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03-31 13:49:21

정은원/여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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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2. 여담
2.1. 이모저모2.2. 영상

1. 개요

한화 이글스 소속 내야수 정은원의 여담에 대해 다룬 문서.

2. 여담

2.1. 이모저모

  • 언변이 좋아 신인드래프트 당일 인터뷰 영상에서 능숙하게 말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영상. 또한 같은 영상에서 정근우 같은 선수가 되고 싶다고 밝힌 바 있다. 프로생활 4년차인 2021년에는, 인터뷰를 제법 베테랑처럼 한다. 2021년 5월 3일 SBS 야구에 산다 인터뷰 후 깊은 생각과 말솜씨, 야구에 대한 생각을 논리적으로 풀어내는 모습에 대해 벌써부터 '해설을 해야 된다'는 칭찬도 받았다.
  • 지명 당시 여러 팀 스카우터들이 눈독을 들였다. 한화가 지명하자 여러 구단들이 탄식했다고 전해진다.[1] 원래 2라운드에 지명도 계획했었으나 투수가 필요한 바람에 밀렸다고 한다. 이정훈 당시 스카우트 팀장도 놓치기 싫었던 자원이었다고 밝혔다. 신인드래프트를 보면 알 수 있지만, 3라운드라고 절대 낮은 순위가 아니다. 2018년 드래프트는 투수가 엄청나게 득세했던 드래프트로, 1차지명과 2차 1~2라운드까지의 명단 중 야수는 강백호, 한동희, 이재원 포함 5명 뿐이고 강백호, 한동희를 제외하면 사실상 장기 육성 자원인데다 수비는 외야나 1루, 3루 자원임을 감안하면 더 대단한 일이다.
  • 또한 고3 때 한화 이글스 스카우트가 자신을 보러 온 일도 없다고 느껴서[2] 본인은 한화 이글스에 지명될 거란 생각도 안했고, 대략 5라운드쯤에 지명될 것으로 예상했다고 한다. 드래프트에서 처음 만난 당시 이정훈 팀장이 대뜸 손금을 보더니 좋다고 한 후, 정은원을 3라운드에 지명하였다.
  • 다만 드래프트 당시에는 얼리픽이라는 평이 있었다. 당시 한화 팬들도 '정은원이 도대체 누구냐'는 반응이 많은 편이었다.12
  • 한화 이글스 박종훈 당시 단장의 지명 당시 후일담이 있다. 당시 박 단장은 3라운드에 정은원을 예상보다 일찍 지명했는데, 희망을 좀 넣어서 정은원이 칼 립켄 주니어의 어린 시절 이미지와 겹쳐 보여서 그랬다고 한다. 위의 이정훈 당시 스카우트 팀장의 인터뷰와 함께 정은원이 얼마나 많은 기대치를 받고 있는지 알 수 있는 부분이다.
  • 인터뷰에서 포근한 느낌의 수비를 하고 싶다고 하여 '포근원', '포근이' 라는 별명이 생겼다. 꿈만 같은 어젯밤 이야기 이후 이정훈 당시 스카우트 팀장의 인터뷰에서 정은원은 포스트 정근우다라는 인터뷰가 나오면서 스트 우라는 의미도 붙었다. 이후 인터뷰에서 선수 본인이 직접 가장 마음에 드는 별명이라 답하였다.
    이후 선수 육성 능력이 심각하게 부족한 팀에서 1군 데뷔를 꽤 빨리 경험한 이후 팀이 베테랑들을 지속적으로 내보내면서 어린 후배들과 함께 다니는 장면이 자주 잡히고, 괜찮은 인터뷰 실력이 있어 팬들이 농담조로 애테랑, 테랑이라는 별명을 붙었다. 이러한 모습으로 인해 향후 한화의 주장감으로 꼽히고 있다.
  • 어버이날에 데뷔 홈런을 친 후 진행된 인터뷰에서 부모님 얘기가 나오자 울먹거리는 모습이 많은 팬들의 마음을 감동시켰다. 스포티비 MVP인터뷰 이 홈런은 2000년대생 KBO 첫 홈런으로 기록되었으며 정은원의 야구 인생 첫 홈런이라고 한다. 또한 만 18세 3개월 21일의 나이로 홈런을 때려내면서 삼성 라이온즈김성윤 선수를 넘어 KBO 역대 최연소 홈런 기록 4위로 기록되었다.[3]
