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름 | 리비아 오레스틸라/코르넬리아 오레스틸라 (Livia Orestilla/Cornelia Orestilla) |
출생 | 미상 |
사망 | 미상 |
배우자 | 가이우스 칼푸르니우스 피소 (37년 결혼 / 37년 이혼) |
칼리굴라 (37년 결혼 / 37년 이혼) | |
아버지 | 푸블리우스 코르넬리우스 스키피오 오레스티누스 |
조부 | 푸블리우스 코르넬리우스 스키피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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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로마 제국 율리우스-클라우디우스 왕조의 아우구스타. 로마 황제 칼리굴라의 첫번째 황후.2. 생애
<라틴어 비문 모음(Corpus Inscriptionum Latinarum)>에 기재된 비문에 따르면, 조부 푸블리우스 코르넬리우스 스키피오는 기원전 16년 집정관 푸블리우스 코르넬리우스 스키피오의 아들로, 서기 7년에 법무관을 역임하고 모종의 속주에서 총독을 맡았다. 그리고 아버지 푸블리우스 코르넬리우스 스키피오 오레스티누스는 대대장 및 사제단의 일원을 맡았다. 로널드 사임은 오레스티누스가 기원전 서기 2년 집정관이며 렌툴루스 가문에서 스키피오 가문으로 입양되었던 푸블리우스 코르넬리우스 렌툴루스 스키피오의 아들이라고 주장했지만, 현재 학계에서는 신빙성이 떨어진다고 본다.코르넬리우스 가문 출신이니 '코르넬리아'가 맞는 표현이지만, 수에토니우스는 '리비아'라고 지칭했고 후대의 역사가 디오 카시우스는 '코르넬리아'라고 지칭하는 등 역사서 마다 이름이 다르게 일컬어졌다. 이에 대해 프랑스 계보학자이자 역사가인 크리스티안 세티파니는 그녀의 어머니가 아우구스투스의 아내이자 로마 제국의 초대 황후 리비아 드루실라가 속한 리비우스 가문의 일원인 '리비아'였으며, 어머니의 신분이 좀더 높게 평가되었기에 그녀가 리비아로 불렸을 것이라고 추정했다.
서기 37년, 그녀는 가이우스 칼푸르니우스 피소[1]와 결혼했다. 그러나 칼리굴라 황제가 피소에게 강력한 압력을 행사해 그녀와 이혼하게 했다. 수에토니우스와 디오 카시우스에 따르면, 이 일은 피소와 그녀의 결혼 축하 행사가 치러진 직후에 벌어졌다고 한다. 또한 수에토니우스에 따르면, 칼리굴라는 고대 로마의 건국자 로물루스가 사비니족 유부녀를 납치해서 아내로 삼은 일과 아우구스투스가 티베리우스 클라우디우스 네로의 아내였던 리비아를 자기 아내로 삼은 일을 들먹이며 자신의 행위를 정당화했다고 한다.
그러나 칼리굴라는 강제 결혼 며칠 만에 오레스틸라와 이혼했는데, 사유는 알려지지 않았다. 그러면서도 그녀가 피소와 재결합하는 것을 허락하지 않았다. 2달(디오 카시우스) 또는 몇 년 후(수에토니우스), 그녀는 피소와 비밀리에 관계를 맺었다는 트집을 잡혀 간통 혐의로 먼 섬으로 추방되었다. 피소는 1년 후 칼리굴라 암살 사건이 벌어진 뒤 클라우디우스 1세에게 사면되어 로마로 돌아왔지만, 그녀가 어찌 되었는지는 기록이 미비해 알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