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12-08 01:12:14

J. D. 샐린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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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 D. Salinger
파일:J._D._Salinger_(Catcher_in_the_Rye_portrait).jpg
본명 제롬 데이비드 샐린저
Jerome David Salinger
출생 1919년 1월 1일
미국 뉴욕주 뉴욕시 맨해튼
사망 2010년 1월 27일 (향년 91세)
미국 뉴햄프셔주 코니쉬
직업 소설가
종교 개신교
서명 파일:J._D._Salinger_Signature.svg

1. 개요2. 생애3. 특징4. 창작물에서5. 여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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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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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년기의 모습 (2000년경)[1]
미국소설가. 대표작은 《호밀밭의 파수꾼》.

2. 생애

1919년 1월 1일, 뉴욕에서 태어났다. 아버지는 폴란드유대인이고, 어머니는 아일랜드계의 가톨릭 집안 출신이었지만 결혼 후 유대교로 개종했다. 맥버니 고등학교에 입학했다가 성적이 나빠 퇴학당한 일이 있다. 펜실베이니아의 웨인에 있는 밸리 포지 군사학교를 평범한 성적으로 수료한 뒤[2], 1936년 뉴욕대에서 학업을 시작하나 이듬해 봄에 제적당했다. (샐린저는 특수교육을 이수하길 고려해 보았다.)

이후 아버지의 강권에 따라 의 한 회사에서 일하고, 1938년 3월 12일, 오스트리아가 나치에 합병당하기 한 달 전에 오스트리아에서 미국으로 돌아온다. 1938년 가을에는 어시너스 칼리지에 지원하지만, 뉴욕대와 마찬가지로 한 학기 만에 제적당하고 만다. 1939년, 컬럼비아 대학교의 문예창작 수업(Columbia University School of General Studies)[3]의 청강생으로 들어갔는데, 이 수업은 샐린저에게 큰 영향을 주었다.

1940년, "스토리"라는 잡지에 "젊은이들"(The Young Folks)이라는 소설을 발표해 데뷔했고 이듬해에 "Slight Rebellion off Madison"를 뉴요커에 발표할 예정이었지만 군입대로 무기한 연기되고 말았다. 이 소설은 호밀밭의 파수꾼의 주인공인 홀든 콜필드가 처음으로 등장한 소설이었다.

군입대로 직접 제2차 세계 대전에 참전한 샐린저는 노르망디 상륙 작전의 최대 격전중 하나인 유타 비치에 투입되었고, 프랑스 해방 이후에는 정보부대에서 복무했다. 파리에서 어니스트 헤밍웨이를 만났고 헤밍웨이에게 뛰어난 재능을 가졌다는 찬사를 받았지만 정작 샐린저는 헤밍웨이의 터프함에는 동조하기 어려웠던 것 같다. 호밀밭의 파수꾼에서 홀든이 언급하는 헤밍웨이의 대표작 무기여 잘 있거라에 대한 평가에서 드러난다. 독일 패망 후에 신경쇠약으로 뉘른베르크 육군 종합병원에 입원했다가 독일인 여의사인 실비아 베르타를 만나 그녀와 결혼한다.

1945년 11월, 군을 제대한 뒤 바로 그해 12월 호밀밭의 파수꾼의 원형이 되는 단편소설 〈나는 미쳐간다〉(I'm Crazy)를 Collier's에 발표했다. 이듬해에 실비아 베르타와 이혼한 뒤 샐린저의 생활은 변해서 차도남 같은 삶을 살게 된다. 1949년에 코네티컷주의 웨스트포트에 집을 빌린 샐린저는 그곳에서 《호밀밭의 파수꾼》의 집필을 시작해서 1950년 가을에 완성한다. 책은 1951년 7월 16일에 출판된다.

문단에서는 격렬한 찬반양론이 일었고 작품의 성격 때문에 청교도적인 사고의 소유자들이나 개신교의 세력이 강한 주들에선 금서로 지정될 정도였다. 어쨌든 전 세계적으로 6천만부가 넘게 팔렸다.

호밀밭의 파수꾼의 성공 때문에 조용히 살기가 힘들어지자 샐린저는 뉴욕을 떠나 뉴햄프셔의 시골로 가서 원시적인 삶을 살았다. 현지의 고교생들이 호밀밭의 파수꾼에 감동을 받고 샐린저와 교류했지만, 한 여고생이 샐린저와 한 대담을 그대로 현지 신문에 넘겨서 기사화해 버리는 바람에 불같이 화를 내며 고교생들과의 교류마저 끊어버렸다. 원래 교내 신문에 싣기로 했던 것으로 문제의 여고생은 이것을 지방신문에 넘겼고 그 대가로 그 지방지의 기자가 되었다.

이후 단편집 《나인 스토리즈》, 《프래니와 주이》[4], 《목수여, 지붕에 대들보를 올려라》 등의 작품을 냈고, 1965년 《Hapworth 16, 1924》를 발표한 것을 마지막으로 더 이상 작품을 내지 않고 철저하게 은둔생활을 하는 통에 갖가지 루머가 판을 쳤다. 공식적으론 1965년작 《Hapworth 16, 1924》[5]가 마지막 소설로 간주되고 있다.

