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1-10-12 21:39:18

차제남

성명 차제남(車濟南)
생몰 1850년 ~ ?
출생지 황해도 수안군 대천면 사창리
사망지 미상
추서 건국훈장 애족장

1. 개요2. 생애

1. 개요

한국의 독립운동가. 2002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받았다.

2. 생애

차제남은 1850년생이며 황해도 수안군 대천면 사창리 출신이다. 1919년 3월 1일 곡산의 천도교 신자 이경섭(李景燮)이 수안읍 천도교구장인 안봉하(安鳳河)에게 독립선언서를 전달했다. 안봉하는 즉시 김영만(金永萬), 나찬홍, 최용식, 이영철(李永喆), 홍석정, 한청일 등 천도교 관계자들과 회합하고 독립만세시위를 전개하기로 결의했다. 이후 그들은 3월 3일에 군내 각 면의 천도교인들을 동원하여 독립만세시위를 전개하고 헌병의 퇴거를 요구하기로 했다. 그러나 이 계획이 사전에 누설되면서 안봉하, 김영만, 나찬홍 등 대부분의 주동자들이 체포되었다. 하지만 체포를 모면한 인사들은 예정대로 독립만세시위를 전개하기로 했다.

이때 차제남은 안봉하로부터 만세시위 계획을 전해들은 뒤 이 사실을 관내 교인들에게 알렸다. 그리고 3월 3일 오전에 군중과 함께 수안 헌병분대 앞에서 독립만세시위를 전개하며 헌병분대의 퇴거를 요구했다. 이 일로 체포된 그는 1920년 8월 7일 경성지방법원에서 보안법 위반 혐의로 징역 1년 3개월을 선고받고 옥고를 치렀다. 이후 그의 행적 및 사망년도, 사망지는 기록이 미비해 알 수 없다.

대한민국 정부는 2002년 차제남에게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