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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무대 尙武臺 | Sangmudae | |
<colbgcolor=#c51426><colcolor=#fff> 위치 | 전라남도 장성군 삼서면 |
기지주둔 | 대한민국 육군 |
근무지원부대 | 상무대 근무지원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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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keepall> 상무대 정문으로 들어가면 바로 보이는 오성탑 위에서 내려다보면 별모양이고, 별의 각 꼭지점에 있는 동상들은 각 학교의 병과를 상징한다.[1] |
전라남도 장성군 삼서면에 위치한 대한민국 육군의 군사교육 시설이다.
육군보병학교, 육군포병학교, 육군기계화학교, 육군화생방학교, 육군공병학교 5개 육군 병과 학교와 근무지원단, 기타 부대들로 구성되어 있으며 군사교육 시설로는 동아시아와 동남아시아를 불문하고 아시아 최대 규모를 자랑한다. 면적은 무려 1024만㎡(309만평)이며 연 교육인원은 33,000여명이다.
2. 역사
<keepall> 광주광역시에 위치했던 상무대 |
상무대(尙武臺)란 ‘무(武)를 숭상하는 배움의 터전'이라는 뜻으로, 1952년 1월, 당시 대통령인 이승만이 광주광역시 서구 치평동 일대에 위치한 보병학교, 포병학교, 통신학교 등을 상무대라고 이름 붙이면서 출범했다. 이후 기갑학교, 화학학교가 광주 상무대로 이전해왔다.
이후 전두환 정부에서 이전 지시를 내리게 된다. 다만 1989년 상무대 이전 공식 발표가 있었음에도 이전 계획은 다소 늦춰졌으며, 이에 따라 장성군에 새로운 상무대 시설이 완공되기 전까지 부대는 원래 사용하던 치평동 시설에서 머물러야 했다.
1992년 현재의 위치인 장성군 임야에 착공을 하였으며, 1994년 육군통신학교를 제외한[2] 4개 학교가 전남 장성 삼서면 일대로 이동하면서 지금의 상무대가 만들어진다. 이후 1995년 육군공병학교가 김해에서 현재의 상무대로 이전하여, 모든 부대가 이전하였다. 현재까지도 총 5개 병과학교가 상무대 내에 위치하고 있다.
3. 역할
육군의 초급간부와 병들 중 일부의 후반기 교육을 담당하며, 필요에 따라선 해군, 공군, 해병대 장병들이 위탁교육을 받는다.다른 군 중에서는 지상군이라서 임무는 좀 달라도 편제가 육군과 유사성이 높은 해병대가 가장 많은 비율로 위탁교육을 받고 있다.[3] 그 외 육군화생방학교는 해병대원 외에 해군 수병들도 위탁교육을 오고 심지어 공군에서도 위탁교육을 온다. 육군공병학교는 군무원반이 있어 민간인 신분인 군무원들도 볼 수 있다.
4. 주둔부대
상무대는 군사교육시설로써 영내에 주둔하는 보병, 포병, 공병, 기갑, 화생방 5개 병과 학교에 따른 부사관 초급반, OAC, OBC, 병 후반기 교육 등을 실시하고 있으며, 병과 학교의 본청과 기간병 및 교육생 생활 시설, 각종 교육을 위한 훈련장 등이 자리하고 있다.- 국군복지단 광주지원본부
4.1. 상무대통합방호사령부
{{{#!wiki style="margin:-0px -10px -5px" {{{#!folding [ 펼치기 · 접기 ] {{{#!wiki style="margin:-5px -1px -11px;" | 군단급 사령부 | |||||||||||
육군교육사령부 | 육군군수사령부 | 수도방위사령부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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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전사령부 · 기능사령부 | 해체된 야전군 · 해체된 기능사령부 |
상무대통합방호사령부 | |
<colbgcolor=#2e50aa><colcolor=#fff> 소속 | 대한민국 육군 |
상급기관 | 육군교육사령부 |
종류 | 기능사령부 |
역할 | 상무대 지역 방호 |
사령관[6] | 소장 표창수 (육사 47기) |
위치 | 전라남도 장성군 삼서면 상무대 |
평시와 전시를 가리지 않고 육군보병학교장은 상무대통합방호사령관직을 겸임하며[7] 사령관은 전시에는 중장으로 한 계급 진급하고, 평시에는 계급이 그대로다.
