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11-03 19:11:38

최요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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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요셉(최진호)의 수상 이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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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의 前 축구 선수
파일:h9OzDO.png
<colbgcolor=#eeeeee,#191919><colcolor=#000000,#e5e5e5> 이름 최요셉[1]
Choe Yo-seph
출생 1989년 9월 22일 ([age(1989-09-22)]세)
인천직할시 남구
(現 인천광역시 연수구)
국적
[[대한민국|]][[틀:국기|]][[틀:국기|]]
직업 축구 선수 (윙어 / 은퇴)
미용사
학력 인천선학초등학교 (졸업)
만수중학교 (졸업)
중앙대학교 사범대학 부속고등학교 (졸업)
관동대학교 (학사)
소속 <colbgcolor=#eeeeee,#191919><colcolor=#000000,#e5e5e5> 선수 부산 아이파크 (2011~2012)
강원 FC (2013~2018)
상주 상무 FC (2017~2018 / 군 복무)
아산 무궁화 FC (2019)
김포시민축구단 (2020)
종교 개신교
링크 파일:인스타그램 아이콘.svg[2] | 파일:인스타그램 아이콘.svg[3]

1. 개요2. 경력3. 은퇴 이후4. 플레이 스타일5. 여담

[clearfix]

1. 개요

대한민국축구 선수 출신 현 미용사. 인천광역시 출신이며 부산 아이파크에서 데뷔해 강원 FC를 거쳐 상주상무 군복무 천안아산프로축구단 을 마지막으로 김포시민축구단에서 은퇴했다.

2. 경력

2.1. 프로 이전

2005년 중대부고 1학년에 베르더 브레멘 U-16 클럽에서 같이 훈련할 수 있는 기회를 받아 중대부고에 입학함 독일 현지로 가서 -16 세 팀에서 훈련을 하다가 감독의 부름을 받아 입단을 하게된다 독일 분데스리가 베르더 브레멘

관동대 08학번으로 입학했고 재학 시절에는 1.2 학년 춘 추계 두개의 대회에서 최초로 우승하는 기록을 갖는다‘강원도 축구 협회장기 대회’에서 득점 왕을 하는 등 좋은 공격수로 이름을 날렸다.

2.2. 부산 아이파크

2011년 드래프트에서 부산에 5순위로 가까스로 지명되며 프로 생활을 시작했다.

2011 K리그 개막전인 제주 VS 부산과의 경기에 교체로 투입되어 프로 데뷔전을 치르고, 이후 5월 5일 리그컵 대회에서 강원을 상대로 프로 데뷔골을 기록했다.

안익수 당시 부산 감독은 최진호를 주로 조커로 활용했지만, 전방 자원이 충분히 많았던 덕분에 그다지 많은 기회를 받지 못해서였는지 큰 활약은 보여주지 못했다. 2년 동안 딱 두 골을 넣었는데 공교롭게도 두 번 다 상대가 강원 FC.

2013년 윤성효 체제로 시즌을 준비하며 태국 동계훈련 막바지 2월말쯤 연봉 협상중 계약이 남아 있었지만 스스로 계약 해지를 정중히 요청 계약해지 후 선수 등록 며칠 남기고 계약시즌이 닫힌다 이후 반시즌 6개월 동안 운동할 곳이 없어 집앞 문학경기장 보조 경기장 트랙에서 1월~5월간 홀로 개인운동으로 버텨내다 강원fc 테스트를 볼 수 있는 기회를 얻게 된다 연습경기에서 골을 기록하며 새로 들어온 임은주 사장과 맞물려 입단

2.3. 강원 FC

파일:external/www.gangwon-fc.com/5feae3105c35c6412548af240aa72e18.jpg

함께 입단한 강정훈과 더불어 발빠른 윙어가 없던 가난한 구단인 강원 FC의 갈증을 풀어줄 선수로 예상되었다
. 교체로 출장하며 차근차근 폼을 올리더니 부산과의 경기에서 도움을 기록하며 클래식리그에서 22경기 (교체 출장 9경기) 6골 1도움으로[4] 혜성처럼 강원의 에이스로 등극하며 프로 생활 최고의 시즌을 보냈다. 결국 강등된 강원을 그나마 승강 플레이오프에 올려놓은 일등공신.

