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개요
[ruby(陳,ruby=Trần)][ruby(麗,ruby=Lệ)][ruby(春,ruby=Xuân)](진려춘)1924년 4월 15일? 8월 22일? ~ 2011년 4월 24일
베트남 공화국(남베트남)의 초대 총통 응오딘지엠(吳廷琰, 오정염)의 동생 응오딘뉴(吳廷瑈, 오정유)의 아내다. 독신이었던 응오딘지엠 치하에서 그녀는 사실상의 퍼스트 레이디였으며 남베트남 망국의 큰 축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다종다양한 부패에 연루되어 있어 '마담 누', 미국이나 유럽에서는 '드래곤 레이디'[1]라는 별명으로 불렸다.
2. 생애
불교도 부모[2]에게서 태어났으나 프랑스인 학교에서 공부하면서 프랑스를 준거 집단으로 삼았기 때문에 불교 분위기의 집안을 지긋지긋해하며 응오딘뉴와 결혼하자마자 가톨릭으로 개종했다.[3]공산주의자들에 의해 오빠들이 처형되었기 때문에 반(反)-정부 세력에 대해 극단적인 증오심을 표출했는데, 퍼스트 레이디로서는 부적절한 언행이었다.
시숙인 총통 응오딘지엠이 독신이었던지라[4] 제수 쩐레쑤언이 대신 퍼스트 레이디 역할을 했는데, 극도로 오만한 데다 사사건건 여러 국가행사 및 비위와 폭정에 관여하는 통에 민심 이반으로 베트콩에 입대하는 자가 더 많았을 정도로 베트콩에 간접적으로 도움이 되었다.
그러나 그녀의 개판인 행보의 최고봉은 틱꽝득의 분신자살을 듣고 한 망언일 것이다.
What have the Buddhist leaders done, comparatively? The only thing they have done: they have barbecued one of their monks.
"그에 비하면 불교계 지도자 놈들은 한 게 뭐가 있습니까? 기껏해야 한 거라곤, 중놈 하나 바베큐로 만든 것뿐인데 말입니다.
"그에 비하면 불교계 지도자 놈들은 한 게 뭐가 있습니까? 기껏해야 한 거라곤, 중놈 하나 바베큐로 만든 것뿐인데 말입니다.
친가톨릭 정책을 펼친 지엠 치하에서 틱꽝득은 종교 차별 반대를 외치며 분신자살했으니, 그 가톨릭 강요 정책의 선봉장이나 다름없던 쩐레쑤언 본인도 결코 떳떳할 상황은 아니었다. 게다가 엄청난 작열통 속에서 이를 의지로 버티면서 앞이 아닌 뒤로 넘어진 것[5]은 베트남을 깔보던 사람들까지 감명받을 일이었는데도 그걸 두고 '바베큐'라고 비하한 것이니 그걸 들은 사람들의 반응은 말할 것도 없다. 존 F. 케네디 미국 대통령을 포함해 그 자리에 같이 있었던 미국인들도 경악했고 미국 보수파들조차 '남베트남을 좀먹는 건 쩐레쑤언이다'라고 한탄했을 정도.
이후 미국은 문제의 절에 사절을 보내 위로했으며, 쩐레쑤언도 뒤늦게서야 발언이 경솔했다고 사과했지만 받아주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이때부터 미국은 응오딘지엠 정부를 그대로 두면 공산당이 활개치는 꼴이 될거라며 응오딘지엠 축출을 기획했고 후일 쿠데타에 미국도 관여했다. 다만 죽일 생각까진 없었는지, 나중에 케네디는 쿠데타군에 잡힌 지엠이 처형된 뒤 쩐레쑤언을 두고 이렇게 말했다.
"That goddamn bitch. She's responsible for the death of that kind man. You know, it was totally unnecessary to have that kind man die because that bitch stuck her nose in and boiled up the whole situation down there."
