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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운(삼국지톡)/작중 행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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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2. 시즌 4: 군웅할거3. 시즌 6: 관도대전4. 시즌 7: 적벽대전
4.1. 비육지탄 ~ 삼고초려4.2. 박망파 전투 ~ 장판파 전투4.3. 적벽대전
5. 시즌 8: 입촉
5.1. 형남 정벌5.2. 손유 결혼동맹5.3. 유선 납치 미수 사건 ~ 익주 공략
6. 시즌 9: 삼국지
6.1. 유비의 초심6.2. 번외편: 제갈량이 사라졌다
7. 시즌 10: 한중왕 유비8. 시즌 11: 이릉대전9. 시즌 12: 출사표와 오장원의 별
9.1. 남만 정벌 ~ 강유 영입9.2. 1차 북벌: 가정 전투9.3. 2차 북벌, 그리고 최후

1. 개요

네이버 웹툰 삼국지톡에 등장하는 조운의 작중 행적에 대해 서술하는 문서이다.

2. 시즌 4: 군웅할거

계교 전투로 데뷔한다. 군웅할거 20화에서 공손찬을 역습한 원소를 기습하며 등장하여 공손찬군의 퇴각을 돕는다. 이때 도대체 어디서 어떻게 끼어들었는지 상대의 머리 위에서 나타나는 기가 막힌 장면을 선보인다.

계교 전투에서의 공으로 등장 1화만에 피치보이즈의 호의를 얻었다. 전투 이후 그가 군의관에게 치료받는 동안 장비는 그의 실력을 보아하니 자기보다 20살쯤 많을지도 모르겠다며 선빵을 날려 이기면 번호를 따겠다 벼르고 있었지만...실상 그는 군의관이 발라주는 빨간약(요오드팅크)을 아이오딘이라 부르는 파릇파릇한 갓 스물[1]이었다.[2][3] 이에 장비가 "지가 아기장수 우투리냐, 교복도 안 버린 애가 전쟁터엔 왜 나왔냐"고 떽떽거리는데 이게 황건적의 난 당시 유비와 장비의 대화가 묘하게 겹쳐 보이는 게 감상 포인트. 당시 장비는 이때 조운보다도 더 어린 십대였다.

이후 공손찬과 정식으로 대면한다. 공손찬은 조운이 자신을 도와준 건 고맙지만 기주 사람인 그가 원소를 공격한 의도를 알 수 없다고 추궁한다. 이에 조운은 자신도 한때 원소에게 기대를 걸었지만 그 또한 제 욕심을 위해 사람을 죽이는 냉혈한에 불과하여 실망했으며, 그의 집권 이후로도 기주 백성들의 삶은 나아지지 않았다고 대답하고, 공손찬이 선정을 베풀어 백성을 구한다면 자신은 그를 목숨 바쳐 모시겠다고 말한다. 그러나 공손찬이 자신을 휘하에 받아주고 포상을 주겠다고 말하자 "살기 좋은 세상을 바랄 뿐 공손찬이라는 개인을 사사롭게 섬기러 온 게 아니다"라는 말을 공손찬 면전에다 해 버리고 만다. 사회생활 못 하는 신참의 패기.....

이에 심기가 뒤틀린 공손찬은 "네가 바라는 대로 역적 원소를 쳐야겠으니 그에 필요한 희생은 네 손으로 직접 가져오라"며, 조운에게 민가를 약탈하고 민간인들을 강제로 징집해 오라는 명령을 내린다.

이에 충격을 받은 조운은 마지못해 명을 따르면서도 약탈당하는 민간인들의 모습을 보며 자책감에 괴로워한다.[4] 다행히 유비와 장비가 기지를 발휘해 약탈을 중단시키고, 이 사건으로 공손찬에게도 크게 실망한 조운은 형이 사망하여 장례를 치르러 귀향한다는 핑계로 공손찬을 빠르게 손절한다.

