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04-01 15:17:21

망국의 군주

1. 개요2. 상세3. 목록
3.1. 유라시아
3.1.1. 동아시아
3.1.1.1. 한국3.1.1.2. 중화권 / 몽골3.1.1.3. 일본
3.1.2. 동남아시아
3.1.2.1. 베트남3.1.2.2. 미얀마
3.1.3. 남아시아
3.1.3.1. 인도 아대륙 3.1.3.2. 아프가니스탄
3.1.4. 중앙아시아3.1.5. 서아시아
3.1.5.1. 이슬람화 이전3.1.5.2. 이슬람화 이후
3.1.6. 캅카스3.1.7. 남유럽 / 아나톨리아
3.1.7.1. 고대 아나톨리아 문명3.1.7.2. 그리스 / 이탈리아3.1.7.3. 튀르키예3.1.7.4. 남슬라브 국가3.1.7.5. 루마니아3.1.7.6. 알바니아3.1.7.7. 이베리아 반도
3.1.8. 서유럽3.1.9. 중부유럽3.1.10. 동유럽
3.2. 아프리카
3.2.1. 북아프리카
3.2.1.1. 이슬람화 이전3.2.1.2. 이슬람화 이후
3.2.2. 동아프리카3.2.3. 서아프리카3.2.4. 중앙아프리카
3.3. 아메리카
3.3.1. 아메리카 원주민 문명3.3.2. 근대
3.4. 오세아니아
4. 망국의 군주였다가 부흥한 군주5. 관련 문서

[clearfix]

1. 개요

본인 대에 다스리는 나라가 멸망한 망국의 군주들에 관한 문서. 암군과는 복잡한 관계에 있다.[1]

2. 상세

한 왕조의 마지막 군주인만큼 스스로 실책을 저질러 나라를 망하게 했다는 인식이 있으나, 국가 체계 자체가 하루아침에 아무 이유 없이 멸망할 리는 없고 역사상 대부분 나라들은 여러 문제들이 선대 왕 때부터 축적되어 마지막 임금 재위 기간에 터진 것인 경우가 많다. 사실 멸망이 임박한 대부분 왕조의 마지막 임금들은 혼군인 경우도 있지만, 이미 즉위 시점부터 실권을 잃어버려 뭘 하려고 해도 제대로 할 수 없는 상태인 경우가 많으며, 멸망의 결정적인 계기가 되는 시점은 보통 마지막 임금의 전대, 전전대 임금 시기인 경우가 많다. 이는 한국사에서는 신라경애왕, 고려우왕, 대한제국고종 등이 그러하다. 이 나라들은 정작 마지막 임금인 경순왕, 공양왕, 순종 때는 임금이 어떤 조치를 한다고 해도 회복 가능성[2]이 보이지 않을 만큼 나라가 완전히 기울어져 있었다.

다만 이런 문제들을 끝까지 고쳐보려고 노력이라도 해 본 망국의 군주는 고평가를 받지만, 그냥 팽개치고 나라가 망할 때까지 손 놓은 군주는 저평가를 받는다. 특이한 케이스로는 나라가 빈사 상태로 무너진 것도 아닌데 별다른 저항 없이 바로 위나라에 항복해버린 유선이 있다.[3]

예를 들어 후한헌제는 이미 즉위 이전에 동탁이 나라를 멋대로 주무르기 시작해 아예 실권이 없었고, 역적들이 나라를 망치건 뭐건 아무것도 할 수 없었으며, 오히려 실권을 되찾기 위해 장안을 탈출하거나 조조 암살을 계획하는 등 최후의 발악이나마 했다. 명나라숭정제원숭환 처형과 같은 실책을 벌이기도 했으나, 쇠퇴해가는 명을 되살리기 위해 노력한 황제였다. 그가 마지막 황제가 된 것도 후계 가운데 총명했기 때문이다.

물론 왕조 멸망 전 왕을 내쫓고 임시 군주, 즉 허수아비 군주를 세워놓은 경우도 있다. 경순왕, 공양왕이 이렇게 세워졌다. 경순왕의 경우처럼 외부세력이 적당한 인물을 세워놓고 조종하는 경우면[4] 시간이 지난 뒤엔 본색을 드러낸다. 이런 경우도 최선을 다하는 경우도 있고, 그냥 조종당한 경우도 있다. 즉 케바케인 것. 다만 허수아비 군주가 조종당한 것은 자신의 목숨이 달려있기에 쉴드칠 구석은 있다. 또한 사직을 조금이나마 더 길게 보존하는 명분도 있고.

