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04-01 17:58:36

좌구명

左丘明
생몰년도 미상
교묘하게 말을 잘하고, 보기 좋게 얼굴빛을 꾸미며, 지나치게 공손한 것을 좌구명이 부끄럽게 여겼고 나도 부끄럽게 여긴다. 원한을 감추고 그 사람과 친구처럼 지내는 것을 좌구명이 부끄럽게 여겼고 나도 부끄럽게 여긴다.
공자

1. 개요

1. 개요

춘추시대의 인물. 노(魯)나라 사람으로 전한의 유학자 공안국은 노나라의 태사, 북송의 형병은 노나라의 태사로 공자에게서 춘추를 수업받은 자, 남송주희는 논어에 나오는 좌구명과 춘추좌전을 저술한 사람은 별개의 인물, 남송의 정이천은 옛날의 문인으로 전설적인 인물이라 주장했다.

춘추좌씨전, 국어의 저자로 알려져 있으며, 좌구명이 두 눈을 잃고 맹인이 되면서 좌전을 지었다는 설이 있어 좌구실명(左丘失明)이 된 것을 사마천의 사기에 따르면, 당시의 사람들이 맹좌(盲左)라 부르기도 했다. 춘추좌씨전의 저자는 정확히 알 수 없다는 이야기가 있으며, 청나라 대의 고증학자들에 따르면 춘추좌씨전은 좌구명 한 사람이 지은 책이 아니라 여러 대에 걸쳐 사관들이 쓴 저작으로 좌구명은 최후의 정리자쯤 되었을 것이라고 여겼다.[1]

논어에 기록된 공자의 설명에 따르면, 좌구명은 말 또는 얼굴색을 꾸미거나 공손함이 지나친 것을 부끄러워했다고 하며, 또한 원망함을 숨기고 그 사람과 친한 척하는 것을 수치스럽게 여겼다고 하는데, 공자도 똑같이 여겼다고 한다.

사통에서 좌구명의 문체는 서술된 문장이 매우 간략하고 무엇인가 빠진 것 같지만, 그 안에 표현된 논리적인 줄거리는 매우 분명하게 드러난다고 평가했다.

그의 후손들은 좌씨(左氏)와 구씨(丘氏) 성을 썼다고 하며 구(丘)는 구(邱)와 통용되었다고 한다.

백제 유민인 흑치상지가 묘지명에 좌구명(과 공자)의 위 어록을 존경한다는 글을 남긴 바 있다. 마치 자신의 인생을 돌아보고 회상하는 듯한 뉘앙스로 남긴 게 특이사항.


[1] 혹은 사관을 세습한 좌씨 집안에서 여러 대에 걸쳐 쓴 기록물이라는 설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