저 빌어먹을 악녀 같으니. 그 사람 좋은 양반이 죽은 건 다 그 여자 탓이야. 죽게 할 필요까진 없었는데, 그 여자가 괜히 끼어들어서 일을 그렇게 키운 거야."
저 빌어먹을 악녀 같으니. 그 사람 좋은 양반이 죽은 건 다 그 여자 탓이야. 죽게 할 필요까진 없었는데, 그 여자가 괜히 끼어들어서 일을 그렇게 키운 거야."
시숙 지엠이 축출당한 뒤 남편 뉴와 함께 살해당한 쿠데타 당시 두 딸과 함께 방미 중이던 쩐레쑤언은 얼른 달아나서 프랑스, 미국, 영국 같은 나라를 떠돌다가 2011년 4월 24일 이탈리아 로마의 초라한 호텔에서 87살을 끝으로 세상을 떠났다. 죽기 전에 조국에서 죽고 싶다고 베트남 정부에 애원했지만 우리는 그쪽 시체도 받아줄 생각이 전혀 없고, 50년 가까이 지났어도 당신 죽이고 싶어하는 사람이 워낙 많아서 베트남에 돌아오면 당신 시체도 못 건질 테니 그냥 해외에서 죽는 편이 우리한테나 당신한테나 백 배는 좋을 거라며 거부당했기에[6] 이탈리아 공동 묘지에 묻혔다.
3. 기타
자식은 맏이가 딸 응오딘레투이([ruby(吳,ruby=Ngô)][ruby(廷,ruby=Đình)][ruby(麗,ruby=Lệ)][ruby(水,ruby=Thủy)], 오정려수)[7]고 둘째가 아들 응오딘짝([ruby(吳,ruby=Ngô)][ruby(廷,ruby=Đình)][ruby(卓,ruby=Trác)], 오정탁)이고 셋째가 아들 응오딘꾸인([ruby(吳,ruby=Ngô)][ruby(廷,ruby=Đình)][ruby(瓊,ruby=Quỳnh)], 오정경)[8]이고 막내가 딸 응오딘레꾸옌([ruby(吳,ruby=Ngô)][ruby(廷,ruby=Đình)][ruby(麗,ruby=Lệ)][ruby(娟,ruby=Quyên)], 오정려연)[9]이다.[1] 결코 좋은 의미에서 붙인 별명이 아니다. 용을 왕이나 황제의 상징으로 여기는 동양과는 달리 서양의 그리스도교 문화권에서 드래곤은 묵시록의 붉은 용으로 대표되는 사악한 존재인지라 그 의미는 마귀 같은 악녀 정도. 중국에서는 아무래도 용을 길하게 여기는 문화다 보니 이 호칭을 사갈부인(蛇蝎婦人)이라고 적당히 고쳐서 부른다.[2] 어머니 티난쩐은 바오다이 황제의 사촌이었다.[3] 정작 본인의 행동이나 사고방식은 정작 가톨릭과는 거리가 멀어도 한참 멀었다.[4] 미남 경호원들을 데리고 다녔기에 게이 아니냐는 설도 있지만, 확실한 근거는 없다.[5] 틱꽝득은 소신공양 전에 자신이 앞으로 넘어지면 흉한 것이니 해외로 피신해야 하지만, 뒤로 쓰러지면 투쟁이 승리할 것이라고 말한 바 있다.[6] 쩐레쑤언은 미국을 비롯한 해외를 떠돌면서 북베트남을 비난하며 자신이 반공투사인 양 행세하고 다녔기 때문에 베트남 정부 입장에서는 곱지 않을 수밖에 없다. 물론 살아 생전에도 극단적인 반공 세력에게 지지받은 것을 제외하면 베트남 정부에 불만을 가진 해외 사람들도 저 여자가 베트남 정부하고 다를 게 뭐냐고 혐오했다.[7] 1967년에 프랑스에서 교통사고로 사망했다.[8] 무역공사 대표를 지냈다.[9] 이탈리아에서 변호사가 되었지만, 어머니가 죽은 지 1년 뒤인 2012년에 이탈리아에서 교통사고로 사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