그렇게 은둔자의 이미지가 강하지만 실제로는 지방사회에서 교회의 행사에도 참석하면서 잘 어우러져 살았다. 대신 본명으로 부르지 않으며 절대로 그의 사생활에 대해서 질문하지 않는 불문율이 있었다.

1985년에는 어떤 문학평론가가 텍사스 대학교에서 샐린저의 편지를 발굴해서 이것을 가지고 샐린저의 전기를 썼지만 샐린저는 이에 대해서 재판을 걸었고 결과적으로 샐린저가 승소하여 편지의 내용을 인용하지 않는 전기가 출판된다. 이후 2008년, J. D. 캘리포니아라는 작가의 이름으로 호밀밭의 파수꾼의 후속작이라는 《60년 후: 호밀밭에서 나오며》가 출판되자 크게 노하면서 법원에 저작권 침해 소송을 내서 승소했다.

뜬금없이 딸이 1999년에 회고록을 냈는데, 워낙 딸바보로 알려져 있던지라 그 어떤 반응도 보이지 않았다.

2010년 1월 27일, 노환으로 자택에서 세상을 떠났다.

2013년 11월 28일에는 비트토렌트 트래커 what.cd에 미공개 단편집 《Three Stories》의 스캔본이 유출되기도 했다. 대략 1940년대 말쯤에 쓰였는데, 이 단편집에 포함된 단편 3편 중 〈Birthday Boy〉와 〈Paula〉는 출판만 안 됐지 별다른 제한 없이 텍사스 대학 도서관에서 열람 가능했고 평범한 단편이었다. 하지만 나머지 한 편인 〈An Ocean Full of Bowling Balls〉는 무려 호밀밭의 파수꾼프리퀄 격의 작품으로, 홀든 콜필드의 형[6]의 시점에서 케네스 콜필드[7]의 죽음에 대해 서술하는 내용이다. 원래 잡지에 실으려다가 샐린저가 마음을 바꿔 출판하지 않아 미공개작으로 남았다.

나중에 조건부로[8] 프린스턴 대학교 도서관에 기부한 이후로 지금까지 보관 중인데, 열람하려면 두 종류의 신원 인증 서류를 제출한 후 사서에게 허가를 받아야 하고, 일반적으로 샐린저 연구자가 아니면 허가 자체가 잘 안 나는 데다가, 허가를 받아도 제3자의 감독하에 별도로 분리된 특별 열람실에서만 볼 수 있는 등 상당히 접근이 제한적이었는데 유출되었다는 점이 특이하다.

하지만 프린스턴 납본판을 읽어본 사람의 말에 의하면, 납본판은 2013년 유출된 스캔본과 내용은 같은데 자간이나 전체적인 제본이 다르다고 하며, An Ocean Full of Bowling Balls를 제외한 나머지 두 단편은 포함되어 있지 않다고 한다.

결국 유출본은 프린스턴 납본판이 아니라 다른 제2의 사본을 바탕으로 한 게 아닌가 하는 설이 대두되었는데, 1999년에 이 세 단편을 묶은 단편집이 딱 25권 출판되었었다는 것이 밝혀졌다. 유출되기 대략 2달 전에 이베이에서 이 책이 판매됐다는 점을 미루어 보아 바로 그 책이 스캔본의 저본이라는 설이 유력하다.

이와는 별개로 팬들 중에서는 이 프리퀄 격 작품을, 작가의 의지를 존중해서 읽지 않을지, 궁금해서 읽을지 사이에서 고민하는 사람들이 꽤 있다고 한다.

3. 특징

샐린저는 호밀밭의 파수꾼, 이 소설 하나로 설명이 다 되는 작가라고 할 수 있다. 이 소설의 주인공 홀든 콜필드처럼, 세상의 모든 허위와 가식을 증오하고 모든 허위와 가식에서 벗어난 순수함을 동경하는 것이 샐린저 작품의 특징이라고 볼 수 있다. 그래서인지 나중에는 동양의 선불교에 심취하는 모습을 보였고 얼마 안 되는 그의 말기 작품들에서 이런 경지에 도달하려는 모습을 보여주기도 했다.

은둔하는 소설가라는 모습이 많은 사람들에게 강한 인상을 주었으며, 여러 창작물에 영향을 미치기도 했다. 만약 창작물에 '한 권의 소설만을 쓴 후 평생을 잠적한 소설가'가 등장한다면 샐린저의 영향을 받았을 가능성이 크다.[9] 대표적으로 1989년 케빈 코스트너 주연의 영화 〈꿈의 구장〉에 등장하는 은둔 작가는 원작 소설에는 샐린저 실명으로 나온다. 거스 밴 샌트의 영화 〈파인딩 포레스터〉의 소설가 포레스터의 모델이 되기도 했다.