조운이 떠날 때, 내심 그를 자기 사람으로 삼고 싶었던 유비는 손수 만든 장식물을 선물하며 배웅한다. 조운 역시 유비가 자신을 배려해 주던 것과 능력이 닿는 한 백성들을 챙기던 모습을 좋게 보았으므로 그와의 재회를 기약하며 연락처를 교환하고 헤어진다. 이 때 처음으로 얼굴 전체가 드러났는데, 의외로 상당히 귀여운 인상의 소년미 넘치는 얼굴이다.[5]

3. 시즌 6: 관도대전

한동안 언급이 없다가 109화에서 원소 휘하에 있다가 유표에게로 의탁하기 위해 형주로 향하는 유비에게 미축이 '가는 길에 많은 사람을 모아 편을 만들자'고 제안하는 장면에서 실루엣으로 언급. 조만간 유비 진영에 합류할 것으로 예정된다.

118화 마지막 컷에서 드디어 재등장. 형주로 찾아온 유비를 채모가 공격하자, 누더기 망토를 두른 채 난입하여 채모를 기습한다.[6] 갑작스런 난입에 유비 일행은 당황했으나, 곧 장비가 조운이 창에 달고 있는 장식물이 유비가 선물한 것임을 알아본다. 채모는 조운의 등장에 아랑곳하지 않고 정예군을 시켜 유비를 치려 했으나, 그의 정예군은 이미 조운이 끌고 온 비밀결사대 풍운지회(風雲之會)에 의해 전부 박살났다.

곧 조운은 망토를 벗고 '10년이나 걸렸지만 약속을 지키기 위해 다시 찾아왔다'는 말로 정체를 드러내며, 귀신이 되더라도 절대 어르신을 떠나지 않겠다고 눈물을 흘리며 정식으로 유비군에 합류하게 된다.

4. 시즌 7: 적벽대전

4.1. 비육지탄 ~ 삼고초려

7화에서 유비에게 조조가 원소 잔당 소탕을 중단하고 업으로 돌아갔으며, 본격적으로 승상직에 올라 자신에 반대하는 자들을 척결하고 있다는 이야기도 전하며 조조를 막아야 한다고 유비에게 권유하는데, 이 때 군사를 끌고 왔던 유표가 유비를 공격하려는 걸로 착각해 전투 태세를 갖췄지만, 유비가 기겁하면서 경솔하게 굴지 말라고 말린 덕에 일이 커지지는 않았다.

8화에서 관우, 장비와 함께 전부 형주의 방어선을 지키러 출전하게 된 상황에서 유비가 홀로 채부인이 화합의 장을 위해 마련한 파티에 참석하게 되자, 우리가 다 가면 주군은 누가 지키냐며 격렬히 반대했지만, 채부인의 눈치를 보던 유비에게 등떠밀려 떠나게 된다.

12화에서 조조가 본격적으로 형주를 치고자 조인을 선봉으로 한 2만 5천의 군대를 보내오는데, 유비의 군대는 잘 해봐야 수천 정도 밖에 안 되었는 막막한 상황이었기에 조운은 싸우다 죽겠다는 각오를 보이며 출전시켜 달라고 청한다. 하지만 서서가 '싸워서 이기는 건 어떻겠냐'며 500의 군사로 2만 5천의 군사를 이길 계책을 짜오고, 조운은 서서의 명령에 따라 조인군이 짠 팔문금쇄진의 공략법을 듣고 선봉으로 나가 진을 뚫게 된다. 공략법이란 바로 생(生)문을 돌파해서 지휘관 조인을 친 다음, 경(景)문으로 빠져나가는 것이었고, 조운은 바로 500명의 별동대를 이끌고 선봉으로 나아가 서서의 공략법을 착실히 이행한다. 하지만 조인은 당황하지 않고 대열을 재정비해 조운을 치려고 했지만...

이 역시 서서의 계산 안에 들어가 있었다. 조조가 워낙 병법에 능통한데다 여러 강자들과 싸우며 경험을 쌓았고, 병사들 역시 소름끼칠 정도로 단련을 잘 시켜놓았다는 걸 알고 있었던 서서는 조인이 자신의 공략법을 간파하고 조운을 쫓을 거라 미리 예상하고서 조운이 출전하기 직전 그에게 '쇠사슬은 끊어졌을 때보다 엉켰을 때 쓸 수 없게 된다'는 조언을 더해줬던 것. 조운은 이를 응용해 경문을 뚫자마자 조조군이 대열을 재정비하기도 전에 바로 뒤돌아서 조조군을 가로질러 탈출하면서 진열을 흐트러 놓는 대 활약을 펼쳤고, 뒤이어 유관장 형제가 좌우 중앙에서 돌격해 흐트러진 조조군을 격파한다.