2014시즌에는 많은 구단의 제의가 있었지만 한해 강원에서 더 해주기를 바랬고 구단에서 제시한 많은 조건들이 있었다 팀에서 제시한 공격 포인트 약속을 받는다 1014년 그해 공격포인트 13골 9도움 두배가 넘는 포인트를 기록 팀은 승격 플레이오프 리그 4위에 안착
. 그리고 K리그 챌린지 도움왕에 올랐고 K리그 챌린지 베스트 11 미드필더 부문에 선정됐다. 특히 고양전 과 대구전 에서는 한해 3번의 해트트릭을 기록했고, 충주전에서는 3골 2도움을 기록하면서 챌린지 최다 공격포인트를 기록하기도 했다. 한준희 위원은 "비록 K리그 챌린지에 있지만 K리그 클래식의 그 어떤 선수와 비교해도 뒤지지 않는"이라는 평가를 하기도 했다. 그해 목표했던 포인트를 이뤄냈지만 기존에 약속 되어 있었던 여러 조건은 서류상 없는 구두계약 이라는 점을 야기하며
최요셉 선수는 많은 에이전트가 붙었었지만 아무런 힘을 쓸 수 없다는 것을 그 해에 인지하였다
선수로써 순수한 기량으로 는 아무것도 할 수 없음을 알게되고

그리하여 2015년 K리그 챌린지에서 26경기 출전 1골을 기록했다. 팀도 승격에 실패하며 힘든 시즌을 보냈다.} 협상 과정에서 축구판의 현실을 알게된 최요셉은 2015년도 경기 출전을 계속 시켜 주었지만 동기가 결여된체 의미없는 시즌을 보내게 된다
그해 **임은주 사장은 성적 부진으로 사퇴한다**

2016년을 맞이해서 15년과 같이 무의미하게 시즌을 보내려던 찰나 최요셉은 다시 한 번 심기일전하는 모습을 보여줬다 (어머께서는 마지막에 팀에서 버림 받을 것 을 예고하셨고 남은 축구선수 생활 선한 싸움을 해나가라 는 말씀에 심기일전 그해에 본인과 팬들을 위해 존재감을 들어낸다) 미디어데이에서 개막전 상대인 경남 FC와 홈경기 개막전 상대이자 최요셉의 친정팀 부산 아이파크를 이길 수 있다는 도발을 시전한다.(흥미를 끌기위한 ) 2014년 시즌을 보는 듯한 몸놀림을 보여주기 시작한다. 최요셉 특유의 치고 달리기와 상대방을 농락하는 개인기로 2016년 시즌 강원FC의 초반 6연승을 이끌게한 주역이다. 안산 무궁화 축구단과의 첫 번째 대결에서 헤딩골로 시즌 1호골을 만들어냈다. 이후 FC 안양, 서울 이랜드 FC, 대전 시티즌을 상대로 3경기 연속골을 터트렸다. 5월 29일 원주종합운동장에서 열린 FC 안양과의 경기에서 시즌 5호골을 기록 팀 6연승에 기여했지만 상대 선수의 태클에 팔 부상을 입었다. 하지만 그 부상이 페널티 에이리어에서 일어나다 보니 강원 FC 최요셉이 페널티킥을 얻어냈고, 오승범이 골을 기록했다. 이후 부상 회복을 위한 수술을 받았고 . 2개월 남짓 재활을 끝나고 복귀했는데, 강원 FC도 그 두달간 강원도 침채기 였지만 복귀후 최요셉 역시 부상 전의 활약을 할 수 없었다 그러나 중간에 영입한 용병 루이스 등 초반에 잘 쌓은 승점으로 후반기 더 박차를 가했고 최요셉은 루이스에게 어시스트를 하며 복귀 첫 포인트를 올리고 승리를 거둔다 결국 강원은 승격 플레이오프 진출 강원과 성남 1차전 2차전 끝에 강원이 2016년 그해 다시 승격을 한다

2015년부터 이미 축구에 회의감 절망감 이 들었다고 한다
사실상 그가 활약한 무대는 13.14.
마지막을 준비하며 16시즌 고작 3년의 무대가 끝이다

(

2.3.1. 상주 상무 FC (군 복무)

파일:1520258781_1.png

2017년 국군체육부대에 합격함으로서 상주 상무에 입대하게 됐다. 강원에서 팔골절 불과 몇개월 이후 발목 부상이 심해져 군대에서 발목 수술하게 되고 재활이 쉽지않아 2년간 출중한 선수들과 경쟁에서 살아남기 힘들어졌다

2.3.2. 전역 후

2018년 9월 4일 전역을 신고하였다. 등번호는 이근호의 빈자리였던 11번을 차지했다.

