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개요
230년? 233년? 위나라와 오나라 간의 3차 합비 공방전이다. 제1차 합비신성 전투라고도 한다.2. 정사 삼국지
기록이 상반되어서 두 기록을 모두 적는다.오주전에서는 230년 위가 합비 신성을 쌓고, 233년 손권이 합비 신성으로 출병한다.
만총전에서는 230년 손권이 합비로 출병, 233년 위가 합비 신성을 쌓고, 그해 손권이 합비 신성으로 출병한다.
2.1. 오주전의 기록
230년 위가 합비 신성을 쌓았다.230년 손권이 출병했다는 기록은 없다.
233년 ~ 이 해, 손권은 합비 신성으로 진격하며 장군 전종을 파견하여 육안을 정벌하도록 했지만, 모두 승리하지 못하고 돌아왔다.
2.2. 만총전의 기록
230년, 손권이 합비를 공격했을 때 만총은 예주, 연주의 병력을 소집했고 손권은 군대를 물렸다. 만총은 이것이 계략이라고 판단했고 과연 손권은 10여 일 후 다시 돌아와 공격했으나 만총이 대비를 단단히 해놓았으므로 이길 수 없었다.233년, 만총은 해마다 손권이 공격해오려는 것을 보고 상소를 올린다.
합비 성은 남쪽으로는 강호에 다다라 있고, 북쪽으로는 수춘에서 멀리 떨어져 있으므로, 적이 포위하여 공격할 때 수세에 의거하여 우수한 형세를 차지하는데, 우리 관병이 그들을 구하려면 반드시 먼저 적군의 주력 부대를 무찌른 연후에 포위망을 풀 수 있을 것입니다. 적군이 가서 공격하기는 매우 쉽지만, 병사들이 가서 그들을 구원하는 것은 매우 어렵습니다. 성 안의 병사를 이동시키는 것이 마땅합니다. 성의 서쪽 30리쯤 되는 곳에는 기이하고 험준한 요새가 있어 의지할 수 있고, 다시 성을 세워 굳게 지킨다면, 이것은 적을 평질 끌어내서 그들의 퇴로를 막는 것이므로 계략면에서 유리하다고 생각합니다.
호군 장제는 "천하에 우리의 연약함을 드러내고 적군의 연기를 보고 성을 부수는 것으로, 이것은 공격을 받지도 않고 스스로 함락되는 것"이라고 반대를 하지만, 만총이 손자의 병법을 들어가며 다시 한번 상소를 올리자 조예는 이를 승낙한다.
그해 위군이 합비의 신성으로 옮기자 손권이 대군을 이끌고 상륙했다. 이때 손권은 위가 성을 옮긴 것을 오군의 위세 때문이라고 생각하고 사기를 높이기 위해 자신이 직접 병력을 도열하고 과시하고자 했다. 하지만 이를 예측한 만총이 복병을 숨겨두었다가 손권이 이럴때 기습했으므로 오군은 대패하고 손권은 배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