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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 | 팔미라어 | 𐡡𐡶𐡦𐡡𐡩(Bat-Zabbai)[1] |
고전 그리스어 | Ζηνοβία | |
라틴어 | Zenobia | |
아랍어 | زنوبيا(Zanubiya) | |
생몰년도 | 240년경~274년 이후 | |
지위 | 팔미라의 왕후 | 260년~267년 |
팔미라의 섭정 왕태후 | 267년~272년 | |
이집트의 여왕 | 270년~272년 | |
팔미라의 공동 여제 | 272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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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팔미라 제국의 여성 통치자.제노비아 여왕이라는 호칭이 유명하고, 사실상의 단독 통치자였지만, 공식적으로는 아들의 섭정이라는 직위로 통치했고 통치 막바지 짧게나마 아들 바발라투스와 공동으로 로마 황제[2]를 칭했다.[3] 270년에 팔미라군이 아이깁투스(로마 속주 이집트)를 빼앗았을 때는 평소 프톨레마이오스 왕조의 클레오파트라 7세에 심취했던 제노비아가 이집트의 여왕 칭호를 가졌다. 그래서 섭정, 여왕, 여제 등 다양한 칭호를 보유했다.
《로마 제국 쇠망사》의 묘사에 따르면 제노비아는 피부색이 구릿빛이었으며, 치아는 진주와 같이 희고, 커다란 검은 눈은 반짝 빛났으며, 목소리는 맑고, 힘은 강했으며, 껴안고 싶어지는 상냥함을 가진 오리엔트에서 가장 아름답고 고귀한 여성이었다고 한다.
《히스토리아 아우구스타》에 따르면 제노비아는 아름다웠지만 남성적이었다고 한다. 여성용이 아닌 남자 황제의 복장을 입었고, 시녀 대신 환관이 시중을 들었다고 한다. 그리고 직접 말을 타서 필렌툼(귀부인용 마차)은 드물게 탔고, 병사들과 함께 행군을 했으며, 취미로 사냥을 즐겼다고 한다.
2. 생애
팔미라의 사막 호족의 딸로 태어나 수렵에 능숙했고, 도시에서 여러 국가의 언어를 배웠으며, 고전을 배우는 동안 클레오파트라 7세에 심취하여 자신을 클레오파트라 7세의 후손이라고 믿었다. 팔미라를 통치하면서 신플라톤 학파의 학자인 롱기노스를 재상직에 두어 플라톤과 호메로스에 정통했다.그녀의 남편은 팔미라 출신의 오다에나투스(Odaenathus)였다. 그는 사산 왕조의 황제였던 샤푸르 1세에게 로마 제국의 황제인 발레리아누스가 생포되어 로마 제국이 혼란에 빠졌을 당시, 샤푸르 1세를 기습하여 그를 도망가게 만들어 로마 황제로부터 동방 총독의 직위를 받았을 만큼 유능하고 기민한 인물이었다. 하지만 오다에나투스가 조카 또는 사촌인 마에오니우스(Maeonius)에게 암살된 후, 마에오니우스의 궁정 쿠데타를 제압한 제노비아가 오다에나투스와의 사이에서 낳은 아들 바발라투스(Vaballathus)를 팔미라의 왕중왕으로 앉히고 자신은 섭정으로서 실권을 잡았다. 오다에나투스가 암살될 때, 첫째 아들이었던 하이란 1세도 같이 죽었는데, 그는 오다에나투스의 전처의 아들이었다. 그때문에 제노비아가 자신의 아들인 바발라투스를 왕중왕으로 내세워 권력을 얻기 위해 마에오니우스를 부추겼다는 설도 있다.
당시, 팔미라의 종주국이었던 로마 제국은 군인 황제들의 난립과 잇따른 내전으로 인해 서방인 브리타니아와 갈리아, 히스파니아에 걸쳐 갈리아 제국이라는 지방정권이 들어섰을 만큼 어지러운 상황이었다. 이 틈을 노려 제노비아는 중계무역을 통해 벌어들인 돈을 투자하고, 군사력을 증강하여 아나톨리아와 이집트까지 점령해 팔미라를 동방의 강대국으로 만들었다. 제노비아 자신은 '아우구스투스'의 여성형 칭호인 '아우구스타'를 자칭하고, 아들 바발라투스에겐 아우구스타의 남성형인 '아우구스투스' 칭호를 내려줬는데, 이는 로마 황제의 칭호였다.
바발라투스의 주화와는 별개로 주조된, 제노비아가 단독으로 묘사된 주화. 앞면에는 제노비아의 얼굴과 함께 'S ZЄNOBIA AVG'라는 문구가 새겨져 있는데 이는 '셉티미아 제노비아 아우구스타'(Septimia Zenobia Augusta)라는 뜻이다. 뒷면에는 신들의 여왕 유노(헤라)가 나타나 있다.
