니라는 주장도 있지만, 거의 원균옹호론과 비슷하게 씹히기 십상이다.[9] 중종반정으로 인해 쫓겨난 후 귀양지 강화도에서 병사했다.[10] 사실 이 왕조는 창업군주 무제, 그나마 내정을 제대로 하여 국가의 기틀을 잡은 문제, 실권이 없는 허수아비였던 마지막 군주 순제를 제외한 모든 황제가 암군과 폭군이다. 왕조 창업자인 유유와 그의 후손들은 호부견자의 아주 대표적인 예시이다. 사실상 북한의 백두혈통과 함께 부탄의 왕축 왕조와 정반대인 셈.[11] 아이러니하게도 아버지인 수문제는 중국 역사에서 손에 꼽힐정도의 명군이자 성군이다. 문제의 시기에 수나라는 6~70년 이상은 거뜬히 존재할 수 있는 국력을 갖춘 나라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실상 아버지가 쌓아올린 대업적을 자기 대에 다 무너뜨린, 부정적인 쪽으로 대단한 인물이다.[12] 아이러니하게도 후대인 금세종은 금나라 최고의 명군이자 성군이다.[13] 제위 중반까지만 해도 멀쩡했는데, 콜로세움 암살미수 사건으로 제국에 재앙을 남긴 폭군이 되었다. 그가 뿌린 씨앗 때문에 이후 로마 제국은 1000여년간 쭉 내리막을 걷다가 멸망한다.[14] 20세기 이후에는 여러 군공과 군제개혁 등을 인정받아 폭군은 아니지 않느냐는 주장도 있다. 그렇지만 지나칠 정도로 잔인, 잔혹한데다 분노조절 장애와 거만함, 존속살해 등으로 동시대 로마인들에게 살아있던 시절부터 대놓고 폭군으로 불렸다.[15] 와조황제(臥朝皇帝: 치질에 걸려 누워서 정사를 봤기 때문에 이런 시호가 붙었다.)라는 시호로 더 유명하며, 는 여용정(黎龍鋌 Lê Long Đĩnh). 형인 중종 여용월을 죽이고 왕위를 찬탈했다. 즉위했을 때부터 정치에는 관심이 없고 여색과 향락에만 빠져살았다. 죄인을 나무에 묶은 채로 나무를 베어 죽게 하거나, 죄인의 몸에 기름을 바른 짚을 씌워 태워죽이고 우리에 가두어 물에 빠뜨려 익사시키는 등 잔인하게 처벌했으며, 사찰을 파괴하고 신료나 승려의 머리에 사탕수수를 올려놓고 껍질을 벗기면서 일부러 상처를 내면서 죽이는 등 다분히 사이코패스, 새디스트 기질이 보이는 기행들을 보였다. 이 때문에 신하들과 백성들의 증오를 받았고 즉위한지 4년만인 24세의 나이로 부하에게 살해되었다.[16] 칼마르 연합이라는 이름 아래 다소 느슨하게 묶여있던 스웨덴을 완전히 복속시키고자 내부 분란을 이용해 스웨덴에 진입했으나 스톡홀름 대학살(Stockholms blodbad)로 8~90명에 달하는 스웨덴 귀족들을 처형했다. 이 대학살로 아버지를 잃은 구스타브 바사노르웨이 국경지대로 도망쳐 스웨덴 독립 전쟁을 일으켰고 한자도시 뤼베크의 지원을 받은 끝에 덴마크를 물리치며 사실상의 독립을 달성했다. 반대로 크리스티안 2세는 스웨덴에서의 패배로 위신이 떨어져 가뜩이나 상공업 진흥 정책으로 사이가 좋지 않았던 덴마크 귀족들에게 찍혀 덴마크 왕위에서 폐위당했고, 노르웨이 왕위에서도 연달아 폐위당해 처가가 있는 합스부르크령 부르고뉴 저지대로 망명길에 올랐다. 덴마크와 노르웨이와는 달리 스웨덴에서는 스톡홀름 대학살로 인해 폭군(Kristian Tyrann)이라는 오명을 얻었다.[17] 자신이 이반 4세의 막내아들 우글리치 공작 드미트리라고 사기를 친 후 황제 자리를 도둑질했다. 그것도 모자라 갖은 폭정에 자기가 데려온 폴란드 사람들이 깽판을 치거나 말거나 그들을 지지하고 정작 러시아 사람들을 내팽개쳤다. 결국 재위 1년을 못 채우고 살해당했다.[18] 공화제의 대통령이 직접 친위 쿠데타를 일으키고 황제로 즉위한 특이한 사례이다. 황제가 디자인한 교복에 항의한다고 수백 명의 학생을 학살하거나 수감된 반정부 시위 참여자들을 직접 때려 죽이는 등의 폭정을 저질러서 결국 프랑스의 암묵적 지원을 받은 전임자 다비드 다코에 의해 쫓겨났고, 제정은 1대 만에 폐지되었다.[19] 가령 정치는 그럭저럭 잘 했는데 숙청을 크게 벌였다든지[20] 발견된 유물 등을 볼 때 역사의 패자로 남았기 때문에 폭군이었다는 것은 왜곡된 기록이었을 학설이 대두되고 있다. 다만 동시에 폭군이라고 볼 만한 여지도 상당히 많았을 만큼 백성들과 신하들의 모진 미움을 받은 것도 명백한 사실이다. 막판에 왕통을 후계자에게 물려주지도 못하고 망했다는 점만 빼면 중국사조조사마소와도 같은 경우이다.[21]고려사》에 폭군이었다는 기록이 있지만, 교차검증이 불가능해서 진짜였는지는 모른다.[22] 말년 한정.[23] 조부 태종과 비슷하게 왕권을 위해 폭력을 상당히 많이 휘두른 경우인데, 그나마 태종의 경우 해당 행위들이 왕 본인의 능력을 제대로 살려서 최종적으로는 나름 조선이라는 나라를 위한 밑거름이 되었다는 긍정적 평판과는 다르게 세조의 경우 명분도 부족하고 행동들이 최종적으로 크게 조선에게 좋았다고 보기도 애매해 논란이 있다. 일단 집권부터가 정당한 명분이 없다시피한 반란이었고, 집권한 후에도 반대파를 잔인하게 숙청하며 조카 단종을 폐출하고 암살까지 하는 패륜을 저질렀다. 게다가 대표적으로 사관의 경우에서 알 수 있듯이 태종의 경우 세조와 마찬가지로 잔인한 숙청과 이복형제이자 세자였던 이방석을 폐세자하고 죽이는 만행을 저지르기는 하였으나 본인 마음에 들지 않더라도 국가에 도움이 된다고 판단하면 터치하지는 않은 반면 세조는 그런 거 상관없이 본인이 마음에 안 들면 일단 무작정 박해하였다. 