한참 옛날 얘기인데 네이버에 찾아보면 2011년에 윤광섭 소장이 보병학교장 겸 상무대통합방호사령관을 겸직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하지만 현재로서 상무대통합방호사령관은 임무가 없으며 사실상 유령보직이다. 이 직을 겸직하는 육군보병학교장은 실제로는 육군보병학교장의 임무만 수행하며 상무대통합방호사령관은 전시가 되어야만 임무가 생기기 때문에 평시에는 임무가 없고 사실상 모든 병과학교장 최선임자라는 의미만 존재하는 상징적인 보직일 뿐이다.
애초에 상무대의 위치부터 한반도 가장 남쪽에 있는 도인 전라남도 맨 아래 근처이다. 그러니까 여기까지 극소수의 침투조가 아닌 조선인민군이 올 정도면 거의 적화통일 상태가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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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주변시설
상무대 정문에는 위병소와 면회장 및 햄버거 가게가 있으며, 위병소 바로 앞으로는 문구점과 PC방, 슈퍼마켓, 광주광역시 유스퀘어로 향하는 시외버스가 다니는 시외버스 정류장 등이 있다.상무대가 위치한 삼서면은 장성군 읍내로부터도 거리가 있는 편이라 많은 군부대들이 그렇듯 주변 시설은 상당히 협소한 편이지만 삼계면에 있는 상무아파트 앞에는 작은 규모의 상권이 형성되어 있어 평일 외출을 나온 장병들이 많이 이용하기도 하며, 상무대 쇼핑타운이라는 이름의 상가도 있어 편의점과 영외 PX 등을 이용할 수 있다.
인접 지역인 함평군에 국군의무사령부 예하 국군함평병원이 자리하여 상무대 기간장병 및 교육생들의 외래진료업무를 담당하고 있다. 의무대를 통해 외진신청을 하면 정기적으로 운행하는 외진버스를 통해 병원을 이용할 수 있다.
5.1. 편의시설
- 상무대 정문
- 면회장
- 버거 in 버거(햄버거집)
- 골프연습장
- 상무대CC 골프필드
5.2. 종교시설
- 상무대 성당
- 상무대 교회
- 상무대 법당(무각사)
- 상무대 교당
6. 교통
6.1. 시내버스
장성 버스 100은 원래 장성시외버스터미널과 롯데백화점 광주점 간의 버스이지만, 일부 시간대의 버스가 상무대를 기점으로 하므로 시간표를 잘 확인하면 상무대 정문에서 농어촌버스를 이용할 수 있다.[8]함평교통 500번 농어촌버스 중 상무대행 시간대가 4회 정도 있으나, 상무대 정문이 아닌 상무대 정문 입구 사거리까지만 운행한다. 해당 정류장이 상무대 정문에서 약 4km 가량 떨어진 관계로 사실상 없는 것이나 다름이 없다.
장성군 군내버스로 장성터미널 첫차 06:20 막차 19:50이고 07시부터 19시까지는 매시 정각이다. (요금 1000원, 40분 내외 소요)
6.2. 시외버스
상무대터미널 시외버스 운행 시간표정문 앞 상무대터미널에서 삼계면, 장성읍, 유스퀘어를 오가는 광신고속 버스가 일 8회 왕복 운행한다. 승차권은 정류장 앞 슈퍼마켓에서 발권할 수 있으며, 2024년 기준 상무대-광주 구간 요금은 편도 5,700원이다.
주말이면 외출, 외박을 나가려는 병사들과 교육생, 광주나 장성으로 외출하는 간부들이 뒤섞여 만차 상태가 되는 경우도 심심찮게 볼 수 있다. 좌석을 지정할 수 있는 광주유스퀘어에서 발권한 표를 제외하면 기본적으로 선착순 탑승이므로 토요일 아침에는 서두르는 편이 좋다. 도로사정에 따라 다르지만 보통 상무대에 광주까지는 1시간 정도가 소요된다.