20화에서 업성을 지키던 중 유비에게 전화로 감소혜의 출산이 임박했음을 알린다. 출산한 감소혜의 옆에 얼굴까지 새빨개진 채 감동으로 초롱초롱한 눈에서 눈물을 쏟고 있어 독자들이 '누가 보면 네가 애 아빠인 줄 알겠다'며 가볍게 놀리는 중. 훗날 장판파 전투에서 유선을 구출하는 미래에 대한 복선이라는 평도 있다. 26화에서도 제갈량의 활약에 아기 유선을 들어올리고 기뻐하는 유비를 보며 안절부절 못하는 반응을 보인다.

4.2. 박망파 전투 ~ 장판파 전투

27화에서 밝혀지길, 제갈량이 유비 진영에 새로 군사로 들어오고 나서 관우&장비와 알력다툼이 생기자 미축에게 톡을 보내 '어르신은 제갈량 군사님을 스승처럼 모시라고 했는데 장군님들이 대놓고 선생님만 뺀 단톡방을 파고 초대하려 하시면 저로서는 혀 깨물고 죽는 수밖에 없습니다(...) 충성심도 의리도 저버릴 수는 없습니다'라며 중간관리직의 고통을 하소연했다고 한다. 미축이 유비에게 아우들과 대화해보는 것을 조언하는 찰나, 박망현에 하후돈과 이전, 우금이 이끄는 10만 대군이 도달했다는 소식이 전해져 제갈량의 명령에 따라 선봉으로 나서게 된다.[7]

유비와 함께 하후돈과 이전을 갈대밭으로 유인하여 대기해 있던 관평과 유봉의 화공으로 대승을 거두고, 거기다 관우와 장비가 보급까지 끊으면서 조조군은 완전히 물러가게 된다. 이후 승전 축하파티를 하러 나타난 제갈량을 반기면서 훈훈하게 마무리.[8]

36화에서 강릉으로 퇴각하던 중 유비의 가족들과 간손미, 조운은 백성들을 보호하는 겸 뒤에서 따로 움직이고 있었는데, 곧 조조군에게 따라잡혀 이들을 태운 트럭이 습격받았다. 조조군을 물리친 조운에게 미축이 동생이 호위도 무기도 없이 유선을 데리고 도망쳤다며, 살려달라고 애원한다. 조운이 미영란의 행방을 뒤쫓아가 발견했을 때, 다행히 미영란은 유선을 안은 채로 건물 잔해 곁에 앉아 있었으나, 하필 다리를 창에 찔린 탓에 거동이 힘든 상태였다.[9]
그래도 조운은 미축이 많이 걱정했다는 말로 미영란을 안심시키며 업고 유비를 쫓아가려 했으나, 그순간 뒤쫓아온 조조군에 포위 당하고 만다. 위기 상황에 얼어붙은 미영란은 갑자기 조운에게 '날 지키며 싸우다 힘에 부쳐 다같이 저 조조군에게 죽는 한이 있더라도 안 버리고 포기하지 않아줄 거냐'고 묻는데, 이에 조운은 물론이라며 결의를 다지지만...

미영란은 조운에게 짐이 되지 않고자 절벽으로 몸을 던져 스스로를 희생한다. 이 광경을 본 조조군 병사들이 시체를 찾아 상을 받을 심산으로 절벽 밑으로 내려가려 하자, 미영란의 죽음에 비통해하며 눈물 흘리던 조운은 분노에 차 즉각 조조군을 전부 참살하고 하후은이 지휘하던 막사에 다다른다.[10]

곧바로 하후은을 죽이고 조조의 대군을 뚫으면서 장판교로 향하는데, 청강검이 조운의 손에 들어간 것을 본 조조가 조운을 탐내면서 생포할 것을 명령한다. 덕분에 조조군의 화살은 맞지 않고 이동할 수 있었으나, 장판교에 도달했을 즈음에는 지쳐서 싸울 힘조차 남아 있지 않았고 조운은 여기까지임을 직감하고 자책하지만...