게다가 세조 본인의 실정 때문에 한편으로는 이때부터 조선이 변질된 측면도 있다. 때문에 태종이 정치적 폭력 사건으로는 손자와 비슷한데도 폭군 논란이 별로 없는 반면 세조는 이에 대하여 왈가왈부가 상당히 잦다.[24] 한때는 내치에서는 훌륭했다고 평가받았지만 최근의 연구 결과에 의하면 내치에서는 암군이었고 숙청과 친국도 유난히 많았으며 외교적 평가와 경제적 평가도 지나치게 과장되었다는 사실이 밝혀져 다시 혹평이 주류. 다만 광해군이 정말로 명백한 폭군인 연산군과 같은 폭군이었는지에 대해서도 다소 논란이 있는 편이다.[25] 하나라 자체가 기록만 있고 유적, 유물이 발견되지 않은 나라라서 상나라가 지어낸 없는 나라라는 설이 있다.[26] 조작 주장이 자주 제기된다. 걸과 주 모두 머리가 비상하고 용맹무쌍한 점, 달기와 말희에게 홀려 폭정과 가렴주구를 일삼은 점, 탕과 서백 창을 가두었다가 뇌물과 미녀를 받고 풀어준 점, 풀어준 인물들이 각각 상나라 탕왕과 주문왕이 되어 새 왕조를 세운 점 등이 매우 흡사하기 때문이다. 손호의자왕 등도 비슷한지라 아주 막장이 아닌 폭군들은 한두번씩 재조명 주장을 받기도 한다.[27] 다만 그런 재평가가 있는 것과는 별개로, 폭군의 대명사로서의 지위는 매우 확고하다. 위의 하나라 걸왕과 합쳐 걸주라고 흔히 지칭되는데, 연산군이 조선 폭군의 대명사라면 이쪽은 한자 문화권 전역에서 폭군의 대명사로 사용되었다.[28] 통일 대업을 달성하기 전에는 분명히 훌륭한 군주의 범주에 속하지만, 통일 이후에는 폭군의 모습을 더 많이 보여준 사례. 이러한 차이를 설명하는데에는 이분법적 시각 대신 일부 재평가를 포함한 보다 정교한 이해가 필요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황제의 통일 후 행보(특히 6국 통합 정책)가 많은 백성들의 고통을 낳았고 결과적으로 왕조의 단명을 낳았다는 점에서 그러한 재평가에도 한계가 분명히 존재한다.[29] 한무성세(漢武盛世)라는 전한의 전성기를 만들었지만, 전성기를 이끄느라 드는 재정의 부담이 너무 컸고, 무리하고 사치스런 토목공사를 벌여 백성들의 고혈을 짜냈다. 신하들에게도 폭압적이고 어디로 튈지 모르는 폭군이었다.[30] 말년 한정. 하지만 뒤에 즉위한 황제가 그보다 더 극악무도한 폭군이었기 때문에 폭군 이미지가 많이 희석되었다.[31] 즉위 이전부터 암군과 폭군 성향이 보였다고 한다. 칭기즈 칸도 그의 행태를 보고 절레절레 흔들 정도였다. 그리고 자신에게 엎드려서 절을 하라는 등 강요하는 행동을 보여 훗날 금나라의 멸망 원인 중 한 축이 되었다. 또한 정치, 군사, 외교에서도 무능하다. 몽골이 처들어올 때 무능으로 유명한 금군 사령관 완안승유에게 약 49만명의 정예병을 주어 훗날 야호령 대전에서 모두가 전사하는 참담한 결과가 나왔다. 하지만 여러 장수들의 노력으로 위소왕 시기엔 금나라가 멸망하진 않았으니 다행이다.[32] 위소왕보단 외교나 군사적 측면에서는 뛰어난 황제지만 정치에서는 폭군 같은 모습을 보여준다. 무리하게 수도를 카이펑으로 옮기거나 거란족 대신들을 숙청하는 등 굉장히 폭군 같은 모습을 보여준다.[33] 적어도 몽골제국 시기는 중국사로 간주하기 어렵지만, 편의상 함께 기술한다.[34] 성격은 포악했으나 정치나 외교, 군사 분야에선 나름 명군이었다.[35] 무리한 남송 원정 시도. 하지만 그의 말년기였으니 말년 한정.[36] 고려의 폭군 충혜왕은 잘 처벌했으나 자기 자신도 정치적으로나 모든 면으로 봤을땐 폭군 수준이었다. 다만 남중국쪽에서 명나라라는 나라가 강성해지고, 원나라도 선대 칸 ~ 선대 황제들의 국정 운영 때문에 망국으로 변했으니 폭군 + 망국의 군주에 한정.[37] 황권을 크게 강화하기 위해 관료들을 상상 이상의 규모와 방법으로 잔인하게 숙청해댔다. 그 대신 일반 백성들은 최대한 피를 덜 보게 했고 내치(內治)를 대단히 훌륭하게 수행한 명군이라 강희제 "명나라의 치적이 당나라송나라보다 더 융성했다."고 칭송했을 정도. 다만 마황후가 말리지 않았다면 훨씬 더 심했을 가능성이 높았다.[38] 위의 주원장과 같은 경우. 숙청을 엄청 해댔으나 정치를 잘했다. 다만 일부 정당성이라도 있었다는 홍무제와는 달리 영락제의 숙청은 불필요한 것이 많았다고 평가받는다.[39] 전대인 강희제옹정제 시기에는 체제 정비 목적으로 한정적으로 이루어진 문자의 옥을 시도 때도 없이 일으켜 역사상 가혹하기 이를 데 없는 언론 탄압, 문화 검열을 시도했고 청나라의 학문적 기반을 초토화시켰으며, 10전 무공으로 잘 알려진 대외 원정도 버마와 베트남은 굴복시키기는 커녕 오히려 심한 피해를 본데다 무엇보다도 니오후루 허션이 청나라의 20년치 국가 예산에 달하는 규모의 자금을 부정축재할 동안 가만히 손 놓고 있었던 결과 건륭제 사후 청나라는 계속해서 쇠락의 길을 걷게 된다.[40] 보통 폭군의 대명사 수준으로 유명하지만, 집권 전반기에는 의외로 형식상 유능한 모습을 보인 전형적인 암군의 그것에 가깝다. 현대에는 업적이 있어 재평가 중이고, 암군에 가까운 폭군으로 불린다. 