6.3. 철도
2004년 KTX 개통 이후 호남선 KTX가 장성역에도 정차하면서 많은 군 장병들이 이용하였으나, 2015년 호남고속선 개통 이후 장성역을 경유하지 않았다가 2019년 9월 16일 이후 기존선을 경유하는 KTX가 재운행하면서 하루 4회 KTX가 장성역에 정차[9]하며, 모든 ITX-새마을과 무궁화호가 정차한다.열차를 이용하는 경우에는 경우에는 장성역에 하차한 후, 바로 옆 장성시외버스터미널에서 상무대행 농어촌버스 혹은 광신고속 시외버스를 타면 된다. 터미널에서 상무대까지 농어촌버스 탑승 시엔 40분 가량, 시외버스 탑승 시에는 30분 가량 소요된다.
7. 사건사고
7.1. 2020년 11월 코로나-19 집단 감염 사건
자세한 내용은 군부대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 집단 감염 사건 문서의 육군 상무대 부분을
참고하십시오.8. 기타
8.1. 근무환경
후방에 위치한 만큼 전방 부대에 비해서는 근무 난이도가 낮은 편이다. 몇몇 독립부대를 제외하면 대부분의 부대가 학교 본청과 같은 곳에 입지하고, 야외 근무의 경우에도 특정부대만 투입되거나 주둔하는 부대들이 순환하며 투입되는 만큼 근무 여건은 좋은 편이다.제주도를 제외하면 주둔지 기준 대한민국 국군에서 이보다 남쪽에 있는 부대는 거의 없을 정도로 극후방 부대이기에 경계근무나 훈련 등이 전방과는 비교도 안 되게 널널하다. 기껏해야 조교들이 훈련지도를 위해서 주특기를 연마하는 수준이 그나마 상대적으로 빡세다고 말할 정도로 아주 널널하다.
이곳의 각 병과학교에 입소하는 학생군인들의 경우, 자신들의 군복무 시절 전체를 통털어 가장 꿈결같은 시절이라고 말할 정도로 심하게 편하다. 특히 OBC의 경우, 신분도 장교인 데다가 몇 년 복무하지 않고 떠날 사람들이 과반수인지라 이건 군대라고 말하기 민망할 정도로 천당이다.[10]
하지만 OAC의 경우, 과반수가 장기 복무자들인 탓에 인격적인 대우는 굉장히 신사적으로 받지만 학업량에 깔려죽을 정도로 치열하게 경쟁한다.[11] 이 영향을 받아서 학생군인들을 관리하는 간부들도 엄청나게 편안하다.
다만 주둔하는 부대들의 목록을 보면 알 수 있다시피, 5개의 병과학교를 포함해 각기 다른 성격의 부대들이 주둔하는 만큼 각 부대마다 기간장병들의 근무환경이 상이한 편이다. 같은 울타리에 안에 있어도 부대별로, 주특기별로 완전히 다른 군생활을 하는 경우가 많은 것이다.
8.2. 생활환경
교육생들은 기본적으로 영내에 위치한 교육생 숙소를, 기간병들 또한 영내에 위치한 막사에서 생활한다.한 가지 특이한 점이 있다면 상무대 영내에 독신자숙소가 따로 없고 영외에 군인아파트 단지인 상무아파트와 독신자 아파트가 있으며, 기간간부들 대부분은 상무아파트에 거주하며 상무대로 출퇴근한다. 상무대에서 차로 10분 정도 떨어진 곳에 위치한 까닭에 대부분의 기간간부들은 자가용을 이용하거나, 상무대 근무지원단 혹은 각 부대에서 운영하는 통근버스를 이용하여 출퇴근한다. 덕분에 아침저녁으로 상당히 큰 규모의 통근버스 행렬이 상무대를 왕복하며 출퇴근하는 간부들을 실어나른다.