때마침 늦었다는 말과 함께 장비가 장팔사모를 든 채 장판교에서 조운을 맞이한다. 왜 이렇게 늦었냐고 잔소리를 하나 싶던 장비는 곧 조운을 끌어안고 살아 돌아와줘서 고맙다며 눈물을 흘리고, 미영란의 죽음을 파악하고서 조운을 유비에게로 보낸다. 덕분에 조운은 무사히 유비와 합류하여 유비에게 유선을 안겨줄 수 있었지만, 미영란을 구해오지 못했다는 죄책감에 미축을 볼 면목이 없어 주저앉아 통곡한다. 하지만 더 큰 희생을 치르게 된 것에 유비가 더 미안해하며 창을 내던지고 무릎을 꿇자, 이러지 말라며 만류한다.[11]

이후 감소혜를 태우고 유비와 도주하며, 장강에 이르러 제갈량과 관우가 데려온 지원군 덕분에 무사히 강하로 대피하는데 성공하지만, 미영란의 장례식과 혼수상태에 빠진 감소혜의 절망적인 몸 상태에 침울해한다.

4.3. 적벽대전

63화에서 간만에 언급. 동남풍이 불 때 돌아가겠다는 제갈량의 약속을 유비로부터 전해들은 장비가 동남풍이 불자 바로 전화를 걸어 작은 보트 한 척 끌고 제갈량을 데리러 가줄 것을 지시한다.

그리하여 손권군에 쫓기고 있던 제갈량을 구출해 보트에 태우고 탈출에 성공한다. 강하로 돌아가는 중 제갈량에게 무릎을 꿇고 절을 하며 '동남풍을 불러와 조조군을 불사르셨으니 과연 하늘이 내리신 분'이라고 제갈량을 칭송하지만[12], 제갈량은 그저 겨울에도 따뜻한 형주의 지형과 기온을 통해 동남풍이 불 것을 예측한 것이었다고 알려준다. 이어 제갈량이 조조군을 형주에서 몰아내기 위한 작전을 지시하자 장비와 함께 의지를 불태우지만, 관우만은 작전에서 제외하면서 관우와 신경전을 벌이자 제갈량의 말이 심하다며 말린다. 그래도 제갈량의 작전에 따라 장비와 함께 퇴각하는 조조군을 추격해 큰 피해를 입혔다.

5. 시즌 8: 입촉

5.1. 형남 정벌

형남 4군 정벌 때 계양군을 공략할 선봉으로 나서게 된다. 하지만 의외로 계양태수 조범이 바로 항복하면서 극진한 대접을 받게 되는데, 곧 조범의 형수 번부소가 유혹해오면서 아무 대응도 하지 못하고 손발이 벌개질 정도로 경직하고 만다. 조범은 조운을 형님으로 떠받들며 "형수가 3년 전에 남편을 잃은 후 '문무로 천하에 이름을 떨치고 재색을 겸비한 데다 죽은 남편과 같은 조씨가 아니면 재혼할 생각 없다'고 했는데 형수가 반한 걸 보니 운명이다, 유비를 버리고 형수와 결혼해주면 계양군 2인자를 시켜주겠다"고 회유하지만...

조운은 이 상황이 함정임을 간파하고서 단호히 거절하고, 조범과 번부소를 생포하여[13] 휘하의 병사들에게도 항복을 받아내 피 한 방울 흘리지 않고 계양을 접수한다. 곧 작전을 마치고 나오자마자 조운은 유비에게 함정을 미처 눈치 못 챈 것을 사죄한다. 유비는 이를 질책하지 않고 오히려 "부인이 정말로 마음이 있는 듯하니 이 기회에 진짜로 장가드는 게 어떻냐"고 제안하나, 조운은 이전 당양 전투 당시 지키지 못했던 미영란을 떠올리면서 "지켜야 할 가족이 생기면 두려움을 알게될까 두렵다.[14] 오로지 어르신의 꿈만 위해 살고 죽겠다!"면서 다시금 포부를 밝힌다. 이에 감복한 유비는 제갈량과 장비, 관우와 함께 조운을 무등 태워주며 그의 충성심을 칭찬하고[15] 조운을 새 계양태수로 임명한다.