다만, 로마인들의 기준으로는 형식적 공화정인 로마 제국 안에서 프린켑스가 불법, 위법 행위 외에도 반인륜적 범죄 등을 지시하거나 직접 한 까닭에 암군이 아닌, 진짜 폭군이 맞았다.[41] 기독교도들에게는 공포의 대상 그 자체였지만, 원로원과 로마 상류층 지식인들에게도 최악의 황제였다. 도미티아누스는 네로와 달리 불법이나 위법 행위를 펼치지 않았고, 그 능력이 뛰어난데다 법질서 확립을 이유로 펼친 엄격하고 공정한 통치 부분에서는 모두에게 극찬을 받았다. 하지만 이전의 티베리우스와 가이우스(칼리굴라)와 마찬가지로 냉혹한데다 원로원과 갈등의 골이 깊었던데다, 반란 사건 이후 의심이 심해져 암살 이후 기록말살형과 동시에 폭군으로 공인됐다. 갈등의 골이 이전 두 황제 이상으로 최악이었던데다, 황제가 반역죄로 원로원 의원들을 기소 후 고문까지 동원해 욕을 엄청 먹었다는 점이 문제였다. 더욱이 칼리굴라처럼 자기 신격화를 하면서도, 언행까지 대놓고 Rex(왕)들이 사용한 방식을 사용하고 이를 고발인 제도로 끝없이 감시해 원로원과 상류층 모두에게 두고 두고 욕을 먹을 수밖에 없었다.[42] 특히 이집트를 포함한 사트라프를 무자비하게 진압했는데, 이는 제국이 분열되는 것을 막기 위한 어쩔 수 없는 행위였다.[43] 기독교들 한정. 그러나 기독교도들은 사산 제국내에서 소수였다.[44] 당시의 정세에 따르면 세속적인 군주로서는 그럭저럭 명군이라고 평가받기에 충분한 인물. 다만 오늘날에는 교황 하면 정치가가 아니라 성직자로서의 모습만 떠올리기 때문에 이 성직자 역할을 제대로 하지 못해 악평을 듣게 된 경우다.[45] 흡연자들에게는 악마보다도 더한 사람이라는 평을 들었다. 단지 담배를 피운다는 이유만으로 사람을 죽였기 때문인데 자세한 이야기는 튀르키예/여담 참고.[46] 다만 법 체계를 개혁하여 국가 막장 테크를 타고 있던 오스만 제국을 다시 일으켜세우는 한편 무너질 대로 무너진 황권을 강화했으며, 페르시아와의 전쟁에서도 승리하여 상당한 업적을 남겼다. 또한 역대 오스만 제국의 황제들 가운데 마지막으로 몸소 군대를 지휘한 황제였으며, 담배와 커피를 필요 이상으로 강경하게 금지하지만 않았더라도 폭군은커녕 명군 소리를 들었을 것이다. 능력만으로는 명군에 더 가깝지만 인간으로서 미움 받아 폭군 소리를 듣는 경우.[47] 이집트를 정복하고 페르시아를 상대로 기선을 제압하는 등 치세 8년 동안 제국의 영토를 2배로 확장한 공은 누구도 부정하지 않지만, 매일같이 관료들을 처형하는 게 문제였다. 다만 마구잡이로 잡아 죽인 게 아니라 명령을 빡빡하게 내려놓고는 제대로 하면 포상, 제대로 못하면 처형이라서 일관성은 있는 편이었으며, 연회 자리에서 셀림과 신하들 사이에 처형하는 것을 두고 농담이 오고 갈 정도였다는 것을 보면 공포정치까지는 아니었던 듯 하다. 다만 후대에는 "셀림의 관료처럼 되기를!"이라는 말이 욕설로 쓰였다.[48] 서구권에서 붉은 술탄이라고 부를만큼 정치적 숙청을 많이 단행한 술탄이었다. 탄지마트 이후 입헌군주제로 바뀌어가던 오스만 제국을 전제군주제로 회귀하기 위해 검열제, 비밀경찰제 등을 도입했으나 이에 분노한 청년 튀르크당의 혁명으로 폐위되었다. 다만 오늘날에는 일부 학자들에 의해 숙청이나 학살의 규모가 다소 부풀려졌으며 해외 유배형에 처한 경우도 많았다는 등 재평가되는 분위기.[49] 이쪽은 셰익스피어의 희곡에 의해서 폭군 이미지가 덧씌워진 점도 있다.[50] 홍무제나 고려 광종, 조선의 태종 & 숙종처럼 헨리 8세도 정치는 잘했지만 그 대신에 숙청을 많이 한 사례다.[51] 자신의 동생이 너무 뛰어난 업적을 세우는 바람에 상대 절하되어 악역으로 묻혀버린 경우. 실제로는 그 정도로 포악하고 무능한 인물은 아니었고, 오히려 당시 군주치고는 너그러운 편이었으며 업적도 여러 개 있다. 엘리자베스 1세의 업적으로 알려진 것 중에서도 사실은 메리 1세 대에 시작되었던 것이 제법 있다.[52] 말년에 이르러 혹독하고 포악하며 변덕스러운 성정으로 변해버렸다. 신하들을 잔인하게 숙청하기도 했고, 별 것도 아닌 일로 임신한 며느리를 폭행해 유산시키고 이를 항의하는 아들마저 구타해 죽게 하는 엄청난 사건을 저지르기도 했다. 다만 외교, 문화, 군사적인 면에서 상당한 업적을 거두어 이후의 러시아 제국의 기반을 튼실하게 다져서 현재의 러시아를 있게 만든 군주라는 점은 결코 무시할 수 없다.[53] 러시아 역사를 표트르 이전과 이후로 나눌 정도로, 러시아를 근대화시킨 명군으로 인정받지만 이 근대화를 위해 귀족과 백성들을 가혹하게 부려먹었다.[54] 무능한 통치로 나라를 몰락으로 이끌다가 피의 일요일 사건으로 민중들에게 폭군으로 찍혔다. 다만 군주로써 무능의 극치를 달렸을 뿐 개인적으로는 막대한 황실 자산과 개인 재산을 빈민 구제에 기부하는 등 선량한 인물이었다는 반론도 있다. 피의 일요일 사건은 애초에 본인이 수도를 비운 상황이라서 부하 관리를 못 한 책임이라면 몰라도 직접적인 책임까지 묻기는 애매하다. 차라리 평범한 농사꾼이었으면 좋았을 것이라는 이야기도 있으니 폭군보다는 단순한 무능한 암군에 가깝다는 평이 많으나, 그에 대한 반론도 존재하는 상황인지라 애매하다.