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10-13 17:21:55

전일방송

{{{#!wiki style="margin: -10px -10px"<tablealign=center><tablebordercolor=#ffffff,#1f2023> 파일:전일방송 로고.png전일방송
全日放送
Voice of Chonil
}}}
<colcolor=#fff> 악칭 VOC
국가
[[대한민국|]][[틀:국기|]][[틀:국기|]]
채널 구분 지상파 라디오
운영 유형 민영방송
설립 1970년 11월 10일
개국 1971년 4월 24일
폐국 1980년 11월 30일
본사 소재지 전라남도 광주시 동구 금남로1가 1번지.(전일빌딩)
방송망 동양방송 네트워크
채널 라디오 전일방송
(HLAA, AM 1224kHz)
방송품질 1채널 모노
모기업 전남일보
후신 KBS광주 2라디오
1. 개요2. 역사3. 역대 경영진
3.1. 회장3.2. 대표이사 사장
4. 여담5. 관련 문서6. 관련 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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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파일:전남일보.jpg

파일:external/jijace.com/14878419056012.jpg

파일:전일방송 로고.png

1971년 당시 전라남도 광주시(현 광주광역시)에서 개국된 광주CBS에 이어 전남에서 두 번째로 개국한 민영방송. 영문 명칭은 Voice of Chonil[1]로, 줄여서 VOC[2]라고 하였다. 당시의 연주소는 전라남도 광주시 동구 금남로1가 1번지. 현재 국립아시아문화전당[3] 바로 앞에 있는 '전일빌딩245' 건물이다.[4][5]

2. 역사

광주지역 일간지인 전남일보[6]를 모체로 하여 설립되었으며 1970년 11월 10일 체신부로부터 라디오무선국 가허가를 받았다. 전남일보는 1971년 4월 24일을 개국 목표일로 잡아[7] 개국준비위원장에 김종태 전무이사를 앉히고 개국준비팀을 구성, 이 과정에서 총무부장에 남상용, 기술부장 및 송신소장에 체신부 광주전파감시국 직원이던 배영수-강종렬, 편성부장에 호남텔리비전(현 광주MBC) PD 김중광, 아나운서실장에 서해방송 출신 신현민, 업무부장에 DBS 출신 배권호, 방송뉴스부장에 마삼열 등을 각각 지명해 각 부서의 요원들을 광주MBC 등 기존 언론사에서 스카웃하거나 새로 모집했고 특히 방송뉴스부는 모기업 편집국에서 우수 인력을 뽑아 구성하고 조선일보 광주지사 소속이던 윤재문과 KBS 광주방송국의 이선희 기자를 각각 스카웃했다.

장비는 미국과 일본 등지에서 송신기 도입을 타진했으나 대출력 송신기는 외국에서 특수한 경우만 제작해 주었기에 서울한진전자공업사에 20kw 송신기를 발주하고 연구소와 송신기 간 FM송수신기 역시 국내 조립품을 구해왔다. 당시 외국 전기제품 대다수가 수입금지 품목이라 기자재 도입에 애로사항이 꽃핀 탓에 배영수 기술부장이 직접 서울 장사동 전자상가를 뒤져다가 녹음시설에 AMPEX440 신형 4대 및 350 중고 2대, 국내조립 콘솔 고정용 3대, 이동용 2대, 마이크로폰 수입품 9개, 턴테이블 4대 등을 각각 도입하고 전남 광산군 비아면 도촌리 511-1번지 1만 2천평짜리 대지에 130m 안테나 공사와 송신소를 짓고 전일빌딩 7층에 연주소 및 공개홀까지 차렸다. 콜사인은 ABC(All Day Broadcasting Company), CBS(Chunil Broadcasting Company), JBC(Junil Broadcasting Company), VOC(Voice of Chunil) 중에 VOC를 택했다. 또한 캐치프레이즈도 '새롭고 알찬 전일방송'으로 하고 편성 쪽에선 제휴사인 동양방송의 오락성 짙은 프로그램을 대폭 수용하는 한편, 자체제작(로컬편성)은 동아방송식으로 시사성 및 현장성을 폭넓게 받아들이고 뉴스도 전남일보의 기동성을 수용했다.

