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성도(車成道) 1947년 ~ 1970년 | ||
출생 | 1947년 6월 1일 | |
경상남도 울산군 하상면 남외리 321번지 (現 울산광역시 중구 남외동)[1] | ||
사망 | 1970년 5월 13일 (향년 22세) | |
강원도 화천군 사내면 용담리 | ||
묘소 | 국립서울현충원 6묘역-5판-2207호 (1행 8열) | |
학력 | 병영국민학교 (졸업) 울산제일중학교 (졸업) 울산실업고등학교 (졸업) | |
복무 | 대한민국 육군[2] | |
기간 | 1970년 1월 ~ 1970년 5월 | |
임관 | 육군제3사관학교 (1기) | |
최종계급 | 중위 (추서) | |
최종보직 | 27사단 78연대 소대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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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나 이외에 더 다친 전우는 없는가?
대한민국의 군인.
2. 생애
1947년 6월 1일 경상남도 울산군 하상면 남외리(現 울산광역시 중구 남외동) 321번지에서 아버지 차원줄씨와 어머니 박차선 여사 사이의 4남 2녀 중 3남으로 태어났다. 병영국민학교, 울산제일중학교, 울산실업고등학교(現 울산공업고등학교)를 졸업하고 1969년 3월 18일 육군제3사관학교 1기로 입교해 1년간 교육을 받은 뒤 1970년 1월 17일 대한민국 육군 소위로 임관했다. 이후 제27보병사단 제78보병연대 1대대 2중대 2소대장으로 장교의 첫발을 시작하였으나, 1970년 5월 13일 21시 25분경 화천군 사내면 용담리 각개전투교장에서 순직하였다.3. 순직 경위
1970년 5월 13일 21시 25분경 소대 야간 방어사격훈련의 일환으로 실시된 수류탄 투척 훈련 중, 한 명의 병사가 파지부주의로 안전손잡이를 놓치는 것을 발견하고, 소대원들을 구하기 위해 자신의 몸으로 수류탄을 덮쳐 전 소대원을 구하고 자신은 복부파열 상을 입고 현장에서 장렬하게 산화하였다.절명의 순간에 "나 이외에 다친 전우는 없느냐"고 물으며 순직하였다고 전해진다.
순직 직후인 1970년 5월 13일 중위 계급이 추서되었다. 1970년 5월 16일 사단장 주관 하에 사단장(葬)으로 영결식이 거행되었다. 그의 유해는 1970년 6월 26일 국립서울현충원 서쪽 6묘역 5묘판에 안치되었다.
4. 추모사업
강재구 소령과 마찬가지로 훈련 중 떨어진 수류탄을 몸으로 막아낸 살신성인의 본보기임에도 불구하고 대중들에게 크게 알려지지 않았다. 일단 강재구 소령이 태극무공훈장이 추서되고 국군 최고의 영웅으로 부각된 것에 비해, 차성도 중위는 빨리 잊자는 당시 분위기 때문에 78연대 내부나 사건 당사자들한테서 간간히 거론될 뿐이었다. 하지만 그가 다녔던 각 모교 동문들, 3사관학교 위주로 꾸준히 추모사업이 진행되었으며, 전인범 장군의 재발굴에 힘입어 지금은 모두가 아는 의인이 되었다.- 1970년 제27보병사단 제78보병연대의 면회실 벽면에 안내판을 설치하여 살신성인의 희생정신을 추모하는 장소로 활용하다가, 1978년 1월경 화재로 소실.
- 1971년 육군 제3사관학교 경계교장에 충혼비 걸립 설치하였다가, 2006년 학교 동편 추모공원으로 이전 설치
- 2001년 지난 30여 년간 軍의 역사 속에 잠들어 있던 군인정신의 표상으로 발굴 하고자 하는 민,관,군의 의지로, 차성도 공원을 조성하고 흉상 제막 설치
- 2008년 모교인 울산 병영초등학교에 동문회에서 흉상 제막 설치
- 2010년 전인범 당시 27사단장의 재발굴 의지에 힘입어[3] 사단 역사관을 만드는 한편, 78연대에서도 모범소대장 1명을 선발해 차성도 상을 수여하는 관행이 시작되었다.
- 2011년 차성도 상을 사단장상(賞)으로 격상하고, 각 연대별 1 명 총5명 시상 후 매년 시상토록 제도화. 추모곡 성도가 제작. 78연대 1 대대를 차성도 대대로 명명하고 차성도 전시실 설치
- 2011년 모교인 울산공업고등학교에 추모제 거행. 고인에 27사단장 표창 추서. 27사단과 유가족이 제작한 전자수첩을 울산공고 역사관에 설치.
- 2012년 육군3사관학교 '성도상' 제정 시상
- 2016년 제27보병사단 작전개념 예행연습 훈련장 차성도관 개장.[4]
4.1. 성도가
(1절)
두류산 정상에 이는 그대의 숨소리가
푸르른 숲을 헤치고 바람에 타오른다.
천지를 진동하는 명예로운 외침
거룩한 의기로 전우 지켰네
(2절)
푸르른 향기 며금은 그대의 피눈물이
메마른 땅을 헤치고 이슬에 맺힌다
지축을 뒤흔드는 희생의 메아리
찬란한 그 이름 아로세겼네
(후렴)
내 전우 내 나라 지키는 그 길에
부름받은 이 목숨
성도처럼 바치리 성도처럼 바치리
고인에 대한 추모곡. [5]두류산 정상에 이는 그대의 숨소리가
푸르른 숲을 헤치고 바람에 타오른다.
천지를 진동하는 명예로운 외침
거룩한 의기로 전우 지켰네
(2절)
푸르른 향기 며금은 그대의 피눈물이
메마른 땅을 헤치고 이슬에 맺힌다
지축을 뒤흔드는 희생의 메아리
찬란한 그 이름 아로세겼네
(후렴)
내 전우 내 나라 지키는 그 길에
부름받은 이 목숨
성도처럼 바치리 성도처럼 바치리
4.2. 흉상 제막
고인의 모교인 울산 병영초,울산공고와 27사단에 흉상이 세워져 있다.4.3. 동문들의 탄원 사항
- 정부: 공훈에 합당한 대한민국 훈장 추서
- 국방부, 육군: 차성도상 제정, 군 교육 자료에 등재
- 전쟁기념 사업회: 호국인물로 선정
- 교육, 과학부: 각 급 학교에 교육 내용에 삽입[6]
- 국가보훈처: 국가유공자로 지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