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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차 세계 대전 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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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2. 역사3. 둘러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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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미국은 1941년부터 1945년까지 매우 '모순적인' 전쟁을 치렀다. 미국은 유럽 전선과 태평양 전선에 모두 개입하면서 글자 그대로 '세계적 차원의' 전쟁을 치른 유일한 참전국이었다. 하지만 전쟁 수행을 위한 국가적 동원의 정도에 있어서는 동맹국이나 적국의 '총력전' 수준에 한참 모자랐다.[1]
- Dennis Showalter, "Global Yet Not Total : The U.S. War Effort and Its Consequences", Roger Chickering, Stig Förster and Bernd Greiner(Ed.), A World at Total War : Global Conflict and the Politics of Destruction, 1937-1945(Cambridge, Cambridge University Press, 2005), p.109
미국사의 시대 구분. 제2차 세계 대전 발발 시기가 아닌 일본 제국의 침략인 진주만 공습으로 미국이 공식적으로 참전하게 된 1941년을 기준으로 한다.

2. 역사

태평양 너머로 아시아에서 유일하게 열강의 대열에 합류한 일본 제국제국주의 야망과 이로 인한 무분별한 영토 확장을 위해 대동아공영권을 전면에 내세우면서 중일전쟁을 일으켰고, 이 과정에서 서구 열강의 조차지까지 침범하기 시작하자 열받은 미국은 석유 수출을 끊어버리며 일본에게 경고했다. 그래서 일본은 미국을 한번 세게 치고 협상테이블에 불러오려고 진주만 공습을 실행하여 미국 상대로 전쟁을 걸기 시작하였다.

미국이 엄청나게 분노한 건 당연한 현상이다. 해군 기지가 하나 제대로 얻어터지고, 선전포고도 없이 기습당했으니[2] 당연하다. 진주만 공습 이후 미국과 국민들은 대대적으로 전시체제에 들어가 유럽과 태평양 양쪽에서 전쟁을 치르기 시작했으며, 더 많은 양의 물자와 더 많은 양의 무기를 동맹국에 제공했다. 영국, 소련, 중국 등이 미국이 지원한 물자의 혜택을 크게 받았으며, 이는 제2차 세계 대전에서 연합국이 승리하는데 상당히 기여했다. 진주만 침공 소식을 들은 윈스턴 처칠은 이제 전쟁에서 이겼다며 환호했다고 한다.

불과 2~3년 사이에 각종 항공기와 차량을 수십만 대씩 뽑아내는 기염을 토하며 폭격기를 한시간에 한대꼴, 심지어 리버티쉽이라 불리는 양산형 수송선의 경우 하루에 두 척씩 만들어졌다는 믿지 못할 통계마저 있다.[3] 뉴딜 정책이 약발이 점차 떨어져 가던 마당에, 무한정 소비를 보장하는 이런 전시체제는 미국에게 한 줄기 구원의 빛과 같았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를 통틀어 보자면, 1939년부터 1945년까지 미국은 총 32만 4,750대의 항공기를 생산했다. 이를 당시 연합국이나 추축국과 비교해보면 미국이 압도적으로 많다. 당시 소련은 15만 7,261대를 생산했고, 영국은 13만 1,549대를 생산했다. 독일은 11만 9,371대고 일본은 76,320대였다. 즉, 미국은 독일보다 2.7배 일본보다 4.2배나 더 많은 항공기를 생산했다. 1944년 6월 노르망디 상륙작전 당시 미국이 상륙작전에 동원한 항공기가 12,000대나 되었다는 것만 보더라도 당시 미국의 항공기 동원력은 다른 나라에 비해 압도적이다.

또한 렌드리스 계획으로 피폐한 동맹국에게 물자를 제공하기도 했다. 대전 기간동안 같은 물량대국으로 평가되는 소련도, 전차나 야포와 같은 전투병기에 예산을 쏟을 수 있었던 이유 또한 미국의 렌드리스가 있었기 때문이다. 소련병사의 피복이나 식량은 미국의 렌드리스에 의존하는 경우가 많았고, 소련의 제파식 전술의 기반이 되었던 트럭도 미국에게 지원받은 트럭이었으며 대부분의 화차 또한 미국제였다. 전차나 항공기 등도 지원받았으며, 우방국 영국 또한 미국의 렌드리스가 없었다면 전쟁수행에 어려움이 많았을 만큼 연합 우방국으로서의 미국의 위치는 매우 컸다.

결국 전쟁은 대승리였으며, 이때 유럽 열강들이 전쟁의 피해로 초토화된 것을 계기로 이후 세계의 맹주로 급부상한다. 1960년 당시 미국의 세계 경제 비중이 40%에 해당했다. # 이는 미국 이전 세계에서 가장 부유한 나라로 손꼽히던 북송도 세계 경제의 23%를 차지하는데 그쳤으니 상상을 초월하는 경제력을 지니고 있었던 셈이다. 심지어 세계 경제의 33%를 차지했던 청나라보다도 더 거대한 비중이다. 게다가 지나친 문치주의로 거란, 여진과 같은 유목민들에게 틈만나면 침략당하던 북송과 달리 미국은 2차대전을 통해 나치와 일본 상대로 양면전쟁을 동시에 치르고도 압도적으로 승리하는 저력을 보여주었다. 거기다가 발달된 교통과 통신 기술을 바탕으로 미국은 전세계에 영향력을 끼치며 기존 제국주의 열강들만의 점유물이었던 세계의 질서를 재조정해나가기 시작했다. 인류 역사상 최초의 초강대국의 등장이었다. 그러나 베링 해협 너머로 공산주의 사상을 앞세워 주변국들에 사회주의 정권을 하나하나씩 세우는 데 큰 영향을 끼친 소련과 미국이 갈등하게 되었다.

3. 둘러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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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제2차 세계 대전 당시 미국의 그런 미쳐버린 사기적 물량도 미국의 전체 국력과 비교해 보면 별로 크지 않았다는 뜻이다.[2] 당시 일본 해군 사령관인 야마모토 제독은 선전포고를 제대로 하고 나서 공격하려 했으나, 선전포고문을 담은 암호 해독이 늦어져 선전 포고문을 전달했을 때 이미 진주만이 공격당한 뒤였고, 이에 야마모토 제독도 엄청나게 분노했다고 한다. 그러나 원문도 빙빙 돌려 말할 뿐, 전쟁이 있을 거라는 내용은 없었으며 당시 진행 중이던 협상이 결렬됐다는 내용으로 해석되기 쉬웠다.[3] 독일의 U보트로 대표되는 무제한 잠수함 작전이 실패한 가장 큰 이유다. 결국 일본과 이탈리아는 그냥 개털려버렸고, 그나마 독일군이 좀 더 진보한 무기의 설계 사상과 많은 실전경험 등의 이점을 가지고 필사적으로 맞서 싸우며 전쟁 말기에도 교환비를 1대 1에 가깝게까지 찍어내면서 분전했지만, 미국의 물량은 그 정도로 해결될 수준이 아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