  • '18 스프링캠프 때 너무 긴장한 나머지 6kg가 빠졌다고 한다. 한용덕 감독은 서산에 가서 체중을 원상복구하고 웨이트를 더 하고 오라고 했는데 체중을 원상복구 했을 뿐만 아니라 키까지 커서 왔다. 성장판이 안 닫혔다고 한다.
  • 2000년대생 중 프로야구 1군 붙박이로 활약하는 첫 선수나 다름없다 보니 연차에 비해 지상파 뉴스에서 단독으로 인터뷰한 영상이 많다. 프로데뷔 첫 홈런은 물론, 비시즌에 만 19세 생일을 맞은 2019년 1월 17일에도 성인이 된 기념으로 지상파 인터뷰까지 했을 정도다.
  • 벌크업을 상당히 열심히 하는 듯. 입단 초기와 상당히 많이 달라졌다, 차이가 보인다는 이야기가 많다. 특히 MBC SPORTS+허구연 위원이 몸이 굉장히 두꺼워졌다며 칭찬했다. 심지어 그 모두 다 깐다는 이순철 위원도 정은원의 향후 성장 가능성을 높게 칭찬했다. 다만 이 벌크업이 지나쳐 23년 부진의 원인이 되었다. 선구안을 통한 타율 대비 출루율은 여전했지만 벌크업으로 인한 체중 증가로 수비 범위가 감소했고 스윙에 영향을 줘 타구가 안타로 될 궤적이 안나오고 뜬공으로 이어지게 됐다는 평가.
  • 빠른 2000년생이라서 같은 2000년생이지만 후배인 노시환, 변우혁[4] 등과 호칭이 어떻게 될까 궁금해하는 사람이 많았는데, 형이라고 부르긴 한단다. 유로결까지 2019 시즌 1군에 올라온 2000년생 야수들을 묶어 빵빵즈라 칭하며, 제 나이에 들어온 다른 선수들과 달리 1년 빨리 프로에 입단했기 때문에 종종 내야수비에 대한 조언을 하는 모습을 두고 빵빵즈 대장/리더, 아기대장독수리라고 부르기도 한다. 동갑내기 선배가 동갑내기 후배에게 다만 후배들(?)보다 체구가 작기 때문에 동생같아 보일 때가 많다.
    • 이로 인해 연차가 쌓이자 팀 내 99~00라인 족보 브레이커가 되어버렸다. 야구선수들이 아마추어 시절 부상 등의 이유로 유급을 하거나 혹은 빠른년생으로 입학하는 경우가 있는데, 하필이면 이 라인이 유급과 빠른년생 적용 및 미적용이 마구 뒤섞인 탓에 빠른년생 적용으로 제일 빨리 루키 드래프트에 참여했던 정은원이 족보 브레이커가 된 것. 단적으로 정리해서 정은원과 생일이 딱 2주 차이나면서 20년 드래프트로 2년 늦게 입단한 00년 1월생 최인호후배(입학유예로 00년생들과 친구+1년 유급), 19년 드래프트로 1년 늦게 들어온 99년 2월생인 허관회친구(입학유예로 99년생들과 친구+1년 유급)인 기묘한 상황이 되었다.
      • 이 사이에 끼었으면서 허관회와 드래프트 동기인 노시환이 이 사태에 대해 정리한 바에 따르면 입단년도는 중요치 않고 학창시절 어느 년생과 친구를 했냐를 기준으로 정리된다고 한다. 워낙 이런 경우가 많아서 초면에는 일단 반말부터 한 뒤에 호칭을 정리한다고. 노시환 선생님(?)이 정리해주는 꼬인 족보
  • 허은원으로 공식 인정되었다. 허구연 해설위원이 심지어 정수빈보다 정은원이 좋다고 말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물론 정수빈이 이제는 중견 선수이다보니 유망주인 정은원이 더 좋다고 한 것으로 보인다. 2021년 5월 19일 중계 중에는 정은원을 '대한민국 탑클래스 2루수'라 평했다.
허구연 MBC 야구해설위원은 "정은원은 김하성(24·키움) 이후 가장 뛰어난 내야수 자원이라고 할 수 있다. 공·수·주 모든 면에서 국가대표로 성장할 수 있는 잠재력을 갖췄다. 이르면 2020 도쿄올림픽 대표팀에 승선할 가능성도 있다. 한용덕 한화 감독에게 물어보니 인성도 훌륭하다고 하더라. 충분히 스타로 성장할 수 있는 선수"라고 평가했습니다.

