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09-29 17:42:48

전일빌딩245


5.18 사적지 목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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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일빌딩245 (舊 전일빌딩)
JEONIL BUILDING 245
파일:전일245.jpg
<colbgcolor=#ddd,#666> 주소 광주광역시 동구 금남로 245 (금남로1가 1번지)
1차 완공 1968년 12월 10일([age(1968-12-10)]주년)
최종 완공 1980년 12월 31일([age(1980-12-31)]주년)
리모델링 2020년 2월([age(2020-02-01)]주년)
층수 지상 10층 / 지하 1층
운영 매일 09:00~19:00
(문화 해설 시간 10:00~18:00)
/ 신정, 설날, 추석 휴무
설계 오무송, 조동희
건설 금광기업
소유주 광주광역시도시공사

1. 개요2. 역사
2.1. 전일빌딩 철거 논란2.2. 5.18 당시 헬기 사격 탄흔 발견2.3. 리모델링
3. 남도관광센터4. 디지털정보도서관5. 여담6. 관련 문서

파일:구전일.jpg
1996년 10월에 촬영된 전일빌딩[1]
파일:17전일.jpg
리모델링 전, 전일빌딩과 5.18 시계탑
비상계단에 그래피티가 눈에 띈다.
[2]

[clearfix]

1. 개요

광주광역시 동구 금남로에 소재한 빌딩. 전일이라는 이름은 전남일보의 약칭으로부터 유래되었다.

구 전남도청앞 민주광장 바로 건너편에 있는 건물로 과거에는 광주일보사가 전남일보 시절부터 총 37년간, 전일방송은 9년간 입주했었고 전남일보 관련된 곳을 제외한 나머지 공간에는 금융기관과 일부 기업, 기관의 사무실이 입주해 있었다. 언뜻 보면 평범한 건물로 보이지만 한국 현대사의 측면에서 보면 상당한 의미를 갖고 있는 건물이다.

2. 역사

1968년에 세워진 건물로[3] 건축가 조동희와 오무송이 설계한 이 건물은 금남로에 들어선 최초의 10층 건축물로 완공 당시부터 꽤 오랫동안 금남로에서 가장 높은 건물로 있었으며 금남로랜드마크 역할을 하기도 했다.

지어진지 50년이 넘어가는 오래된 건물치고는 규모가 매우 큰데 광주를 방문한 타지사람들 혹은 전일빌딩을 잘 모르는 사람들에게 60년대에 지어진 빌딩인 것을 알려주면 대부분 놀란다. 하지만 처음부터 지금처럼 큰 규모로 지어진 것은 아니고 현재 부지의 일부(금남로1가 1-2번지)에 지하1층, 지상7층으로 세워진게 전일빌딩의 시초이다. 이후로도 층수를 10층으로 높히고 주변 땅을 사들여 면적을 넓히는 등 4차례의 증축을 거친 후에 우리가 알고 있는 전일빌딩이 비로소 탄생한 것이다.

5.18 민주화운동 당시에는 후술할 헬기 사격이 발생했던 장소이기도 하고, 5월 27일 도청 진압작전 당시 일부 시민군이 저항하던 건물이기도 하다. 도청과 함께 계엄군에 의해 무력 진압됐다. 이때 전일방송 직원들이 시민군 중 일부를 전일방송 직원으로 위장시켜 체포를 면하게 했으며, 당시 전일빌딩 지하에는 시민군이 자체적으로 회수한 무기들이 보관되어 있었다.

파일:전일빌딩지하.jpg
(출처 : KBS 다큐 인사이트 영상 아카이브 '오월의 기록')

이 건물에서 가장 유명했던 입주 회사는 광주·전남 지역의 대표적 일간지였던 전남일보와 1971년 개국한 지역민영방송 전일방송이었다.[4] 그러나 1980년 언론통폐합 조치로 인해 당시 전남일보는 전남매일신문과 강제로 통합돼 광주일보가 됐고 전일방송KBS광주방송총국에 강제 합병되어 전일빌딩을 떠났다.

