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01-20 02:32:27

제4회 일본 중의원 의원 총선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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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일본제국 제4회 중의원 의원 총선거
{{{#!wiki style="margin: -7px -12px"1894년 3월 1일
3회 중원선
1894년 9월 1일
4회 중원선
1898년 3월
5회 중원선
}}}
투표율84.84% ▼ 3.92%p
선거 결과
파일:빈 가로 이미지.svg
<rowcolor=#2D3865,#CFA547>정당지역구총합비율
'''
자유당
'''
107석107석35.68%
'''
입헌개진당
'''
49석49석16.33%
'''
입헌혁신당
'''
39석39석13.00%
'''
국민협회
'''
32석32석10.68%
'''
제국재정혁신회
'''
5석5석1.68%
'''
주고쿠진보당
'''
4석4석1.33%
'''
무소속
'''
64석64석21.33%
1. 개요2. 배경3. 제도4. 선거결과5. 선거 후 상황6. 지역별 결과

[clearfix]

1. 개요

1894년 9월 1일에 치러진 일본 제국 의회의 중의원 의원 총선거.

2. 배경

제3회 중의원 의원 총선거 결과, 자유당과 경육파(입헌개진당, 국민협회 등) 모두 과반 의석 확보에 실패했다. 이토 내각은 자유당과 경육파를 모두 적으로 돌린 채 정권을 운영하기는 곤란하다고 판단하여 자유당과의 협력을 도모하였다.

하지만 자유당 내부에서는 전쟁을 위해 예산을 확대하려고 하는 이토 내각에게 민력휴양을 위한 예산 감축을 더욱 강경하게 요구해야 한다는 호시 토오루의 의견이 주류였다.[1] 한편 귀족원에서도 니조 모토히로(二条基弘), 고노에 아츠마로(近衛篤麿)[2], 타니 타테키(谷干城) 등이 이토 내각의 중의원 해산을 부당한 의회 탄압이라고 비판하였으나 내각은 이러한 의견을 묵살하였다.

1894년 5월 15일, 선거 후 처음으로 개회된 의회에서 자유당과 경육파는 모두 이토 내각을 규탄하였다. 경육파는 내각 불신임안과 조약 여행 결의안을, 자유당은 예산 감축과 조약 개정 단행 결의안을 제출하였으나, 자유당과 경육파가 서로의 제안을 모두 부결시켰고, 결국 이토 내각에 대한 규탄을 담은 결의가 전혀 통과되지 않는 황당한 상황이 벌어졌다.

19일 자유당은 이토 내각에게 약속한 예산 감축을 요구하는 안건을 중의원에 제출하였다. 이는 우회적으로 이토 내각에게 자유당과의 협력을 요구하는 것이었다. 그런데 경육파에 의해 열린 특별위원회에서 안건이 수정되어, 자유당과의 협력을 요구하는 부분이 내각불신임으로 변경되고, 조약 여행에 관한 내용이 추가되었다. 이 수정안이 특별위원회를 통과하였고, 31일에 본회의를 통과하였다. 이에 6월 2일, 이토 내각은 불과 18일만에 중의원을 해산한다.

하지만 중의원 해산과 선거 사이의 3개월 사이에 사태가 급변한다. 영일통상항해조약이 27일에 합의되어 7월 16일에 조인되었다. 게다가 25일에는 일본이 청에 선전포고를 하여 청일전쟁이 발발하였다. 자유당과 경육파는 모두 이토 내각에 대한 지지를 표명하였고, 쟁점이 모호해진 상태로 선거가 치러지게 된다.

3. 제도

선거구, 선거권, 피선거권, 임기는 1회 중원선과 같았다.

4. 선거결과

정당의석수
자유당107
입헌개진당49
입헌혁신당39
국민협회32
제국재정혁신회5
주고쿠진보당4
무소속64
전체300
<colbgcolor=#2D3865>유권자 수460,483명
투표자 수390,687명
투표율84.84%
입후보자 수749명
선출인원300명

5. 선거 후 상황

6. 지역별 결과


[1] 호시 토오루는 경육파가 당시 최대 현안이었던 영일통상항해조약을 강경하게 거부하고 있는 이상, 이토 내각이 자유당에 대해 타협적으로 나올 수밖에 없으며, 만일 다시 한번 중의원을 해산한다고 해도 정부에 대한 비판적인 유권자들의 지지를 받을 수 있다고 판단하였다.[2] 고노에 후미마로의 부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