5.2. 손유 결혼동맹

유비가 형남4군을 공안으로 통합해 주인이 된 후, 노숙이 유비에게 손권의 여동생 손상향과의 재혼을 추진하면서 유비가 동오로 가게 되자, 유비의 호위 역으로 따라가게 되는데, 이때 제갈량으로부터 위기에 처할 때마다 열어보라며 세 개의 ZIP 파일을 받는다.

첫번째 파일에는 동오 신문사 기자들과 홍보대행사들, 댓글알바 모집대행사의 번호목록이 들어있었는데, 손권이 재혼을 핑계로 유비를 인질로 잡을 것임을 눈치챈 제갈량은 "덧글 알바 셋만 있으면 없는 호랑이도 만들어낼 수 있다"며 유비와 손상향의 결혼을 사실로 만들 생각이었던 것이었고, 조운은 바로 이 목록을 이용해서 유비와 손상향의 결혼을 기정사실로 발표해버린다. 결국 손상향도 어쩔 수 없이 유비와의 결혼을 받아들이는데 신방까지 유비를 호위하려 하는 조운을 우락부락한 군필 여고생친구들을 동원해 막는다.

그러나 뜻밖에도 손상향은 유비에게 볼키스하는 사진도 찍어서 인스타에 올리고 유비를 백화점에 끌고 다니며 명품들을 사주는 등, 유비에게 다정하게 굴었고 유비 또한 그 생활이 마음에 들었는지, 제갈량이 기다린다는 조운의 카톡에도 불구하고 차일피일 귀환을 미룬다. 당연히 유비 부부의 짐꾼 노릇을 하게 된 조운은 차라리 전쟁터에서 백만 대군과 싸우는 게 낫다며 답답해하는데, 쇼핑 도중 유비의 심부름으로 바지를 전해주기 위해 탈의실에 들어서자, 유비가 조운의 입을 막고 다급하게 구해달라며 도움을 요청한다. 실상은 유비가 손권의 사람들에게 감시당하고 있었고 손상향에게 핸드폰 검사까지 당하고 있어, 빠져나올 방법을 찾지 못하고 있었던 것. 조운은 유비의 사정을 알아차리지 못한 것을 사죄하면서 제갈량에게 받은 두번째, 세번째 파일 '조조가 형주를 치러 온다고 하니 막으러 돌아가야 한다고 핑계를 댈 것', '탈출 시 최대한 전면전을 피하고 내부 인사의 도움을 받아 탈출할 것'을 보여준다. 이에 유비는 안 그래도 손권에게 앙심을 품고 있었던 손상향이 같이 가자고 자청하면서 손권에게서 탈출할 수 있었다.

5.3. 유선 납치 미수 사건 ~ 익주 공략

하지만 손상향의 실상은 유비를 감시하기 위해 스파이로써 잠입한 것이었고, 이후 손상향은 유비 진영에서 대놓고 사진과 동영상을 찍거나 병사들을 학대하는 등의 만행을 저지르다가, 손권이 조조와 유수구 전투를 벌일 때 유비가 손권을 지원해주지 않았다는 이유로 이혼한 것도 모자라 유비의 적자 유선을 납치해가는 만행을 저지른다. 이에 조운은 장비와 즉각 손상향과 유선이 탄 트럭을 추격해 따라잡았고, 유선을 무사히 구해내지만 손상향은 놓치고 만다.

이후 시즌 마지막 화인 45화에서 성도 공략 중 낙봉파에서 방통의 전사로 인해 위기에 처한 유비를 장비와 제갈량, 마초와 함께 구원하러 등판하는 것으로 시즌을 마무리 한다.