전일의 후신인 광주일보는 통폐합 뒤 광산동 78번지에 있던 구 전남매일신문 사옥을 썼다가 2년 뒤에 전일빌딩으로 되돌아왔고, 그 외에도 수많은 증권사와 은행, 주요 언론사의 광주/전남지사 사무실, 학원 등이 이 건물에 입주했고[5] 매번 선거철이 되면 후보들의 선거 사무실이 많이 입주했으나[6] 건물이 매우 노후된 상태여서 소유주인 광주도시공사에서 2013년 7월부터 지상 1층을 제외한 건물 전체를 폐쇄시켰다.

1층은 정상적으로 운영했으나 리모델링을 준비하던 2018년부터 점차 폐쇄되었다. 때문에 1층에 있던 KEB하나은행 광주지점(옛 외환은행 광주지점)이 2018년 1월 부로 국립아시아문화전당으로 임시이전했다가 2020년 재개장과 함께 돌아왔다.

2.1. 전일빌딩 철거 논란

1990년대까지만 해도 광주의 대표적인 오피스 빌딩으로 꼽혔으나, 건물의 노후화와 더불어 1997년 외환 위기를 맞아 공실이 늘어나기 시작했다. 원래 주인이던 광주일보사는 대주그룹에 인수된 후 2004년 건너편 무등빌딩으로 이전해 갔고, 맞은편에 있던 전남도청 역시 2005년 광주를 떠나 무안군 남악신도시로 이전하면서, 도심 주력 빌딩으로서의 가치를 잃게 됐다. 결국 소유주인 전일실업[7]이 채무를 변제하지 못해 경매에 넘겨졌고, 2011년 광주광역시 산하 공기업인 광주광역시도시공사가 138억원에 낙찰받았다.

전일빌딩을 소유하게 된 광주도시공사는 노후화된 건물을 철거하고 국립아시아문화전당의 주차공간으로 사용할 계획이었으나, 5.18 관련 시민단체 등에서 전일빌딩이 갖고 있는 역사적 가치 등을 이유로 철거를 반대했다. 결국 광주광역시는 철거 대신 리모델링을 추진하게 되었는데, 리모델링 과정에서 충격적인 역사적 증거들이 나타나기 시작한다.

2.2. 5.18 당시 헬기 사격 탄흔 발견

파일:전일빌딩 탄흔 1.jpg
파일:전일빌딩 탄흔 2.jpg
파일:전일빌딩 탄흔 3.jpg
파일:전일빌딩 탄흔 4.jpg
광주광역시는 리모델링 이전 안전점검 및 현장 검증 차 국립과학수사연구소에 건물에 대한 감식을 의뢰한 결과 이 건물 10층에서 총탄자국이 발견된다.[8] 5.18 이후 목격자의 증언에도 불구하고 군 당국에서는 부인하던 헬기 사격설의 증거가 확인된 것이다. 쉽게 말해 신군부가 전일빌딩으로 피신한 시민들을 상대로 헬기 안에서 전일빌딩 내부의 시민들을 향해 총을 쐈다는 이야기가 사실로 증명되는 것이다.

이 건물에서 발견된 탄흔은 10층에서만 177개에 달하며 3, 8, 9, 10층 외벽에서도 최소 55개의 탄흔이 발견됐다. 종합하면 당시 신군부는 적어도 220여발의 총탄을 전일빌딩을 향해 발사했다고 볼 수 있다.

이같은 점을 들어 광주광역시는 2017년 8월 15일 이 건물을 28번째 5.18 사적지로 지정했다.

2.3. 리모델링

파일:전일빌딩-분수대.jpg

2020년 2월 리모델링을 완료하고 같은 해 5월 11일 '전일빌딩245'라는 이름으로 새롭게 개장했다. # 245의 의미는 주소에서도 알 수 있듯 도로주소 체계에 따른 주소로 인해 부여된 번호이다. 공교롭게도 245라는 숫자는 이 빌딩에서 발견된 탄흔 갯수와도 일치한다.[9]

리모델링으로 다시 태어난 전일빌딩은 외부는 그 전과 99% 동일한 모습이지만 내부는 전처럼 사무실 용도가 아닌 시민문화시설로 사용된다.

