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09-22 09:17:07

재즈 모음곡 제1번

1. 개요2. 곡의 형태3. 초연과 출판4. 그 외

1. 개요

Suite für Jazzorchester Nr.1/Suite for Jazz Orchestra no.1

소련 작곡가 드미트리 쇼스타코비치의 재즈...는 아니고 유사 재즈(Pseudo-jazz) 모음곡.

바리에테 관현악단을 위한 모음곡을 작곡한 것에서 볼 수 있듯이, 쇼스타코비치는 청년 시절 서방에서 그랬던 것처럼 소련에서도 대중적인 오락으로 유행한 보드빌 쇼나 서커스, 극장 음악에 관심과 흥미를 갖고 있던 인물이었다. 하지만 미국에서 들여온 재즈블루스의 경우에는 그다지 해당 사항이 없었는데, 그나마 해당 작곡가의 작품 목록에서 드물게 '재즈'를 표방한 곡이다.

소련 체제에서 재즈가 무작정 금지만 된 것은 아니었다. 적어도 레닌 집권기였던 소련 창업기에는 정부나 당이 대놓고 반체제적이 아닌 이상 대부분의 현대 예술을 용인해 줬기 때문에, 모스크바레닌그라드 등 대도시에서는 좀 어설프게나마 재즈 밴드나 카페, 클럽이 운영되고 있었다. 심지어 국수주의로 악명 높았던 스탈린 집권 시기에도 국립(!!) 재즈 오케스트라가 존속하고 있었고, 유명한 전쟁 가요 카츄샤도 이 악단을 위해 작곡된 곡이었다.

이 곡은 1934년에 레닌그라드에서 있었던 재즈 작품 공모전에 출품하기 위해 쓰였는데, 사실 재즈라고 부르기에는 확실히 어폐가 있는 곡이었다. 전체 합주인 코러스와 개별 연주자들의 솔로 같은 개념도 없고, 모두 악보에 쓰여진 대로만 연주해야 하기 때문에 그냥 재즈 삘만 나는 대중적인 소규모 모음곡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닌 곡이라고 할 수 있다. 이 때문인지 쇼스타코비치 자신도 생전에 이 곡에 대해 별 관심을 두지 않았다.

2. 곡의 형태

왈츠폴카, 폭스트롯 세 곡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그나마 좀 재즈 삘이 나는 곡은 마지막 폭스트롯 정도고 나머지 두 곡은 그냥 해당 장르의 음악으로 쉽게 상상할 수 있는 곡상에 쇼스타코비치 특유의 아이러니가 약간 녹아있을 뿐이다. 전곡 연주 시간도 매우 짧아서, 길어봤자 8~10분 정도다.

왈츠는 피아노와 밴조, 콘트라베이스의 리듬 위에서 약음기 끼운 트럼펫과 소프라노색소폰 연주로 제시되는 선율이 중심이 되고, 여기에 바이올린이 추가되어 곡에 좀 더 율동감을 더하고 있다. 전형적인 왈츠 곡이지만, 단조 위주로만 되어 있어서 다소 우울한 느낌이 강하다.

폴카는 트럼펫 주도의 짤막한 서주에 이어 나오는 실로폰 독주 선율이 주가 되고, 여기에 트럼펫 듀엣과 테너색소폰의 악상이 첨가되는 중간부에 이어 다시 실로폰 대신 바이올린 독주가 첫머리 선율을 연주한 뒤 끝맺는 단순한 3부 형식으로 짜여져 있다.

마지막 폭스트롯은 트럼펫과 색소폰이 전형적인 스네어드럼의 폭스트롯 리듬에 맞추어 뭔가 억지 비탄조 같은 악상을 연주하며 시작한다. 색소폰 독주와 바이올린 독주가 번갈아가며 이어진 뒤에 트롬본의 나른한 글리산도 연주를 배경으로 하와이안 기타가 특유의 이국적인 음색으로 새로운 선율을 제시한다. 다시 트럼펫과 색소폰의 첫머리 악상이 좀 확장되고 변형된 형태로 한 바탕 제시된 뒤, 트롬본과 글로켄슈필+바이올린 선율이 뒤따른다. 마지막은 첫머리 악상과 색소폰 선율이 단축된 형태로 나온 뒤 끝맺는다.

악기 편성은 색소폰 3(소프라노-알토-테너)/트럼펫 2/트롬본/밴조/하와이안 기타/피아노/스네어드럼/우드블록/서스펜디드 심벌/실로폰/글로켄슈필/바이올린/콘트라베이스. 타악기 주자는 스네어드럼~서스펜디드 심벌을 담당하는 주자 한 사람과 실로폰/글로켄슈필을 담당하는 주자 한 사람씩 두 명이 필요하다. 실로폰은 폴카에서만, 하와이안 기타는 폭스트롯에서만 쓰인다.

3. 초연과 출판

작곡된 해의 3월 24일에 레닌그라드에서 초연되었는데, 어느 밴드가 연주했는 지에 대한 자세한 정보는 없다. 쇼스타코비치도 그냥 가볍게 자기 자신을 시험한 작품으로 여겼는 지, 이후 출판도 하지 않은 채로 방치했다. 작곡자 사후 10년이 지난 1985년에야 작곡자와 친분이 있던 소련 지휘자 겐나디 로제스트벤스키가 국영 음반사 멜로디야에 첫 녹음을 취입했고, 이후 서방에도 소개되어 리카르도 샤이, 마크 엘더, 마리스 얀손스, 드미트리 키타옌코 등이 음반으로 제작했다. 악보는 소련 붕괴 후에야 쇼스타코비치 신전집을 통해 정식 간행되었다.

악보와 음반을 모두 쉽게 구할 수 있는 시점이 되었지만, 이 곡의 후속작으로 잘못 알려졌고 또 왈츠가 대박을 친 바리에테 관현악단을 위한 모음곡 만큼의 지명도는 아직 없는 상태다. 재즈라고 하기에는 완벽히 틀린 개념의 곡이고, 그렇다고 이 곡이 반영한 1920~30년대 서유럽 카바레나 나이트클럽의 퇴폐적인 분위기도 현 시점에서 그다지 신선하게 받아들여질 만한 게 아니라는 어중간한 성격 때문으로 볼 수 있다. 그리고 이런 애매함 때문에 연주와 녹음도 정통 재즈 밴드가 아니라 그냥 클래식 관현악단 단원들이 소규모 합주 형태로 행하는 경우가 많다.

4. 그 외

쇼스타코비치는 이후에도 1938년에 빅토르 크누셰비츠키가 이끌고 있던 소련 국립 재즈 오케스트라를 위해 한 번 더 재즈 모음곡을 작곡했는데, 다만 이 곡의 악보는 2차대전 와중에 분실되었기 때문에 존재가 알려져 있지 않고 있었다. 그러다가 1999년에 러시아 음악학자 마나시르 야쿠보프가 이 곡의 피아노 악보를 발견했고, 1년 뒤 영국 작곡가 제럴드 맥버니가 재즈 모음곡 1번과 당시 소련 국립 재즈 오케스트라의 악기 편성을 참고한 빅 밴드 용으로 편곡해 BBC가 주최하는 대규모 음악제인 프롬스의 마지막 밤에서 초연되었다.

하지만 이 곡 역시 즉흥 연주와 재즈 특유의 구성미가 존재하지 않는 짝퉁 재즈라는 한계를 갖고 있고, 타인의 편곡을 거친 것이라는 이유라든가 악보 입수가 아직도 곤란하다는 현실적인 문제 등으로 인해 아직도 듣보잡 신세를 면치 못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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