6. 시즌 9: 삼국지

6.1. 유비의 초심

조조는 황실의 인척이 된 것도 모자라 한중까지 먹으면서 위공에서 위왕으로 즉위하게 되고, 이때문에 절박해진 유비가 가혹하게 징발을 하며 협력하지 않은 호족들도 잔인하게 체포해 징벌하는 행보를 보이자, 그동안 유비가 징발해서 선사한 모든 재물을 반납하고서 무릎 꿇고 유비에게 복황후을 시해한 것도 모자라 그녀의 가족들까지 전부 죽이고 모친만을 멀리 유배보냈다는 조조의 만행을 고한다. 유비는 그래서 내가 조조를 막으려는 것 아니냐며 조운을 무시하려 했지만, 조운은 그 복황후의 어머니가 유배간 곳이 유비의 고향인 탁군이고, 탁군도 결국 조조의 손아귀에 넘어갔음을 알리며 유비에게 초심을 되찾아줄 것을 눈물로 호소한다. 물론 직후에 유비가 어머니의 임종도 못 지켰던 일까지 거론하자, 누구보다 승리를 바라시는 분에게 감히 잘난척을 했다며 떨었지만, 다행히도 조운의 호소 덕분에 유비는 스스로를 다시 돌아보고 백성들에게 진심으로 사죄를 올림으로써 초심을 되찾을 수 있었다.[16]

6.2. 번외편: 제갈량이 사라졌다

번외편에서는 유비가 오현과 재혼하게 되자, 미축과 장비와 함께 축하 영상을 찍었는데, 축하 인사를 건네면서 울고 있다.

7. 시즌 10: 한중왕 유비

10화에서 장비가 조조군을 가맹관까지 격퇴시키면서 유비가 황충엄안을 보내 상대하게끔 하려하자, 갑자기 죽은 눈으로 둘을 못마땅하게 보면서 '전장보다 무덤 속이 어울릴 노망난 늙은이들'이라고 비웃는다. 평소 '바른생활 인간'이자 '유교보이'나 다름없는 조운의 성격을 아는 촉 패밀리는 당연히 경악하고[17], 장비는 조운에게 황충의 능력은 이미 여기 모여있는 사람들이 증언해 줄 수 있으며 엄안 장군 역시 자신이 힘들게 모셔온 분인데 무슨 결례냐고 꾸짖는다. 그러나 조운은 '장수는 주군을 위해 명예롭게 죽어야 한다는데 결국 둘다 항장 출신이니 주군을 저버린 거 아니냐'라고 디스한다. 엄안과 황충은 무시당한 것에 분노하여 조운을 향해 화살을 쏘는 것도 모자라 활 두 세 개를 부러뜨리는 것으로 화를 풀고는, 목을 걸고 가맹관으로 돌격하지만...

조운은 그런 둘을 보며 눈물을 글썽이더니 이내 바닥이 깊게 파일 정도로 머리를 박고 얼차려를 시전하며 자신은 죽어 마땅하다고 자책한다. 알고 보니 제갈량이 '모든 전투에서 모든 적을 이기는 완벽한 책략은 없다. 그때그때 변화하여 상대를 놀래켜야 제압할 수 있을 뿐'이라는 손빈병법의 구절을 들어 일부러 가장 예의바른 조운에게 엄안과 황충을 도발할 것을 지시한 것. 당연히 조운은 못한다며 극구 거부했으나, 제갈량의 명령이라 어쩔 수 없이 따른 것이었고 제갈량의 칭찬에도 눈물을 글썽이며 웃지 못한다.

이후 등장 없이 보고를 통해서 전장을 누볐던 것이 확인되었고, 말미 조조가 한중을 퇴각할 때 제갈량, 장비, 위연, 황충, 엄안과 함께 조조 앞을 막아섰다.

8. 시즌 11: 이릉대전

그러나 손권의 배신으로 관우가 죽고, 장비마저 암살당하자 조비에 의해 멸망한 한 황실의 뒤를 잇겠다는 명분으로 황제가 된 유비가 손권을 향한 맹목적인 복수에 불타 동오를 치겠다며 이릉대전을 일으키자, 우리의 적은 조비라며 만류하지만 제갈량에게 "이미 유비는 황제가 아닌 동생들을 잃은 형"이라 들리지 않을 거"라는 말에 허망해한다.

결국 우려대로 유비가 이릉대전에서 육손의 화공에 대패하자, 마량이 희생한 동안 제갈량과 함께 유비를 구출해 백제성으로 모신다. 하지만 투병중이던 유비가 고집 못 버리고 제갈량과 투닥거리는 상황에 굉장히 쩔쩔매는 중.