이후 단 한 경기에 교체출전했으나 너무 늦은 시간에 출전했다. 짧은 시간임에도 특유의 과단성을 통한 슈팅을 하나 있긴 했으나 그것뿐이었다. 이후에는 벤치에도 앉지 못하며 김병수 감독의 계획에는 없는 것처럼 보였다. R리그에서는 꾸준히 득점을 기록하긴 했으나 결국 자신의 페이스북에 강원과 틀어졌다는 내용의 메시지를 남기며 강원과의 인연을 끝낸 것으로 알렸다
아쉬움도 없었고 기대도 하지 않았던 최요셉은 다른 주어진 팀에서 선수 생활을 하기로 한다

강원에서의 최종 성적은 79경기 20골 6도움.

2.4. 아산 무궁화 FC

2019년 아산 무궁화 FC로 이적하였다. [5] 의무경찰 신분으로 아산에 입단하는 것은 아니지만 아산이 시민 구단으로 전환되든 이번 시즌을 끝낸 후 해체의 길을 걷든 올해까지는 경찰대학 무궁화체육단 소속 선수단이 뛰는 시즌이기 때문에 경찰 축구단의 성격을 가진 팀의 선수인 것은 맞다. 경찰 복무선수들이 제대하고
일반 선수들로 꾸려진 전남과의 경기에서 오랜기간 기다렸던 결승골을 기록하고 팀의 첫 의미있는 승리를 거둔다 그간 복무를위해 팀에있던 주세종 이명주 김도혁 고무열 등등 복무중인 주축 선수들이 빠지고 순수 일반 영입된 선수들로써 팀에서 의미하는 바가 크다 결승골을 뽑아내며 최요셉 개인적인 재기를 기대하는 동시에 바로 다음 경기인 수원fc 의 경기에서 2:1로 지고있는 상황 후반 교체 투입된 최요셉이 박민서에게 어시스트를 하며 팀의 승점을 챙긴다 두경기 연속 포인트를 기록했지만 다음 경기부터 더이상 출전을 하지못하게 되고 아산에서 나오게 된다

2.5. 김포시민축구단, 은퇴

2020년에는 폼이 좋았던 최요셉은 국내를 제외하고 사력을 다해 테스트를 볼 수 있는 동남아 리그를 알아보다 말레이시아2부리그 트렝가누 팀에 테스트를 보게된다 많은 아시아권 용병들이 2주전부터 트렝가누 팀에서 훈련하며 연습경기를 준비하고 있었고
최요셉은 뒤늦은 합류에 당일출발 하여 다음날 바로 연습경기에 들어가게 된다 ?
몸도 마음도 시차도 있었던 탓에 몸이 무거웠지만 그 경기 헤트트릭을 하게된다
경기를 보고있던 많은팬들의 마음을 사로잡았고 계약하라고 백넘버를 부르며 외치는일이 발생
경기가 끝난후 2부리그 감독이 기다리고 있었고 잠시 1부 감독이 와서 계약을 하자고 제안한다
트가누는 1부 2부를 다 갖고 있는 팀이었다 하루정도 시간을 달라는 감독이 단장을 설득하겠다고 하루를 기다려 달라 하였지만
결국 최후 통첩은 이유는 말할 수 없지만 미안하다는 대답을 듣고 한국으로 귀국하게 된다

귀국후 김포 고정운 감독에게 연락을 받고
김포시민축구단으로 합류. 팀은 동년부터 새로이 개편된 대한민국 3부 축구 리그인 K3리그에 참가한다.

하지만 원치않은 갑작스런 내부 갈등이 생겨 개막 전 팀으로부터 계약 해지 통보를 받았고 결국 반 시즌 만인 2020년3월, 동료인 김원일과 같은 시기에 은퇴

김포시민축구단과 결별하는 과정에서 법적 소송도 고려했다고도 하는 만큼 안타깝게 선수 생활을 마무리했다 .
당시 강제 계약 해지를 통보받기 전 팀으로부터 내용 증명서를 받게 된다 잔여 연봉을 전부 주지 않기 위함이다
중요한 내용은 뒤로하고 최요셉 선수가 법적 대응하지 않았던 이유는 증언 받아야 하는데 기꺼이 증언을 해주겠다는 선수들과 시즌 중인 동료들 한 선배님이 눈에 밟혔다 간절한 마음으로 꿈을 키우는 어린 후배들이 증언으로 행여 불이익이 가지 않을까 하여 조용히 선수생활 혹은 이후에
수치가 될 수 있는 **불명예 은퇴를** 스스로 결정한다

3. 은퇴 이후



은퇴 후 헤어 디자이너로 제2의 삶을 시작했다. # 어머니께서 미용사로 일하셨던 것의 영향으로 선수 시절부터 이미 패션과 헤어에 관심이 많았으며 결정적으로 군 복무 시절 이발병으로 활동하면서 소질을 확인했다고 한다.