[55] 말년에는 암살 위협과 어머니의 죽음 때문에 정신병에 걸려서 미친 폭정을 일삼다가 시해되었다. 하지만, 한때나마 남아프리카의 대부분을 통일하는 한편, 영국 등의 유럽 강대국들과 접촉해서 근대화 정책을 시행하는 명군의 자질도 보여주어서, 오늘날 대다수의 남아공 사람들은 샤카를 성군으로 인식하는 편이다.[56] 기독교 탄압과 영토 확장을 위한 내전으로 사람을 죽여 단 6년 만에 고국의 인구를 500만에서 250만으로 반토막냈다. 다만 최근에는 이게 서구 열강으로부터 나라를 지키기 위한 고육책이라는 재평가도 있다.[57] 일본 고대사 최악의 폭군. 하지만 그 악행이라고 하는 것들의 대부분이 《고사기》에는 없고 《일본서기》에만 기록되어 있어서 후대에 게이타이 덴노의 즉위를 정당화하려고 중국사에 등장하는 폭군들의 행적을 갖다붙여서 부레쓰 덴노를 폭군으로 묘사했을 가능성이 크다.[58] 원래는 선한 존재였으나 선대 왕의 만행 때문에 춘매를 잃고 폭군으로 타락했다.[59] 막장성, 힘 둘다 동생 에볼토를 아득히 능가한다. 얘는 무려 왕인데도 자기가 자기 별과 동족을 자기 손으로 멸망시켰다.[60] 오마 지오보다도 더 심각한 경우다.[61] 환생하기전엔 자신에 힘에 도취한데다 오만방자하기까지한 그야말로 싸움에 미쳐 살아가는 전투광, 그것때문에 백성들의 안전따윈 말그대로 아웃 오브 안중이었다.[62] 그리스 시간 대 한정. 북유럽대를 다룬 갓 오브 워 라그나로크 이후에는 예언으로 보아 모두에게 사랑 받는 성군이 될 것으로 보인다.[63] 폭군 노릇을 정말 악랄하게 하였다. 현대인 시각으로 보아도 현실적으로 치가 떨리는 폭정을 보였는데, 대표적으로 드워프들의 주요 산업들을 다 망가뜨리고 오로지 무기만 생산하게 하는 아주 악랄한 식민 정책들을 펼쳤다. 그리고 미드가르드의 인간들을 방패막이로 삼아 그들로 하여금 시간을 조금이라도 끌게 하고자 하였다. 그리고 이러한 폭정의 결과, 갓 오브 워 시리즈의 오딘은 원전 오딘보다 비참하게도 거의 혼자만 멸망하다시피한 결말을 맞이하게 된다.[64] 원래는 성군이었으나 불로불사에 집착해 폭군이 되었고 그 결과 본인과 본인의 나라 전체가 증발하는 비참한 결말을 맞았다.[65] 아들인 린과 대화조차 한 적 없고 딸인 메이가 지게를 매고 다닐 정도로 자식들에게도 무정한 아버지이며 현자의 돌의 재료가 인간이라는 것을 알면 자신의 불로불사를 위해 바로 만들 것이라고 할 정도로 탐욕스럽고 자기만 생각하는 폭군이다. 그야말로 제2의 크세르크세스 왕이 될 인물.[66] 데스티니 플랜에 반대하는 빈민층들을 무력으로 진압해 즉결처형했으며 나중에는 파운데이션 본토에 핵 미사일을 떨구어 자신의 손으로 나라를 멸망시켜버렸다.[67] 그녀는 집권 당시 나니아의 계절을 영원히 겨울로 만든후 말하는 동물들중 비버들을 무차별적으로 학살했고, 늑대들을 비밀 경찰로 삼아서 자신의 눈에 거슬리는 행동을 한 국민들을 잡아오게 하거나 직접 석상으로 만드는 등 온갖 폭정을 펼쳤다. 오죽하면 나니아를 정복하려고 오랜 세월 이를 갈고 있었던 칼로르멘 제국마저 하얀 마녀를 두려워하여 침략을 포기할 정도였다.[68] 왕자는 무덤으로 가던 도중 관이 강에 떨어지면서 살아남는다.[69] 아라드를 파괴하려는 힐더의 계획을 저지하기 위해 천계의 마법을 금지시키고 폭정 정치를 실행하는 등 백성들을 강하게 키우려는 모습을 보이면서 선적인 인물로 묘사되는 경우가 많지만, 드락발트에서 군림하던 시절에 보여준 모습들을 보면 엄연한 폭군이 맞다.[70] 다만 타닉타르는 조금 애매한게 분명 폭군이기는 하나 정작 그의 치세는 난쟁이 역사상 최대 전성기였기 때문이다. 물론 그 전성기를 어떻게 이루었는지 등을 보면 폭군으로 비난받아 마땅하지만[71] 오리진 이후 추가된 설정으로, 토비의 말로는 키놀이 꽤나 폭정을 저지르는 왕이었다고한다.[72] 이 쪽은 자신이 죽인 하코넨 남작의 의지에 지배당한 것[73] 자신과 같은 예지력을 통한 폭군이 나타나는 것을 원천차단하기 위한 황금의 길(The Golden Path)을 실현하기 위해 일부러 폭정을 저질러 댔다.[74] 폭군이라고 단정짓기 힘든 게, 사이야인은 본래 폭력적인 성향을 지닌 전투 종족이고 베지터 왕은 그런 사이야인의 왕이다.[75] 이쪽은 드래곤볼 시리즈에 등장하는 다른 폭군들과는 레벨 자체를 비교하는 것이 무의미한 절대적 최강자다...[76] CCG에서 자신에게 방해되는 사람들을 죽이려고 했으나 완전한 성공을 못하고, 오히려 CCG에서 쫓겨났다.[77] 에너지 문제 때문에 지배층이 아닌 일반 레프리로이드들을 이레귤러로 몰아 처분하면서 레프리로이드들은 네오 아르카디아에서 탈주하면서 레지스탕스(록맨 제로 시리즈)를 조직했다. 다만 인간 한정으로는 레지스탕스의 리더인 시엘(록맨 제로 시리즈)을 제외하면 탈주자가 생기지 않을 정도로 잘 다스렸다.[78] 카피 엑스를 계략으로 죽인 후 네오 아르카디아의 총수가 되어 자신을 암흑 속에 가둔 인간과 레프리로이드들에 대한 복수로 인간들도 이레귤러로 몰아 처분하면서 네쥬를 포함한 인간들이 에리어 제로로 탈주했다.[79] 레젠다리움 세계관의 만악의 근원. 절대악이며 세상의 대왕을 칭하며 악을 퍼뜨려 세상을 더럽혔다.