이후 유비가 투병 끝에 사망하자, 제갈량 곁에서 그를 보좌하며 침통한 심정을 감추지 못한다.

9. 시즌 12: 출사표와 오장원의 별

9.1. 남만 정벌 ~ 강유 영입

남만 정벌부터 제갈량의 파트너로서 그의 곁을 보좌하는 중. 하지만 첫 전투 때 제갈량이 "나이도 먹었으니 이제 젊은 장수들에게 기회를 줘야하지 않겠냐, 주름 제거 마스크나 쓰고 구경하시라"고 신경을 긁자, 바로 달려나가 맹획을 사로 잡아왔다.

9.2. 1차 북벌: 가정 전투

1차 북벌에서는 장안으로 별동대를 이끈다.

역사대로 1차 북벌은 실패하고 조운의 1차 북벌 퇴각전에서 병력을 온존시키며 퇴각했던 공로가 스킵되었다.장합:내가 가정산을 불태웠던것도 너희 패배를 확정했던것을 잊지 말라고!

9.3. 2차 북벌, 그리고 최후

안타깝게도 가정 전투 후, 2년이 지나[18] 기산을 통해 2차 북벌을 시도하던 상황에서는 중병에 걸려 막사 안에서 링겔을 맞고 누워있던 상태였다. 그럼에도 사마의의 농성을 뚫지 못해 초조해져 있던 제갈량을 애써 달래준다. 이에 용기를 얻은 제갈량은 위군이 탈취한 목우유마를 제대로 쓸 수 없게 만든 후, 사마의 군을 협곡 내 가짜 식량창고로 유인하여 불태워 섬멸하려 들었으나, 갑자기 비가 내리면서 화공은 허무하게 실패하고 말았다. 설상가상 이엄이 식량보급도 보내주지 않고, 조진이 다시 군을 재정비해 습격해오는 상황에서 조운은 다친 몸을 억지로 일으켜 딸 조현의 부축을 받아 출전하려 했지만... 결국 악화된 병세를 극복하지 못하고 비통함의 눈물을 흘리며 선 채로 사망하는 최후를 맞이한다.