그의 두 번째 아내에 의하면 아마도 PTSD 때문에 마음의 안식을 찾기 위해 종교에 크게 의지했으며, 그 종교관도 굉장히 변덕적이었다고 한다. 한때는 인도의 힌두교에 심취했다가, 사이언톨로지의 모태가 될 종교 쪽에도 관심을 보이고, 이후에 뉴에이지에도 관심을 돌렸다고 한다. 문제는 혼자 심취하면 좋은데 주위에 계속 권유했으며, 워낙 주위와 교류 없이 조용히 살던 사람이다 보니 그 유일한 타겟이 아내였다는 것이다. 결국 두 번째 아내와의 결혼 생활도 이혼으로 끝났다. 그래도 최후에는 조용한 시골의 개신교 교회에 다니면서 어느 정도 마음의 안식을 찾은 것 같다.

4. 창작물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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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소설 위험한 대결 시리즈에 제롬 스퀄러에스메이 스퀄러라는 등장인물들이 나오는데, 샐린저의 퍼스트 네임이 제롬이며 그의 단편집 《나인 스토리즈》에 실린 이야기 중 〈For Esmé - With Love and Squalor〉라는 제목의 것이 있어 여기서 이름을 따온 것으로 보인다.

2017년 9월 15일, 전기 영화인 호밀밭의 반항아가 개봉하였다. 대니 스트롱이 감독, 니콜라스 홀트가 샐린저 역을, 케빈 스페이시가 위트 버닛 교수 역을 연기하였다. 빌 클린턴힐러리 클린턴이 대니 스트롱과 함께 영화를 보고 호평을 했다.

2019년에는 그의 성을 딴 다큐멘터리 영화 '샐린저'가 개봉했다.

2021년에는 한때 그를 담당했던 에이전시 직원이자, 미국의 작가인 조안나 래코프가 그와 얽힌 일화를 기록한 회고록 'My Salinger Year'이 영화화되어 개봉되었고, 한국에서는 마이 뉴욕 다이어리라는 제목으로 개봉되었다. 워낙에 '호밀밭의 파수꾼'이 전세계적인 베스트셀러가 된지라 그 영향으로 전세계에서 어마어마한 팬레터를 받았고, 그의 잠적 생활을 돕기 위해 팬레터에 기계적으로 답장하던 직원이 있었다는 일화가 소개된다. 1995년 즈음에 그 업무를 담당했던 조안나 래코프가 나중에 작가가 되어 쓴 회고록을 영화한 작품이다.

5. 여담

엄격한 채식주의자지만 훈제연어 등 일부 고기는 먹었다고 한다.

아들인 맷 샐린저는 영화배우가 되었는데, 대표작이 1990년판 캡틴 아메리카캡틴 아메리카/스티브 로저스 역이다.

한때 35살 차이의 여류작가 조나스 메이나드[10]와 1년간 동거를 한 적이 있었다. 예일대를 다니던 18살의 메이나드가 한 잡지에 기고한 에세이를 보고 샐린저가 먼저 편지를 보내왔고 이후 교류를 하다 함께 생활을 하게 된 것. 이 둘의 관계는 여러 불협화음 속에 그와의 관계를 타개하고자 임신을 원하던 메이나드가 더 이상 아이를 가질 수 없다며 샐린저에게 버림을 받음으로서 끝을 맺게 된다. 이후 1998년 조나스 메이나드는 샐린저의 동거과 그 전후의 일을 다룬 《호밀밭 파수꾼을 떠나며》란 책을 펴낸다.

위 사례처럼 자신과 나이차가 많이 나는 젊은 여성들과 교류를 하다 관계를 맺곤 했다고 한다.

[1] 해당 사진에는 나와 있지않지만 샐린저 옆에 파파라치가 카메라로 촬영하고 있다. 이중 속임수에 당한 것.[2] 이 시절 샐린저는 "mediocre", 지극히 평범하다는 평가를 받았고, IQ도 평범했다.[3] 트루먼 커포티, 조지프 헤라, 노먼 메일러 등이 이 수업에서 배출된 대표적인 신인 작가들이었다.[4] 한국에도 들어온 소설이지만 판매량이 저조해 절판. 이후 2015년 문학동네에서 개정판 출간.[5] 글래스 가의 장남인 시모어 글래스가 7살에 미래를 예언하고 자신의 죽음을 알게 된다는 내용으로, 이 소설은 20년 전에 쓰인 "The Ocean Full of Bowling Balls"와 구성면에서 흡사하다.[6] 이 단편에서도 제대로 된 이름이 나오지 않는다.[7] 나중에 호밀밭의 파수꾼에서 앨리가 된다.[8] 본인 사후 50년 전까지 출판 금지. 아마 영구 출판 금지가 걸고 싶었겠지만 저작권법 때문에 이 정도로 만족한 것으로 보인다. 현재로서는 샐린저가 사망했으니 2060년 1월 27일까지 출판 금지.[9] 다만 실제 샐린저는 호밀밭 이후에도 다른 작품도 몇 개 더 썼다. 호밀밭이 워낙에 베스트셀러라 가려졌지만.[10] 니콜 키드먼 주연의 영화 '투 다이 포'의 원작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