은퇴 후 주변과의 연락을 끊고 지방의 한 미용실에서 늦은나이 인턴으로 미용을 시작한다 디자이너 승급이 더뎌지자. 건설 현장에 가서 일용직을 하며 지내고 2021년 초 미용사 자격증을 취득한 뒤 서울로 올라와 무작정 인터뷰를 보러 다닌다
그러다 드디어 열정과 실력을 인정해준 홍대의 한 살롱에 취업했다고 한다. {은퇴 당시 마무리가 좋지않았던 김포 시민 축구단 코치에게
축하문자를 받고}

2022년부터는 고향 인천으로 돌아와 선학역 근처에서 본인 이름을 걸고 미용실을 열었다. 이름은 더셉. 위치 에펨코리아에 방문 후기가 올라오기도 했다.반응이 너무 좋았던 탓에 코로나 경기에도 과거 선수생활 덕에 많은 프로선수들과 팬들이 방문을 한다
그러다 불현듯 갑자기 캐나다로 떠난다
또 다른 도전을 향해 현재 캐나다에 거주중이다

4. 플레이 스타일

170cm로 키가 작은 편이지만 50m를 5초대에 주파하는 빠른 발과 이를 이용한 돌파가 장기. 특히 스피드나 템포를 순간적으로 올리고 내리는 것이 가능한데 K리그에서는 용병을 제외하고는 보기 힘든 모습이다. 이를 이용해 상대 수비를 말 그대로 농락하는 돌파도 가능하고 상대 수비의 템포를 죽이면서 바로 슈팅을 이어가는 능력도 발군이다. 이런 능력을 바탕으로 주된 포지션인 윙 포워드 이외에도 중앙 공격수나 공미 등 다양한 포지션에서 활약이 가능하다. 그리고 자신감이 넘쳐서 슈팅이건 돌파건 거침없이 플레이해준다는 점 역시 뛰어난 장점이다.



2016년 사실 부상 전의 활약상 자체가 말이 안 되는 것이었다. 조커로만 등장해서 그렇게 골을 꽂아넣는 다는 것은 축구계에서 거의 보기 어려운 일이다. 같이 교체로 나오던 심영성과의 호흡이 잘 맞았는데 계속 주전으로 나오던 마테우스가 계속 폼이 일취월장하며 심영성의 출전 시간이 줄어들었다. 루이스까지 영입되면서 직선적인 역습형 축구를 예전보다 덜 하게 되며 직선적인 최요셉보다는 냄새를 맡으며 기회를 노리는 스타일인 마라냥이 부각되었다. 경기의 밸런스를 잡아줄 박희도도 영입되며 자리가 많이 없어진 느낌이다. 하지만 구단 입장에서는 최요셉의 입대 예정이 잡힌 만큼 빈자리를 채워야 하며 또한 최요셉과 같은 크랙형 한국 선수를 챌린지에서 구한다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기 때문에 어쩔 수 없는 일이다.

5. 여담

  • 별명은 대학 시절 빠른발과 머리 스타일 때문에 붙었다는 치토스.
  • 은퇴 후에는 축구계를 떠났지만 선수들과의 친분은 여전히 유지하고 있는 듯. 인천에 개업한 본인의 미용실에도 전현직 축구 선수들이 손님으로 자주 온다고 한다.
  • 덤블링을 굉장히 잘한다.


[1] 2019년 3월 최진호에서 최요셉으로 개명했다.[2] 개인 계정.[3] 미용실 더셉 계정.[4] 평범하게 보이지만 폼이 올라온 이후 집중적으로 넣은 거라 그 기간 동안의 위세가 상당했다. 또한 초반 열 경기는 대부분 10~20분 조커 출전이라 분당 활약은 엄청났다.[5] 광주 상무-상주 상무로 이어지는 국군체육부대 축구단과 경찰청 축구단-안산 무궁화-아산 무궁화의 역사를 갖고 있는 경찰 축구단에서 모두 뛴 최초의 선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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