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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드 벨링엄/클럽 경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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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잉글랜드의 축구선수 주드 벨링엄의 클럽 경력을 정리한 문서.

2. 버밍엄 시티 FC

주드 벨링엄은 축구선수였던 아버지의 영향을 받아 어렸을 때부터 축구에 관심을 가졌고, 동생 조브 벨링엄과 함께 버밍엄 외곽의 집 앞 잔디에서 축구를 연습했다고 한다. 주드 벨링엄은 8세가 되기 전에 버밍엄 시티 아카데미에 입성하였고, 남다른 재능을 보여주며 영국 10대 유망주에도 선정되었다.

2.1. 2019-20 시즌

2019년 7월 16세의 나이로 1군에 정식 포함되면서 버밍엄의 최연소 선수 기록을 갈아치웠다.[1] 그리고 EFL컵 1라운드 포츠머스 FC전에서 데뷔했다. 19일 뒤 스완지 시티 AFC전 후반전 시작과 동시에 교체되며 리그 데뷔전을 치렀다.
파일:814807_230.jpg
이후 16세 63일의 나이에 스토크 시티 FC전에서 득점을 기록하며 버밍엄 시티 구단 역대 최연소 득점자가 되었다. 그렇게 벨링엄은 양쪽 미드필더, 중앙 미드필더 등 여러 포지션을 소화하며 엄청난 활약을 보였고, 곧바로 여러 빅클럽들의 적극적인 관심을 받았다. 버밍엄 CEO의 말로는 보루시아 도르트문트뿐만 아니라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FC, FC 바이에른 뮌헨, 울버햄튼 원더러스 FC, 레스터 시티 FC, 첼시 FC 등 여러 클럽들이 그에게 비드를 했으며 맨유는 무려 도르트문트가 제시한 금액의 3배를 제시했다고 한다.

이때 벨링엄은 강등 직전이던 버밍엄 시티를 잔류시키기 위해 도르트문트 이적이 어그러질 위험성을 감수하고 출전하여 버밍엄 시티에 깊은 감동을 주었다. 당시 강등권 싸움을 같이 하던 찰턴 애슬레틱 FC와의 경기가 있었는데, 마침 벨링엄이 메디컬 테스트를 앞둔 상황이라 혹시 부상이라도 당하면 이적이 어그러질까 봐 버밍엄은 그를 경기 명단에서 제외했다. 그러자 벨링엄은 이를 이해하지만 팀이 강등을 앞둔 상황에서 뛰지 않을 수는 없다며 필요하다면 메디컬 테스트를 취소하겠다고까지 했다. 결국 벨링엄은 후반전 찰턴에게 지고 있는 상황에서 교체 출전하여 동점골을 넣었고, 버밍엄은 잔류할 수 있었다. 반면 찰턴은 이 경기의 여파로 이 시즌에 강등을 당하고 만다.

2019-20 시즌: 44경기 4골 2도움
대회 경기 선발 교체 득점 도움
EFL 챔피언십 41 32 9 4 2
FA컵 2 2 0 0 0
EFL컵 1 1 0 0 0
합계 44 35 9 4 2

2.1.1. 이적 사가

2020년 3월 16일,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FC, 첼시 FC, FC 바이에른 뮌헨, 보루시아 도르트문트 등 빅클럽들의 적극적인 관심을 받고 있다.

2020년 5월 27일, 독일 스포르트 빌트에서 벨링엄이 도르트문트와 개인 합의를 마쳤다고 보도했으나 버밍엄 측에서는 아직 확정된 것은 아니라고 밝혔다. 7월이 되면 오피셜이 뜰 것으로 보인다.

2020년 7월 16일, 파브리지오 로마노로부터 메디컬 테스트를 통과했다는 소식이 나왔다. 이후 하술하는 대로 20일에 이적이 공식적으로 발표됐다.

이적 사흘 후인 7월 23일, 버밍엄은 벨링엄의 등번호 22번을 영구결번으로 지정했다. 만 17세의 어린 선수에게 웬 영구결번인고 하니, 벨링엄이 도르트문트로 이적하면서 남긴 2600만 파운드의 이적료가 버밍엄이 파산을 면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기 때문이다. 버밍엄은 이미 2018-19 시즌에 FFP 규정 위반으로 승점 9점 삭감이라는 징계를 받았는데, 2019-20 시즌에는 아예 코로나19라는 핵폭탄이 터지면서 리그 중단과 무관중 경기로 재정난이 더 심해졌다. 자칫하다간 파산으로 인해 팀이 아마추어로 굴러떨어지거나 해체될 가능성도 있었는데, 벨링엄이 남겨준 거액의 이적료가 이를 극복하는 데 큰 도움이 된 것이다.

나중에 전해진 이야기로는 벨링엄은 이미 프로 무대에 데뷔하기 한참 전부터 될성부른 떡잎을 알아본 빅클럽 스카우트들의 눈에 들었다고 한다. 실제 영입 제의도 있었다고 하는데, 이때 벨링엄이 이적했다면 버밍엄이 벨링엄의 이적료로 26M이나 되는 거금을 벌어들일 일도 없었을 테니 파산을 피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그러나 벨링엄은 이적 제의를 전부 거절하고 버밍엄에 남아 1군에 데뷔했고, 팀의 잔류를 이끌고는 거액의 이적료도 남겨 파산까지 면하게 해줬으니 공헌도가 단순 26M으로 퉁칠 수 있는 것보다 훨씬 컸던 셈이다. 여기에 벨링엄이 도르트문트로 이적하면서 셀온 조항이 포함됐는데, 이에 따라 훗날 벨링엄이 레알 마드리드 CF로 이적할 때 버밍엄도 셀온 조항을 통해 6M을 받았으니 벨링엄은 버밍엄에게 32M의 거금을 안겨준 셈이다.

3. 보루시아 도르트문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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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2경기 24골 24도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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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레알 마드리드 C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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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8경기 34골 24도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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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종전 기록은 트레버 프랜시스의 16세 139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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