지하 1층부터 4층까지는 시민문화공간, 5층부터 7층은 문화 콘텐츠 창작 공간, 9층과 10층은 5.18 기념 공간, 8층과 옥상은 휴게 공간으로 사용한다. 특히 옥상 공원인 '전일마루'에서는 광주의 랜드마크 중 하나인 조선대학교 본부 건물과 무등산을 제대로 조망할 수 있다. 영화도 볼 수 있다.

총탄 자국 주변에 주황색 페인트를 칠해 놓아서 건물 외벽을 자세히 보면 주황색 점들이 마구 찍혀있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계단도 리모델링했다.

3. 남도관광센터

2층에 광주와 전남의 관광을 소개하고 있으며, 광주관광 관련 상품을 팔고 있다. 광주와 전남의 관광 팜플렛을 볼 수 있다. 남도관광센터 설문지를 하면 광주의 캐릭터인 오매나 스티커를 받을 수 있다. 관련 이벤트를 하면 오매나 인형 등을 받기도 했다.

4. 디지털정보도서관

광주시립도서관 소속으로, 만화책[10]이 주로 많다.
오후 7시까지 한다. 여기에서 시간 내에 영화도 볼 수 있다.

5. 여담

  • 김기덕이 이곳에서 강연을 했으며, 화가 홍성담과 철학자 박규용이 치유의 인문학 강연을 2024년 각각 3월과 4월에 할 예정이다.
  • 카페가 있다.

6. 관련 문서


[1] 저 때가 광주 원도심의 최전성기 시절이다. 이후 1997년 외환 위기로 상권이 초토화되었고, 2000년대에 들어서는 시청도청이 차례로 이전해버리면서 도심공동화의 직격탄을 맞았다.[2] 2012년경에 누군가에 의해 그려진 것으로, 그리 오래된 것은 아니지만 전일빌딩의 특징 중 하나로 꼽혔는데 아쉽게도 리모델링을 거치면서 사라졌다.[3] 1965년에 완공됐다는 설과 1968년에 완공됐다는 설이 공존한다. 그러나 원 주인이던 광주일보사에서 낸 사사 <광주일보 사십년사(1992)>와 홈페이지 연혁에 의하면 1962년에 이전했다고 하니 그 때가 맞을 수도 있다. 심지어 문화통 보도에 따르면 1964년이라는 얘기도 있다. 정확한 사실을 확인한 결과, 1962년 이전은 전일빌딩이 있는 자리로 옮긴 것을 의미하고 현재 우리가 알고있는 전일빌딩이 착공된 것은 1964년이며, 완공된 것은 1968년으로 68년도 완공이 맞다.#[4] 5.18 민주화운동 관련 영상에서 등장하는 도청 앞 해태제과 광고판과 전파 송수신용 안테나가 바로 이 건물 옥상에 있던 전일방송 안테나였다.[5] 이 중 광주간호학원은 1969년 이 건물에 들어와 무려 43년을 이 건물에서 지냈다. 2012년에 건너편 건물로 이사를 갔다. 전일다방도 1974년부터 현재까지 자리잡고 있다. 나머지 입주기관에 대해선 이 기사 참조.[6] 이 건물에 선거 사무실을 차렸던 후보들이 본선에서 당선된 경우가 많아 광주지역 정치권에서는 이 건물을 명당처럼 취급한다고 한다.[7] 구 전남일보 법인으로서 1980년 언론통폐합 후 신문업을 광주일보에 넘기면서 업종을 바꿨다.[8] 전일빌딩 10층은 5.18 이후 현재까지 쭉 공실로 유지돼왔다. 안내원의 설명에 따르면 당시 총탄자국은 군부에서 빌딩을 통제해 대부분의 흔적을 없앴지만 10층의 해당 장소는 이전부터 이런저런 폐자재가 쌓인채로 수십년간 방치된 공실이었기 때문에 다들 신경쓰지 않았고 우연히도 이러한 검열을 피해 갈 수 있었다고 한다.[9] 5.18 민주화운동 당시 계엄군이 헬기에서 쏜 것으로 추정되는 그 때의 탄흔이다.[10] 명탐정코난 단행본 100권, 박시백의 고려사, 도라에몽 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