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 제국 제78대 황제 니키포로스 Νικηφόρος | |
<colbgcolor=#9F0807><colcolor=#FCE774,#FCE774> 이름 | 니키포로스 (Νικηφόρος) |
출생 | 미상 |
동로마 제국 | |
사망 | 미상 |
동로마 제국 | |
재위 기간 | 로마 황제 |
741년 2월 ~ 743년 11월 2일 (2년) | |
전임자 | 아르타바스도스 |
후임자 | 콘스탄티노스 5세 |
부모 | 아버지 : 아르타바스도스 |
종교 | 기독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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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동로마 제국의 황제. 741년 콘스탄티노스 5세를 축출하고 황위에 오른 아버지 아르타바스도스에 의해 공동 황제에 올랐지만 743년 콘스탄티노스 5세가 복위한 뒤 아버지와 함께 폐위되었다.2. 생애
레온 3세의 황위 등극에 기여한 뒤 트라키아의 스트라테고스로 선임되는 등 두터운 신뢰를 받았던 아르타바스도스와 레온 3세의 장녀인 안나의 차남이다. 형으로 니키타스가 있었다.[1] 741년 6월 아버지가 레온 3세의 장남 콘스탄티노스 5세를 축출하고 황위에 오른 뒤 공동 황제에 등극했다.그러나 743년 5월 아나톨리아에서 지지자들을 끌어모은 콘스탄티노스 5세가 반격하여 사르디스에서 아르타바스도스의 군대를 격파하고 니키타스를 생포했다. 이후 콘스탄티노스는 11월 2일 바르다네스 해협을 넘어 콘스탄티노폴리스를 포위 공격한 끝에 수도에 입성했다. 아르타바스도스와 두 아들 니키타스, 니키포로스는 공개적으로 실명형에 처해지고 콘스탄티노플 외곽의 초라한 수도원으로 유폐되었다.
참회자 테오파네스에 따르면, 콘스탄티노스 5세는 아르타바스도스의 난을 진압한 지 30년이 지난 후에도 원한을 여전히 풀지 못했다고 한다. 그는 자신의 여동생이자 아르타바스도스의 아내인 안나에게 아르타바스도스의 유골을 파헤쳐서 그녀의 망토에 넣어서 처형된 범죄자들의 시체가 있는 펠라기우스의 무덤에 던지도록 강요했다고 한다. 아르타바스도스 일가가 언제 죽었는지는 기록이 미비해 알 수 없다.
[1] 나중에 아르타바스도스가 황제에 오른 뒤 니키타스가 아닌 니키포로스를 공동 황제로 세운 것을 볼 때 니키타스의 어머니는 안나가 아니라 신분이 낮은 여인이었을 가능성이 있으나 불확실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