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5-03-16 20:15:25

존 코민 2세

이름 존 코민 2세
John Comyn II
출생 미상
스코틀랜드 왕국 바데녹 영지
사망 1302년
스코틀랜드 왕국 스트래스페이 로친도르브 성
아버지 바데녹 영주 존 코민 1세
어머니 에바
형제 윌리엄, 알렉산더, 존 코민 주니어, 로버트, 앨리스
부인 엘레노어 발리올
자녀 존 코민 3세
직위 바데녹 영주

1. 개요2. 생애3. 가족

[clearfix]

1. 개요

바데녹 영주. 제1차 스코틀랜드 독립 전쟁에서 존 발리올을 위해 에드워드 1세와 맞섰다.

2. 생애

초대 바데녹 영주 존 코민 1세와 기원이 불분명한 여인인 에바 사이의 두번째 아들이다. 형 윌리엄 코민은 맨티스 여백작 이사벨라의 외동딸이자 상속녀인 이사벨라와 결혼해 아내의 영지를 얻는 조건으로 장자 상속권을 포기하고, 그에게 바데녹 계승권을 넘겨뒀다. 동생 알렉산더는 일찍 죽었고, 그와 이름이 같아서 후대 학자들이 '존 코민 주니어'라고 이름 붙인 또 다른 동생은 1279년 타인데일에 있는 가문의 영지를 놓고 그와 분쟁을 벌였지만 패소했다. 또 다른 동생 로버트는 1306년 존 코민 2세의 아들 존 코민 3세와 함께 로버트 1세에게 피살당했다. 누이로 여럿이 있었다고 전해지나, 이름이 전해지는 이는 앨리스 뿐이다.

존 코민 2세는 스코틀랜드 국왕 알락산더르 3세와 가까운 사이였다. 14세기 연대기 작가 포던의 존에 따르면, 알락산더르 3세는 1267년에 그에게 기사 작위를 내렸다고 한다. 그는 1281년 스코틀랜드의 마거릿 공주와 노르웨 이 국왕 에이리크 2세의 결혼이 성사되도록 주선했다. 1286년 알락산더르 3세가 갑작스럽게 사망한 뒤, 알락산더르 3세의 유일한 손녀인 마르그레트 에이릭스도티르에게 충성을 맹세했으며, 왕국의 가장 강력한 가신 중 한 명으로서 여왕의 미성년 기간 동안 섭정을 맡을 스코틀랜드의 여섯 수호자 중 한 명이 되었고, 포스 만 남쪽의 귀족 대표로 선출되었다.

그는 능숙한 외교관으로서 잉글랜드 국왕 에드워드 1세와 긴밀한 관계를 맺었다. 1289년 마르그레트 에이릭스도티르와 에드워드 1세의 왕위 계승자 에드워드 왕자의 결혼을 주선하기 위해 런던에 방문했고, 1290년 런던에 재차 방문한 뒤 새인트앤드루스 주교 윌리엄 프레이저의 편지를 전달하고 마르그레트가 스코틀랜드 여왕으로 등극하는 걸 동의한 것에 감사를 표하기 위해 귀중한 선물을 제공했다. 그러던 중 마르그레트가 스코틀랜드로 이동하던 중 심한 뱃멀미로 인해 오크니 제도에서 사망했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스코틀랜드 왕위를 놓고 13명의 경쟁자가 들고 일어났다. 그 역시 왕위를 주장한 인사 중 한 명이었는데, 스코틀랜드 국왕 돔날 3세의 후손인 타인데을의 헥스틸다가 자신의 증조모인 걸 근거로 들었다.

하지만 그는 자신이 왕위를 얻기엔 스코틀랜드 왕실과의 친족 관계가 지나치게 멀다는 걸 인식하고, 처남인 존 발리올을 지지하기로 했다. 1292년, 잉글랜드 국왕 에드워드 1세는 스코틀랜드 왕위 주장자 13명 중 존 발리올을 스코틀랜드 국왕으로 선택했다. 그 후 존 발리올이 통치하는 동안, 그는 가족들과 함께 존 발리올을 적극적으로 지원했으며, 에드워드 1세와 안정적인 관계를 유지하는 책임을 맡았다. 그러나 에드워드 1세의 지나친 간섭에 시달리던 존 발리올이 1295년 독립을 선포했을 때 지지했다. 1296년 던바 전투에서 스코틀랜드군이 완패하고 그의 아들 존 코민 3세가 포로 신세로 전락하자, 그는 존 발리올이 폐위되고 에드워드 1세를 스코틀랜드 국왕으로 인정할 수 밖에 없었다.

에드워드 1세는 그를 잠재적인 위협으로 여기고, 잉글랜드로 완전히 이주하고 스코틀랜드에 돌아가지 못하도록 강요했다. 그렇지만 그와 가족들은 잉글랜드 왕실 직할지인 노샘프턴의 게딩턴에서 안락한 삶은 살았고, 왕립 숲에서 사냥을 할 수 있었다. 그러던 중 윌리엄 월레스, 앤드류 모레이 등이 스코틀랜드에서 대규모 반란을 일으키자, 에드워드 1세는 포로가 된 스코틀랜드 귀족 일부를 자신을 위해 싸우겠다고 맹세하는 조건으로 풀어줬는데, 코민 가문도 이중 하나였다.

존 코민 2세는 1297년 7월 스코틀랜드로 돌아온 뒤 잉글랜드 총독 브라이언 피츠앨런을 지원하고 앤드류 모레이의 반란을 진압하며, 록스버러 성을 방어하는임무를 떠맡았다. 그러나 그는 반란군의 기세가 거센 걸 보고 얼마 지나지 않아 진영을 바꿔서 스코틀랜드 저항 세력에 가담했고, 에드워드 2세는 이를 보복하기 위해 1297년 말 잉글랜드 북부 내 코민 가문의 영지를 몰수했다. 그는 1298년 폴커크 전투에 기사와 기병대를 지원했다. 포던의 존은 코민 가문이 윌리엄 월레스를 배신하고 전장을 이탈해버리는 바람에 윌리엄 월레스가 패배했다고 기록했지만, 현대 학계에서는 코민 가문의 정적인 로버트 1세가 코민 가문을 스코틀랜드의 배신자로 낙인찍기 위해 의도적으로 왜곡한 걸 그대로 받아적었을 뿐이라고 추정한다.

그 후 그의 아들 존 코민 3세가 캐릭 백작 로버트 브루스와 함께 스코틀랜드의 수호자로 군림하며 에드워드 3세와 대적했지만, 그는 나이가 많이 들어서 정계에 참여하지 않고 조용히 지내다가 1302년 스트래스페이의 로친도르브 성에서 사망했다.

3. 가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