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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키포로스 왕조 Νικηφορική δυναστεία | ||
802년~813년 | ||
성씨 | 니키포로스 | |
창건자 | 니키포로스 1세 (802~811) | |
주요 황제 | 니키포로스 1세 | |
로마 제국의 왕조 | ||
이사브리아 왕조 | 아모리아 왕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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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동로마 제국의 세습왕조. 802년부터 813년까지 11년간 제국을 통치했다. 사실상 니키포로스 1세 개인의 왕조라고 할 수 있는데, 왕조를 개창한 그가 죽고 불과 2년만에 허망하게 무너져버렸기 때문이다. 니키포로스는 유능한 군인이자 정치가로 내치와 외정에서 성과를 거뒀고, 후계자도 준비되어 있었기에 좀더 오래 갈만 했다. 그러나 니키포로스가 불가리아와의 전쟁에서 불행히 전사하였고, 후계자들도 극도로 불운한 상황을 극복하지 못해서 왕조가 일찍 끝났다.2. 역사
- 자세한 내용은 각 황제의 개별 항목 참조
2.1. 니키포로스 1세(802~811)
선조가 아랍인으로 가산 왕국의 왕족이었다고 전해진다. 802년 샤를마뉴와의 결혼을 진지하게 고려하던 이리니를 축출한 귀족들은 재무대신으로 일하고 있던 니키포로스를 새 황제로 추대했다. 그는 즉위하자마자 수도원에 대한 세금 감면 정책을 폐지하여 상당한 재정을 확보한 뒤, 이민족을 대거 받아들여 각 테마에 배속시켰고, 711년부터 개편되기 시작한 세금 제도를 완성했다. 바르다니스 투르코스의 반란으로 위기를 맞았지만 레온과 미하일이 배신한 덕분에 성공적으로 진압했고, 이후 두 장수를 중용하여 외적과의 전쟁에 잘 써먹었다.803년 샤를마뉴와 평화 조약을 체결했지만, 그가 로마 황제를 칭하는 걸 거부했기 때문에 관계는 악화되었고, 결국 806년 조약이 파기된 후 810년까지 베네치아 전쟁이 벌어졌다. 베네치아, 이스트리아, 달마티아, 남이탈리아는 동로마 제국 편에 섰고, 로마, 라벤나, 펜타폴리스는 샤를마뉴를 지지했다. 전반적으로 우수한 해군을 갖춘 동로마 제국 측이 우세했지만, 결정적인 패배를 안기지 못했다. 805년 아바스 왕조의 칼리프 하룬 알 라시드가 "전 황제 때까지 조공을 바쳐놓고 왜 조공을 바치지 않느냐"고 따지자 거절했다. 이로 인해 806년 아랍군 10만 명이 아나톨리아 반도로 침략하면서 크게 패했고, 막대한 배상금을 지불하고 강화조약을 맺어야 했다.
809년 북부 국경지대를 약탈하는 불가리아로 쳐들어가 수도 플리스카를 공략하였다. 811년 아나톨리아의 테마 부대와 타그마 부대를 총동원해 대대적으로 쳐들어가 크룸을 2번 격파하고 플리스카를 다시 약탈했다. 크룸이 화평을 호소했지만, 이참에 불가리아를 멸망시키로 작심하고 이를 거부하고 공세를 계속 이어갔다. 그러나 811년 7월 24일, 플리스카 인근의 좁은 협곡으로 추격했다가 그만 함정에 빠져 전군이 괴멸되었고, 니키포로스 1세는 이 전투에서 전사했다. 시신은 불가르족이 수습하여 참수한 뒤 몸 부분은 승전의 상징으로 전시되었다가 버려졌고, 두개골은 은으로 도금하여 크룸의 술잔으로 사용되었다.
2.2. 니키포로스의 후계자들
811년 플리스카 전투에서 동로마군이 참담한 패배를 당했을 때, 부친과 함께 출진했던 스타브라키오스는 가까스로 목숨만 건져 빠져나왔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척추가 골절되고 다리가 부러지는 치명적인 부상을 입었다. 콘스탄티노폴리스로 돌아온 후 황제로 선포되었지만, 부상이 워낙 심각해 오래 살 수 없다는 게 분명해졌다. 콘스탄티노플 시민들은 국가 비상 사태를 극복할 적임자로 니키포로스 1세의 사위인 미하일 1세 랑가베스를 추대하려 했다. 여기에 미하일의 아내이자 스타브라키오스의 누나 프로코피아도 스타브라키오스를 설득했지만, 그는 듣지 않았다. 어떤 이유에서인지는 알 수 없지만, 그는 미하일을 매우 싫어했고 오히려 자기 아내인 테오파노를 후계자로 지명하려 했다. 그러나 죽어가는 황제가 동의하지도 않고 알지도 못하는 사이, 811년 10월 2일에 마하일 1세 랑가베스가 황제가 되었다. 스타브라키오스는 수도원에 보내졌고, 석달 만에 죽었다.미하일 1세 랑가베스는 전임 황제 니키포로스에 의해 제정된 과중한 세금 제도를 폐지하고 감세 정책을 실시했다. 또한 군대, 관료, 교회에 돈을 관대하게 나눠줬다. 그리고 샤를마뉴를 프랑크인의 황제로 인정하여 베네치아 전쟁을 종식하였다. 812년 11월 크룸이 메셈브리아를 함락하자, 군대를 이끌고 출진했다. 813년 6월 아드리아노폴리스 인근에서 양군이 맞붙었다. 그런데 전투 도중 레온이 이끌던 우익 부대가 독단적으로 도주하여 동로마 진영이 무너졌고, 불가르군이 이 틈을 타 공격하는 바람에 패배했다. 미하일은 수도로 복귀한 뒤 여론의 악화를 직감하고 아내 프로코피아의 강력한 반대를 뿌리치고 레온에게 양위한 후 수도원에 들어갔다. 844년 1월 11일 73세의 나이로 사망했다.
레온 5세는 황위를 쟁취한 뒤 크룸과의 전쟁을 이어가다가 크룸이 죽은 후 그의 아들 오무르타그와 20년간의 휴전 협약을 체결했다. 당시 아바스 왕조 역시 하룬 알 라시드 사후 벌어진 4차 피트나로 인해 수도 바그다드가 파괴되는 등의 혼란상을 겪어서 동로마 제국을 건드리지 못 했다. 이리하여 모든 전선이 안정된 평화의 시기가 도래하자, 레온 5세는 이 기회를 틈타 성상 파괴 운동을 재개했다. 다만 자신을 지나치게 비난한 자 외에는 성상 옹호론자들을 탄압하지 않았다. 그러던 820년 12월 25일 성찬예배에 참례하던 중 참살당했고, 미하일 2세가 뒤를 이어 황위에 오르면서 아모리아 왕조를 개창했다.
3. 역대 황제
대수 | 이름 | 재위 기간 |
1대 | 니키포로스 1세 | 802년 10월 31일 ~ 811년 7월 26일 |
2대 | 스타브라키오스 | 811년 7월 26일 ~ 811년 10월 2일 |
3대 | 미하일 1세 랑가베스 | 811년 10월 2일 ~ 813년 7월 11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