위 두 왕은 전자의 경우에 해당된다. 경순왕은 주적 후백제에는 할 수 있는 만큼 있는 대로 저항했고 가장 적절한 시기[5]에 고려에 항복해 신라 국민 및 귀족을 지켰다는 평을 받으며, 공양왕도 이미 이성계 일파에 정치가 장악당해 무엇도 통하지 않았지만 고려를 어떻게든 살리기 위해 고군분투했다는 분석이 많다.

좀 더 포괄적으로 보자면 정상적인 계승이 힘들어 구원투수 형식으로 방계의 비교적 유능한 인물들이 왕위에 올랐고, 가능한 한 최후의 발악이라도 했지만 이미 대세를 뒤엎을 수 없던 상태였다. 심지어 왕은 아니지만[6] 도쿠가와 막부의 마지막 장군인 도쿠가와 요시노부도 재능은 있는데 실권이 없어 막부가 무너지는 순간까지 고생했다. 심지어 브라질의 마지막 황제인 페드루 2세는 퇴위하는 날까지 국민들 사이에서 성군으로 칭송받았고, 아프가니스탄의 마지막 군주인 무함마드 자히르 샤아프간에서는 국부로 칭송 받는다. 동로마제국콘스탄티누스 11세도 그리스에서 위인으로 칭송받는다. 다만 이러한 경우 거의 무조건이라고 봐도 좋을 정도의 높은 확률로 전대나 전전대 임금이 암군이다.[7]

즉 이렇게 왕조의 마지막 군주가 암군이 아닌 경우도 꽤 된다. 결론적으로 망국의 군주 중 오히려 왕조를 어떻게든 살리기 위해 노력했으나 결국 흐름을 거스르지 못한 자들도 있으며, 시대를 잘못 태어났다는 평가를 받는 사람들도 있다. 심지어 마지막 군주가 명군,[8] 더 나아가 성군으로 평가받는 극단적인 케이스도 있다. 물론 다 그렇지는 않으며 자신이 나라를 망친 군주도 존재한다.

망국의 군주 중 예외로 탐라국자견왕고봉례가 있다. 자견왕은 스스로 고려의 속국이 되었으나 성주와 왕자직은 계속 있었으며, 고도의 자치권을 누렸다. 고려도 사실상 외국으로 간주했다. 고봉례탐라국의 마지막 성주였지만 탐라가 사실상 고려의 특수행정구역으로 간주되었으니 일반적인 망국의 군주와는 다르다.

존속 기간이 짧으면 몇 년, 길어도 수십년 정도 밖에 안 되는 단명 국가들 중에서는 창업군주가 후계자에게 물려주기도 전에 나라가 망해서, 창업군주가 곧 망국의 군주가 된 사례도 있는데, 해당 국가들은 최소 2대 이상은 지속된 국가들과는 달리 부모나 조상 핑계를 댈 수 없으니, 극소수의 불가항력적인 경우를 제외하면 군주 본인의 실책 때문에 망한 경우가 대부분이다.

후백제견훤은 본인이 공식적인 마지막 군주는 아니었지만, 왕위를 찬탈한 아들에게 복수하기 위해, 외세를 끌여들여 본인이 세운 나라를 본인의 손으로 멸함으로써, 자발적으로 망국의 군주가 되었다.

동양에서는 망국의 군주에 대해서 망국의 군주면 그에 따른 책임을 져야 한다는 인식이 있었다. 물론 선양으로 망한 왕조에게까지 이게 적용되지는 않는 것 같지만 정복 등 선양 외로 망한 경우는 그렇다. 촉한멸망전 이후 유선의 모습을 보고 사마소가 나라가 망한 게 꼭 자기 탓은 아니라 하더라도 망국의 군주가 되어서 죄책감은 보여야 하는 것 아니냐고 한 까닭 역시도 이것 때문이다. 이런 논리가 가장 최근에 적용된 것은 고종의 사망 때 유림계의 내분인데 고종은 나라가 망한 뒤에도 죽지않고 일본의 왕공족의 지위를 받았다는 이유로 망국의 군주로서 책임을 안 졌다고 유림들 중에서는 그에게 절하기를 거부하는 이들이 있었다.[9] 그러나 이후 고종 독살설이 돌면서 고종은 망국의 군주로서 비극적인 최후를 맞았으며 그를 독살한 건 일본이니 망국의 군주로서 일본에 맞선 것이라는 해석이 나오며 논란이 가라앉았다.