[80] 누메노르의 최전성기를 이끈 왕이지만 사우론에게 홀려 결국 타락했다. 타락했음에도 나라는 부강했으나 발리노르를 지배하려다 영원히 땅에 갇히고 누메노르도 멸망해버린다.[81] 절대악 포지션인 모르고스, 사우론이나 타락한 아르파라존, 사루만 등과 달리 본인의 격정적인 성격 때문에 백성들을 고생하게 만든 경우이다. 페아노르가 페아노르의 맹세를 하고 만도스의 저주를 받아 수많은 놀도르가 고생하는 것이 퀜타 실마릴리온의 줄거리이다.[82] 모르고스의 뒤를 이어 세상의 절대악으로 군림했다.[83] 본래 선의 세력이었지만, 타락하여 아이센가드에서 폭정을 저지른다.[84] 어전 회의를 시작하기 전에 군호를 정하려는데, 좌의정이 아첨하려고 장동민의 이름을 군호로 정하자고 제안했다가, 이렇게 된 것이다(...). 실제로도 왕의 이름(휘)를 신하된 자가 함부로 입에 담으면, 본인 혼자 사약마시는 걸로도 안 끝났다.[85] 물론 실제 역사상으로는 미리 궁녀들과 환관들이 먹을 식사도 충분히 마련을 했기때문에, 왕이 대식을 하든말든 그 아랫사람들이 굶을 일은 없었다. 다만, 왕이 안 먹고 남은 수랏상 반찬을 수랏상 나르는 일을 하는 궁녀들이 짬처리하는 일이 있었을 뿐이다.[86] 대왕대비의 친척 한 명이 궁녀를 겁탈한 죄로 처형당한 것도 있었지만, 장동민이 왕으로서 보인 언행이 워낙에 노답이어서 그 전부터 이미 탐탁지 않게 보고 있었다.[87] 피치공주를 자주 납치하는 막장 영주에 다혈질적이지만 자신의 부하들을 내쫓거나 처형시킨 적도 없고,[155] 부하들 역시 자원입대했을 정도로 충성도가 강한 것을 보면 의외로 또 폭군까지는 아닐지도 모른다(…).[156][88] 비록 국가와 국민을 사랑했고 헌신하며 나라를 발전시켰으나 통치가 명백한 폭정이며 외국에 온갖 악행을 저질렀다.[89] 주로 게임 내에서 폭군이라고 묘사된다. 이명 중 하나가 폭군이라 불리는 사나이이며, 거주하고 있는 성채가 폭군의 성채이다. 또한 드랍하는 아이템도 영어로 폭군을 뜻하는 Tyrant.[90] 원래는 성군이었지만 선민사상을 가지게 되면서 폭군으로 타락했다고 한다.[91] 미래의 문 한정.[92] 2009년에 촬영한 특집으로, 2010년도 달력을 제작하는 특집이다.[93] 이름의 유래는 말할 것도 없이 돌+I+염라대왕이다(...).[94] 실은 12월달 분의 촬영 컨셉인 '불구덩이 안에서 석고대죄하기'에 당첨된 멤버들이 그 대역죄인 역할을 맡았다. 노홍철은 이 중에서 복불복을 통해 운좋게 빠져나와서 돌라대왕 역할을 맡게 되었다.[95] 당시에는 장윤정노홍철과 열애 중이었다.[96] 하지만 유재석이 그 의혹이 사실이라면 2010년에는 멤버들 일이 잘 안 풀리게 될거라고 하자, 멤버들이 그를 무고한 사실을 고백하고 알아서 불구덩이로 복귀했다(...).[97] 2009년에 무한도전 식객 특집의 후반부와 악마는 구리다를 입는다 특집, 갱스 오브 뉴욕 특집을 뉴욕에서 촬영했다.[98] 물론 멤버들의 안전을 위해 사전 조치는 다 되어있었다.[99] 소문상으로는 폭군이나 실제는 그렇지 않다.[100] 애니에선 전 기간.[101] 사람들을 공포와 힘으로 지배하며 폭정을 저지르는 엄연한 폭군인데 극중에서는 미화된다.(...)[102] 바로 죽은 건 아니고 본편의 에필로그로 진행된 팝송 메들리 공연때까진 살아있었으나, 슈렉 2의 스토리가 시작할 때쯤에 이미 소화가 다 됐다.[103] 부하들과 괴인에 한해서는 성군이다.[104] 폭마백족 입장에서는 성군이기도 했다.[105] 오레인저 작중에서의 페이크 최종 보스.[106] 오레인저 작 중에서의 진 최종 보스.[107] 왕은 아니지만 성격 차 때문에 여기에 기재.[108] 수전전대 쿄류저 본 작 기준.[109] 쿄류저 본작이 아닌 극장판 토큐저 VS 쿄류저에 등장.[110] 폭군인 동시에 암군이기도 하다. 백성들이 지제국 버그나라크에게 습격당하고 있는데도 도와주지 못할 망정 자신은 이를 이용해 나머지 4개국인 은코소파, 이샤바나, 곳칸, 토후를 합병할 계획을 하고 있다. 이는 기라가 반역자가 되어 라클레스를 끌어내리고 왕이 되기로 한 계기가 된다. 그러나 라클레스가 폭정을 저지르는 데에는 다 이유가 있었다.[111] 신의 분노 사건 당시에 토후의 모든 식량을 자신이 독점하였고, 이로 인해 카구라기 디보우스키의 역성혁명으로 끌어내려진 것으로 알려져 있었다. 그러나 그 진실은...[112] 애초에 젤나가가 만든 무한의 순환이 자기 마음에 안 든다는 이유로 반기를 들어 우주를 멸망시키고 자기가 만들어낸 피조물만 남은 세상을 지배하려고 했다. 직접 우주를 지배하지 못하게 됐지만 그 사상이나 행동은 폭군. 작중 가장 유명한 폭군인 그 아크튜러스 멩스크도 간접적으로 조종했으니 말 다했다.[113] 아나운서에서 알라라크를 폭군이라 소개하고 있고, 실제로도 알라라크의 행동은 폭군으로 볼 여지가 충분하다. 단, 원래 성정이 흉악한 탈다림 입장에서는 이런 폭군상이 곧 명군상일 확률이 커보인다(...). 다시 말하자면 탈다림의 군주는 기본적으로 폭군이어야 한다는 것이다(...).[114] 역시나 탈다림에서는 폭군이 문제가 되지 않는다. 말라쉬의 문제는 그가 광신도라는 데 있어서...