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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D50000><colcolor=#ffffff> 만토바 공국 제8대 공작 카를로 1세 곤차가 Carlo I Gonzaga, Duca di Mantova | |
출생 | 1580년 5월 6일 프랑스 왕국 파리 |
사망 | 1637년 9월 22일 (향년 57세) 만토바 공국 만토바 |
재위 | 만토바 공국의 공작 |
1627년 12월 25일 ~ 1637년 9월 22일 | |
배우자 | 로렌의 카트린 (1599년 결혼 / 1618년 사망) |
자녀 | 프란체스코, 카를로[1], 페르디난도, 마리아 루이사[2], 베네데타, 안나 |
아버지 | 느베르 공작 루이 |
어머니 | 클레페의 헨리에테 |
형제 | 카트린, 마리, 프레데리크, 프랜시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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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만토바 공국과 몬페라토 공국의 공작. 페데리코 2세 곤차가의 손자이다. 만토바 공작이 되기 전에는 프랑스의 느베르와 레텔의 공작이었다.2. 생애
프랑스 중부 느베르의 공작 루이[3]의 아들로, 만토바 공국 곤차가 가문의 방계 가문 출신이다. 그런데 곤차가 가문의 남계가 끊어지면서 빈첸초 2세 곤차가의 뒤를 이어 만토바 공작이 되었다. 곤차가 가문 본가는 이탈리아인이었지만 곤차가느베르 분가는 프랑스인이었고, 프랑스의 귀족이 이탈리아의 공국을 물려받자 합스부르크 가문에서는 위기감을 느꼈다. 만토바 공국은 신성 로마 제국의 이탈리아 왕국에 속하기에 공국을 계승하려면 황제의 서임이 필요한데, 신성 로마 제국의 황제 페르디난트 2세는 서임을 거부하고 황후 엘레오노라가 곤차가 가문이라는 논리[4]로 만토바 공국을 요구했다.한편 곤차가 가문의 또다른 방계 가문 출신인 구아스탈라 공작 페란테 또한 계승권을 주장했다. 구아스탈라 공작은 합스부르크 가문의 지원을 받아 만토바 공국을 공격했다. 카를로 1세는 프랑스에 지원을 요청을 했으나 지원은 오지 않았고, 만토바는 제국군에게 포위당했다. 설상가상으로 전염병까지 돌면서 만토바는 약 25,000명의 사상자를 내고 항복했다. 합스부르크 가문은 승리했으나 독일의 전황이 불안해지자 1631년 레겐스부르크 조약으로 카를로 1세의 공국 계승을 인정하고 철수했다.
카를로 1세는 재위 기간 동안 도시를 재건하고 경제를 회복하는 일에 집중했다.
[1] 카를로 2세 곤차가의 아버지.[2] 폴란드-리투아니아 국왕 브와디스와프 4세 바사, 얀 2세 카지미에시 바사와 결혼.[3] 이탈리아식 이름은 루도비코 곤차가느베르[4] 엘레오노라는 빈첸초 1세 곤차가의 딸이다.