서양에는 한 명의 군주가 여러 나라의 군주를 겸하는 동군연합이라는 체제가 있어서, 동군연합을 구성하는 나라 중 하나가 멸망해서 그 나라에서는 망국의 군주가 되지만, 다른 나라에서는 여전히 군주로 재위하며 건재한 경우가 종종 있었는데, 대표적인 예로 예루살렘 왕국앙리 2세[10]신성 로마 제국프란츠 2세[11]가 있다.

3. 목록

3.1. 유라시아

3.1.1. 동아시아

3.1.1.1. 한국
한국사
국가군주즉위년일퇴위년일재위기간비고
단군조선준왕?년기원전 194년?년위만에게 왕위 찬탈당함.
찬탈당한 후 남하하여 마한 성립.
위만조선우거왕최소 기원전 128년기원전 108년최소 20년망국 이전 암살.
동부여대소왕기원전 20년22년42년고구려와의 전투에서 사망.
사망 후 동부여 사실상 멸망.
갈사국 도두왕?년68년?년고구려에 항복.
우태로 임명됨.
북부여 잔왕?년494년?년고구려에 투항.
금관가야구형왕521년532년11년항복 후 조세를 받으며 생활.
자신의 가문이 명문가가 됨.
탁기탄함파한기6세기 초6세기 초?년신라에 항복.
최후는 알려지지 않음.
탁순국아리사등?년538년?년신라에 항복.
최후는 알려지지 않음.
대가야도설지왕?년562년?년최후는 알려지지 않음.
백제의자왕641년660년19년당으로 압송.
압송된지 며칠 만에 사망.
고구려보장왕642년668년26년당으로 압송.
당에서 고구려 부흥 위한 반란 꾸미다 유배.
태봉 궁예 901년 918년 17년 쿠데타를 피해 도망치다가 백성들에게 두들겨 맞고 객사.
발해대인선906년926년20년거란으로 압송.
발해 부흥을 꾀함.
신라 석씨 왕실 흘해 이사금310년356년46년경주 석씨 왕실은 몰락함.
신라 박씨 왕실 경애왕924년927년3년견훤에게 사사.
신라 경순왕927년936년9년항복 후 고려에서 정승공으로 봉해짐. 그의 선택으로
경주 김씨는 명문가로 남음.
후백제 견신검 935년 936년 1년 견훤 사후 암살당했을 것으로 추정.
탐라국자견왕
고봉례
934년
?년
938년
1404년
4년
?년
탐라의 마지막 왕.
탐라의 마지막 성주.
고려공양왕1389년1392년 3년 조선 건국 후 사사.
조선
(대한제국)
순종 1907년 1910년 3년 병합에 끝까지 반대했으나 이완용과 일제에 의해 창덕궁 이왕으로 강등.
3.1.1.2. 중화권 / 몽골
3.1.1.3. 일본

3.1.2. 동남아시아

3.1.2.1. 베트남
3.1.2.2. 미얀마

3.1.3. 남아시아

3.1.3.1. 인도 아대륙
3.1.3.2. 아프가니스탄

3.1.4. 중앙아시아

3.1.5. 서아시아

3.1.5.1. 이슬람화 이전
3.1.5.2. 이슬람화 이후

3.1.6. 캅카스[20]

3.1.7. 남유럽 / 아나톨리아[21]

3.1.7.1. 고대 아나톨리아 문명
3.1.7.2. 그리스 / 이탈리아
3.1.7.3. 튀르키예
3.1.7.4. 남슬라브 국가
3.1.7.5. 루마니아
3.1.7.6. 알바니아
3.1.7.7. 이베리아 반도

3.1.8. 서유럽

3.1.9. 중부유럽

3.1.10. 동유럽

3.2. 아프리카

3.2.1. 북아프리카

3.2.1.1. 이슬람화 이전
3.2.1.2. 이슬람화 이후

3.2.2. 동아프리카

3.2.3. 서아프리카

3.2.4. 중앙아프리카

3.3. 아메리카

3.3.1. 아메리카 원주민 문명

3.3.2. 근대

3.4. 오세아니아

4. 망국의 군주였다가 부흥한 군주

5. 관련 문서

<colcolor=#fff> 국가 멸망
{{{#!wiki style="margin:0 -10px -5px"
{{{#!folding [ 펼치기 · 접기 ]
{{{#!wiki style="margin:-6px -1px -15px;letter-spacing:-1px"
<colbgcolor=#000> 양상 <colcolor=#000>원인 · 원인의 목록 · 결과
사례 사례 · 위험 국가 · 창작물 사례
기타 망국의 군주 (망국의 왕자) · 왕위 요구자
관련 개념 국가 (사라진 국가) · 국치 · 멸망 · 취약국가지수 · 파탄국가
}}}}}}}}} ||