5개의 군사학교와 각종 부대들이 주둔하는만큼 방대한 규모를 자랑하기 때문에, 이동 시에는 차량을 활용하는 일이 많으며 부대 내 차량의 통행도 활발한 편이다. 과속단속카메라가 설치된 구간도 있으며 영내에서 과속 시 상무대 군사경찰대에 적발될 수 있다. 부대가 굉장히 넓은 까닭에 이동 시 자동차를 이용하는 것이 일반적이며, 교육에 필요한 차량은 육군교육사령부 예하 상무대 근무지원단 수송대대에서 차량지원을 받게 된다.
상무대의 규모가 상당히 큰 만큼 중국집과 분식집을 비롯하여 치킨, 피자, 파리바게뜨 등 프랜차이즈에 이르기까지 굉장히 다양한 편의시설들이 입주해 있다. 비록 육군이 주로 주둔하는 곳임에도 편의시설의 종류만큼은 공군의 각 비행단들이나 해군의 진해기지 및 해병대의 포항기지에 비견될 정도이다. 덕분에 상무대에서 주둔하는 기간병들은 타 부대 장병들보다 비교적 풍요로운 군생활을 즐길 수 있다.
각 학교 본청에는 ATM, PX, 학교에 따라서는 스낵바나 미용실이 있는 곳도 있다. 특히 상무대의 대표적인 편의시설인 상무회관과 학성회관에는 PX와 군장점을 비롯하여 중국집, 분식집, 은행, 맘스터치, 군사우체국, 이발소 등 다양한 편의시설이 입주해 있어 기간장병, 교육생들의 휴식처가 되어주고 있다. 이러한 편의시설의 대부분은 상무대 근무지원단의 시설관리과(복지과)가 관리한다.
종교시설로는 가톨릭과 개신교, 불교, 원불교 4가지 종교의 종교시설이 자리하고 있으며, 기간장병 및 교육생들의 종교활동을 실시, 관리한다.
9. 여담
- 1993년 5월 13일 김영삼 대통령의 담화문인 "5·18의 연장선에 선 문민정부, 5·18 광주 민주화 운동 관련 담화문"에서 5.18 민주화운동에 대한 명예회복 및 기념사업 지원을 약속하면서 "현재 상무대 부지의 일부를 광주시에 추가로 무상 사용케 함으로써 시민공원을 조성하도록 할 것입니다."라는 말을 했고 그 결과 현재의 상무지구가 되었다.
- 원래 상무대가 있던 부지는 이전 직후 광주광역시가 조속히 전체를 매입해서[12] 택지개발을 거쳐 광주광역시청을 비롯한 행정기관과 아파트, 상업, 업무시설들로 다 메워졌는데, 이 곳을 상무대 이름을 그대로 따서 상무지구라고 부른다. 법정동으로는 치평동 일대. 행정동명 중에도 상무대에서 따온 상무1동, 상무2동이 있는데, 정작 상무지구 신시가지 일대를 관할하지 않는다. 상무대가 있는 치평동과 상무대 옆 동네인 쌍촌동을 관할하는 행정동이 '상무동'이었으나 상무지구 개발 후 행정동 치평동을 분리시키면서 졸지에 상무지구에 없는 상무1~2동이 돼버린 것. 참고로 5.18 자유공원에 가면[13] 광주 상무대 시절 사용하던 상무대 표석이 아직도 남아있다. 이 표석에 세겨진 상무대 글씨는 이승만이 손수 기재한 것이다.
- 예전에는 광주에 있었고 1990년대에 이전했다는 사실에서 보듯, 1980년 5.18 민주화운동 당시에도 광주에 있었다. 당시의 상무대에는 계엄사령부 전남북계엄분소가 설치되어 있었다. 계엄군 주요 지휘관회의가 이 곳에서 자주 열렸고, 시민수습위원들이 몇 차례 드나들며 군 지도부와 협상을 벌이기도 했다. 항쟁 뒤에는 시민 3천여명이 붙잡혀와 이 곳 헌병대 영창에서 상상을 뛰어 넘는 무자비한 고문과 구타를 당했으며, 이곳 군사법정에서는 시민들에게 내란죄를 씌워 사형과 무기 등 중형을 선고했다. 그 때의 영창과 군사법정 건물은 상무대 지구 택지개발에 따라 인근에 옮겨져 복원되어 있다. 5.18 당시 학살 피해 시민들의 시신을 안치했던 옛 전남도청 앞 '상무관'과는 다른 곳이다.