[115] 아제르의 경우는 지참금이냐 집안이냐 이득을 따지느라 물건나갔으며, 이로인해 일족이 가난해지고 조르크와 바이마트도 미혼이다. 아미르의 경우는 식구들이 돌림병으로 죽고 여성들이 숫기를 잃자 두고두고 부려먹으려다 아미르의 조부가 아미르만 뒷바라지 시키는 건 마음에 걸리니까 나이가 들더라도 시집보내라고 일갈하여서, 마지못해 시집보낸다.[116] 아제르, 조르크, 바이마트 3인은 이에 맞서 아미르 & 카르르크 부부와 마을사람들을 구한다. 여기서 카르르크는 3인방의 진짜 성품과 아미르를 아끼고 걱정하고 생각하는 일면을 알게 되어, 이들에 대한 그동안의 오해와 의심과 적의와 분노어린 시선을 거두고, 이들을 용서하여 아군으로 인정하고 받아들인다. 오죽하면 3인이 마을사람들에게 적으로 아미르 & 카르르크 부부의 원수로 몰려 셋이서 구타당하자, 아미르와 함께 울면서 사람들을 말린다던가, 에이혼네 마을 촌장이 치안대장에게 3인에 대한 즉결처분을 요청하자, 홀로 소리높여 3인에 대한 용서를 구했을 정도.[117] 아제르가 족장이 된 이후의 하르갈 일족이 간 북방지역은, 아무도 건드리지 않은 목초지와 자원이 풍부했지만, 언제 러시아군이 쳐들어올지 모르는 위험지역이라 일족은 총알받이 • 국경수비대 신세가 되었다. 그래도 겨울은 넘길수 있다는 이득은 얻었다. 이것은 사실 하르갈 3인방이 아미르 & 카르르크 부부와 마을 사람들을 지켜낸 덕분에 인정받았으며, 에이혼가 사람들과 마을사람들과 촌장 무리의 합의에 따라 해결된 것이다.[118] 별명이 별빛초등학교 폭군(...). 하지만 폭군보다는 악동에 가깝다.[119] 남주인공이라서 좀 묻힌 감도 없잖아 있지만 개인적인 감정이 섞인 걸 감안해도 길라이가 루시나 앞에서 대놓고 하칸을 폭군이라며 디스한 것은 물론, 국민들에게도 평이 좀 안 좋은 듯 보이며 그 예로 루시나가 임신하였을 당시 그녀의 입덧 때문에 그녀에게 먹일 과일을 사려는데 그 과일을 이미 잔뜩 사간 귀족이 자신의 아내가 늦둥이를 임신하였다며 호소했는데도 결국 그 귀족이 사간 과일을 모조리 강탈한 전적이 있다. 물론 절반이라도 달라고 한 것을 그 귀족이 저렇게 말해서 그런 걸 감안하여도 정작 루시나는 그 과일을 먹고 싶다 말한 적은 없었다(...). 그 외에도 루시나의 유산 사건으로 인해 어쩔 수 없었다 쳐도 유산 사건의 진범인 가레트와 재혼하면서(사실 이는 가레트를 속여 방심시킨 다음 그녀를 처단하려는 계획이었다. 문제는 루시나에겐 사전적으로 해명도 없이 자신과 부하들만 알고 있던 것.) 루시나의 기분도 제대로 파악 못 한 채 제멋대로 대하는 태도를 보면 폭군의 면모가 좀 보이긴 하다. 그래도 아예 악인 수준은 아니며 자신의 잘못을 반성하고 루시나에게 사과하는 면모가 있는 것과 웹툰판에선 원작의 행적이 많이 순화되어 그나마 나은 편.[120] 영원의 여왕 마리카가 낳은 자손들인 데미갓 중에서 태생적으로 약한 아이로 태어나 이런 자신의 모습을 혐오하고 추한 것으로 여기며 압도적인 힘만이 곧 자신의 생존에 직결되는 것임을 보고 평소에 다른 형제자매들인 데미갓들을 미워하고 시샘했으며 그들의 자리를 탐내었다. 이후 림그레이브 지역을 다스리게 되었으나 이러한 면모는 바뀌지 않아, 자신의 백성들인 인간들과 트롤, 거인, 아인들에 이어 동물들까지 가리지 않고 수많은 생명들을 핍박하고 틈만 나면 그들을 죽이거나 고문하고 처형하여 그들에게서 신체 부위를 잘라내거나 뜯어가며 자신의 몸에 자신이 가진 권능인 접목의 힘을 사용하여 자신의 신체 일부로 삼으며 잔악무도하고 패악질을 일삼는 폭군의 길을 걸었다. 이러한 악행의 끝에 파쇄전쟁 당시에는 평소 독보적으로 깔보고 미워하던 남매인 말레니아에게 겁도 없이 덤볐으나, 일방적으로 패배하고 그녀의 꾸짖음과 함께 발가락을 핧는 굴욕을 당했으며, 이후 게임의 시점에서 멸망으로 치닫는 세계를 구원하기 위해 틈새의 땅에 찾아온 주인공인 빛바랜 자에게 끝내 토벌당하여 잔악무도하고 탐욕스런 잘못된 힘만을 추구한 자신의 무분별한 폭정에 마침표를 찍었다.[121] 겉으로는 자신을 책망하라며 뿔인간을 비롯한 그림자 땅 백성들을 학살 및 폭정을 저질러 많은 원성을 사고 있지만 한편으로는 뿔인간들의 만행에 희생당하고 있는 무녀들을 구출해 치료를 시도하거나 터부시되고 있는 백금일족 및 자신의 부하들을 아끼는 모습을 보였다.[122] 작중 실제로 반역을 꾀한 것은 엔진왕 뿐이지만, 톱니바퀴왕과 전기왕도 최후의 결전 당시의 대사를 미루어 보아 자우라즈와의 결전이 끝나면 기계신을 타도하는 것이 목적이었을 가능성이 높다.[123] 클로드아나스타시우스의 아버지.[124] 처음에는 사실 훌륭한 왕이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미치광이 폭군이 되어갔고 타르가르옌 왕조의 몰락 원인이 되었다.[125] 아웃랜드의 지배자가 된 이후, 아웃랜드 전체를 억압했다. 그래도 아즈샤라보다는 나은 편.[126] 나이트 엘프의 여왕이었으며 무엇보다 왕족들과 귀족들의 고자질은 잘도 믿으면서 백성들과 노예들의 괴로운 삶에는 전혀 관심도 가지지 않았고 오히려 강력히 탄압했다. 