[1] 정말로 본인이 어리석은 암군이라서 나라를 말아먹은 경우도 존재하지만, 왕위에 올랐을 때는 이미 나라가 돌이킬 수 없는 막장 테크를 타고 있어서 뭘 어떻게 해보기도 전에 멸망해버린 경우도 상당수 존재하기 때문. 이런 경우 때문에 망국의 군주 모두를 암군이라 칭하기가 상당히 애매해진다.[2] 즉 반란군이든 사실상 반역한 권신이든 외적이든 멸망의 원흉을 제거[3] 등애는 유선이 항복한 이후로도 촉을 정비하면 이 기세로 오나라까지 점령할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4] 다만 경순왕은 후백제에게 전투에서 졌을지언정 휘둘리지는 않았다.[5] 견훤이 후계자 문제로 아들 신검한테 실각당한 이후[6] 일본의 왕은 엄연히 천황이었다. 하지만 천황은 고대 후 지금까지 워낙 허수아비라서 실질적인 일본의 왕은 막부의 장군(쇼군)이나 다름없었다.[7] 예를 들자면 후한 환제영제, 고려우왕, 명나라만력제 등이 있다. 다만 자히르 샤의 경우는 딱히 전대의 실책 때문이 아니라 갑작스러운 쿠데타로 쫓겨났고, 이후 나지불라의 독재 및 탈레반의 만행으로 나라가 왕정복고도 못할 정도로 망가진 것이다.[8] 대표적으로 잘랄 웃 딘 밍부르누, 한국에서는 딱히 유명하지 않지만 세계 최강이었던 칭기즈칸이 이끄는 몽골군을 파르완 전투에서 세계 최초로 승리, 그것도 궤멸에 가깝게 몰아붙인 엄청난 스펙의 군주이다. 물론 이번 전투로 빡친 칭기즈칸에게 털털 털리고 인도로 겨우 도망쳤으나 델리 술탄 왕조의 도움을 받아 다시 준비해 여러 지역을 점령해 개판이 된 호라즘을 어느정도 살리나 보았지만 결국 암살당한다.[9] 고종은 병합 이후에도 극비리에 항일운동을 하고 있었다. 직속정보기관 익문사를 이용해 독립운동 자금을 지원하고 순종에게 상황을 알렸으며 병합 이후 여러번 망명을 시도하였고 순조로웠던 8번째 망명 시도 중 당시 파리에서 열리던 평화회의에 고종이 특사를 보내려고 하자 일제가 이를 눈치챘고 얼마 지나지 않아 건강하던 황제는 갑자기 승하하였다.[10] 예루살렘 왕위를 잃은 후에도 키프로스 왕국은 계속 지배할 수 있었다.[11] 그 당시 신성 로마 제국은 이미 하나의 국가라기 보다는, 여러 나라들의 연합에 가까운 상태였으며, 신성 로마 제국 내에서 프란츠 2세가 실질적으로 지배하던 영지들은 재국 해체 후에도 계속 지배할 수 있어서 큰 타격은 없었다.[12] 실권을 가졌던 마지막 황제이다. 조상 정권은 황제가 없으면 유지될 수 없었기에 표면상으로나마 황제의 실권을 인정했다.[13] 소방지가 황제로 오른 당시에는 이미 진패선이 권력을 잡고 있었기 때문에 소방지는 그의 밑에서 아무것도 하지 못하다가 결국 폐위되었다.[14] 중국사 최악의 폭군 수양제가 망국의 군주라고 생각하는 경우가 많은데, 공식적으로는 수양제 축출 이후 잠시나마 배후 세력에 의해 황제 직위를 가지고 있었다. 물론 망국의 책임은 전적으로 수양제한테 있다.[15] 몽골과의 전쟁에서 애종이 나름 10년동안 몽골에게 선전하면서 맞섰으나 삼봉산 전투에서 금나라가 몽골에게 결정적인 패배를 당하고 그 여파로 수도 개봉부가 함락되었고 피난 끝에 임시수도인 채주에서 몽골과 남송 연합군에 의해 포위가 되어 더 이상 도망칠 곳이 없자 같은 완안씨 황족이자 자신의 친위대장인 완안승린에게 양위하면서 채주를 탈출해 금나라를 재건하라고 명령한 후 자결한다. 다음날에 완안승린은 채주를 탈출하려고 했으나 애석하게도 그 순간에 채주가 함락되며 성안에 몰려드는 몽골군을 벗어나지 못하여 난전 끝에 전사했다. 