- 전국 신병교육기관(육군훈련소 또는 사단 신병교육대, 해병대교육훈련단)에서 배출된 육군, 해병대 특기병과 해군, 공군 등 병사, 부사관, 장교들의 주특기 교육 및 병과 교육을 실시한다. 단, 보병 특기 병사와 부사관은 보병학교에서 교육받지 않고, 육군훈련소(공용화기병 한정)나 육군부사관학교(특전부사관은 특전교육단) 자체에서 교육하지만, 그 중에 기계화보병은 육군기계화학교에서 교육한다.
- 앞서 설명했듯이 상무대 정문에서 들어가면 오성탑(또는 오용사탑)이라는 조형물이 있는데 5개의 별 탑이 아니라 5개의 학교를 나타내는 별 탑이라는 뜻이다. 위에서 보면 5개의 꼭짓점으로 이루어진 별로 되어있고, 각 꼭짓점엔 각각 보병, 포병, 공병, 전차병, 화생방병을 나타내는 석상이 있다. 각 석상을 두고 개비스콘이라고 부르는 장병들도 있다.
- 육군보병학교의 경우 이름처럼 오로지 대한민국 육군 장교만 입교한다. 나머지 학교들은 병사, 부사관, 장교 모두 특기훈련을 받는다. 상무대 지역에서 타군 교육생 중에 가장 많은 비율을 차지하는 건 대한민국 해병대이고, 대한민국 해군, 대한민국 공군 병사들도 드물지만 간혹 보인다.[14]
- 이곳 부대들의 지휘관 보직은 전원 한직이다. 애초에 부대 위치부터 장성군인데 위도상 이보다 낮은 군부대 주둔지역이라고는 제주도 정도에 지나지 않는 최후방이다. 특히 상무대 통합방호사령관을 겸직하는 육군보병학교장은 2000년 1월 1일 이래 현재까지 진급자가 아무도 없다.
- 흔히 말하는 땡보라고 생각하기 쉽고 실제로도 그런 편이다. 하지만 육군 권력의 중심 계룡대에 비하면 아직 먼 듯. 물론 모든 훈련장이 상무대 안에 있는 건 아니기 때문에 훈련 과정에 따라서는 장거리를 이동해야 하는 경우도 있다. 광주광역시 평동의 보병학교 박격포 사격장, 화순군 동복의 보병학교 유격교육대(동복유격장), 함평군의 보병학교 전술훈련장(함평2중대), 같은 장성군이지만 멀리 떨어진 기계화학교 조종교장, 담양군의 기계화학교 전차포 사격장 등. 보통 버스 타고 간다.
- 장성에 신건물을 지을 당시 풍수를 독학해 도사라는 별명이 있던 상사 한 분이 "젊은 사람들이 많이 다칠 지세에 세워지고 있다."며 건물 배치를 조정해 피해를 줄일 수 있는 위치를 알려줬다는 후일담이 있다. 훈련 도중에 크고 작은 부상을 당하는 초급장교들이 있는 데서 생긴 전설로 치부되기도 하지만, 이 백 도사가[15] 당시 건물 위치선정에 관여한 건 사실이라고...