이어서 "내가 정은원 칭찬을 많이 하다 보니 '허은원'이라는 별명도 붙었다고 전해 들었다. 사실 일부러 그러는 거다. 학생 야구 쪽에서 대형 내야수 자원이 부족하다는 이야기가 많이 들린다. 강백호(20·kt·외야수)처럼 방망이 잘 치는 선수를 동경하는 고교 선수는 많아도 탄탄한 기본기가 필요한 내야수를 꿈꾸는 선수는 드물다는 뜻이다. 정은원이 잘 성장해 스타 내야수를 꿈꾸는 학생 선수가 더 많아졌으면 좋겠다"고 덧붙였습니다.
[베이스볼 비키니] 선배, 저는 주민번호 0으로 시작하는데요
  • 최재훈에 의하면 스타병에 걸린 것 같다고 한다. 포수 본인은 친하다고 생각했는데 인터뷰에서 정은원이 친해지고 싶다는 발언을 했기 때문. 물론 나이차가 많이 나서 정은원 입장에선 뭔가 장벽이 있을 수도 있지만, [5]최근 이글스TV 영상들을 보면 둘이 꽤 투닥거리는 씬들이 꽤 자주 나온다.
  • 심재학 KIA 타이거즈 단장에 따르면, 정은원의 아버지도 야구선수 출신이며 본인과 초등학교 동기라고 한다. 정은원의 아버지는 고등학교 때 부상으로 야구를 그만뒀다고 한다.
  • 구단에서 퇴근할 때 안전요원들을 잔뜩 붙여 주고 있다.[6]
  • 경주 정씨로 정민태 투수코치와 종씨이나 항렬상 정민태 코치의 아버지뻘이다. 정 코치가 이걸로 농담을 곧잘 했던 모양이다.
  • 롤모델로는 수비에서는 박진만, 타격에서는 박민우를 꼽았다. 기사1 기사1
  • 데뷔 2년차에 감독추천으로 올스타전을 경험하였지만, 동년도 치러진 프리미어12에는 선발되지 못하였다.
  • 2019 시즌 초 144경기에 모두 출장하는 것이 목표라 인터뷰 하였고, 본인의 희망과 구단의 기대치, 얇은 선수층이 맞물려 리그 최다급의 타수를 받았다.
  • 그의 등번호 43번은 구단에서 배정해준 번호로, 본인이 원하는 번호가 아니었는데, 20시즌을 앞두고 하주석이 등번호 16번으로 돌아가면서 1번이 비어 인천고 시절 사용하던 1번을 사용할 기회가 생겼었지만 정은원은 2년 동안 43번을 달고 프로 생활이 순탄하게 잘 이뤄지고 있는 상황에서 굳이 번호를 바꿀 필요는 없었다며 본인의 유니폼을 사주신 팬들도 생각해 큰 고민 없이 결정했다”고 말했다. #
  • 같은 팀 동료인 노시환의 말을 빌리면 정리정돈을 거의 안 하는 듯하다. 스프링캠프 때의 정은원의 숙소와 라커를 보면 그러한 면모가 잘 드러났다.#
  • 드래프트 동기인 강백호와 야구에 관해 의견을 자주 나눈다. #
  • 2000년 이후 태어난 야구선수 중에서 가장 먼저 데뷔해 안타, 홈런, 타점, 득점 등을 기록한 것을 시작으로 2019 시즌 최연소 100안타, 2021 시즌에 최초(최연소) 100볼넷에 이어 골든글러브 수상, 2022 올스타전에서는 미스터 올스타까지 수상하며 밀레니엄 세대의 야구선수들에게는 대부분의 '최초' 이정표를 세운 선구자적 역할을 하고있다.
  • 지명을 받지 못하거나 너무 낮은 순번에서 지명이 되었다면 대학 진학 후 체육 교사를 해야겠다는 생각이 있었다고 한다.

2.2. 영상

<colbgcolor=#ff6600><colcolor=#ffffff> 정은원 응원가
정은원 100볼넷 후 인터뷰
정은원 100볼넷 기념 이글스TV 영상
정은원 2루수 골든글러브 수상 기념 이글스TV 영상
정은원 미스터 올스타 수상 기념 이글스TV 영상

[1] KIA 타이거즈가 3라운드에 지명할 예정이었다고 한다. 당시 연고구단인 SK 와이번스도 내야가 부족해서 4~5라운드 쯤 고려했었다고. 큰 얼리픽은 아니었던 것으로 보인다.[2] 자신이 못 본 사이 보러 왔을 수도 있지만 직접 본 적이 없다고 한다. 사실 고교야구 기록보면 그 때도 볼넷 수가 많아 선구안이 좋음을 알 수 있다.[3] 2019년 기준 역대 최연소 홈런 순위 TOP5 안에 무려 3명이나 한화 이글스 소속이다. 3위가 하주석, 5위가 노시환.[4] 2000년 3월 18일생으로 정은원과 고작 2개월하고도 하루 차이난다.[5] 둘은 햇수로 11년차, 학번으로 10학번 차이난다.[6] 이글스TV 퇴근길 영상을 통해 확인이 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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