1971년 3월 29일에는 동양방송(TBC)와 프로그램 제휴관계를 맺고 그 해 4월 16일[8]부터 시험 방송을 시작했다. 당시 3시간 분량의 시험방송용 테이프는 4월 14일 완성되었으며 이상옥 연출, 최경천-최계숙 아나운서 진행. 시험방송 당일에는 아침부터 나오도록 되어 있으나 몇 시간 동안 1220kHz에 잡음만 흘러나오다가 밤 9시 15분경 KBS 합창단이 부른 <창문을 열며>가 겨우 방송되었다. 이후 며칠 동안 진통을 겪다가 20일부터 정상 방송이 이뤄졌고, 4월 22일 TBC와 마이크로웨이브 개통 후 23일 정식 라디오무선국 허가를 받아 24일 정오부터 정규 방송을 시작하였다. 당시의 호출부호는 HLAA, 주파수는 1220kHz, 출력은 20kW였다.

당시로서는 출력이 꽤 센 편이어서 전라남도 전 지역은 물론 전라북도경상남도, 경상북도 일부 지역을 가청권으로 두었다. 심지어는 제주도충청남도, 충청북도, 경기도, 강원도에서도 수신할 수 있었다고 한다.

동양방송과 제휴관계였기 때문에 동양방송에서 제작한 방송을 재송신하기도 하였고, 지역방송의 특성을 살린 프로그램도 방송하였다. 방송 사업 외에도 전일마라톤대회, 미스전남선발대회, 호남예술제, 전일방송 대학가요제 등을 주관, 운영하기도 하였다. 특히 전일방송 대학가요제는 당시 유력 가요제전으로서 명성이 자자했다고 한다. 제1회 우승자는 김만준의 <모모>, 제2회는 김종률[9]이 부른 <소나기>, 제3회 우승자는 하성관이 부른 <빙빙빙>.

1978년 11월 23일에는 정부가 AM 라디오의 주파수 단위를 국제전기통신연합(ITU) 결의에 맞추어 10kHz에서 9kHz 단위(유럽, 아시아, 오세아니아, 아프리카 지역 한정)로 변경함에 따라 주파수를 1224kHz로 변경하였다.

그러나 12.12 군사반란으로 전두환 정권이 들어서고, 신문사의 방송사 겸업을 금지하고 1개 지역에 1개 신문사만 운영하도록 하는 언론통폐합 조치가 시행됨에 따라 1980년 11월 30일을 끝으로 역사 속으로 사라지게 된다. 동시에 전남일보는 전남매일신문과 통합하고 광주일보로 사명을 갈아야했다. 전일방송은 KBS 광주방송국(현 KBS광주방송총국)에 흡수되었으며, 해당 주파수는 KBS 광주 제2라디오로 사용되었다. 그러다가 2000년을 전후로 KBS 제2라디오가 전국적으로 FM 방송망을 구축하면서 2001년에 KBS 광주 제2라디오의 AM 방송이 종료되고 대신 KBS 제3라디오의 주파수로 변경되었다.

아무래도 폐국된지 굉장히 오랜 시간도 흐르고 지역 민영방송이어서 그런지 남아있는 녹음자료를 찾기 굉장히 힘들다. 하다못해 당시의 시보자료조차 인터넷에 올라와 있지 않다.[10]

그런데 2021년 수신 상태는 안 좋지만 방송 종료멘션이 발견되었는데[11], 한 일본인(혹은 중국계 일본인) 라디오 덕후가 수집한 자료중에 있었고 그걸 유튜브에 업로드한 것으로 보인다.


지금까지 여러분께서는
공정, 정확, 신속으로 보도사명에 완수를 기하고
불편부당한 언론으로서, 민족의 단결을 기하며,
문화계발로써 민족문화의 향상을 기하고,
민족의식의 진작으로써 통일과 부흥 과업의 촉진을 기하는
전남일보의 신조 아래 대한민국 광주에서 방송하는
민간상업방송 전일방송을 들으셨읍니다.
VOC 전일방송은 호출부호 HLAA, 주파수 1220khz, 출력 20kw로
새벽 5시부터 방송을 시작해서 다음날 새벽1시까지
매일 20시간씩 한국방송윤리위원회 윤리규정을 준수하며, 방송하고 있읍니다.
다음방송은 새벽 5시부터 보내드리겠읍니다.
안녕히 주무십시요. HLAA

이 방송사를 거친 주요 방송인으로는 김재익 아나운서(전 KBS 순천방송국장), 구양술 기자(전 호남매일신문 사장), 선정은 PD(전 KBS 전산정보실장), 김재규(金才奎) PD(전 광주영어방송 사장), 김종일 PD(전 방송위원회 광주시청자미디어센터장)[12], 오태수 PD(전 한국전통문화전당 원장) 등이 있다.