- 장성으로 이전한 후 어느덧 족히 30년도 훌쩍 지났지만, 광주에 있었던 시기가 훨씬 길었던 데다가 또한 장성군이라는 동네 자체의 전국적 인지도 부족으로 2020년대 현재도 60대 이상의 노년층에서는 아직도 광주 상무대로 알고 있는 경우가 많다. 게다가 가끔 상무라는 이름을 건 축구팀과 야구팀 등 때문에 국군체육부대와 혼동하는 사람도 있다.[16]
- 2024년 8월 8일에는 광주과학기술원(GIST)에서 GIST-상무대 '인공지능(AI) 과학 캠프'가 개최되었다. 상무대 군 자녀들을 대상으로 올해 처음으로 열린 캠프는 과학교육·체험 학습을 제공하기 위해 마련됐다.#
[1] 보병, 포병, 기갑, 공병, 화생방[2] 통신학교는 1960년 대전 둔산동 일대로 이전[3] 그래서인지 상무대의 몇몇 학교들은 육군 장병들이 해병대 장병들과 함께 교육과 훈련을 받고 생활하면서 해병대 은어나 용어를 자연스레 접하게 된다. 예를 들면 딸수나 긴빠이라던지... 주로 해병대가 많이 위탁오는 육군기계화학교, 육군공병학교가 그렇다. 육군보병학교는 애초 병이 오지 않고 해병대 장교들도 보병초군반을 해병대교육훈련단 상륙전교육대대에서 별도 실시하여 해병대는 고군반 장교만 볼 수 있다. 그래서 애초 동선부터 겹치지 않아 일반적인 육군 병 출신들은 해병대 보병 고군장교들의 존재조차 모른다. 육군포병학교 역시 해병대 포병은 병 후반기 교육을 해병대교육훈련단 포병교육대가 자체 실시하기에 자주포 정비병만 빼고는 병이 오지 않고 초군반 및 고군반 장교들만이 입교하며 육군 병들은 초군반과 고군반의 특성 상 동선이 달라 조교 빼고는 해병대 장교들을 볼 일이 아예 없다.[4] 경상남도 김해시에 있던 시절(1950년~1995년)에는 분성대라고 불렸다.[5] 본래는 601탄약지원대라는 이름으로 전남 지역 및 상무대의 탄약보급을 담당하던 독립부대였으나 2015년 즈음 편제 개편으로 탄약취급 및 검사 계열은 X탄약창으로 원대복귀하고 신속함이 우선되는 EOD만 상무대에 남게 되었다.[6] 육군보병학교장이 겸임한다.[7] 그래서 다른 학교와 달리 보병학교장은 반드시 소장이 보임된다.[8] 단, 광주에서 비아, 임곡을 거쳐 오므로 장성 군내버스로의 환승은 힘들다.[9] 서울/행신행 각각 1회, 목포행 2회 정차하며 서대전-목포 구간은 기존 호남선을 이용하는 KTX이기 때문에 서울까지 약 3시간 정도 소요된다.[10] 보병은 정말 지옥이긴 하지만 그래도 장교는 장교이니 후보생/생도시절에 비하면 대우를 해주고 일과시간 이외에는 너무 나사빠진 모습만 보이지 않으면 일절 터치하지 않는다.[11] 애초에 장기복무를 절대로 안 할 대위들은 OAC 따위 오지도 않는다. OAC는 수료하는 즉시 보직이 중대장으로 고정되기 때문이다. 무조건 장기복무를 해야만 하는 육사 출신이나 장기를 할 생각이 눈꼽만큼이라도 있으면 OAC에 입교한다.[12] 당초 예산이 궁했던 광주광역시 측은 무상으로 토지를 인수하기를 원했다고 한다. 그렇게만 해 놓으면 향후 10~20년 동안은 추경 편성을 할 필요가 굳이 없으니 예산에 여유가 생길 거란 전문가 의견이 있었기 때문인데, 실제로 전남대학교 경제학과 송인성 교수 및 지역 사업가가 주축을 이룬 협상팀이 상무대 측과 치열한 줄다리기 끝에 무상 반환으로 타결 직전까지 갔었다. 그러나 정체불명의 시민단체들이 일부 어려우신 분들을 돕자는 명분하에 브로커로 개입해 협상이 틀어지고 결국 한 곳 한 곳 대금을 치르고 간신히 매입하게 됐다는 후문.[13] 원래는 시청로 한 가운데에 있었으나, 2020년 훼손 사건이 벌어진 이후 2021년 5.18 자유공원으로 옮겼다.[14] 개중에 해병대의 경우에는 상무대 지역 내의 4개 학교(포병, 공병, 기계화학교)에서 위탁교육을 받는다.[15] 백 씨 성을 가진 분이었는데, 풍수지식이 매우 해박하고 배운 지식으로 사람들을 돕고자 하는 맘 씀씀이가 깊어 인망이 괜찮은 분이었다고 한다.[16] 실제로 2003년부터 2010년까지 광주 상무 불사조라는 이름으로 광주에서 경기를 치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