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12-11 11:59:24

지강헌

파일:external/www.ilbe.com/505dbaee56e0b035dfe9778ddda0710d.jpg
<colbgcolor=#000><colcolor=#DDDDDD> 이름 지강헌(池康憲)
출생 1954년 2월 8일
전라남도 광주시
(現 광주광역시)[1]
사망 1988년 10월 16일 (향년 34세)
서울특별시 서대문구 신촌동 134
세브란스병원
국적
[[대한민국|]][[틀:국기|]][[틀:국기|]]
본관 충주 지씨
신체 170cm, 68kg
범죄유형 절도 (현금과 승용차등 )(556만원), 상해, 탈옥, 인질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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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유전무죄! 무전유죄!"
- "낭만적인 바람막이 없이 이사회에서 목숨을 부지하기에는 너무나 살아갈 곳이 없었다"
- " 어머니 나 있잖아요" "사람이 살아가면서 자기의 뜻대로 살순 없지만 내 마지막 만큼은 내 뜻대로 살겠습니다"
- "이 총은 그누구도 나에게서 뺏을 수 없어 이건 내 마지막 재산이야"
1988년 인질극 중 외친 대사

대한민국의 범죄자. 1988년 10월 8일 영등포교도소에서 충남 공주교도소로 이감되던 25명 중 12명과 함께 집단 탈주하고 서울 시내로 잠입하여 10월 15일부터 16일까지 서대문구 북가좌동에서 안광술, 강영일, 한의철 등 3명과 더불어 인질극을 벌이다가 경찰이 쏜 총에 사살당했다.

유전무죄 무전유죄라는 단어를 대한민국 사회 수면 위로 꺼낸 영등포교도소 집단탈옥 사건의 최후의 5인 중 한 명이다.

2. 성장 과정

1954년 전라남도 광주시(現 광주광역시)에서 출생한 그는 불우한 집안에서 5남매 중 막내로 자라났다. 어린 시절 장래희망이 시인인 만큼 섬세한 사람이었으나 아버지, 어머니의 무관심으로 초등학교(당시에는 국민학교)만 졸업하게 되었으며 이후 공부를 할 기회가 없었던 그가 배운 것이라곤 주먹질과 도둑질뿐이었다. 결국 상습 절도로 공범 2명과 체포돼 총 17년[2]징역을 선고받았다. 당시 그는 이미 이전 전과가 잡 전과까지 합해 총 11범이었다.

3. 영등포교도소 집단탈옥 사건

파일:상세 내용 아이콘.svg   자세한 내용은 영등포교도소 집단탈옥 사건 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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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전라남도 보성군이라는 말도 있는데 확실하지는 않다.[2] 당시 징역 7년에 보호감호 10년을 추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