그러다가 불타는 군단이 쳐들어오자, 불타는 군단이 너무 강력했던 나머지 그들과 싸우지도 않고 무조건 항복하여 오히려 불타는 군단의 수장인 살게라스의 충실한 부하가 되어 그로부터 온갖 사악한 마법을 배웠고, 끝내 칼림도어 대륙에 거대한 폭풍을 일으켜 바다에 잠기게 해서 대부분의 나이트 엘프들을 흉측한 나가 족으로 만들어버리는 데 일조했다. 결국에는 횡포 끝에 말퓨리온 스톰레이지티란데 위스퍼윈드가 이끄는 신흥 세력(말퓨리온 스톰레이지가 이끄는 은빛 날개단과 티란데 위스퍼윈드가 이끄는 그림자 전사단.)에 의해 자신의 지지기반과 함께 축출된다. 그 대가로 저주받은 몸을 받았다.[127] 동료 킬제덴은 그나마 실패한 부하들에게 한 번 더 기회를 주거나, 전쟁활동에 별로 나서지 않는 꽤 순한 모습을 보이지만 아키몬드는 그런 거 없다.[128] 안수령 실시 때까지는 억압적이고 무능한 면모를 보이나, 전설 퀘스트 2장까지의 행적으로 본인이 스스로 전임자와 이나즈마의 정황을 이해하려고 적극적으로 나서는 등 갱생한 모습을 보인다.[129] 본인의 압도적인 무력과 지위에도 불구하고 아무도 그녀를 좋게 평가하지 않으며, 심연과 관계되면 한천의 못을 떨어뜨려 말살하고, 일곱 용왕의 힘을 뺏었음에도 이를 자기 힘인 것마냥 군다는 포칼로스의 평이나, 폰타인에 종말을 고하는 예언을 남겼고 이를 실제로 실행했다. 허나 다른 떡밥에서는 티바트에 막대한 위험인 심연을 막기 위한 필요악이거나, 티바트의 생명을 사랑한다는 아펩의 말을 볼 때, 아직 진정한 목적이 드러나지 않아 위악이나 필요악을 저지르는 것인지, 아니면 정말 폭압적인 다스림을 하는 건지는 아직 미지수다.[130] 헌데 폭군 치고는 명군 수준의 모습도 보이는데 특출나게 대단한 정치를 펴는 건 아니지만 사황답지 않게 방식은 몰라도 꿈은 세계평화이며 자신만의 나라 토트랜드는 사황의 지배를 받음에도 불구하고 신세계에서는 살만한 나라다. 이 곳의 주민들은 6개월에 한번씩 자신의 수명 중 1개월씩 바쳐야 하지만 그 대가로 얻는 건 안전(사황인 만큼 어줍잖은 해적, 사황, 해군 등은 함부로 건들지도 못한다. 수명 바치기도 인간 수명 100세로 잡으면 84세까지 천수를 누릴 수 있고, 100세 이하로 잡아도 70대~80대 초까진 자연사가 보장된다. 시민의 목숨이 파리 수준인 신세계에선 굉장한 조건이다.), 풍요(샬롯 링링의 요리사가 쿡쿡 열매의 능력자이기에 음식은 얼마든지 만들어낼 수 있다.)를 보장받으며, 심지어 샬롯 링링의 자식들도 제법 통치를 잘 하는 편이고 수가 많아 인재풀이 넘치는데다, 현세대 자식들 중 성인라인들의 대부분은 진심으로 애민정신과 어머니의 이상에 기반해 움직이기에 주민들의 신뢰도도 높다. 물론 수명을 세금으로 바치거나 식탐앓이를 앓는 샬롯 링링이 한번 날뛰면 골치아파지지만, 샬롯 링링 덕에 안전과 풍요가 보장받고 아들딸들이 전력으로 케어해 해결해내긴 하니, 폭군은 폭군인데 마냥 폭군만이라고 평가하기에도 뭣하다. 거기다 천룡인과 휘하 신의 기사단이 3년에 한 번씩 세계정부 미가맹 국가들에 대한 대량학살과 노예확보를 저지른다는 사실이 드러나자, 결국 원피스 세계관에선 토트랜드가 독보적으로 살기 좋은 곳이라고 끝없는 재평가를 받고 있다.[131] 세간에서는 바솔로뮤 쿠마가 폭군으로 알려져 있었으나...[132] 사실 행콕이 선역이라서 현재는 묻혔지만, 여인섬 에피소드를 자세히 보면 남의 고양이를 발로 차면서 자기는 뭘 해도 용서받지 아름다우니까라는 말만 남기고 사라진데다가, 아이들이 만들어준 상을 부수고, 또 남자아이 한명을 섬에 들였다고 아직 20살도 안된 마가렛과 다른 병사들을 돌로 만들어 부술려고 했다. 행콕의 폭군다운 모습을 볼수 있는 세 개의 장면이다.[133] 복수심에 의해 일부러 폭정을 한 케이스이다.[134] 신계전쟁 엔딩 한정. 안 그래도 당시 유그드라 여왕이 속한 판타지니아 왕국이 가르카사가 다스리는 브론키아 제국과 전쟁해 사기와 물자가 떨어진 마당에 성검 그란 센츄리오의 힘만 믿고 자신들을 창조한 신들이 있는 신계에 전쟁을 걸었다. 성검 그란 센츄리오는 작중 마검 속성을 가져도 성검으로 칭해지나 실제로 사람들의 피를 먹고 강해진다는 것을 보면 마검과 다를 것이 없다는 것을 생각하면 마검의 힘만 믿고 단단히 미친 것이 맞다. 다만 인간성을 잃을 정도로 미쳤다는 것은 GBA판 신계전쟁이고, PSP에서는 유그드라가 맨 마지막 시나리오에서 패배할 경우 복수귀가 된 것은 맞지만 신들이 인간들을 도구로만 이용하는 현실을 비통하게 여겼다는 속마음을 토로해내면서 절규한다.[135] 본래 성격은 폭군이 아니나 마룡의 피를 가지고 태어나게 되는데, 마룡의 피를 가진 자는 각성하는 시기가 오면 버서커처럼 발작하여 인간을 제물로 바쳐야만 광기를 억누를 수 있어 어느 정도 폭군처럼 전쟁할 수밖에 없었다. 다만 비밀리에 인간을 제물로 바친 것만 빼면 브론키아 제국의 염제로서 암군이었던 적이 없다.[136] 다만 원래는 성군의 자질을 가진 인물이다. 돈 사우전드와 아버지 때문에 이리 된 것.[137] 개구리 대신이 집에 아내와 아이들이 기다리고 있다고 사정을 해도 거들떠보지도 않고 심지어 새끼들은 별미라면서 잡아오라고까지 했다.[138] 종족의 지배자가 쌍으로 폭군이다. 일단 자신들이 창조한 종족들과 친자식들마저 성전을 유지시키기위한 장기말로밖에 안보니...