[1] 조운의 생년은 불명이나 170년 언저리로 추정되고, 본작에서는 171년생으로 설정되었다. 따라서 데뷔전인 190년 계교 전투 시점에서는 갓 스무 살로 고등학교를 막 졸업한, 여전히 소년 티가 남아 있는 앳된 청년이다.[2] 아이오딘 항목 참조. 보통 사용되는 '요오드(Jod)'라는 명칭은 독일식이며, 과학의 대세가 독일이던 시절에 정립되었던 표현이 일본을 거쳐 전래된 우리나라에서는 이 명칭이 많이 통용된다. 라틴어로는 '요듐(Iodium)'이고 영어는 '아이오다인'이라고 하며, 대한화학회에서는 영어와 비슷한 명칭인 '아이오딘'을 권장하며 교과서에도 이미 '아이오딘'이라고 나오고 있다. 이 때문에 1990년대생까지는 요오드로 배웠고 교육과정 개편 이후인 2000년대 이후 출생자들은 아이오딘으로 배우고 있다. 즉 2010~20년대 한국에서 '청년층 내의 세대 차이'를 드러내기 아주 적절한 요소인 것. 조운의 너무나도 해맑은(...) 아이오딘 발언에 독자들은 대폭소하며 뒤집어졌다.[3] 피치보이즈도 아이오딘 소리에 충격을 먹고 단톡방에서 빨간약의 이름을 논하며 세대 차이를 실감한다. 유비와 장비는 요오드라고 부르고, 관우는 옥도정끼(...)라고 한다. 이 탓에 관우는 장비에게 할배 소리를 그리고 독자들에겐 기원전 사람이냐, 진시황 시대 사람이냐는 소리를 들었으며, 이후로 작중에서 누군가가 상처를 입는 장면이 나오면 꼭 옥도정끼 드립이 하나씩 올라온다. 본작에서 관우는 유비보다 한살 연상이기에 저 정도 할배는 아니지만, 어린 시절부터 막노동을 하며 아재들과 어울렸기에 말투나 행동이 젊었을때부터 아재스러웠다.[4] 민간인 하나가 약탈에 대해 원망하며 던진 돌을 머리에 맞고 피가 날 정도로 다쳤는데도, 그저 넋이 나가서 아무것도 못 하고 자책만 하고 있을 정도였다.[5] 사실 하관을 가리고 있을 때도, 눈이 크고 초롱초롱하며 볼이 발그레한 것이 제법 귀엽게 생긴 인상이었다.[6] 계교 전투 당시의 첫 등장 장면을 자체 오마주하여 독자들의 호응이 뜨겁다.[7] 이 때 제갈량을 두고 '사무직 나리께서 칼은 잡아보셨냐'고 수군거리는 병사들과 대놓고 반발하는 관우, 장비와 달리 별다른 마찰 없이 명령을 받아들이는 모습을 보인다.[8] 조운이 제갈량을 번쩍 들어올리고, 장비는 그런 조운을 들어올리고, 2중으로 들어올려진 제갈량은 깜짝 놀라는 귀엽고 코믹한 장면이 연출됐다.[9] 연의에서 부상을 입어 움직일 수 없었던 것을 발목 인대 부상으로 개연성을 추가한 듯.[10] 이 때 조조군을 도륙하며 얼굴에 묻은 피가 눈물과 섞여서 피눈물처럼 연출되었다.[11] 연의에서 유선을 내던진 것은 각주로 연의의 창작이라는 설명만 하고 넘어갔다. 본작이 현대적인 시각으로 각색된 것을 감안한 듯 한데, 연의에서 해당 장면은 자식보다 부하를 아끼는 유비의 인의를 보여주기 위한 묘사였고 해당 각주에 '과거 유학자들은 가족간의 사랑보다 군신간의 충성심을 높이 샀기 때문'이라고 밝히긴 했지만, 이젠 갓난아이를 집어던지는 사람이 의로운 사람이라고 보지 않는 시대이기 때문이라고 볼 수 있다. 다만 유선의 악명이 워낙 높아 댓글창에선 '왜 안 던지냐?'는 불만도 상당하다.[12] 실제로 조운은 제갈량보다 유비를 모신 기간이 훨씬 길었음에도, 유비가 뒤를 맡긴 제갈량에게 아무런 불만도 표하지 않고 죽을 때까지 충성하는 모습을 보였다. 여담으로 이 때 조운과 제갈량이 연배 비슷한 청년처럼 보이는데, 삼톡 설정상 조운은 제갈량보다 열살 연상이라 저 장면에선 30대 후반 아저씨였다. 조운이 워낙 소년 장수 이미지가 강해서 다른 매체(특히 아동용 만화판 등지)에서도 제갈량과 나이대가 비슷해 보이거나 심지어 어려 보이는 작화로 나오는 경우가 종종 있긴 하지만.[13] 본인 딴엔 진지했겠지만, 웃기게도 둘을 의료용 폐기물 봉투에 담아서 생포해왔다.[14] 독자들은 이 부분에서 황당해 했다. 그는 평생 독신으로 산 것도 아니고 조통, 조광이라는 아들도 있었기 때문이다. 그럼 이 둘은 도대체 어떻게 등장하냐고 의문을 제기한 독자들도 생겼다.[15] 마침 전 주인인 장사태수 한현의 장례를 치르고 유비군으로 돌아온 황충이 이 장면을 황당하게 쳐다보았다.[16] 익주 정벌 후 유비가 논공행상을 정할 때 백성들이 전란을 피해 도망쳐서 주인이 없어진 빈땅을 부하들에게 상으로 나눠주려고 하자 그 땅들은 원래 주인들에게 돌려줘서 다시 생업에 종사할 수 있게 해야한다고 직언하자 유비가 그 이야기를 받아들인 일화를 각색한 것으로 보인다. 또한 훗날 이릉대전에서 유비를 말렸지만 결국 묵살되는 일과 대비되는 복선을 깔아뒀다고 볼 수도 있다.[17] 물론 법정과 제갈량은 낄낄 거리긴 했다.[18] 가정 전투가 벌어진 시점은 228년이나, 정사에서 조운이 죽은 때는 229년이다. 극적인 장면을 만들고자 작가진에서 각색을 한 모양이나, 역시나 고증오류라며 비판받는 부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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