팔미라를 정복하러 온 로마군을 몇 번이나 격파하고, 유럽으로 쫓아보냈을 정도로 군사적인 능력도 걸출했다. 물론 직접적인 군사 지휘는 그녀가 아니라 자브다스(Zabdas)라는 장군이 맡아서 했다. 하지만 유능한 인물을 알맞는 자리에 배치하는 것도 통치자의 능력이다. 더구나 악티움 해전에 참가했다가, 바로 겁을 먹고 도망가버린 클레오파트라 7세와 비교하면 훨씬 용감했다. 에드워드 기번의 《로마 제국 쇠망사》에 의하면, 당시 팔미라의 군대는 기수와 말이 모두 갑옷을 입은 중장기병과 가볍게 무장을 한 상태로 활을 쏘는 보병으로 이루어져 있었다고 한다. 팔미라의 기병대는 동시대에 활약했던 사산 왕조의 중무장 기병인 카타프락토이와 유사했던 모양이다.
그러나 서기 272년, 로마 재통합 전쟁이 시작되고, 장군 출신으로 로마 황제가 된 아우렐리아누스가 대군을 이끌고 쳐들어왔다. 팔미라의 군대는 결사적으로 항전했지만 참패를 거듭하고 끝내 팔미라까지 함락되었다. 그렇게 팔미라는 로마군에게 철저하게 파괴당해 폐허로 전락하고 만다. 자세한 내용은 알려져 있지 않으나 팔미라에 있는 벨 신전에서 저명한 원로원 의원이자 벨 신전의 최고 제사장이었던 셉티미우스 하두단(Septimius Haddudan)이라는 인물이 아우렐리아누스 카이사르에게 협력했다는 기록이 발견된 것으로 보아 팔미라 내부의 고위층에서도 제노비아의 세력에 반대하여 로마에 협력하는 세력도 있었음이 밝혀지기도 했다.
제노비아 본인은 로마군에게 포로로 사로잡혀 로마로 압송된 후 아우렐리아누스의 개선식에서 사슬로 묶인 채 행진하는 일종의 조리돌림을 당했다. 이후 그녀의 행적은 확실하게 알려지지 않았는데 죽었다는 말도 있고, 그녀와 그녀의 딸들이 로마 원로원의 귀족과 결혼해서 오랫동안 잘 살았다는 말도 있다. 제노비아가 처형당했다는 기록보다 살아 남았다는 기록이 더 많고, 개선식에 끌려 온 포로의 목숨은 살려주는 게 일반적인 로마 풍습이라[4] 개선식 후 살아남아 로마에서 여생을 보냈다는 의견이 주류다. 제노비아가 로마에서 살던 집이 이후 관광지가 되었다는 기록도 있다.
그녀의 고향인 시리아에서는 역사적인 위인으로 상당한 인기를 누리고 있는데, 과거 시리아 파운드 지폐의 도안에 그녀의 초상이 사용되었을 정도다.
3. 대중매체
- 제노비아의 생애를 다룬 역사소설로 비트리스 스몰(Bertrice Small)의 《제노비아》(원제: Beloved)가 있다.[5]
- 《역사를 만든 여왕 리더십 시리즈》 12권이 제노비아 편이다.
- <도미네이션즈>에서 제노비아 여왕의 목걸이 유물과 협의회 고문관으로 등장한다.
- <Fate/Grand Order>에서 4성 아처 서번트로 등장한다. 제노비아(Fate 시리즈) 문서 참조.
[1] 𐡦𐡡𐡩(Zabbai)의 딸이라는 뜻이다. 제노비아의 진짜 이름은 알려지지 않았다.[2] 아우구스투스와 아우구스타.[3] 왕중왕 칭호와 로마 황제 칭호 모두 한국어로 황제로 번역되기 때문에, 왜 황제가 또 황제가 되는지 헷갈릴 수 있다.[4] 베르킨게토릭스 처럼 개선식에서 조리돌림을 당한 후 결국 처형당한 포로도 있긴 하지만, 이런 일은 예외적이었다. 클레오파트라의 자식들 또한 살려두기엔 너무 위험했던 카이사리온을 빼고는 개선식에 끌려와 모욕을 당하긴 했어도 죽지 않았다.(다만 그 중 하나가 로마에 당도하기도 전에 요절했다.)[5] 다만 이 소설은 1997년 작품이라 국내에서는 완전히 절판되었으며, 인터넷 중고서점이나 헌책방에 가서야 구할 수 있다. 또한 소설 중간중간에 묘사되는 성애 묘사가 꽤나 선정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