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3-12-22 14:39:18

콘스탄티노스 레카피노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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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 제국 제92대 황제
콘스탄티노스 레카피노스
Κωνσταντῖνος Λακαπηνός
파일:117_-_Constantine_Lekapenos_(Mutinensis_-_color).png
<colbgcolor=#9F0807><colcolor=#FCE774,#FCE774> 이름 콘스탄티노스 레카피노스
(Κωνσταντῖνος Λακαπηνός)
출생 미상
동로마 제국
사망 946년 ~ 948년 사이
동로마 제국
재위 기간 로마 황제
924년 12월 25일 ~ 945년 1월 27일 (21년)
공동황제 로마노스 1세
콘스탄티노스 7세
부모 아버지 : 로마노스 1세
어머니 : 테오도라
배우자 엘레니
자녀 로마노스 레카피노스
종교 기독교
1. 개요2. 생애

[clearfix]

1. 개요

동로마 제국의 황제. 924년 아버지 로마노스 1세에 의해 공동 황제가 되었으나 945년 1월 27일에 폐위되었다.

2. 생애

로마노스 1세테오도라의 삼남이다. 형제로 흐리스토포로스 레카피노스, 스테파노스 레카피노스, 테오필라크토스 레카피노스가 있었고, 누이로 엘레니 레카피니, 아가타 레카피니가 있었다. 919년 봄 딸 엘레니를 콘스탄티노스 7세와 결혼시킨 로마노스 1세는 920년 12월 공동 황제가 되었다. 그 후 921년 1월 6일 아내 테오도라를 아우구스타로 승격시키고 그해 5월 20일 흐리스토포로스를 공동 황제로 즉위시켰다. 그 후 924년 12월 25일, 그는 스테파노스와 함께 공동 황제로 즉위했다.

931년 흐리스토포로스가 사망한 뒤, 스테파노스와 콘스탄티노스 형제는 레카피노스 가문의 미래를 책임졌다. 939년, 스테파노스는 파트리키오스 직책을 역임하던 아르메니아 출신의 아드리아노스의 딸 엘레니와 결혼했다. 엘레니는 940년경에 사망했고, 두 번째 부인 테오파노 마마스와 재혼했다. 아들 로마노스를 두었으나, 두 아내 중 누구의 자식인지는 기록이 미비해 알 수 없으며, 이 아이의 행적 역시 알 수 없다.

943년 로마노스 1세가 콘스탄티노스 7세의 아들인 로마노스 2세요안니스 쿠르쿠아스의 딸인 에우프로시나와 결혼시키려 했다. 이에 스테파노스와 콘스탄티노스 형제는 그렇게 할 경우 콘스탄티노스 7세가 명장 쿠르쿠아스를 등에 업고 자신들을 능가할 거라 여겨 결사적으로 반대해 이를 무마시켰다. 이후 944년 가을에 노쇠하여 판단력이 흐려진 아버지를 현혹해 요안니스 쿠르쿠아스를 해임시켰다.

로마노스 1세는 판단력이 흐려지긴 했지만 방탕하고 부도덕한 짓을 서슴지 않는 스테파노스와 콘스탄티노스가 권력을 거머쥐면 제국을 망칠 것임을 직감했다. 이에 따라 사위 콘스탄티노스 7세가 두 아들보다 선임 황제임을 분명히 못박는 내용의 유언장을 공개하기로 했다. 이 정보를 입수한 스테파노스와 콘스탄티노스는 이를 막기로 했다. 944년 12월 20일, 두 형제는 추종자들을 거느리고 황궁으로 들이닥쳐 병상에 누워있던 황제를 끌어내 부콜레온궁 옆의 작은 항구로 끌고 갔다. 로마노스는 작은 배에 태워져 프란키포 섬에서 가장 가까운 프로티의 수도원으로 끌려갔다. 그는 그곳에서 삭발을 당하고 수도 서원을 해야 했다.

레카피노스 형제는 이제 콘스탄티노스 7세를 처리하려 했다. 그러나 그 사이에 로마노스 1세가 폐위되었고 콘스탄티노스 7세의 목숨이 위태롭다는 소문이 콘스탄티노폴리스 전역에 퍼졌다. 군중은 이에 분노하여 궁전 앞으로 몰려들어 콘스탄티노스 7세를 보게 해달라고 요구했다. 크레모나의 리우프란트에 따르면, 수도에 있던 아말피, 가에타, 로마, 프로방스의 사절들도 콘스탄티노스 7세를 지지했다고 한다. 이런 상황에서 콘스탄티노스 7세를 해치면 자신들도 무사하지 못한다는 것을 직감한 형제는 어쩔 수 없이 콘스탄티노스 7세가 무사하다는 것을 모두에게 보인 뒤 그를 선임 황제로 인정했다.

콘스탄티노스의 아내이자 로마노스의 딸인 엘레니 레카피니는 남편에게 기회를 놓치지 말라고 촉구했다. 콘스탄티노스는 아내의 설득에 마침내 결단을 내리고 945년 1월 27일 레카피노스 형제를 체포해 로마노스 1세가 끌려갔던 프로티 수도원으로 보냈다. 리우트프란트는 로마노스가 두 아들들을 맞이하는 장면을 다음과 같이 묘사했다.
아들들이 도착했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로마노스는 하느님께 감사를 드리고 수도원 문 밖에서 그들을 반갑게 맞이했다. 그는 아들들에게 이렇게 말했다.
"너희가 내 초라한 거처에 와주니 행복하다. 나를 궁에서 내몬 그 효심이 이제 너희를 궁에 머물지 못하게 하였구나. 너희가 나를 미리 이곳으로 보낸 것이 얼마나 다행이더냐. 이곳의 동료 수도자들과 동료 병사들은 그리스도 안에서 하루하루를 영적인 일로 보내고 있으니, 황궁의 예법에 익숙한 내가 말해주지 않으면 황제를 어떻게 대우해야 하는지도 모를 게다. 고트족의 눈보다도 차가운 너희를 위해 여기 물을 데워 놓았다. 부드러운 콩, 온갖 종류의 야채, 갓 뜯은 리크도 있다. 저 생선 장수들이 파는 맛난 것들 가운데는 질병을 일으키는 게 전혀 없다. 여기 우리가 가진 병은 주로 단식을 자주 한 탓에 생기는 거란다. 우리의 소박한 거처는 많은 사람이나 뚱뚱한 사람을 수용할 수 없지만, 이 늙은 아버지를 버리지 않고 찾아와 준 너희가 머물기에는 충분하지."

얼마 후, 콘스탄티노스 7세는 레카피노스 부자가 한 자리에 함께 있으면 나중에 무슨 일을 꾸밀지도 모른다고 판단하고 스테파노스와 콘스탄티노스를 다른 곳으로 보냈다. 콘스탄티노스는 테네도스로 이송된 뒤 다시 사모트라케 섬으로 옮겨졌다. 946년경 간수를 살해하고 섬을 탈출하려 했다가 경비병들의 칼을 맞고 죽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