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lcolor=#fff><colbgcolor=#0047a0> 자 | 무장(武章) |
본관 | 아산 장씨[1] |
출생 | 1870년 5월 9일 |
경상도 장기현 서면 죽곡동 (현 경상북도 포항시 남구 장기면 죽정리) | |
사망 | 1929년 1월 26일[2] |
경상북도 영일군 | |
묘소 | 국립대전현충원 독립유공자 2묘역-65호 |
상훈 | 건국훈장 애국장 |
[clearfix]
1. 개요
대한민국의 독립유공자. 1990년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받았다.2. 생애
장헌문은 1870년 5월 9일 경상도 장기현 서면 죽곡동(현 경상북도 포항시 남구 장기면 죽정리)에서 아버지 장도형(蔣道亨, 1844 ~ ?. 8. 16)[3]과 어머니 연일 정씨(1845 ~ ?) 정의종(鄭義宗)의 딸 사이의 2남 1녀 중 장남으로 태어났다.그는 1896년 경상북도 연일군에서 의병에 가담한 바 있으며, 1906년 5월 김재홍(金載洪), 김복선(金福善) 등과 의병을 일으키기로 결의하고 300여 명의 의병을 모아 의병장으로 추대되었다. 이후 그는 연일군을 중심으로 경주군, 청하군 죽장면, 흥해군, 청하군 등지에서 일본군과 맞섰으며, 정환직과 신돌석 의진과 연계하기도 했다.
그러나 1908년경 일본 경찰에게 체포되었고, 1908년 10월 7일 대구지방재판소에서 소위 폭동 혐의로 징역 10년형을 선고받고 옥고를 치르다 1918년 12월에 출옥했다.
출옥 후에는 영일군 자택에서 고문의 여독에 시달리다 1926년 1월 26일에 별세했다.
대한민국 정부는 1977년 장헌문에게 건국포장을 추서했고 1990년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했다. 그리고 1993년 10월 13일 당초 포항시 남구 장기면 죽정리 마두산에 안장되어 있던 그의 유해를 국립대전현충원 독립유공자 2묘역에 이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