3. 역대 경영진

3.1. 회장

3.2. 대표이사 사장

  • 김남중 (1971~1975)
  • 김종태 (1975~1980)

4. 여담

파일:전일방송시민군.jpg
파일:전일방송시민군2.jpg
출처 : KBS 다큐 인사이트 영상 아카이브 '오월의 기록'

5.18 민주화운동 당시에는 후술할 헬기 사격이 발생했던 장소인 전일빌딩에 위치해 있었고, 직원들도 취재를 제대로 못하는 등 계엄군에 의한 피해를 보았다. 5월 27일 도청 진압작전 당시 일부 시민군이 저항하던 장소이기도 하다. 도청과 함께 계엄군에 의해 무력 진압됐다. 이때 전일방송 직원들이 시민군 중 일부를 전일방송 직원으로 위장시켜 체포를 면하게 했으며, 당시 전일빌딩 지하에는 시민군이 자체적으로 회수한 무기들이 보관되어 있었다.

5.18을 배경으로 한 드라마에서 전일방송이 간접적으로 등장하는데 2021년 방송한 KBS 2TV 드라마 오월의 청춘에서 하숙집 딸로 나오는 이진아가 TBC 방송국에 들어가서 라디오 PD하는 게 꿈이라고 나온다. 이 드라마의 공간적 배경으로 나오는 광주는 TBC 방송의 가청권은 아니지만 TBC 라디오의 프로그램을 방송했기 때문에 프로그램을 청취했던 것으로 추정된다.

5. 관련 문서

6. 관련 링크



[1] 개국 당시 표기법 기준. 현재의 표기법대로 하면 Voice of Jeonil이 된다.[2] 전일빌딩245 8층에 VOC 라운지가 있는데 여기서 따왔다.[3]전라남도청 건물을 기반으로 2015년에 조성된 공간.[4] 비교적 최근인 2017년에 5.18 사적지 제 28호로 지정. 5.18 당시 증언자로서의 역할을 할 수 있는 금남로의 터줏대감 건물이다. 2016년 들어서 이 건물 10층 내부에서 5.18 당시에 쏜 것으로 추정되는 탄흔이 발견됐는데 정밀 감식 결과 당시 계엄군이 헬리콥터에서 전일빌딩을 향해 총을 쐈다는 충격적인 증언과 기록이 잇달아 나오고 있다. 이것이 왜 충격적이냐면... 그 당시 전일빌딩을 최후의 보루이자 대피처로 생각하고 온 시민들이 그 자리에 있었고 계엄군이 자국 국민을 상대로 직접 총질을 했다는 것이 명백한 사실로 드러나기 때문이다.[5] 현재는 전일빌딩에 방송국이 있었다는 흔적을 찾기 어렵다. 건물 옥상에 있던 안테나가 철거됐기 때문. 그러나 5.18 당시의 영상을 보면 높은 건물에 방송용 송신 안테나가 있고 안테나 겉으로 해태제과 광고(해태 껌/해태 아이스크림)가 부착된 모습을 볼 수 있는데 이 건물이 전일빌딩이고 옥상의 안테나가 전일방송 송신 안테나였다고 한다.[6] 전남일보는 1952년 창간된 호남의 유력 일간지였으나 1980년 언론통폐합 당시 전남매일신문과 함께 해체돼 광주일보로 통합돼 재창간했다. 자세한 사항은 광주일보 항목 참조.[7] 체신부 방침상 1971년 4월 27일이 대통령 선거일이라 그 전에 하도록 했다.[8] 원래 4월 11일로 예정되었으나 송신소가 아직 완공되지 않아 15일, 16일로 각각 연기되었다.[9] 민중가요 <임을 위한 행진곡> 작곡자.[10] 그래도 전일방송 대학가요제는 앨범이 발매되고 사진자료가 있다.[11] 1977년에 녹음된 것이라고 한다.[12] 폐국 후 KBS로 배치되면서 기자로 전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