결국 금나라는 120년만에 멸망했다.[16] 선통제와 동일인물이며, 일제가 옹립한 허수아비 황제라서 국제적으로 인정받지 못했다.[17] 레러이가 이끄는 반명 저항군에 의해 황제로 추대되었으나, 진짜 쩐씨 황족인지는 알 수 없다.[18] 대우(다이응우)라는 국호를 사용했다.[19] 예언자 호세아와는 동명이인이다.[20] 분류하기에 따라 서아시아로도, 동유럽으로도 분류된다.[21] 아시아어원이 된 지역이지만, 역사적, 문화적으로는 남유럽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22] 동로마가 최후의 로마 제국이므로, 동로마의 마지막 황제인 동시에 최후의 로마 황제다.[23] 일반적으로 로물루스 아우구스툴루스를 서로마의 마지막 황제로 간주하지만, 로물루스를 옹립한 오레스테스에 의해 축출된 이후에도 황제를 칭하고 있었고, 달마티아에서 서로마 부흥 세력을 이끈 율리우스 네포스를 마지막 황제라 보는 시각도 있다.[24] 4차 십자군 이후에 수립된 십자군 국가[25] 트라페준타와 이피로스는 4차 십자군 직후에 동로마계 유민들이 수립했으나, 콘스탄티노폴리스를 탈환하고 제국을 재건하는데 실패했고, 모레아는 재건된 동로마의 번국으로 수립되었고 제국 멸망 이후에도 존속했으나 제국 재건에 실패했기에, 이 나라들의 멸망은 일반적으로는 로마 제국 멸망으로 간주되진 않는다. 다만 동로마 멸망 이후에도 존속한 최후의 로마계 국가라는 의의는 있다.[26] 지금의 세르비아, 몬테네그로, 크로아티아, 슬로베니아,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 북마케도니아[27] 나치 독일이탈리아 왕국괴뢰국이었다.[28] 이반 시슈만과 이반 스라치미르는 제위 계승권을 놓고 내전을 벌이다 둘다 오스만 제국에 의해 멸망했고, 콘스탄틴 아센 2세는 불가리아 잔존 세력을 이끌었으나 결국 실패했다.[29] 갈리아에 위치했던 서로마잔존국인데, 수아송 왕국이라는 명칭은 어디까지나 통칭일 뿐 당대에 그렇게 불리진 않았다.[30] 제1제국과 제2제국은 둘다 창업군주의 대에 망해서, 창업군주가 곧 망국의 군주가 되었다.[31] 아버지로부터 양위받긴 했으나, 정식으로 즉위하지는 못했다.[32] 나폴레옹의 강요에 의해 제국을 해체하긴 했으나, 그 전에 이미 오스트리아 제국이라는 보험을 만들어둔 상태였으며, 합스부르크 가문의 실질적인 영토는 오스트리아 제국령이었으므로 직접적인 타격은 적었다. 또한 제국 해체 이후 10년도 지나지 않은 시점에 나폴레옹을 역으로 망국의 군주로 만들어 오지유배 보냄으로써 복수에 성공하여 최후의 승자가 되었다.[33] 오스트리아의 마지막 군주인 동시에 헝가리체코(보헤미아 왕국)의 마지막 군주이기도 하다.[34] 독일 황제 겸 프로이센 국왕 빌헬름 2세와는 동명이인인데 같은 시대에 군주로 재위하다가 독일 11월 혁명으로 인해 함께 폐위되었다.[35] 아케메네스 왕조에게 정복당하기 이전의 마지막 토착 이집트인 왕조[36] 이집트 최후의 토착민 혈통 왕조[37] 고대 이집트 최후의 왕조[38] 맘루크 술탄이 옹립한 허수아비 칼리파 왕조[39] 실질적인 이집트의 마지막 군주[40] 첫번째는 그리스 제2공화국 수립으로 인한 망명이고, 두번째는 추축국그리스 침공으로 인한 망명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