찰스 영 Charles Young | |
출생 | 1864년 3월 12일 |
미국 켄터키주 메이슬릭 | |
사망 | 1922년 1월 8일 (향년 57세) |
영국령 나이지리아 라고스 | |
복무 | 미합중국 육군 |
최종 계급 | 준장[1] |
복무 기간 | 1889 ~1922 |
학력 | 미국육군사관학교 윌버포스 칼리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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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미국의 군인.2. 생애
켄터키주 메이스빌 인근 메이슬릭에서 노예인 게이브리얼 영의 아들로 태어났고 아버지 게이브리얼은 가족들과 일찍이 탈출해 오하이오주 리플리에 정착해 제5흑인포병연대에 자원입대하며[2] 남군과 전투를 치렀다. 영은 어린시절 흑인학교에서 교육을 받았고 특히 언어 능력이 우수했다.1884년 오하이오 상원의원인 알폰소 하트의 추천으로 육군사관학교에 입교했다. 신입 생도시절부터 인종차별로 인한 수많은 따돌림과 괴롭힘을 당했지만 1889년 졸업하고 기병 소위로 임관해 헨리 오시안 플리퍼, 존 행크스 알렉산더에 이은 3번째 육군사관학교 졸업자가 되었다.[3]
제9기병연대를 시작으로 제10기병연대 즉 버펄로 솔저라 불리는 흑인들로 구성된 부대에서 복무했다. 인디언 전쟁에 참가했고 미국-스페인 전쟁 당시 전시계급 소령으로 진급해 그가 이끄는 제9기병연대는 미국 최초로 유색인종부대로 원정에 파견된 부대가 되었다. 1903년 샌프란시스코 대지진으로 파괴된 샌프란시스코를 복구하는데 힘썼고 아이티, 라이베리아, 필리핀에 파견되기도 했다.
대령으로 진급하고 1916년 판초 비야를 추격하는 베라크루스 원정대에 참가했고 1917년 전시계급 준장에 임명되려했으나 인종차별로 인해 거부당했다. 1921년 영국령 나이지리아를 조사하는 임무를 받았으나 라고스의 병원에서 신장 질환으로 사망했다.
사후 준장으로 추서되었고 알링턴 국립묘지에 안장되었다.
[1] 사후 추서. 사망 당시 대령이였다.[2] 당시 리플리 시장인 존 P. 파커의 도움이 컸다.[3] 이후 오랜시간이 흘러 벤저민 O. 데이비스 주니어가 1936년 졸업하고 보병 소위로 임관해 4번째 흑인 졸업자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