[139] 성전때문에 수많은 백성들이 죽고 나라가 한번 멸망하는 걸로도 모자라 그동안 너무 많은 일을 겪으면서 결국 제대로 흑화헤서 폭군이 되어버렸다.[140] 정 궁금하면 직접 보자. 봉림의 행동들은 독자들이 하나 같이 욕할 정도로 발암 행동들이다.[141] 를르슈는 엄밀히 말하자면 자신의 죄값을 치르기 위함과 동시에 세계평화를 위한 비밀스런 계획을 위해서 폭군 흉내를 낸 군주이며 그의 진의를 아는 사람들과 시청자들은 수많은 악행을 저질렀지만 세계평화나 신분제 철폐같은 뛰어난 업적이 많은 명군으로 평가 받는다.[142] 유일한 어른이라는 이유로 『대피소』 사람들을 휘저은 인물. 현재 사망하였다.[143] 이명만 폭군이다. 티라노사우루스(폭군 도마뱀)과 같은 경우.[144] 영어 이름에 폭군이라는 의미가 있다.[145] 분류부터가 폭군 포켓몬이다. 진화 이전인 티고라스 역시 한 성질 하는 유군(幼君) 포켓몬이다.[146] 카이사르가 죽은 상태에서 카이사르의 군단 엔딩을 보면 카이사르가 벌이는 학살로 인해 모하비 황무지생지옥이 된다는 엔딩 크레딧이 나온다.[147] 의도는 좋았을지도 몰라도 방식이 심각할 정도로 잘못된 황제, 절대 권력에 혹해 어린 아이를 포함한 종족 전부를 강제로 개조한 침묵의 왕, 음흉한 정치인으로 묘사되는 아운바, 자신의 권력을 위해 종족의 유일한 희망일지 모르는 이브레인을 죽이려 드는 벡트. 악 그 자체인 카오스 로드들.[148] 신 아르주나제우스타락한 영웅 포지션에 속하는 폭군, 스카자하=스카디이반 뇌제는 인류를 살리기 위해 발버둥치다 어쩌다보니 폭군짓을 하게 된 가해자가 된 피해자, 시황제는 이상향을 창조하는데 성공했지만 방법론잘못되었기에 폭군으로 분류된다. 모르간은 대다수 요정 주민들의 혐성에 시달리는 상황에서 브리튼을 지키기 위해 일방적이고 극단적인 효율성 중시의 지배를 하며, 모르간에게 있어 브리튼보다 소중한 바반 시에게 악성을 주입해 마음대로 악행을 벌이면서 살게 하면서 결과적으로 백성들에게는 폭군으로 비추어 지게 되었다. 이문대는 인리에 의해 전정된 비정상적인 세계인 만큼 다스리는 자들도 정상이 아니거나 비정상적인 행위를 강요받는 처지다.[149] 충왕전 등장 이후로 사나운 왕귀뚜라미로 유명해졌다.[150] 참주(僭主)를 뜻한다.[151] 아래에 서술하듯이 다양한 파생어들이 있다. 모두 위의 그리스어 τυραννος(týrannos)에서 유래했다.[152] 자기네 이권을 뺏어다가 딴 계층에게 준다고...[153] 굉장히 사치스럽게 사는 듯이 보이지만, 국가 예산 중에서 극히 일부만 왕실의 품위 유지비로 이용하며 단 한번도 국가 재정에 금융 위기가 찾아오게 만든 적은 없다. 또한 정치적 능력도 뛰어나고 정무를 손에서 놓지 않으며, 나라의 안팎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에 세심히 관찰을 기울이는데다가 빈민 구휼에도 꽤 적극적이다. 과한 세금을 부여하거나 백성들의 터전을 없애버리지도 않고, 악습을 만들지도 않으며, 시찰을 나갈 때도 백성들을 상당히 신경 쓴다. 집안과 인맥보다는 실력을 중점으로 두고서 관리를 등용하고 충신을 늘 곁에 두며, 아무리 기분이 나빠도 간언한 내용은 반드시 들어주며 친분과 상관없이 잘못한 사람에게는 합당한 벌을 주고 선을 그어서 손절해버린다. 이때문인지 왕은 잔혹한 폭군이라는 악평에 시달리는데, 정작 나라는 부국강병하여 외세의 침략을 절대 받지 않고 범죄도 거의 일어나지 않을 만큼 군사와 안보가 발전하며, 예술 문화와 경제가 극도로 발달되어 거의 모든 백성들이 최소 중산층쯤 되는 삶을 누리는 태평성대다. 심지어 이런 폭군형 남주인공이 폭군으로 불리는 이유는 거의 여성편력과 잔인한 처벌 그리고 잦은 숙청뿐인데, 단순히 결혼을 여러번 하거나 첩이나 애인을 많이 두는 여성편력은 동서양을 막론하고 군주로서는 전혀 문제삼지 않았던 일이며, 여성향 작품에서 남주인공이 처벌을 내릴때 법률에 어긋나도록 과한 처벌을 내리거나 마냥 죄없는 사람들을 죽인 적은 없다. 남주인공에게 숙청당한 사람들은 지나칠 정도로 남주인공을 견제하고 현재도 남주인공에게 위협적인 정적 세력, 반역을 했거나 반역 모의를 한 역적, 죽어 마땅한 범죄자들뿐이다.[154] 사실 여성향 로맨스 작품은 비단 전근대 왕국을 모티브로 삼은 작품이 아니더라도 남주의 남자로서의 평가와 사회인으로서의 평가를 명확히 구분하지 않고 각각의 요소가 한 몸인것마냥 서로에게 막대한 영향을 끼치는 경우가 흔하다. 폭군이란 호칭은 정치가 곧 사회 생활인 군주 남주에 있어 그 연장선인 것.



[155] 심지어 쿠파 몸속 대탐험에서는 물론 까르코비츠한테 세뇌당하긴 했지만 대놓고 자신을 배신한 부하도 살려줬다. 다만 가끔 날려버리기는(...) 하나, 대부분이 개그씬에 가깝다.[156] 진짜 폭군은 얄짤없다. 대부분 자신의 아랫사람들을 대하는 태도가 기분 내키는 대로식이라 그런 작자 밑에는 부하들도 불안해하여 주군에 대한 충성심이 맹목적인 수준이 아니고서야는 역모를 꾀하는 경우가 많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