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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경시


성명 정경시(鄭慶時)
자선(子善)
소산(少山)
생몰 1855년 9월 23일 ~ 1929년 2월 24일
출생지 경기도 양평군 양동면 쌍학리
사망지 경기도 양평군
본관 초계 정씨[1]
추서 건국훈장 애족장

1. 개요2. 생애

1. 개요

한국의 독립운동가.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받았다.

2. 생애

정경시는 1855년 9월 23일 경기도 양평군 양동면 쌍학리에서 태어났다. 1908년(순종 2) 공립양근보통학교 전과(專科) 부훈도에 임명되었다.[2]

그는 천도교 신자로, 경기도 광주에 분원의숙(分院義塾)을 설립하여 후진을 양성했다. 1919년 3월 23일 경기도 양평군 청운면 용두리 장날에 신재원·김종학(金鍾學) 등과 함께 독립만세운동을 주도하다가 일본 경찰에 체포되었으며, 동년 6월 21일 고등법원에서 징역 2년형이 확정되어 옥고를 치르다가 1920년 6월에 출옥하였다.

출옥 직후인 1920년6월, 그는 대한독립단 경기도 지단장 한덕이(韓悳履)의 권유로 동단에 가입하여 임시정부의 격문을 양평지방에 배포하는 한편 군자금 모집 계획을 추진하였으며, 양평군수, 양평서 일경등에게 사형집행선고문 등을 우송하는 등 활동하다가 1921년 6월에 다시 일경에게 체포되어 옥고를 치렀다. 출옥 후 고문의 후유증에 시달리다 1929년 2월 24일에 사망했다.

대한민국 정부는 1980년 정경시에게 대통령표창을 추서했고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했다.
[1] 대제학공파(大提學公派)-관동파(關東派)-송포공파(松浦公派) 28세 시(時) 항렬.[2] 1908년 1월 12일 승정원일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