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iki style="margin: -5px -10px; padding: 5px 0 0; background-image: linear-gradient(to right, #091531 0%, #10275d 20%, #10275d 80%, #091531); color: #ece5b6; min-height: 31px" {{{#!folding [ 펼치기 · 접기 ] {{{#!wiki style="margin: -6px -1px -11px" | <rowcolor=#10275d> 추존 존령 | |||
보병부군 | 정원부군 | 회안부군 | 안성부군 | |
<rowcolor=#10275d> 추존 황제 | ||||
효황 | 경제 | 소열황 | ||
}}}}}}}}} |
<colbgcolor=#10275d><colcolor=#ece5b6> 남진 추존 황제 진문찬 | 陳文讚 | |
본관 | 영천 진씨 |
휘 | 문찬(文讚) |
부모 | 부황 효황 모후 육씨 또는 안씨 |
배우자 | 경안황후 |
자녀 | |
작호 | 의흥군공(義興郡公) |
묘호 | 태조(太祖) |
시호 | 경황제(景皇帝) |
능묘 | 서릉(瑞陵) |
[clearfix]
1. 개요
진패선의 아버지다. 진패선이 남진을 건국 후 황제로 추존되었다. 묘호는 태조(太祖).2. 생애
양상군자, 난형난제의 고사로 유명한 진식의 후손이며 진패선의 일가는 원래 후한에서 태구현령을 역임한 진식 때부터 영천(穎川)[1]에 살았으나 서진이 멸망, 동진으로 재건되는 과정에서 9대조인 진달(陳達)이 전란을 피해 가족을 이끌고 남하하면서 장성현에 자리잡게 되어 이어져 온 것이다.사실 진문찬 본인의 행적은 거의 전해지지 않는다. 그의 첫째 아들인 진도담, 막내아들 진휴선은 후량에서 동궁직합장군(東宮直閤將軍)에 임명받았지만 후경의 난 당시에 사망하였다.
진문찬의 둘째 아들인 진패선은 후경 세력을 토벌하는 과정에서 큰 공을 세웠고 557년 소방지에게 양위받아 남진을 건국한다. 아들이 새 왕조의 개창자가 된 후, 진문찬도 태조 경황제로 추존되었다.
[1] 지금의 허난성(河南省) 중부 지역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